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73화 (73/201)

갑질의 신 73화

22. 코믹 카니발(Comic carnival)(1)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서 부스 입장 확인을 도와주는 스태프가 네이민에게 묻는다.

“부스 위치가 어떻게 되시죠?”

“A 31이요.”

“부스 명하고 비밀번호는요?”

“애플러, 123456이에요.”

“대표자 성함요?”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네이민.

그러면서 뒤에 대기 중인 우석과 릴리아나를 바라본다.

그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우석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부산에 내려갔을 당시.

그녀는 자신의 본명을 직업 입으로 언급하는 걸 상당히 꺼려했다.

그 이유는…….

“……한미모요…….”

“한미모 씨…….”

이름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진행요원이 네이민…… 아니, 한미모를 올려다본다.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아마도 그녀의 이름과 실제 그녀의 외형이 맞물리는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이래서 미모는 자신의 이름을 웬만해선 남들에게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릴리아나와는 다르게 어여쁘다든지 그런 게 아닌 그저 평범 그 자체의 외형을 지니고 있다.

이름 덕분에 없던 외모 콤플렉스가 생겨날 정도니…… 그녀에겐 일종의 악몽 같은 트라우마인 셈이다.

“무료입장 3명인가요?”

“……네.”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그다지 좋지 않은 표정으로 행사장 내부에 입장하는 미모.

이윽고 남자 스태프가 그녀의 손목 위로 작은 도장을 찍어준다.

이미 아이티로부터 어느 정도 코믹 카니발에 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는지라 저게 어떠한 행위인지는 우석도 얼추 알 수 있었다.

입장, 재입장을 할 경우 스태프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일종의 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잘 지워지려나 모르겠군.”

사소한 걱정과 함께 우석이 손목 쪽에 도장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릴리아나 역시 손목에 도장을 받기 위해 다가서는 순간, 남성 스태프가 짧은 감탄사를 자아내며 잠시 망설인다.

아마 릴리아나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탓에 나온 반응이리라 예상된다.

릴리아나가 도장을 받는 동안, 미모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물로 씻으면 금방 지워지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군요.”

우석의 혼잣말을 들은 모양인지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들려준다.

한편, 릴리아나까지 전부 입장을 마침과 동시에 빠르게 행사장 내부로 향한다.

행사장은 크게 A관과 B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네이민의 부스가 배치받은 곳은 A관. B관에 비해서 내부 공간이 비교적 큰 곳이다.

“이쪽이에요.”

“알겠습니다.”

행사 참여만 근 3년의 경력을 지니고 있는 미모를 따라 A관 내부로 입장한다.

그러자 그곳에는 행사장 외부에서 봤던 것과 또 다른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와…….”

웬만하면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릴리아나조차 탄식을 내뱉을 정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부스들.

그리고 책상 하나를 꾸미기 위해 여기저기서 다수의 인력들이 옹기종기 모여 디스플레이를 하기 시작한다.

“감탄할 시간 없어요, 릴리아나 씨. 우리도 빨리 디스플레이 해야 하니까요.”

“네, 바로 가죠.”

미모의 재촉에 릴리아나가 바로 응수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우석 또한 그녀들을 따르면서 천천히 부스의 전경을 눈으로 훑는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상에서 이렇게 많은 공급과 수요가 한 자리에서 이뤄지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드물다.

‘서브 컬쳐라…… 의외로 보물단지 같은 분야가 되겠어.’

나중에 아이티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한 번 조사를 해보자고 마음을 먹는 우석.

그러는 와중에 A 31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미모가 캐리어를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놓고 펼친다.

지이이이익!

캐리어의 지퍼가 열림과 동시에 무수한 회지와 팬시 상품들이 선보여진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들이 신기한 모양인지 릴리아나가 미모에게 재차 질문을 한다.

“이건 네이민 작가님게서 직접 만든 건가요?”

“네.”

“개인 제작도 가능하시군요.”

“웹툰 작가로 활동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런 행사에 주기적으로 참가했었거든요. 행사 일정을 정하고 자체적으로 마감일을 설정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일정 주기에 맞춰서 회지를 만들어내고 하는 그런 습관을 들일 수 있어요. 뭐…… 프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감만큼 좋은 동기는 없거든요.”

“마감…… 이군요.”

“네. 마감일을 정해두면 하기 싫거나 귀찮아도 그 작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마감일을 정해둔 거예요. 자체 설정한 마감일에 억제력까지 더해진다면 더더욱 좋지요. 원고 한 번을 펑크내면 여기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낸 부스비 6만 원이 날아가는 셈이고, 더불어 내 회지를 사기 위해 멀리서 오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게 되잖아요? 그게 싫어서라도 이런 동인 행사 참가를 신청해두고 마감을 설정하면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죠. 전 그런 식으로 그림 연습을 해왔어요.”

“그렇군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민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K 로지에서 연재하는 ‘그 사람과’라는 웹툰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휴재한 역사가 없다.

그래서 그녀의 이미지 또한 상당히 좋은 편이다.

성실하고, 또한 웹툰의 퀄리티 역시 계속해서 유지한다.

신인이긴 하지만, 그녀만큼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웹툰 작가를 찾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그녀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자마자 우석이 릴리아나와 함께 다가온다.

“저희도 도와드리겠습니다.”

“굳이 그렇게 안 해주셔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부스 입장까지 도와주셨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면 서로 불편하니까요. 노동값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부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주신다면야…….”

힘을 쓰는 일에 남자가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디스플레이 과정에서 보다 많은 힘을 쓸 만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든든함을 선사해준다.

“그럼 우석 씨는 저와 같이 디스봉 설치하시고, 릴리아나 씨는 저기 물건 구입하는 곳에서 우드락하고 테이프 좀 구입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녀의 빠른 지시에 우석과 릴리아나가 발 빠르게 움직인다.

비록 완전히 늦게 행사장을 찾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준비는 가급적 빠르게 마쳐야 한다.

그래야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한결 편해지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작업이 늦어지게 된다면, 최악의 상황으로는 일반 입장이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작업을 연이어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사는 사람도, 판매하는 사람도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이 오게 된다.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 더더욱 분주히 움직이는 부스 참가자들의 손길.

이윽고 행사장 전역에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이 참가자들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코믹 카니발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반 입장 시간까지 30분 남았습니다.

* * *

“하나, 둘, 셋!”

은지의 구령과 함께 맞은 편에서 디스봉을 잡고 있던 또 다른 여성이 그녀와 함께 ‘ㄷ’자 형태로 되어 있는 봉을 들어 올린다.

이윽고 책상 위에 서로 연결된 디스봉을 올려놓음과 함께 은지가 미리 잘라놓은 테이프 조각들로 디스봉을 고정시키기 시작한다.

찌익!

테이프를 뜯어 디스봉의 끝을 고정시킨 이후에야 드디어 부스 디스플레이가 완성된다.

상대적으로 다른 부스에 비해 단시간 내에 설치가 완료되었다.

오랜만에 완성된 자신의 부스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은지가 잠시 뒤 그녀를 도와준 옆 부스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현한다.

“고마워요. 덕분에 쉽게 디스플레이를 끝낼 수 있게 되었어요.”

“어머, 아니에요. 그보다…….”

은지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성이 그녀를 포함해 디스플레이에 걸려 있는 가로 형태의 족자봉들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은근슬쩍 질문을 내비친다.

“혹시…… 이은지 작가님 아니세요?”

“아…… 네. 맞는데요.”

“어머머!! 역시!!”

어린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새겨진다.

아무래도 은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낌새다.

하나 은지는 그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오늘 행사장에 와서 처음 만난 사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절…… 아세요?”

“네! 옛날부터 팬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코믹 카니발 같은 곳에 이제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때 정말일까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다시 돌아오셨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아하하…….”

호기롭게 웹툰 작가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말한 지 반년이 지났다.

그러나 은지는 데뷔조차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고통만 받다가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를 비난하는 손길은 충분히 감내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녀가 내뱉은 말들이었으니까.

책임은 누군가가 대신해서 짊어지지 않는다.

본인이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각오를 굳힌 이은지이기에 다시 표정관리를 하면서 어린 그녀에게 답해준다.

“그래도 기억해 주시니까 제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이에요.”

“아니에요! 앞으로 더 많은 활동해 주신다면야…… 그보다 웹툰 작가 준비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되셨나요?”

“아…….”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오늘 행사에 참가하면서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수한 사람들도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이제는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아직…… 준비 중이에요.”

“웹툰 작가 되는 건 힘들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 봐요. 은지 님도 쉽게 못하는 걸 보면…….”

“아니에요. 제가 아직 실력이 부족한 거니까요. 앞으로 더 노력해야지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행사장 내부에서 안내 방송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코믹 카니발에서 알려드립니다. 일반 입장까지 30분이 남았습니다. 부스 참가자분들께서는…….

“30분 남았네요. 저도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겠어요.”

“네! 오늘 많이 파세요!”

“고마워요.”

모르는 사람한테서 응원을 받으며 제자리로 돌아온 이은지.

평정심을 되찾으며 그녀가 짬을 내 완성한 회지를 차례차례 위로 올려놓는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러면 되는 거야!’

오랜만에 참가한 코믹 카니발.

이곳에서 그녀는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며 속으로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 * *

오전 10시가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한 남자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 채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킨다.

“……젠장, 머리 아파 죽겠네…….”

주변에 굴러다니는 무수한 술병들.

그가 호소하는 두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쉽사리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게 다 그년 때문이야…….”

일어나자마자 누군가를 욕하며 스마트폰을 찾는다.

현재 시각을 확인함과 동시에 통화목록 내역을 바라본다.

“전화번호를 바꿨나…… 그년도 진짜 사람 귀찮게 하는 데엔 기질이 있구만.”

남자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그려진다.

이미 이런 일은 충분히 많이 경험해봤다.

상대방에서 번호를 바꾸는 조치를 취하는 건 이제 너무나도 많이 봐온 패턴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하는 남자.

그 속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제목을 지닌 게시물을 응시한다.

“이럴 줄 알았지. 하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크크큭…….”

남자의 입가에 새겨진 미소가 더더욱 짙어지기 시작한다.

그의 눈길은 서서히 탐욕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본능.

그리고 집착과 욕심.

그 감정이 하나의 덩어리로 아우러져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을 탄생시킨다.

“어디 보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남자가 대충 가볍게 씻기만 한 뒤 옷을 차려입는다.

그가 갈 만한 장소는 이미 방금 전, 특정 게시판을 확인하고 나서 금세 정해졌다.

“코믹 카니발이라…… 오랜만에 한번 모습이나 비추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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