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91화
30. 팀플레이(2)
“수…… 수고하셨습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면서 땀방울을 닦아 내는 한지혜.
그러자 트레이닝복 차림을 갖춰 입은 여성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생했어. 갈수록 실력이 느는 게 보이니까 가르치는 보람이 있네.”
“그, 그런가요?”
댄스 강사의 발언 덕분에 지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혜의 춤 연습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은 일부러 듣기 좋은 거짓 사탕발림을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 칭찬은 진실이다.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지혜의 기분이 더더욱 좋아졌다.
회사를 관두고 나서 연습에 매진한 결과.
강사들 사이에선 지혜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이대로 가면 데뷔도 분명 꿈은 아닐 터!
그 생각이 지혜의 꿈을 이루기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석을 비롯해 그녀의 꿈을 응원해 주는 사람 또한 존재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됐다.
이미 가수란 목표는 그녀 혼자만의 꿈이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후우우…….”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된 지혜가 목에 두른 수건으로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계속되는 레슨의 향연.
일부 연습생들은 힘든 연습 일정 탓에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나간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혜는 끝까지 버티고 버텨 냈다.
언젠가는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볼 것이라 믿으면서 쉬는 시간에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소식 하나가 전달되었다.
“지혜야.”
“네!”
연습생들의 스케줄을 관리해 주는 매니저 여성이 그녀의 이름을 호명했다.
대기실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지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다른 게 아니고…… 너한테 좋은 이야기를 전해 주려고.”
“좋은 이야기요?”
“그래. 조만간 우리 회사에서 실행할 걸그룹 프로젝트 있잖냐.”
“아…… 네.”
LC 엔터테인먼트에서 자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걸그룹 프로젝트.
요즘 시대에 걸그룹은 가요계의 대세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독성 있는 후크송으로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존재.
그것이 바로 걸그룹이었다.
물론 LC 엔터테인먼트 역시 걸그룹을 양성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조만간 실력 있는 젊은 여성 연습생들을 모아 걸그룹으로 데뷔시킬 단계를 밟아 간다는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그것이 바로 걸그룹 프로젝트였다.
그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기 위해 LC 엔터테인먼트의 젊은 연습생들은 지혜처럼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지혜한테 천재일우의 기회가 다가왔다.
“그 프로젝트에 네가 포함될 예정이라고 하더라.”
“제가…… 요?”
놀란 얼굴로 다시 묻는 지혜.
믿기지가 않았다.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생 신분으로 이곳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 정말로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니 현실성이 떨어졌다.
가수 한지혜!
그 단어가 지혜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혹시…… 몰래카메라 같은 건 아니죠?”
주변을 둘러보며 몰래카메라 같은 게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닐까 확인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런 지혜의 반응에 매니저 여성이 실소를 토해 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우리 회사는 이런 거 가지고 장난칠 시간도 없어.”
“그, 그런가요?”
“그리고 몰래카메라를 할 거면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 좋지, 무명의 연습생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할 대중들이 어디 있겠니?”
“…….”
하기야.
그녀의 말이 맞았다.
몰래카메라를 할 거면 차라리 대중들이 충분히 알 법한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고작해야 연습생 신분에 불과한 지혜를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찍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기도 했다.
가슴은 아프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었으니까 연습 더 열심히 해둬.”
“네!”
벅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드디어…….
그녀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 * *
반드 미디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우석이 굳게 닫힌 회의실 문을 바라봤다.
“누가 오기라도 했어?”
그의 물음에 가장 먼저 대답을 들려준 건 바로 그의 친구, 철수였다.
“은지 씨하고 화염룡 씨.”
“……그렇군.”
어제 술자리 때문에 제대로 된 기획 회의도 하지 못했을 터.
부랴부랴 오늘이라도 다시 날을 잡아 하는 것이 어찌 보면 옳은 행동일지도 몰랐다.
“마침 잘되었군.”
뭔가 결심을 한 우석이 가볍게 회의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
그 소리와 함께 릴리아나가 슬며시 회의실 문을 열었다.
“우석 님……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눈물 비 웹툰에 관해 알려 줄 사항이 있어서 그렇다. 들어가도 되나?”
“네, 들어오세요.”
우석이 등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화염룡이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우석 오빠, 하이~”
“……넌 숙취 같은 건 없나 보군.”
“나야 워낙 술에 단련된 여자니까. 그리고 숙취에 시달리는 건 릴리아나 한 명만으로도 족하잖아?”
순간적으로 릴리아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사실인지라 그녀에게 쉽사리 태클을 걸기도 어려웠다.
그녀는 화염룡과의 술자리 내기에서 졌다. 그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기도 했다.
술 내기에서 이겨 우석에게 더 이상 찝쩍거리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으나…….
그 찬스가 날아간 건 릴리아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애초에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건 릴리아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한순간의 오기가 그녀에게 희망의 빛을 선물해 줬다.
그리고 그 희망의 빛이 준 유혹에 넘어가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지만…….
일정만 밀리고, 이기지도 못하고.
릴리아나가 얻은 결과물은 하나도 없었다.
“어흠.”
헛기침으로 화염룡과의 대화를 일시 중단한 우석.
이윽고 테이블 중앙에 놓인 의자에 착석했다.
“눈물 비 웹툰화 진행에 관해서 추가적으로 알려 드릴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우석이 은지를 비롯해 화염룡을 번갈아 바라봤다.
작품을 만들어 가는 두 사람도 일단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들이었다.
“눈물 비 웹툰은 우선적으로 M 컬쳐에서 선독점 형태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번에 새로 웹툰 독점관을 오픈하는데, 그곳에 1차 라인업으로 들어갈 예정이지요.”
“M 컬쳐……!”
은지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어 갔다.
M 컬쳐는 웹툰 초창기 무렵 웹툰 시장 성장에 크게 기여한 포털 사이트, 미논과 같이 SVN 계열사로 있는 플랫폼이기도 했다.
미논에서 유료 연재되는 웹툰들은 대다수 M 컬쳐에서 판매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유명 웹툰 작가들과 같이 은지의 웹툰 역시 M 컬쳐에 나란히 연재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신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프로모션에 관한 건 도 이사와 협의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결정되는 게 있는 즉시 릴리아나를 통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우석이 곁눈질로 릴리아나를 바라봤다.
그러자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우석의 다음 이어질 말을 대신 이어받았다.
“연재일은 주 1회 연재로 확정 잡을까 합니다. 그리고 연재 시작 전 비축분에 관해서는 차후 작업을 진행해 가면서 유동적으로 맞추려고 계획 중입니다만…… 가급적이면 그래도 5회분 이상의 차이는 벌려 두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날 연재 주기에 맞춰서 바로 비축분 없이 웹툰을 올리는 작가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은지의 경우에는 정식으로 웹툰 연재를 한 경험이 없는 신인에 불과했다.
물론 실력은 있지만, 그래도 경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컸다.
은지의 부족한 경험은 일종의 불안 요소였다.
혹여나 웹툰을 연재하는 도중, 일부 인신공격성을 지닌 댓글로 인해 멘탈이 흔들려 제대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플랫폼이나 반드 미디어 입장에선 상당히 낭패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벌어질 이런 우려의 사태를 대비해서라도 비축분은 반드시 쌓아 둬야 했다.
5회분을 비축분으로 미리 만들어 둔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 경우에 웹툰을 못 그리게 되었다 하더라도 5주의 준비 기간은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그 준비 기간은 훗날 은지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기에 우석은 일부러 5주차 분량을 비축분으로 쌓아 두기로 결심을 했다.
릴리아나의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우석이 사적인 견해를 더했다.
“마음 같아선 10회분으로 잡고 싶었지만…… 그래도 비축분과 연재분이 너무 차이가 많이 생겨 버리면 방향성 수정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5회분으로 잡았습니다.”
“방향성 수정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요?”
마치 수업 시간에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모범생처럼 손을 들고 질문하는 은지였다.
그녀의 모습에 우석이 나름 친절히 설명을 들려줬다.
“웹툰을 연재하는 도중에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우리 반드 미디어 측이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시나리오라든지 연출적인 면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댓글 확인과 그 댓글의 내용을 피드백 받아 웹툰으로 적용시키려면 너무 많은 비축분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거든요.”
“아하…….”
“댓글은 소설이든 웹툰이든 가장 직설적인 피드백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피드백을 바로바로 적용시키려면 가장 베스트는 그날그날 웹툰을 작업해 올리는 건데…… 이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위험부담이 있는 일인지라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을 봐서 5회분으로 결정했군요.”
“네.”
“음…… 그런 거라면 이해됐어요.”
고개를 끄덕여 주는 은지.
사실 반드 미디어는 여타 어떠한 콘텐츠 회사보다도 독자들의 입맛과 취향이 어떤지 잘 알고 있는 회사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화염룡과 소봉예화의 존재 때문이었다.
두 비서의 능력만 있으면, 사실 댓글에서 피드백을 받고 안 받고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설마’라든지 ‘혹시’라는 단어처럼, 화염룡과 소봉예화조차도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 ‘만약’이라는 상황을 대비하고자 우석은 일부러 비축분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두고자 했다.
“한 회분의 컷 분량이라든지 이런 상세한 것들은 릴리아나가 설명해 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필요한 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릴리아나에게 물어보세요. 그녀가 이번 눈물 비 웹툰화팀의 담당이니까요.”
“팀…….”
은지의 눈빛이 초롱초롱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도 이 팀의 일원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작화 담당을 맡고 있었다.
로맨스 소설 파트에서 대박 행진을 이어 가고 있는 눈물 비.
이 작품의 작화를 맡게 된 은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을 느꼈다.
게다가 우석과 릴리아나, 남서진까지. 세 사람에게 많은 신세도 지지 않았는가.
이번 웹툰 작업을 어떻게든 성공적인 사례로 남겨, 세 사람에게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해줘야 했다.
그것이 은지의 목표였다.
“그럼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기운차게 대답하는 은지의 목소리 때문일까.
우석의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콘텐츠를 굴리는 건 우석의 일이다.
그러나 해당 콘텐츠의 퀄리티가 좋지 않으면 제아무리 작품을 굴린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양질의 측면에서 보다 좋은 퀄리티를 뽑아내야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
이 중요한 역할을 해 줘야 할 사람이 바로 은지였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화염룡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녀가 뭔가 발언을 할 때마다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는 릴리아나.
그러나 우석의 앞이라서 그녀의 발언권을 멋대로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말해봐라.”
우석으로부터 발언권을 허가받자, 화염룡이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 색다른 건의를 들려줬다.
“합숙하고 싶은데.”
“합숙?”
“응. 어차피 이번 웹툰화 작업은 반드 미디어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잖아? 이번 웹툰화를 계기로 웹툰 사업 진출 여부가 결정될 테니까.”
“……맞는 말이긴 하지.”
“그래서 말인데, 우석 오빠.”
화염룡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 때 나오는 그녀 특유의 표정이기도 했다.
“은지 씨를 우리 집에서 당분간 머물게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