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64화
19. 문하생(門下生)(2)
“실례할게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서는 연주.
학교가 끝난 이후 앞으로는 당분간 이렇게 소봉예화의 집에 신세를 져 글을 배우거나 하기로 합의를 보게 되었다.
당사자인 소봉예화에게도 허락을 맡았으니, 이 기습 방문에 나름 명분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여전히 대낮임에도 깜깜한 방 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며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툭!
이상한 무언가가 오른쪽 발끝에 걸린다!
“뭐, 뭐지?!”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 기능을 사용해서 방금 전에 걸리적거린 무언가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직후.
“꺄아악!!!”
연주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새어 나온다.
그녀의 발끝에 걸렸던 것은 다름이 아닌…….
“으으…… 시끄러워 죽겠네…….”
술에 떡이 된 채 쓰러져 있던 소봉예화였다.
하나 연주가 알고 있는 그 소봉예화와는 느낌이 다르다.
허벅지가 다 드러날 정도로 노출도가 심한 복장임을 감안했을 때엔, 소봉예화보다는 화염룡 쪽일 가능성이 더 크다.
“화, 화염룡 선배! 왜, 왜 바닥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거예요?!”
“……응? 상관없잖아. 어차피 내 집이니까 바닥에서 자든, 침대에서 자든…….”
“이, 일어나세요! 그러다가 감기 걸린다구요!”
“괜찮아, 괜찮아. 나랑 같이 자자구, 이쁜이~”
“정신 좀 차리시라니까요~?!”
어느새 연주를 꼬옥 끌어안은 채 다시 잠을 청하는 화염룡.
그녀에게서 잔뜩 술 냄새가 풍겨져 나오는 터라 연주의 입장에선 그저 괴로울 따름이었다.
‘이게…… 작가의 생활이란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동경하던 그 작가의 생활 패턴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보이는 소봉예화와 화염룡의 모습.
연주는 여기서 정말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익혀갈 수 있을지에 대해 벌써부터 강한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 * *
지혜에게 다수의 서류를 건네준 뒤, 우석이 자신의 소견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아이티가 여러 가지로 조사를 해봤는데…… 그래도 연예 기획사치고는 상당히 청결한 축에 속하는 거 같습니다. 이 정도면 합격을 하게 될 경우에는 부담 없이 연습생으로 들어가도 괜찮을 거 같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만약에 연습생이 된다면, 제가 하던 일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가급적이면 지혜 씨가 계속 나와서 일을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여력이 안 된다면 추가적으로 인력을 충원할까 생각 중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선 지혜 씨가 정식으로 합격 통보를 받게 되고 나서 고려해 보도록 하죠.”
“네, 알았어요.”
비록 화염룡이 중간에 그녀의 연습을 코칭해 줬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녀의 연습 과정을 지켜봐 온 건 아니다.
그저 임시 조치로 이러이러한 것들을 하면 된다는 의견만 들려줬을 뿐이다.
합격의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벌써부터 미래의 일을 논의하기에는 너무 빠르다.
“아무튼 만약 합격 통보가 날아오게 된다면, 이쪽 일은 생각하지 마시고 그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는 쪽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네…… 고마워요, 우석 씨. 전 도움만 받네요…….”
“괜찮습니다. 지혜 씨의 성공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 터이니 너무 크게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괜히 부담 가지지 말라는 말을 전해준 뒤.
두 사람이 같이 회의실 밖을 나서자, 릴리아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석에게 다가온다.
“우석 님, 저번에 말씀드린 그 건수에 관해서입니다만…….”
“……알았다. 회의실로 들어오도록.”
“예.”
방금 전에 회의실에서 나온 우석이었으나, 릴리아나에 의해 재차 다시 회의실로 출입을 하게 되었다.
다만, 상대가 지혜에서 릴리아나로 바뀌었을 뿐.
문을 굳게 잠근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차량을 동반한 순간이동이 가능한지에 대해 여쭤보셨던 거에 관해서입니다만…….”
“가능한가?”
“예. 크게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특정 사물을 가지고 텔레포트를 하는 연습을 해봤던 릴리아나.
그 실험은 별다른 이상 없이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전제조건이 걸린다는 것도 같이 보고를 해준다.
“차량과 같이 비교적 큰 몸집을 지니고 있는 사물과 이동을 할 때는 평소보다 몇십 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얼마 정도 걸리지?”
“저와 우석 님이 텔레포트로 이동을 하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서 1분으로 친다면, 차량을 포함한 텔레포트를 시전하게 될 경우에는 대략 2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20분이라…….”
그 점에 대해선 특별히 문제가 없다.
부산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인데, 20분 만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시간적으로 얼마나 큰 이득을 보게 되는 거다.
“좋다. 그럼 부산까지 이동하는 건 네 능력을 활용하는 쪽으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부산에서의 1박 2일 일정은 내일 모래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그전까지 우석은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회사가 별다른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하고 갈 예정이다.
“철수 녀석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갈 준비를 해야겠군.”
우석의 공석을 채울 사람은 이미 철수로 내정을 해뒀다.
아직까지 태준이 이직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은 이상, 그에게 업무를 맡길 수는 없다.
‘그나저나…… 여태 별말이 없군.’
이제는 슬슬 태준이 결심을 내려야 할 시점이 왔다.
약속했던 3달의 파견 기간도 끝나간다.
여기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슬슬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에라도 태준에게 직접적으로 의사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품으며 릴리아나와 같이 회의실에서 나오는 우석.
그 순간, 이번에는 태준이 우석과의 면담을 신청한다.
“대표님,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올 것이 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던 우석이 알아서 회의실로 들어선다.
이번에만 벌써 3번째 회의실 출입이다.
그래도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자리를 잡은 태준이 머쓱한 웃음을 토해낸다.
“지혜 씨와 릴리아나 씨, 그리고 저까지 이렇게 나란히 얼굴을 마주하게 되다니…… 대표님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무슨 할 이야기이신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다름이 아니라…….”
오태준이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에 대해선 이미 우석도 잘 알고 있다.
분명 그의 이직에 관한 말일 것이리라.
우석의 예상대로, 태준의 입에서 원하는 이야깃거리가 들려져 온다.
“저번에 대표님께서 말씀해 주신 스카우트 제의 관련입니다.”
“그렇군요.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예. 그간 반드 미디어에서 많은 걸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지요. 반드 미디어는…… 제가 꿈꿔온 회사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대표님께서 원하신다면 이 한 몸,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보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우석은 얼추 태준의 마음이 이미 민아 출판사를 떠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지혜가 LC 엔터테인먼트에 가서 말을 했듯이, 우석은 누구보다도 태준의 가치를 인정해 준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갑으로서 을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갑으로서 을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
우석은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갑의 형태에 어울리게끔 행동했을 뿐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석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우석의 손을 마주 잡아준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이렇게 해서 새로운 동료가 반드 미디어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된다.
* * *
이틀 뒤.
간단한 짐들을 챙겨 트렁크 안에 실은 우석이 릴리아나를 호출한다.
“이제 그만 슬슬 가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이제는 우석의 옆자리가 너무나도 익숙해진 릴리아나가 자연스럽게 차량에 탑승해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운전대를 잡고서 차량을 몰아가던 우석이 특정 좌표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한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과는 전혀 다른 곳에 목표 지점이 설정된다.
이윽고 대략 10분에 걸쳐 도착한 곳은 인근에 위치한 어느 공터.
좁은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차량을 정차시킨 뒤, 우석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곳이라면 보는 눈이 없을 거다.”
“예, 알겠습니다.”
아이티로부터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그 어떠한 시선이 닿지 않을 만한 장소를 물색해달라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우석의 상세한 요건을 갖춘 장소는 총 5곳.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잡은 우석이 시트에 몸을 기댄다.
‘정보의 신 덕분에 번거로운 일도 상당히 간단하게 해결되는군.’
아이티를 비롯해 소봉예화와 화염룡, 그리고 릴리아나까지.
능력이 출중한 비서들 덕분에 우석은 많은 이득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3명으로 끝낼 생각은 전혀 없다.
앞으로 더 많은 비서들을 모아야 한다.
속으로 어떻게 하면 비서들을 더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하는 우석과 반대로, 릴리아나는 머릿속에 이들이 이동할 좌표만을 떠올린 채 집중해 텔레포트 능력을 시전한다.
밝은 빛이 우석과 릴리아나가 탄 차량을 감싸기 시작한다.
그러기를 대략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파밧!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조용하게 정차해 있던 차량 하나가 통째로 모습을 감춘다.
밝은 빛이 서서히 자취를 감출 무렵.
“…….”
조심스럽게 눈을 뜬 우석이 주변을 둘러본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미리 전달을 받은 사진들과 비교를 해본다.
“정확하게 도착했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릴리아나를 바라본다.
20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선보인 터라 제법 지친 기색이 보이는 릴리아나.
“넌 호텔에 가서 좀 쉬는 편이 좋겠군.”
“……아닙니다. 그저 차량을 동반한 텔레포트가 처음이어서 힘들었을 뿐이지, 몸에 큰 부담이 가거나 하는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니 저도 데려가주시기 바랍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릴리아나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릴리아나다.
더 이상 그녀의 말에 토를 달지 않기로 결심한 우석이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어차피 웹툰 작가들과의 미팅을 가질 때, 그녀가 할 일은 딱히 없다.
그저 옆에서 보조를 해주는 역할이 다라고 할 수 있다.
주된 이야기는 우석이 다 알아서 할 예정이다.
릴리아나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일이 끝나기에 우석은 큰 고민없이 릴리아나의 말을 수용하기로 결정한다.
* * *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법 풍채가 좋은 남성이 연신 우석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저녁 11시.
이제 오늘 있었던 웹툰 작가들과의 미팅 일정은 전부 끝난 셈이 되었다.
내일 있을 미팅만 남은 상황이기에 오늘은 호텔로 돌아가서 쉬기로 결정을 내리고 차량에 몸을 싣는 우석과 릴리아나.
해운대 근처에 위치한 호텔 주차장에 차량을 세운 뒤 로비 안으로 들어선다.
이윽고 종업원으로부터 열쇠를 받은 직후에 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두 젊은 남녀.
본래 호텔 방을 따로 잡을 생각까지 했던 우석이지만, 본의 아니게 부산 출장이 성수기 때와 겹치게 된 터라 우석과 릴리아나, 두 사람이 따로 방을 잡기에도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숙박비도 비쌀뿐더러, 해운대와 멀지 않은 호텔인지라 여분의 방도 많지 않았다.
결국 릴리아나와 한 방을 사용하게 된 우석이었으나, 그리 큰 부담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는 편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호텔 방을 들여다보기 전까지의 생각일 뿐이었다.
“열겠습니다.”
릴리아나가 호텔 키로 문을 여는 순간.
두 사람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더블 침대.
“…….”
“…….”
같은 침대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들이닥치자, 우석과 릴리아나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의미로 복잡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