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93화
31. 경쟁(2)
뒷돈은 뒷돈이고, 그래도 하던 이야기는 마저 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도중, 상대편 측에서 자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웹툰 작가 목록 명단을 제시했다.
“여기…… 제가 파일로 작성을 해봤습니다.”
“흐음.”
물론, 이메일상으로 이미 어떤 작가들의 어느 작품이 제공될 것인지는 사전에 통보를 받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보니, 새삼 반드 미디어 측에서 제공하겠다는 웹툰, 눈물 비를 뛰어넘는 포스를 지닌 콘텐츠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회사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미팅을 하면서 수많은 업체들과 접촉을 해 왔지만, 전부 다 반드 미디어 이하의 수준이었다.
‘역시…… 비교가 안 되는군.’
원작을 가지고 있는 웹툰의 이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원작 팬을 끌어올 수 있다는 것.
게다가 그 원작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면 더더욱 기대치는 상승하기 마련이었다.
M 컬쳐 내부에서도 반드 미디어만큼의 파급력을 지닌 웹툰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반드 미디어를 잡은 도한수의 평가는 사내에서도 높은 축에 속했다.
그 덕분에 이사라는 직위까지 차지했으니……. 이 정도면 말 다한 편이 아닐까 싶었다.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 무렵.
상대측에서 예상외의 질문이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M 컬쳐에서 이번에 새로 런칭되는 웹툰 콘텐츠 중에서 대박 작품이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게 무슨 소리지요?”
“뭐였더라…… 그 있지 않습니까? 로맨스에서 대박을 친 소설, 눈물 비가 웹툰으로 제작되어 M 컬쳐에 선독점 연재된다는 소문이 지금 업계에 파다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벌써 소문까지…….”
자고로 비밀이란 3명 이상이 알기 시작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다는 말도 있었다.
특히나 대한민국 장르 시장이 넓은 편도 아니고, 여기저기 손 뻗치면 거의 다 통하는 인맥망도 구축이 되어 있다.
아마 이런 소문이 퍼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대다수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도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표현했다.
“예, 맞습니다.”
“호, 혹시 그 웹툰 제작 외주를 맡게 된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까?”
“외주 회사는 아닙니다. 반드 미디어의 이우석 대표가 이은지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 그림 작가를 구해 자체적으로 웹툰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체적으로라……. 제가 알기로는 반드 미디어는 웹소설 쪽에서만 활동하던 업체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웹툰 제작까지 가능할 만한 여력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전문 업체에게 외주로 맡기는 게 좋을 듯한데…….”
“저도 얼마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의외였지요.”
“의외?”
“…….”
일순간 입을 굳게 다문 도한수였으나,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스마트폰을 꺼내 보였다.
“아직 공개하진 않았습니다만…… 실은 얼마 전, 반드 미디어 측에서 프롤로그 편수에 해당하는 1회차 편수 완성본을 보내왔습니다.”
“오, 저, 정말입니까?”
남자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원작이 대박을 한 번 낸 콘텐츠인 만큼 웹툰 제작도 과연 성공적으로 되었을지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한수가 좀 더 바짝 몸을 붙여 왔다.
“대표님만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여기…….”
스마트폰 화면 위로 눈물 비 프롤로그 편수가 띄워졌다.
첫 장면을 보자마자.
대표와 그를 따라온 기획팀 부장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세상에…….”
“이런 연출이…… 정말 가능하다는 겁니까?”
“믿을 수가 없구나…….”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이은지는 신인에 불과한 그림 작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인이라 보기에 힘든 구도와 장면 연출, 게다가 색감까지 눈물 비라는 작품이 지닌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화염룡이 그녀를 직접 고른 이유가 있었다.
“반드 미디어…… 괴물 같은 곳이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웹툰, 웹소설 관련 회사와 미팅을 가지면 언제나 갑의 위치를 유지하는 게 바로 M 컬쳐, 즉 도한수 이사였다.
그러나 반드 미디어와의 미팅을 가질 때에는 그 계급이 미묘하게 역전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늘 도한수는 을이었고, 우석은 갑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다소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석과 반드 미디어는 도한수가 을로서 제대로 대접을 하는 만큼, 그만한 성과를 거두게끔 해줬다.
그래서 도한수는 결코 우석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앞으로도 더더욱 파트너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었다.
그를 이사로 올려 준 존재도 실질적으로 봤을 때는 우석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스마트폰을 거둬들인 도한수가 마치 자신의 자랑인 양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눈물 비 웹툰 때문이라도 이번 M 컬쳐가 새로 만들게 될 독점 연재관은 더더욱 많은 힘을 발휘할 겁니다.”
“과연……. 이 정도면 사람들이 안 몰릴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하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적이 드문 카페 한가운데에서 도한수의 웃음소리는 줄어들 줄 몰랐다.
* * *
20여 명 남짓한 인원에게 연락을 돌리던 릴리아나.
그러던 도중,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내선 전화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예, 반드 미디어입니다.”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SD 메리아 기획팀장, 강윤미라고 합니다.
‘……기획팀장?’
SD 메리아면 릴리아나도 들은 적이 있었다.
요즘 한창 매섭게 성장하고 있는 웹툰 기획 업체 중 하나 아닌가.
처음에는 릴리아나도 업체들의 정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문외한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해당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방면으로 알게 되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나요?”
목적을 묻고자 넌지시 강윤미라는 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강윤미란 여자가 전화를 걸어온 목적에 대해 천천히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반드 미디어 측에서 눈물 비 웹툰을 제작하고 계신다는 말을 들어서요. 혹시 그에 관해서 저희 업체에게 외주를 맡겨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려고 전화 드렸어요. 가능하시다면 미팅을 한 번 가졌으면 좋겠어요.
‘……또 이 전화인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가볍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물 비 웹툰 제작 소문이 어디부터 퍼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런 전화가 쇄도를 하다 보니 상대하는 입장인 릴리아나로서는 귀찮음의 연속이었다.
“그 웹툰은 저희 반드 미디어가 자체적으로 진행 중이니 그 점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한 번 더 생각해 주세요. 저희는 요즘 한창 잘나가고 있는 웹툰, ‘주먹으로 한 방’을 연재하고 있는 기획 업체로서…….
“죄송합니다. 회의가 있어서 전화 끊도록 하겠습니다.”
-자, 잠시…….
뚝.
과감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릴리아나.
그다지 좋은 태도라고 할 순 없었지만, 우석이 이런 전화가 오면 그냥 끊어도 된다고 했으니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을 터였다.
한편, 오랜만에 외근이 아닌 실무를 진행하고 있던 우석이 릴리아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전화였기에 그러는 거지?”
“눈물 비 웹툰 제작을 자기네들 쪽으로 맡겨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그렇군.”
우석도 릴리아나가 왜 전화를 하는 동안 그렇게 태도를 강경하게 했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눈물 비는 놓치기 싫은 대작이었다.
웹툰에 공을 들여 만들기만 한다면, 대박을 칠 게 분명했다.
기존의 팬들은 무조건적으로 볼 테고, 거기에 더해서 웹툰 팬들까지 끌어들인다면…… 조회수는 이미 약속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일확천금의 기회를 보고 하이에나들이 달려드는 건 기본 아니겠는가.
제작 문의는 어차피 반드 미디어에서 자체적으로 웹툰화 작업을 하고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눈물 비를 노리는 또 다른 부류의 하이에나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띠리리리링!
또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릴리아나의 전화.
평소 무표정을 유지하던 릴리아나조차도 살짝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녀가 손을 뻗어 전화를 받으려고 하던 찰나에, 릴리아나보다 먼저 수화기를 든 인물이 있었다.
“여보세요.”
수화기를 들고 입을 여는 우석.
그의 모습에 릴리아나의 표정에 당혹감이 어렸다.
그녀가 해야 할 잡무를 우석이 도맡아 한 셈이니, 어찌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
릴리아나의 이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우석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한루 기획팀 부장, 이임전이라고 합니다.
“한루라고 한다면…….”
-예.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한때 많이 유명했던 웹툰 플랫폼이지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이임전의 센스 있는 발언 덕분에 우석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한루’라는 웹툰 연재 플랫폼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웹툰 플랫폼 매출 1순위를 달릴 만큼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 왔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계속되는 운영 미스와 더불어 경쟁 사이트들의 빠른 상승 덕분에 현재 한루의 지위는 많이 약화되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특정한 누군가가 정점의 자리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했다.
아마 한루 측에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터.
비록 지금은 업계 1위의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다시 한번 정상으로 향한 등반을 하기 위해 모험수를 띄우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반드 미디어와의 접촉이었다.
* * *
이임전이 반드 미디어 측으로 전화를 걸기 불과 몇 분 전.
“눈물 비라면…… M 컬쳐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그 로맨스 웹소설 아닌가?”
“네, 맞습니다.”
부하 직원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웹툰을 기획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웹소설 모니터링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루는 연재 플랫폼임과 동시에 자체적으로 웹툰을 기획, 만들어 낼 수 있는 팀도 꾸리고 있었다.
특히나 요즘 웹툰 업계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 바로 ‘원작이 될 만한 웹소설’이었다.
그 원작이 될 만한 웹소설을 찾아 헤매던 중, 이임전의 눈길을 잡아끈 것이 눈물 비라는 웹소설이다.
스토리적인 면의 완성도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웹툰화하기 좋은 구도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 눈물 비 웹툰 작업 외주를 따낸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베스트라 할 수 있겠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미 반드 미디어가 알아서 제작하고 있다고 하네요.”
“회사 내부에서 작업을 진행한다고?”
“네.”
“허허…… 거참.”
반드 미디어는 이제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생 기업이었다.
게다가 규모가 큰 업체도 아닌데, 어떻게 자체적으로 웹툰을 제작하겠다는 건가.
이임전의 입장에선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건 그쪽 업체이니 더 이상 토를 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웹툰 제작은 물 건너갔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은 한 개가 있지 않은가.
“반드 미디어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지?”
“전화해 보시게요?”
“물론.”
“외주를 따낼 수도 없을 텐데요?”
“바보 녀석아,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잖냐.”
수화기를 든 이임전의 얼굴에 자신감이 내비쳐졌다.
“우리 플랫폼에도 제발 연재하게 해 주세요…… 라고 굽실거리기라도 해야지. 안 그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