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63화 (63/201)

갑질의 신 63화

19. 문하생(門下生)(1)

난데없이 찾아온 우석, 연주 남매의 기습 방문 덕분에 소봉예화의 머릿속은 말 그대로 패닉 상태에 접어든다.

게다가 오자마자 한다는 말이 문하생을 받으라니.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내가 혹시 원고 하다가 도중에 잠이 들기라도 한 건가?”

소봉예화가 스스로 볼을 꼬집어본다.

느껴지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통증이 그녀의 볼을 타고 그대로 전해진다.

아픔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선 꿈은 아니다.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서 있는 소봉예화에게 우석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그…… 러게. 그게 좋겠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편이 이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황한 나머지 중2병 콘셉트를 유지하는 것도 깜빡하는 소봉예화.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연주가 의외라는 듯이 놀라움을 표출한다.

“생각보다 엄청 깨끗한데요?!”

“…….”

뭔가 말을 받아주고 싶긴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의 소봉예화가 재치 있게 연주의 말을 받아줄 거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련해둔 비장의 한 수를 이제 슬슬 꺼내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세, 세계의 주인이여. 잠시 ‘화염룡’을 소환하고 오겠네.”

“그러는 게 좋겠다.”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소봉예화의 모습에 연주가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는지 우석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역시…… 문하생으로 받아달라고 했던 말이 민폐였던 걸까?”

“일단 그건 화염룡이 오고 나서 이야기하자.”

“응…… 알았어.”

소봉예화와 화염룡, 두 가지 인격에 대해선 이미 우석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가 있다.

화염룡과 처음 만났을 당시. 연주는 자신이 생각했던 작가로서의 이미지가 화염룡의 외형과 너무 매칭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을 때가 있었다.

그때 화염룡이 스스로 그녀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면모인 이중인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다.

그러나 소봉예화라 해도 별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거나 그러진 않았다.

중2병 같은 말투를 반복하는 로맨스 작가라니.

연주에게 있어선 화염룡이란 작가의 이미지가 여러 번 산산조각이 난 셈이다.

그렇다고 연주가 소봉예화와 화염룡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뭔가 이상한 형태의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인격 다 ‘책을 사랑한다’라는 마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한편, 방 안으로 들어갔던 소봉예화가 다시 남매 앞에 당당히 나선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아우라가 풍겨오자, 우석이 반사적으로 그녀를 가리키는 호칭을 바꾼다.

“일단 좀 앉아봐라, 화염룡.”

“우석 오빠는 단번에 눈치채는구나. 아직 한마디도 안 했는데.”

“분위기 자체가 판이하게 달라지는데, 눈치 못 챈다면 오히려 그게 바보겠지.”

“어머, 그래?”

우석이 이렇게 말을 하는 사이에, 연주가 가볍게 어깨를 살짝 꿈틀거린다.

아무래도 그 바보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편인가 보다.

우석의 말대로 거실에 놓여져 있는 소파에 잠시 자리를 잡는 이들.

자리에 앉자마자 화염룡이 곧장 질문을 해온다.

“그나저나 문하생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인격이 바뀌어 있어도 기억은 서로 공유하고 있다.

소봉예화의 인격이 되어 있을 때도 연주가 문하생으로 받아달라 했던 기억을 얼추 떠올리며 재차 묻는다.

“간단하다. 연주를 너한테 맡기고 싶어서 그러는데 말이야.”

“나한테라니…… 내가 이 아가씨한테 글을 가르치라고?”

“그래.”

“음…….”

화염룡의 시선이 연주의 전신을 훑는다.

온라인상으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에는 어떻게 해야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막힘없이 어려운 구간을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스킬 등을 물어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만으론 엄연히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해결은 간단하다.

문하생이 배워 곁에서 소봉예화의 작업을 직접 보고 배우면서 글솜씨를 늘려가면 그만이다.

“이건 나한테 물어볼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집 주소를 잘못 찾아왔다는 식의 답변을 들려주는 화염룡이었다.

그녀의 말에도 나름 일리가 있다.

화염룡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안목이다. 집필에 관한 상담은 화염룡이 아니라 창작을 담당하고 있는 소봉예화에게 상담을 해봐야 한다.

“소봉예화와 의논할 수 있나?”

“음…… 잠깐만.”

화염룡이 천천히 눈을 감는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서 눕다시피 시간을 보낸 지 대략 10분 정도.

그동안 우석과 연주는 그녀를 방해할까 봐 일부러 가급적이면 아무런 소음을 내지 않은 채 대기를 하게 된다.

이윽고 화염룡이 천천히 눈을 뜬다.

“……실로 어려운 부탁을 하는구나, 세계의 주인이여.”

“화염룡…… 아니군, 소봉예화 쪽인가.”

깨어난 쪽은 화염룡이 아닌 소봉예화임을 눈치챈 우석이 재빠르게 다시 명칭을 바꾼다.

한편, 우석이 세계의 주인으로 불리자 연주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석이 왜 세계의 주인으로 불리는 걸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소봉예화 선배의 중2병 콘셉트에는 우리 오빠가 세계의 주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며 가볍게 넘겨버리는 연주였다.

소봉예화가 평소 보여주는 중2병 콘셉트를 우석도 잘 알고 있기에 일부러 연주의 앞에서 자신을 세계의 주인이라 말해도 크게 태클을 걸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화염룡에서 다시 소봉예화 쪽으로 인격이 체인지된 상황에서 그녀의 답변을 기다려본다.

“……문하생을 받는 건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데…….”

“별거 없다. 그냥 네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아니면 가끔 밥이나 먹을 때 너만의 노하우 같은 것만 알려주면 된다.”

“나의 스킬은 일반인의 뇌리에 억지로 각인시킨다 하더라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 터인데…….”

“그건 연주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음…….”

우석도 연주가 이 문하생 기간을 통해서 소봉예화만큼의 창작 활동을 지니게 될 거란 기대감은 전혀 품고 있지 않는다.

소봉예화의 창작 능력은 인간이 결코 소화할 수 없는 능력이다. 그렇지 않고선 세계의 주인을 모시는 비서의 칭호를 획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을 뛰어넘는…… 소위 말해서 일종의 초능력을 후천적으로 배워본다 하더라도 과연 습득할 수 있을까?

그렇게 묻는다면 우석은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연주에게 필요한 건 글을 어떻게 쓰냐는 것에 대한 일종의 길라잡이, 즉 교과서 같은 존재가 필요한 법이다.

소봉예화로부터 글을 배운다기보다는 그녀가 어떤 식으로 글을 써나가는지, 아니면 연주처럼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무슨 방법으로 슬럼프를 극복하는지 등에 대한 노하우만 알아차리면 된다.

그 노하우는 처음에는 소봉예화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점 둥그스름하게 갈고 다듬어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가면 된다.

우석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형태의 배움이다.

소봉예화 또한 우석과 거의 엇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우석이 바보가 아닌 이상, 천성적으로 타고는 자신의 창작 능력을 타인에게 가르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닐 거란 사실은 이미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우석이란 남자는 소봉예화가 봤던 그 어떠한 사람보다도 머리가 좋은 축에 속한다.

그도 충분히 이런 생각들을 고려하고서 소봉예화에게 여동생을 맡기는 것이 틀림없다.

“……알았다. 세계의 주인이 부탁하는데 어쩔 수 없지. 나와 같이 어둠의 마법을 수행할 수제자를 받아들이도록 하겠네.”

“연주에게 어둠의 마법을 알려줄 필요는 없고, 그냥 네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만 보여주면 돼.”

“크크큭…… 나의 기억저장보관서에 기입해 입력해 두도록 하지.”

“앞으로 가급적이면 말은 간단히 풀어서 알려줬으면 참으로 좋겠군.”

어찌 되었든 이것으로 연주는 당분간 소봉예화의 집을 오가며 글 쓰는 방법을 곁에서 배우기로 결정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연주가 이번 기회를 살려 얼마나 슬기롭게 슬럼프를 극복하느냐이다.

* * *

지혜가 다시 회사로 출근을 하기 시작한 직후.

“……음?”

스마트폰의 진동을 느낀 우석이 잠시 사무실 바깥을 나선다.

이윽고 대략 5분 정도 통화를 마친 뒤, 다시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특정 누군가를 찾는다.

“지혜 씨.”

“네?”

“잠깐 회의실에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아…… 네! 잠시만요.”

급한 업무를 우선적으로 먼저 마무리를 지은 이후에 회의실에 자리를 잡는다.

그 사이, 우석이 릴리아나로부터 뭔가 지시를 내린다.

“내 메일에 보면 아이티로부터 받은 자료들이 있을 거다. 그거 출력해서 회의실로 가져다주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다.

곧장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는 릴리아나를 뒤로하고 지혜가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걸음을 옮긴다.

문을 열고 지혜가 앉아 있는 맞은편 의자에 착석하는 우석.

“지혜 씨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묻고 싶은 것과, 그리고 한 가지 전달을 해주고 싶은 정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묻고 싶은 거라면…….”

“엊그제 회사를 쉬었을 당시, LC 엔터테인먼트 오디션 때문에 쉰다는 말을 소봉예화로부터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인지 묻고 싶습니다.”

“…….”

일시적으로 말문이 막힌 지혜가 살짝 입술을 깨문다.

공원에서 소봉예화와 마주쳤을 때, 반드 미디어 식구들이 머지않아 지혜가 LC 엔터테인먼트에 오디션을 봤다는 사실이 퍼질 거란 점은 이미 예상을 하고 있던 바이다.

딱히 이들에게 잘못을 했다거나 그런 걸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디션을 본다는 걸 우석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꿈을 응원해 준 우석에겐 내심 섭섭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지혜도 모르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몰려오기 시작한다.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전 일부러 여기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건 잘못된 행동입니다, 지혜 씨.”

“……네?”

어벙한 표정이 된 지혜가 우석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우선 지혜의 생각을 한 번 부정한 직후, 우석이 빠르게 말을 이어간다.

“오디션 보러 간다고 한 것만으로도 여기 있는 식구들에게 괜한 신경을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건 너무 앞서나간 생각입니다. 모두가 지혜 씨의 꿈을 응원해 주고 있는데, 지혜 씨가 그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저희는 언제, 어느 타이밍에 지혜 씨의 버팀목이 되어줘야 좋을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이건 지혜 씨가 여기 있는 사람들의 응원을 무시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그, 그건 절대로 아니에요!”

“하지만 지혜 씨가 ‘괜한 신경을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오디션을 봤던 사실을 감췄다는 말이라도 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침묵이라는 수단이 만능은 아니니까요.”

“…….”

“앞으로는 그 점에 대해서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네, 죄송해요.”

순순하게 사과를 건넨다.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회의실 문을 노크한다.

“우석 님. 말씀하신 거 가져왔습니다.”

살짝 문을 열어 출력해온 프린트물을 전달해 준다.

다수의 서류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우석.

“이건…… 뭔가요?”

지혜의 물음에 우석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해 준다.

“LC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정보입니다. 보아하니…… 뒤가 구리거나 한 그런 회사는 아니군요.”

“이걸 어째서…….”

“혹여나 지혜 씨가 저번처럼 성상납을 강요당하거나 할까 봐 화염룡이 개별적으로 조사해달라 요청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지혜 씨가 잘되어야 저도 이득을 얻으니까요.”

“우석 씨가요?”

“예.”

미인이란 존재는 커다란 돈의 흐름을 불러올 수 있는 중요한 존재다.

우석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큰 계획에는 지혜의 성공 이후의 이야기도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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