갑질의 신 100화
33. 날개를 펼치다(4)
SVN에 소속되어 있는 도한수 이사는 요즘 들어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기획한 독자적인 웹툰 연재관이 내일부터 새로 오픈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 웹툰 연재관 때문에 몇 날 며칠을 회사에서 숙박하면서 보내왔던가.
이사가 되고 나서부터 좀 쉬나 싶었더니만, 직책이 올라간 만큼 상부에서 그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는 더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도한수는 또다시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면서 또 다른 콘텐츠를 생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내일 성과를 보일 예정이었다.
“다시 한번 최종적으로 확인해 보고……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사내 자체적으로 열리는 회의 시간.
중심을 잡으며 가운데 위치에 자리를 잡은 도한수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라는 식으로 강조했다.
이윽고 직원들과 한 번씩 직접 면밀하게 아이컨택을 하듯이 쭈욱 그들을 훑어봤다.
“오늘만 고생하면 된다. 제대로 성과가 난다면 상부에 어필을 해서 특별수당과 더불어서 휴가를 주장해 볼 테니까 조금만 더 버텨줘라.”
직원들의 눈빛에 다시금 충성심이 어렸다.
도한수 이사는 부하 직원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기도 했다.
능력도 있고, 더불어 직원들에게도 좋은 상관이 되었다.
그가 이사직을 맡으면서 M 컬쳐 부서는 더더욱 활개를 띠어 갔다.
실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간부직을 맡게 되니, 부서가 보다 더 효율적이고 원만하게 굴러가게 된 것이었다.
회의를 끝내려는 분위기가 생성되는 와중에도 도한수는 끝까지 신신당부를 했다.
“눈물 비는 특별 관리 대상이니까 주의 깊게 모니터링을 하고. 혹여나 업데이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강제 퇴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확인하도록.”
“맡겨만 주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눈물 비는 이번에 새로 열리는 웹툰 연재관의 상징이자 희망이었다.
여타 다른 플랫폼들에게 공급받은 굵직굵직한 웹툰도 몇 개 있었지만, 그 어떠한 것도 눈물 비를 넘어설 수 있을 만한 콘텐츠는 없었다.
눈물 비 웹툰화 소식이 전해지면서 동시에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벌써부터 눈물 비의 웹툰 버전을 기대하는 유저들로 들끓었다.
웹툰이 공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
이미 독자들은 눈물 비 웹툰의 콘텐츠 공개와 함께 충분히 그에 대한 부응을 해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제 완벽한 서비스만 하면 될 일.
그 완벽한 서비스가 어려워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회의와 확인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오늘 하루만 좀 고생하도록.”
“예!”
다시 한번 전의를 다지는 M 컬쳐.
회의를 마치고 난 이후, 도한수가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뚜, 뚜, 뚜.
생각보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스마트폰에 귀를 기울이는 와중에, 드디어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저 도한수입니다.”
-도 이사님이시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통화 상대방이기도 한 우석이 전화를 걸어온 목적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도한수가 머쓱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하, 무슨 일이긴요. 내일이면 드디어 새로운 웹툰 연재관이 오픈되는데, 그거 알려 드리려고 한 번 전화를 드려봤지요.”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요. 요즘 사무실 이전한다고 워낙 바쁜 나머지 제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사무실 이사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업 확장과 동시에 인력 충원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이사를 가야 하는 반드 미디어.
우석이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들락날락거리며 평소 눈독을 들였던 건물이 드디어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끝이 났다는 말과 함께 이사를 거행하게 되었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깜박하고 있었군요.”
-아닙니다. 도 이사님도 워낙 바쁘실 텐데 잊으실 만도 하지요.
“시간 괜찮으시다면 제가 이번 주 안으로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굳이 그렇게 안 해주셔도 됩니다만.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저의 구세주이기도 하신 분이 사무실을 옮기는데, 그래도 방문 한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내일모레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직후. 수첩을 꺼내자마자 도한수는 바쁘게 자신의 스케줄 다이어리 일정표에 ‘반드 미디어 사무실 방문’이라는 글자를 적어 놓는다.
우석과 반드 미디어는 도한수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이들에게만큼은 최대한 모든 신경을 다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 * *
도한수에게 전화상으로 언급했듯이, 어제부터 우석은 사무실 이전 준비 때문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외부 인사들을 만나러 릴리아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야 했지만, 그래도 사무실을 이전하는 거대한 업무가 있는데 이것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본의 아니게 이번 주 내내 외근 스케줄 없이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서진아, 그거 짐 들고 가면 된다.”
“……예, 우석 님.”
무뚝뚝함이 느껴지는 서진의 대답.
이윽고 우석이 지시한 대로 양손에 거대한 종이 박스들을 2~3개씩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이삿짐 중에서도 무거운 짐에 속하는 수많은 책들이 담긴 박스들.
그러나 남서진은 큰 어려움 없이 박스들을 들고서 차분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와 박스들을 내려놓는 순간.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작은 먼지 덩어리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때마침 밑에서 짐들을 정리하고 있던 철수가 여전히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남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아, 안 힘드냐?”
“……괜찮습니다.”
“그, 그래?”
“…….”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대답을 들려준 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손수 짐을 내리기 위해 계단을 딛고 올라갔다.
무거운 짐은 거의 다 서진이 담당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호리호리한 체형을 지니고 있는 남서진.
그렇게까지 힘이 세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이삿짐을 옮기는 동안에는 남성미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거참…… 저번에는 릴리아나 씨한테 놀랐는데, 이번에는 서진이 녀석한테 놀라네.”
철수의 혼잣말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트럭에 짐을 싣고 있던 태준이 작은 웃음소리를 자아냈다.
“하하, 나중에 부디 꼭 서진이한테 힘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힘의 비결이요? 왜요?”
“유부남은 정력이 필요할 때가 많거든요.”
“아하…….”
세대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 법한 그런 발언이었다.
하기야 남자의 정력에 세대 차이가 어디 있겠는가.
유부남이든, 아니면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20대 청년이든 간에 서진처럼 강대한 힘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게 뻔하지 않은가.
남자의 상징은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남서진은 태준과 철수에게 있어서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물론 그 부러움의 대상은 한 명 더 있었다.
“우석 오빠! 나 왔어.”
오늘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노출도가 상당한 옷을 입고 등장한 화염룡이 오른손을 흔들면서 우석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먼저 반응을 한 것은 이름을 불리게 된 우석이 아니라 릴리아나였다.
“왜 이리 늦었지? 오늘 이사한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뭐야, 나도 와서 짐 옮기라고?”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우석 님의 일인데 네가 빠진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 아이티는?”
“그 녀석은 애초에 삐딱선을 탄 놈이니까.”
“나도 오늘부터 삐딱선 타면 되잖아.”
“…….”
오늘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빼놓을 수 없는 메인이벤트, 화염룡과 릴리아나의 신경전이 무자비하게 펼쳐졌다.
우석을 가운데에 두고 펼쳐지는 두 여자의 논쟁.
그 모습을 보던 철수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 놈은 힘이 좋고, 한 놈은 미인들에게 인기가 많고. 우리 주변에는 인생의 승리자들뿐이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생각을 해보니 태준도 이미 결혼을 해 어여쁜 아내와 귀여운 자식들을 데리고 사는 한 가족의 가장 아니겠는가.
왠지 철수는 자신만 혼자서 뒤처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철수의 자괴감을 뒤로한 채 반드 미디어 사무실 이전을 위해 두 팔을 걷어 올리고 열심히 짐을 옮기기 시작하는 이들.
이삿짐센터에 연락을 하려고 했으나, 이사하는 거리가 그리 먼 편도 아니었기에 철수가 지인에게서 개인 트럭 한 대를 빌려 이렇게 직접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번 이사를 통해 가장 많은 활약상을 보인 인물은 바로 남서진이었다.
평소에는 우석의 콘텐츠 사업에 그다지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었던 그였으나, 힘쓰는 일만큼은 그의 존재감을 압도할 만한 자가 없었다.
남서진 덕분에 순식간에 트럭 위에 이삿짐들을 싣게 되었다.
“다 실으셨습니까?”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묻는 이임전의 말에 철수가 엄지를 추켜올렸다.
“완벽합니다, 이 부장님!”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예!”
운전대를 잡은 이임전이 스틱을 움직이면서 트럭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1종 보통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석을 포함해서 이임전, 그리고 오태준과 남서진. 이렇게 네 사람이었지만, 그중에서 트럭을 몰아 본 사람은 이임전이 유일했다. 그래서 이임전이 이렇게 트럭 운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무실에 놓인 짐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트럭 한 대가 왕래를 하는 것만으로 모든 짐들을 옮길 수는 없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여러 차례 트럭을 이용해 왕래하면서 짐을 옮긴 지도 수차례.
이제 그 이동도 이번이 마지막인 셈이었다.
이사는 가급적이면 빨리 끝내야 했다.
왜냐하면 내일이 바로 눈물 비 웹툰이 최초로 업데이트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플랫폼에 업데이트하는 일을 반드 미디어가 하는 건 아니었다.
M 컬쳐에서 업로드를 하기 때문에 반드 미디어 측에서는 비축분을 미리 그쪽에 전달해 주는 것만으로도 업무를 끝낼 수 있었다.
이미 5회 분량의 웹툰 비축분을 M 컬쳐에게 전달해 준 이후.
부랴부랴 이사를 서두르게 되었다.
눈물 비 웹툰 업데이트뿐만이 아니라 그다음 날부터는 새로운 신입들이 출근을 서두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근 10여 명에 달하는 사원들의 숫자를 지금의 사무실로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재촉해야만 했다.
트럭을 보낸 뒤.
이제는 비어 버린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우석이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여 놓고 가는 물건이 있는지, 혹은 빠진 물건이 있는지 최종적으로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릴리아나에게 시키고 싶었지만, 그녀는 지금 화염룡과 투닥거리는 중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는 말 그대로 견원지간(犬猿之間).
우석이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 되기 전부터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는 말을 아이티를 통해서 들은 바가 있었지만, 요즘은 부쩍 그 충돌이 늘어나게 되었다.
아마도 우석 탓이리라.
“……골치 아프군.”
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남자로선 상당히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세상만사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뭐든지 적당한 게 좋지만, 두 여자의 논쟁은 적당함을 넘어서 지나침이라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우석이 세계의 주인을 맡게 된 이후.
릴리아나를 포함해 화염룡과 소봉예화, 아이티, 그리고 남서진까지.
총 5명(소봉예화와 화염룡을 별개의 인격으로 분류한다면)의 비서를 두게 되었다.
이제는 슬슬…….
“……서열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군.”
반드 미디어 사무실의 직급 체계 도입과 동시에 우석을 따르는 비서들끼리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서열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