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84화 (84/201)

갑질의 신 84화

26. 본보기(2)

반드 미디어 사무실 내부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릴리아나는 특별한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한창 준비에 임하고 있었다.

한편, 눈물 비 다음 시리즈 종이책 출간 작업 때문에 또다시 며칠 동안 야근에 야근을 거듭하고 있는 철수와 오태준 콤비.

두 남자의 눈 밑에는 이미 다크서클이 짙게 새겨져 있었다.

프린트로 다수의 종이들을 출력하던 릴리아나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본다.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거 같습니다만.”

“잠이야 뭐…… 하루에 3시간 정도면 많이 잔 셈이지요.”

철수는 딱히 잠이 많은 체질이 아니다.

평균적인 수면 시간만 취해도 되는 그였지만, 3시간은 결코 평균 수면시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나마 철수보다 이런 야근 작업에 익숙한 오태준은 좀 버틸 만한 몰골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이니 조금만 더 힘내면 됩니다, 철수 씨.”

“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요…….”

반드 미디어는 최근, 눈물 비 시리즈뿐만이 아니라 다른 판무협, 로맨스 종이책 업무도 하나둘씩 소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출판사들처럼 한 달에 몇십 권씩 뽑아내거나 하진 않는다.

그럴 만한 여력도 안 될뿐더러, 아직까지 종이책을 뽑아낼 만한 콘텐츠의 숫자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반드 미디어는 애초에 종이책으로 엄청난 수익 구조를 내려고 하는 회사가 아니다 보니 한 달에 기껏해여 3~4권 정도밖에 내지 않고 있다.

친 대여점 정책을 펼치며 그간 많은 대여점에 유통되었던 판무협 시장이지만, 이제는 전국에 위치한 대여점의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예전만큼 만 부 시장을 노릴 수 없게 되었다.

종이책 시장이 축소화됨에 따라 매출 역시 자연스럽게 하락세를 선보이고 있다.

그 와중에 굳이 이제와서 전면적으로 종이책 시장에 끼어들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 미디어 또한 종이책 업무를 소화하기 시작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작가들을 붙잡으려고 하는 의도이다.

소설 작가라고 함은 은연중에 종이책이라는 유형의 형태로 책을 내길 바라는 사람들이 꽤나 다수 존재한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회사는 종이책 업무를 하고 있다’라는 면모를 보여줘야 훗날 반드 미디어와 손을 잡고 좋은 콘텐츠를 기획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이책 시장이 많이 축소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망하진 않았다.

아직까지는 같이 끌고 갈 만하다는 판단을 했기에 우석은 반드 미디어에게도 출판 업무를 지시하게 되었다.

여력이 도저히 안 되는 판무협 종이책 작업은 민아 출판사 쪽으로 맡기는 중이다.

그러나 우석은 최종적으로 회사 내부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출판 직원들도 다수 끌어들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일환 중 하나가 최근 구인 사이트에 다수 올린 공고문이다.

“사람이 좀 뽑혔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오태준도 진심으로 추가 인력이 들어오기만을 바라는 중이다.

철수가 그나마 오태준의 가르침을 잘 받고 따라와 줘서 다행이지만, 사실 종이책 업무를 하는 데보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다른 책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소장판으로 나가는 눈물 비의 경우에는 적어도 교정 작업을 1, 2교가 아닌 최소 4, 5교까진 봐야 한다.

교정 교열 작업만 하더라도 반드 미디어 사원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야근의 연속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인원 확충이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하다.

“이력서들을 차츰 받고 있으니 그 면에 대해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릴리아나가 프린트로 뽑고 있는 이력서들을 바라본다.

반드 미디어 구인 공고가 올라간 직후.

생각보다 많은 입사 희망자들이 이력서를 보내오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 중에 얼마만큼 많은 허수가 있는지에 대해선 직접 면접을 통해 확인해 봐야 한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잠시 멈춘 오태준이 릴리아나가 꼭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자신의 소견을 들려준다.

“사람을 무작정 많이 뽑는 것보다 능률이 좋은 소수의 사람이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릴리아나 씨가 이 말을 부디 대표님한테 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뭐…… 사실은 제가 굳이 이런 말을 드리지 않아도 대표님께서는 아주 잘 알고 계시겠지요. 하하.”

오태준의 말 그대로다.

사람을 보는 눈은 오태준보다 우석이 더 뛰어나다.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태준이기에 릴리아나에게 큰 강요는 하지 않는다.

한편, 이들이 인력 충원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무실의 호출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왔나 보군요.”

릴리아나가 곧장 현관문으로 나간다.

누가 올지 이미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딸칵!

두터운 현관문을 열어주자, 사복 차림을 갖춰 입은 연주가 머쓱한 웃음과 함께 릴리아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릴리아나 씨.”

“아가씨도 안녕하신가요. 밖은 추우니까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 네.”

종종걸음으로 릴리아나의 뒤를 따라 사무실 내부로 들어오는 연주.

그녀의 등장에 철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오, 왔어? 동생.”

“안녕하세요. 오빠는요?”

“오늘 M 컬쳐에 미팅 있다고 잠깐 나갔어.”

“그런가요…….”

연주는 최근, 소봉예화 덕분에 슬럼프에서 빠져나와 작품 집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마땅히 글을 쓸 만한 장소가 없어진 탓에 이렇게 주기적으로 반드 미디어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듯이 나와 글을 쓰곤 한다.

집에서 써보곤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편한 장소이다 보니 나태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본래 목표했던 글자 수만큼 원고를 작성하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탓에 결국 특단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바로 반드 미디어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지혜도 LC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시행한 오디션에 합격해 연습생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회사를 관두게 되었던 터라 사용하지 않는 데스크탑이 하나 남게 되었다.

인력 충원이 된다면 자리를 양보해주긴 해야 하지만, 그전까지는 지혜의 자리에서 글을 써도 된다는 우석의 허락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집이 아닌 회사에서 글을 쓰다 보니 진도는 잘 나간다.

“곧 있으면 1권 초고 마감일입니다만. 어떻게 될 거 같나요?”

연주의 담당인 릴리아나가 슬며시 원고 진행 상황에 대해 묻는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곤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마감일 맞추는 건 문제 없을 거 같아요.”

“그렇군요.”

요즘 들어 묘하게 글에 대해서 자신감이 붙은 티가 난다.

목소리에도, 그리고 눈빛에도 생기가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소봉예화에게 문하생으로 잠시 맡겼던 것이 특효약으로 작용한 게 틀림없다.

‘무슨 짓을 했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래도 아가씨가 기뻐하시니까 상관없겠지.’

처음에는 소봉예화에게 맡기는 걸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릴리아나였다.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연주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걱정은 눈 녹듯 싸그리 사라졌다.

‘아가씨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되었는데…….’

남은 건 이제 하나다.

이은지과 구민조의 일.

그것만 해결하면 반드 미디어는 본격적으로 웹툰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 *

“네, 네 녀석이 어떻게 여길……?!”

우석의 모습을 보자마자 당황한 나머지 손가락질을 하며 바들바들 떨기 시작하는 구민조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반응을 못마땅하게 여긴 도한수가 쓴소리를 들려준다.

“어허. 구민조 씨. 지금 누구한테 손가락질을 하는 겁니까.”

“그, 그치만 도 부장님! 저놈은!”

“저놈이라니요. 말이 좀 심하십니다?”

“…….”

도한수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는다.

대놓고 구민조의 발언에 반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분도 엄연히 우리 M 컬쳐와 협업을 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반말을 찍 내뱉는 건 상호 간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봅니다만.”

“…….”

“그리고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미팅은 저와 이 대표님, 그리고 구민조 씨 이렇게 세 명이서 참가할 예정입니다. 이 미팅이 싫다면 당장 회의실에서 나가세요.”

지금까지 구민조에게 중립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한수였으니, 이우석과 연관되자 갑자기 강경한 자세를 유지한다.

처음에는 도한수의 그런 말들이 구민조에게는 도통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나 이내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가볍게 심호흡을 내쉰다.

여기서 도망치면 안 된다.

비록 우석과 안 좋은 사건으로 맺어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M 컬쳐와의 계약을 포기할 순 없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자금이 걸려 있다.

M 컬쳐에게서 프로모션을 약속받고 계약을 맺기라도 한다면, 구민조는 금방 떼돈을 벌 수 있다.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는 자리인데 고작해야 우석과 같이 미팅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를 발로 걷어찰 수 있겠는가.

천만에.

구민조는 절대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얌전히 도한수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그러는 와중에 자리를 잡은 우석이 구민조를 슬쩍 바라본다.

역시 우석이 예상했던 그대로 구민조는 미팅 자리 자체를 거절하지 않았다.

M 컬쳐와 구민조.

두 존재를 놓고 비교해 봤을 때 아쉬움이 많은 쪽은 바로 구민조다.

이건 굳이 언급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진실이다.

하나도 아쉬울 게 없는 M 컬쳐는 사실 구민조를 버리고 가도 그만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쉬운 쪽이 많이 남는 사람이 을이 되는 법이다.

여기서 을은 구민조다.

그 관계를 확실히 하고 갈 필요가 있기 때문에 도한수는 일부러 구민조에게 모진 언행을 구사했다.

물론 그렇다고 도한수가 우석에게까지 이런 발언을 할 수는 없다.

이유는 뻔하다.

M 컬쳐와 반드 미디어는 구민조와 상황이 다르다.

반드 미디어…… 즉, 우석은 지금까지도 철저한 갑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드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에 연재 플랫폼의 비중이 좌우되는데, 누가 감히 우석을 홀대하겠는가.

제아무리 거대 자본 덩어리라 불리는 SCN이라 하더라도 우석을 매몰차게 대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어흠.”

어수선한 분위기를 헛기침으로 정리해보는 도한수.

이윽고 그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한다.

“두 분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드디어 이번 미팅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언급을 하기 시작한다.

“조만간 저희 M 컬쳐에서 사이트 자체를 새롭게 꾸며 개편할 예정입니다. 그때 웹툰 메인 연재관이라는 것을 만들 계획입니다만…… 그 메인 연재관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연재되는 콘텐츠들은 무조건 한 달 동안은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인 연재관이라…….”

구민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한다.

메인 연재관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면 강력한 푸쉬를 받을 수 있다.

빅 배너는 기본이오, 팝업이나 회원가입이 되어 있는 플랫폼 이용자들에게 상품권 같은 걸 뿌리면서 대놓고 강하게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래서 이번 메인 연재관에 들어갈 콘텐츠를 찾고 있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이렇게 두 분이 직접 경합을 벌이게 되어서 말이지요.”

경합이라는 말에 구민조가 속으로 웃음을 토해낸다.

이우석은 한눈에 봐도 20대 초반의 풋내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회 경험조차 별로 없어 보일 거 같은 우석을 상대로 경합을 벌여 메인 연재관 프로모션을 따내는 건 일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구민조였으나…….

그건 그의 커다란 착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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