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95화 (95/201)

갑질의 신 95화

32. 을의 갈등(1)

한루 대표 사무실 문 앞에 마주 선 이임전 부장.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똑똑.

문 위로 가볍게 노크를 하자,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이임전이 굳은 얼굴로 한루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남자, 오성태를 바라봤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최근 총 매출이 많이 떨어진 거 같은데. 이거에 대해서 자네의 의견을 듣고자 불렀네.”

“…….”

매출 하락은 작년 말부터 이어져 오던 현상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여 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플랫폼 이용자 수도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고, 유료 연재 전환율도 대다수의 작품들이 10퍼센트 이하를 보이고 있어.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보게.”

“그게…….”

오성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웹툰 작가들의 계약 조건 개선이 전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정산 비율로 따지자면 여타 플랫폼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치가 너무나도 높다. 인세가 낮은데, 작가들의 의욕이 어찌 오를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런 낮은 조건으로 실력 있는 유망주들을 한루 쪽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명백히 한계가 있었다.

결국 이임전이 주장하고 싶은 건 하나였다.

“작가들에게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실력 있는 웹툰 작가들을 영입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현재 연재하고 있는 웹툰의 퀄리티 또한 올…….”

“매출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 나가는 돈의 액수를 더 늘리자는 건가!”

쾅!

오성태가 주먹을 쥔 채 과감하게 테이블 위로 주먹을 내려쳤다.

그의 입장에선 이임전의 제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매출의 하락세가 계속되는 와중에 오히려 정산 비율, 혹은 작가들에게 지급되는 선인세를 올리자는 대안을 해 오다니.

“기획팀 부장이라는 녀석이 무능하니까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사과하는 이임전.

사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사원들 사이에서도 이임전이 없었으면 한루는 진작부터 망했을 거라는 말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다.

그러나.

오성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전부 다 이임전이 무능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동화 작가 하던 놈 하나 먹여 살려 주겠다고 기획팀 부장직에 앉혀 놨더니만……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들다니……. 쯧쯧쯧…….”

“…….”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대표 사무실 바깥으로 나온 이임전.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얼굴에 절로 쓴웃음이 번졌다.

기획팀 부장직을 맡게 되면서 그가 주로 하는 일 중 하나.

그것이 바로 회사 간부들에게 계속해서 사과의 말을 들려줌과 동시에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이 일도 더러워서 못해 먹겠구만…….”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관두게 된다면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

이임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웹툰 기획, 그리고…….

동화를 그리는 일뿐이었다.

동화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이임전은 어떻게 해서든 웹툰 기획 쪽으로 계속해서 활동을 펼쳐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장의 소임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루에서 괜히 안 좋은 형태로 일을 관두게 된다면, 이 소문이 업계 전체로 퍼져 나가 이임전의 이직에 방해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걱정 때문에 이임전은 최대한 저자세로 나가면서 오성태에게 굽실거리는 행동을 취해야 했다.

그는 절대적인 을이었다.

갑에게 단 한 번도 대들지 못하는 약한 을의 존재. 그게 바로 현재 이임전에게 부여된 입장이기도 했다.

그런 이임전에게도 한 방의 역전 찬스가 있었다.

갑에게 을의 저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어떻게 해서든…… 눈물 비 웹툰을 따내야 할 텐데.”

눈물 비 웹툰을 따오기만 한다면, 한루의 인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될 게 뻔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반드 미디어의 대표, 이우석이 그와의 만남을 가지고 싶어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무조건 눈물 비를 끌어와야 이임전은 잘리지 않고 계속해서 이 회사에서 근무를 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기회.

그러나 이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침착하게 가자. 이임전…… 넌 할 수 있어.”

자기최면을 걸며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이임전.

조만간 있을 반드 미디어와의 미팅에서 그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을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 * *

잠시 역에서 멀어진 틈을 타 우석이 지혜에게 말을 걸었다.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요?”

“음…… 글쎄요. 우석 씨는요?”

“저는 딱히 없습니다.”

선택권을 지혜에게 양보했다.

졸지에 권한을 넘겨받은 지혜가 잠시 고민에 휩싸였다.

그녀도 부천역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었다. 요 근처에 어떠한 맛집이 있는지는 지혜 또한 얼추 알고 있었다.

“파스타 먹으러 갈래요?”

“파스타라……. 좋지요.”

음식을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는 편이기도 한 우석이기에 흔쾌히 지혜가 제안한 식사류에 응하기로 했다.

거리도 부천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동 시간도 짧았다.

북부 사거리를 건너기 전.

지혜가 오른손을 뻗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저 가게인데…… 붉은색 배경에 흰색 글씨로 되어 있는 간판 보이세요?”

“저곳이군요.”

“혹시 가본 적 있으신가요?”

“가보진 않았지만…… 연주를 통해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하…….”

지혜도 연주가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우석의 친동생. 그리고 반드 미디어와 현재 계약을 맺고 작가로서 작품 준비 중인 젊은 여대생이기도 하다.

“연주는 요즘 글 잘 쓰고 있나요?”

“소봉예화가 여러모로 지도를 잘해 주는지 지금은 원고 진행에 차질 없이 잘 써 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1권 출간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지요.”

“어머…… 꼭 사야겠네요.”

“원하신다면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우석이 나름 친절함을 발휘해 봤지만, 지혜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서점에서 직접 돈을 주고 사는 맛도 있으니까요. 나중에 구입하면 사진 찍어서 인증도 할게요.”

“하하, 그래 주신다면야 연주도 기뻐할 겁니다.”

지혜도 우석이 그의 여동생을 매우 아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석은 레디너스 대륙에 있었을 당시에 가난으로 인해서 소중한 가족들을 잃어버린 좋지 않은 기억을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라울 더 그레이너가 아닌 이우석이라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만큼은 연주를 비롯해 우석의 부모님까지 자신의 진짜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 순간 가게 안으로 접어든 두 사람을 향해 젊은 직원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신가요?”

“예.”

“자리 안내해 드릴게요.”

젊은 여성의 안내에 자연스럽게 뒤를 따르는 우석과 지혜.

인기가 많은 가게인 모양인지 가게 내부에는 빈자리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차 있었다.

두 사람이 안내받은 곳은 운이 좋게도 전망이 좋은 편에 속하는 창가 쪽 자리였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종업원을 향해 우석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정한 뒤에 따로 호출하겠습니다.”

“네. 음식 결정하시면 벨 눌러 주세요.”

종업원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메뉴판을 들어 먼저 지혜에게 건네줬다.

“드시고 싶으신 거 먼저 고르세요.”

“그럼 전…… 이걸로 할게요.”

역시 가게에 많이 와 본 단골답게 메뉴를 고름에 있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모습이었다.

지혜의 뒤를 따라 우석 또한 메뉴를 정한 뒤, 벨을 눌러 종업원에게 시킬 메뉴를 들려줬다.

이윽고 잠깐의 대기 시간을 가지는 동안에 지혜가 중요한 말을 입에 담았다.

“사실 우석 씨를 보자고 한 이유가 따로 있었어요.”

“어떤 이유인가요.”

“실은…….”

잠시 말을 끊은 뒤 호흡을 가다듬는 지혜.

머지않아 다시금 입을 열며 최근 있었던 일에 대해 언급했다.

“회사 측에서 이번에 데뷔할 걸그룹 프로젝트에 저를 포함시키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해요.”

“오…… 정말입니까?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확실히 지혜는 재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외형적인 측면에서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 번쯤은 시선이 가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분명 그녀라면 대중의 눈과 귀를 호강시키게 만들어 줄 대스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화염룡도 인정한 그녀 아니겠는가.

어떠한 존재보다도 ‘보는 눈’에 있어서만큼은 화염룡, 소봉예화 콤비를 뛰어넘는 안목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는 대스타로 성장하게 될 지혜와 미리 친분을 다져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데뷔 일자는 언제로 정해졌습니까?”

보다 상세한 질문을 하는 우석에게 지혜가 머쓱한 반응을 보여 줬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일단은 이번 연도 말에 데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말이라……. 얼마 안 남았군요.”

“네. 덕분에 여러모로 준비도 하드하게 진행하고 있는 편이지만요. 매일 근육통에 시달리는 건 기본이에요.”

약한 소리를 들려주는 듯하지만, 그래도 이런 고통조차 지혜에겐 기쁨이기도 했다.

꿈에도 그리던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는데, 근육통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게 다 우석 씨 덕분이에요.”

우석을 향해 솔직하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우석은 그녀의 고마움을 자신의 공이 아닌 지혜 스스로의 노력으로 돌렸다.

“지혜 씨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입니다.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아니에요. 우석 씨가 저에게 좋은 말을 해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만약 우석 씨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아직까지도 유흥업소에 다니면서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안 좋은 짓을 당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렇군요.”

지혜에게 있어서 우석은 은인이자 동시에 백마 탄 왕자님과도 같은 존재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지헤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최대한 용기를 내며 오늘 우석과 만나고자 한 또 다른 목적을 들려줬다.

“……앞으로도 자주 연락해도 될까요?”

수줍은 그녀의 제안.

굳이 지혜와의 연락을 두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여 줬다.

“물론입니다.”

“정말요? 고마워요, 우석 씨!”

지혜가 노렸던 가장 큰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 * *

인적이 드문 골목길 안쪽.

작은 빛의 입자들이 서서히 모이더니 사람의 형체를 갖춰 가기 시작했다.

점점 빛의 발현이 줄어들자, 한가운데에서 이제 막 순간 이동을 마치고 돌아온 릴리아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짧은 호흡을 내쉬면서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소봉예화와 은지의 작업 상태는 별다른 문제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주 내로 5화 분량이 완성될 터.

그와 동시에 M 컬쳐에서도 선연재 독점관을 런칭해 곧장 반드 미디어의 웹툰을 연재할 수 있게끔 공간을 마련해 줄 것이다.

‘우석 님에게 보고할 게 많네.’

집에 가서 정리를 좀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 걸음을 재촉하려는 순간.

“……?”

릴리아나의 시야에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석과 지혜였다.

“두 분이 왜 같이 있는 거지……?”

자신도 모르는 미묘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스스로조차 알 수 없는 이 기분.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압박감이 그녀의 미간을 절로 찡그리게 만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