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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90화 (90/201)

갑질의 신 90화

30. 팀플레이(1)

은지가 오기 전, 릴리아나와의 동행 없이 혼자서 사무실 바깥으로 나온 우석은 이번에 새로 합류하게 된 비서, 남서진을 전화로 불렀다.

이윽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우석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서진.

“……부르셨습니까, 우석 님.”

“일찍 왔군.”

“……24시간 항시 대기 중이기 때문에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바로 올 수 있습니다.”

남서진도 우석을 만나기 전인 아이티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돈벌이 수단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우석은 그에게 부천역 근처에 따로 원룸을 마련해 줬고, 그곳에서 생활하게끔 배려를 해 줬다.

그 덕분에 지금은 ‘우석의 보디가드’라는 명목하에 월급쟁이 생활을 하게 된 남서진.

그러나 사실 그의 능력이 사업적인 면에서 많은 활약을 보이기엔 힘들었다.

능력적인 효율성을 따진다면 모질게 굴긴 해도 아이티라든지 혹은 화염룡과 소봉예화 콤비가 가장 나은 편이었다.

하다못해 릴리아나처럼 순간 이동에 재능을 보인다면 이동 수단 대신에 활용하기 참으로 좋으련만.

남서진의 주먹은 그다지 많은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우석은 최대한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남서진을 일부러 데리고 다니면서 그의 활용도를 높이고자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릴리아나가 이른 아침부터 숙취에 시달리고 있으니, 오늘은 그녀 대신 남서진을 사용하는 편도 나쁘진 않으리라.

“갈 곳이 있다.”

“……어디로 갈 예정이십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남서진의 눈동자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물들었다.

구태여 자신을 부른 일이라면…….

조폭 집단에 쳐들어가 주먹으로 그 조직을 평정한다든지, 혹은 악질적인 수배자를 잡기 위해 움직인다든지 하는 그런 일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남서진의 머릿속에 들고 있었으나.

정작 우석은 전혀 다른 장소를 언급했다.

“부동산 좀 보러 갈 거다.”

“……네?”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가려고 한다만.”

“…….”

순간, 남서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로 단지 그뿐이란 말인가.

자신의 주먹이 필요한 곳으로 가는 게 아니었나.

고작해야 부동산 가는 길에 자신을 대동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 세계의 주인을 호위하는 것 자체가 내가 할 일 아닌가.’

이내 스스로 납득을 해버렸다.

남서진도 그의 능력이 우석의 사업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편의점에서 아이티의 먹을거리 사 오는 심부름꾼으로 일했을 정도였겠는가.

그래서 남서진은 마음가짐을 달리 먹기로 했었다.

세계의 주인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설령 그것이 허드렛일이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이다.

“가자. 시간 아깝다.”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채 우석의 뒤를 따르는 남서진이었다.

* * *

우석이 가고자 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드 미디어 사무실보다 오히려 아이티가 머물고 있는 원룸과 더 가까웠다.

“……이곳입니까?”

간판을 올려다보며 묻는 남서진의 물음에 우석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래.”

“얼마 안 되는 거리였군요.”

“기껏해야 5분 정도지. 신호등에 걸린다면 7분 거리나 될까.”

“…….”

먼 거리를 이동한 것도, 그리고 위험한 장소를 통해 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남서진이 나설 틈도 없었다.

물론 남서진도 자신이 나설 만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렇게 직접 대면해 보니 뭔가 기운이 축 빠졌다.

“들어가자.”

“……예.”

우석이 먼저 사무소 문을 열고 앞장섰다. 동시에 사무소 문에 달려 있던 작은 벨이 ‘딸랑!’ 소리를 내며 낯선 방문자를 반기는 신호음을 자아냈다.

“계십니까.”

우석의 말에 책상에 앉은 채 이어폰을 꽂고서 노래를 듣고 있던 중년의 남성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우석과 남서진의 모습을 보자마자 반가운 기색을 뽐내며 그에게 다가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우석 씨 아닌가요!”

“오랜만입니다.”

우석도 초면이 아닌 양 그의 인사를 받아 줬다.

이곳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우석이 처음 철수와 같이 콘텐츠 재활용 사업을 할 때 구입했던 원룸(지금은 아이티가 사용 중이다)을 찾을 때, 그리고 현 반드 미디어 사무실과 릴리아나의 보금자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서진이 머물 곳을 찾고자 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장소이기도 했다.

단기간 내에 많은 복비를 챙겨 준 우석인데, 어찌 그의 존재를 잊을 수나 있을까.

“자자, 여기 앉으시지요.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그렇다면…… 커피 한 잔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옆에 계신 분은…….”

우석의 뒤를 이어 타깃이 된 남서진이 가볍게 한 글자로 압축했다.

“……물.”

“하하, 알겠습니다.”

중개사가 잠시 음료를 챙기는 동안, 우석이 벽에 붙어 있는 자료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세간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돈을 벌려면 사업이든 주식이든 뭐든 이런 것들을 만사 다 제치고 부동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었다.

만약 우석이 콘텐츠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애초에 부동산이니 무역이니 하는 것들은 기존 그가 머물던 세계에서 질리도록 많이 해봤던 사업 분야이기도 했다.

돈의 왕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사업을 섭렵한 우석인데, 기왕 이계로 건너왔으니 새로운 도전을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우석은 이렇게 콘텐츠 사업으로 돈을 벌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그에 합당한 능력을 지닌 비서들도 주변에 있었으니 사업 번창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듯했다.

물론 옆에서 맹물을 홀짝이는 남서진을 제외하고 말이다.

두 사람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중개사가 입가에 미소를 유지한 채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우석이 중개사에게 인사나 드리고자 이렇게 찾아온 적은 없었다.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 터.

그 목적이라 함은 뻔하지 않겠는가.

구태여 시간을 할애해 공인중개사 사무소까지 왔다는 건, 뭔가 또 필요한 매물을 찾고자 한다는 뜻과도 마찬가지일 게 틀림없었다.

머지않아 중개사의 이런 예상에 딱 들어맞기라도 하듯.

우석이 먼저 찾아온 목적에 대해 말을 꺼냈다.

“사무실을 이전할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사무실이라면…… 우석 씨께서 하고 계시다는 그 종합 미디어 사무실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중개사도 우석이 대충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는 장소를 구할 때에 슬며시 우석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를 흘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부류의 사업을 하고 있는지, 어떤 용도로 매물을 찾고 있는지 미리 말을 해 두면 거기에 맞춰서 중개사가 좋은 물건을 소개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우석은 일부러 반드 미디어에 관한 사업 부류 관련 정보를 들려줬었다.

“그렇군요. 사무실이라……. 그곳 구한 지 아직 1년도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새로운 사무실을 찾으러 돌아다니실 정도라니. 사업이 꽤 잘되신 모양인가 봅니다.”

“그런 셈이지요.”

“어디 보자…… 그럼 한번 찾아볼…….”

“굳이 찾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마음속에 점찍어 두고 있는 물건이 있으니까요.”

“점찍어 둔 게 있다?”

“저번에 제가 보아둔 그 물건입니다.”

“아……!”

그제야 우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리게 된 중개사가 짧은 감탄사를 들려줬다.

원룸에서 지금의 반드 미디어 사무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석이 눈여겨봤던 건물이 하나 있었다.

딱히 잘 관리되고 있는 건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버려진 느낌에 가까운 그런 건물이었다.

“그 물건이라면…… 물론 싸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물건이라고 말씀드리긴 힘듭니다만.”

“괜찮습니다. 그 건물 통째로 사서 내부, 외부 공사로 싹 뜯어고칠 예정이니까요.”

“건물을 통째로 사신다고요?”

“예.”

“허허…….”

단순히 사무실 임대 쪽을 생각했던 중개사였으나, 갑자기 스케일이 커진 이야기에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개사로서는 반가운 입장이기도 했다. 그만큼 복비도 올라가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조만간 한번 연결을 시켜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마 거래상에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쪽 건물주도 충분히 팔 의향도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애간장만 태우고 있는 상태였으니, 싸게 업어 갈 수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러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기왕 물건을 사는데, 본래 가격보다 좀 더 싸게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놓칠 이유가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버려진 건물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우석이 보기에는 그곳은 결코 버려진 장소가 아니었다.

그는 애초부터 돈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닌 남자였다.

분명 우석의 예상대로라면…….

조만간 그곳 일대의 집값이 크게 오를 것이다.

* * *

우석이 중개사 사무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반드 미디어에는 은지에 이어 또 다른 방문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를 들려주며 사무실 문을 열고 상큼한 인사를 건네 오는 여성, 화염룡.

그녀의 등장에 철수와 태준이 반갑게 맞이해 줬다.

“좋은 아침…… 아니, 좋은 오후입니다.”

“그보다 은지 씨하고 릴리아나는 어디 있나요?”

약속 시각보다 30분이나 지각한 화염룡이었다.

늦은 시간만큼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 했기에 곧장 두 여자의 위치를 물었다.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뗀 철수가 오른손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회의실 안에 있어요.”

“고마워요, 철수 씨.”

“천만에요.”

간단하게 고마움을 표현한 화염룡이 회의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고리를 잡은 채 활짝 문을 열자, 한창 뭔가를 끄덕이고 있는 은지와 책상에 여전히 엎드린 채 숙취에 고통받고 있는 릴리아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화염룡의 등장에 은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셨어요?”

“네. 그보다 릴리아나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이네요.”

“아무래도 어제 마신 술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모양인가 봐요.”

“하아…… 술이 그렇게 약해서야 쓰겠나. 그러다가 우석 오빠의 술 상대도 못 되어 줄 거 같은데. 비서로서 실격이네.”

화염룡의 ‘비서 실격’이라는 자극적인 말에 번뜩 상반신을 일으킨 릴리아나.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지각한 주제에 말이 뭐가 그렇게 많아.”

“어머, 다시 제정신 차린 거야?”

“……원래부터 제정신이었어. 빨리 앉기나 해. 바로 기획회의 할 거니까.”

“알았어.”

화염룡도 더 이상의 무의미한 언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얌전히 릴리아나의 말에 따랐다.

자리에 앉는 순간, 릴리아나가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은지와 화염룡,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어제 제대로 하지 못한 기획 회의부터 마저 할게요.”

수첩을 펼치면서 웹툰 연재를 시작할 플랫폼들과 더불어 연재관에 들어갈 시기, 기타 세부 사항 등등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우선은…… 선 독점으로 어느 한 플랫폼을 골라 그곳 연재관에 반년 정도 먼저 연재가 될 거예요. 플랫폼이 어디인지는 우석 님께서 여기저기에 협의를 보고 계시니까 그건 나중에 결정된다면 바로 알려 드릴게요. 그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차 말을 이어 가는 릴리아나.

그녀의 모습에 은지도, 심지어 나름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일해 온 직장 동료이기도 한 화염룡도 대단하다며 속으로 감탄을 연발했다.

어떤 의미로 릴리아나는 독종이라 불릴 만큼 독한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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