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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61화 (61/201)

갑질의 신 61화

18. 방문(1)

이제 막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나온 우석이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한다.

며칠 전부터 눈여겨보던 건물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내려고 하기 위함이다.

덕분에 잠시 사무실에서 나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석이었으나, 머지않아 그를 찾아온 금발의 미인과 마주하게 된다.

“우석 님.”

발걸음을 재촉하며 빠르게 우석한테 다가온 릴리아나가 가볍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를 찾아온 이유를 들려준다.

“연주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연주라…… 일찍 왔군. 점심도 안 먹고 왔나?”

“우석 님과 같이 밥 먹는 줄 알고 일찍 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 일단 가보도록 하지.”

“예. 그리고…….”

뭔가 할 말이 더 남은 모양인지 재차 말을 이어간다.

“지혜 씨가 오늘, LC 엔터테인먼트에 오디션을 보러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쉬기로 한 거였군.”

“그런 거 같습니다.”

우석도 지혜에게서 오디션 때문에 회사를 하루 쉬고 싶다는 말을 듣진 못했다.

아마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던 것은, 우석을 비롯해 반드 미디어 식구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혜는 본성이 착한 여자다.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을 내리는 우석.

“아이티를 통해서 LC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군.”

“안 그래도 화염룡으로부터 그런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화염룡이?”

“예. 조깅을 하던 도중에 지혜 씨와 만났다고 합니다. 중간에 뭔가 조언 같은 것도 준 거 같습니다.”

“화염룡이 조언을 줬다고 한다면 괜찮겠지. 문화와 관습을 관장하는 비서니까.”

화염룡의 안목과 소봉예화의 창작 능력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녀가 지혜의 준비를 봐줬다고 한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본다.

“이번에는 합격했으면 좋겠군.”

“합격을 하게 된다면, 지혜 씨의 업무에 대한 분할부터 먼저 생각을 해봐야 할 듯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인수인계는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중간에 업무가 붕 떠버리면 그만큼 기업의 손실이 발생하는 법이다.

“오디션 결과가 좋게 나온다면, 곧바로 인력을 채용할 수 있게끔 미리 준비를 마치도록 해둬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1박 2일 정도 날을 잡아서 부산 쪽에 내려가 봐야 할 거 같다. 스케줄을 짜두도록.”

“부산 쪽이라면…….”

“그쪽 인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웹툰 작가들을 만나러 가볼 생각이다.”

“그렇군요.”

출발은 소설 플랫폼으로 하긴 했지만, 반드 미디어는 엄연히 말해서 전문적으로 출판 업무를 행하는 회사가 아닌, 미디어 종합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창설된 회사다.

소설뿐만이 아니라 코믹, 웹툰, 게임, 영상 미디어까지 전부 다 취합을 할 예정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인력과 자금의 부족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를 동시에 두루 섭렵하지 못하고 있지만, 소설의 성공을 기반으로 2단계에선 웹툰 산업 진출을 노리고 있다.

“미리 작가들을 포섭해 둘 필요가 있겠어.”

“알겠습니다. 일정을 짜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묻겠다만.”

“무엇입니까?”

“네 순간이동 능력이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도 있나?”

우석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예, 가능합니다.”

“차량도 이동 가능한가?”

“차량이라 함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게 되었는지 재차 질문을 되묻는다.

살짝 당황한 기색까지도 묻어나올 정도다.

“부산으로 순간이동을 해 넘어간다 하더라도, 부산 내에서 이동 시 타고 다닐 차량이 있다면 더 편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 물어본 거다.”

“그런 거라면…… 해본 적은 없어서 확답을 드리진 못할 거 같습니다.”

“그렇군.”

“일단 한번 시도를 해보고, 나중에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우석 님.”

의도치 않게 릴리아나로부터 사과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우석은 크게 신경 안 쓴다는 듯이 말을 건넨다.

“괜찮다. 어차피 차량을 동반한 텔레포트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이 세계는 교통 체계가 잘 잡혀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겠지.”

부산에도 지하철이 마련되어 있다.

전철의 편리성을 잘 느끼고 있는 우석이기에 차량 없이 부산에 간다 하더라도 딱히 큰 불편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게다가 오히려 차량을 소지하지 않고 이동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괜히 차라도 한 번 막히는 순간, 걸어가는 것만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릴리아나의 텔레포트 능력이 지닌 한계치에 관한 정보에 대해선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나중에 실험 결과를 알려주도록.”

“알겠습니다.”

릴리아나에게 기타 여러 가지 지시 사항을 내려준 뒤 반드 미디어 사무실로 향해 빠르게 걸음을 재촉한다.

배가 고픈 여동생에게 더 이상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 *

LC 엔터테인먼트 연습실 내부.

수백 명의 오디션 응모자들이 대기실에서 각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연습실로 호출을 받게 된 34번 참가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의자에 앉은 채 참가자를 바라보는 3명의 심사위원 중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참가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LC 엔터테인먼트에 지원을 하게 된 34번 참가자, 한지혜라고 합니다!”

긴장감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주먹을 살짝 말아쥐며 최대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을 하는 지혜.

그동안, 심사위원들이 테이블 앞에 놓인 지혜의 이력서를 살펴본다.

“전에 타 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으로 소속된 적이 있군요.”

“네!”

남성의 말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연습생 과정까지 거쳤다면, 그래도 기본적인 실력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의 눈에 거슬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연습생을 관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른 연예 기획사에서 연습생 과정을 거쳤다는 건 분명 좋은 이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회사를 나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 역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집단 생활이라든지 혹은 아이돌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을 감수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멋대로 뛰쳐나왔다고 한다면, 오히려 연습생이라는 이력이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도 그 점을 잘 알기에 자신만의 합리적인 근거를 둘러댄다.

“성상납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상납이라…….”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진다.

성상납은 분명 좋지 않은 관습이다.

유명 여자 연예인들도 성상납 사건에 연루되어 연예인 인생이 끝나 버린 경우도 빈번하게 있었다.

“그럼 한 가지 질문해 보겠습니다.”

지혜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던 40대의 남성이 재차 그녀에게 묻기 시작한다.

“만약 우리 회사도 지혜 양에게 성상납을 하라고 요구해 온다면, 마찬가지로 연습생을 그만두겠습니까?”

“…….”

“…….”

순간적으로 심사위원들을 비롯해 스태프들이 남성과 지혜를 번갈아 본다.

무슨 대답을 원하길래 이런 질문을 던질까.

그러나 지혜는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회사를 운영하는 남자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이 어느 날, 저한테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갑이라고 함은, 을의 가치를 알아줘야 할 사명이 있다’라고 말이지요.”

“을의 가치를 알아주는 갑이라…….”

“저를 그저 성상납 도구로 저를 이용하고자 하는 연예 기획사가 있다면, 그 기획사는 제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그곳에 몸담을 이유는 없을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남자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이내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한지혜 양의 그 말은 저도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남자의 시선이 지혜에게 고정된다.

“을의 가치를 먼저 증명해 주신다면 좋겠군요.”

“네!”

자신의 가치를 알아줄 수 있는 갑을 위해서라면.

을로서 그 재능을 뽐내는 것도 아깝진 않으리라.

* * *

우석이 반드 미디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철수가 손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연주라면 저기 안에 있어.”

“알았다.”

문을 열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때마침 책을 보고 있던 연주가 우석을 반긴다.

“오빠 왔어?”

“늦어서 미안하다.”

“아니야. 그보다 어디 갔다 온 건데?”

“잠시 개인적인 일이 있었어. 밥은 안 먹었겠지?”

“응.”

“그럼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아니, 너하고 나, 그리고 릴리아나. 이렇게 셋이서만 먹을 거다.”

졸지에 남매의 식사 멤버에 포함되어버린 릴리아나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연주에게 잘 부탁한다는 식의 제스처를 취한다.

식사 자리에 릴리아나를 동승시킨 건 지극히 간단하다.

그녀가 연주의 담당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석과 연주, 두 사람이서만 식사를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우석도 어느 정도 연주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작품 진행 상황도 얼마만큼 되어가는지, 그리고 현재 연주가 슬럼프라는 것도 이미 숙지하고 있다.

굳이 릴리아나가 동행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야기를 주도할 수 있지만, 그래도 비교적 낯을 많이 가리는 연주이기 때문에 일부러 이런 자리를 조성하게 되었다.

그녀의 담당인 릴리나아와 이런 식으로 얼굴을 맞대어 자주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만들다 보면 전화로만 의견을 주고받을 때보다 훨씬 더 빨리 친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업무상 관계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친분 정도는 쌓아두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특히나 아직 작가와 담당이라는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연주에겐 이런 과정이 더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리라고 본다.

* * *

사무실 근처에 마련되어 있는 돈가스집.

우석을 비롯해 릴리아나, 연주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식당 안에서 일을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메뉴판을 받고 무엇을 먹을지 각자 정한 뒤, 릴리아나가 벨을 눌러 주문을 한다.

“왕 돈가스 둘, 생선가스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왕 돈가스, 생선가스라…… 외국 여성이 한국말도 잘하는구만.”

“감사합니다.”

졸지에 칭찬을 듣게 된 릴리아나였지만, 이런 말은 워낙 많이 듣고 다니기 때문에 가볍게 받아주기만 한다.

한편, 맞은편에 앉은 연주가 우석과 릴리아나를 바라본다.

한때 릴리아나가 우석을 처음 찾아왔을 당시, 연주는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던 때도 있었다.

그때 이후로 우석한테서 릴리아나와 사귀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답을 들은 적은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사귀는 사이까진 아니라고 했다.

우석의 말마따나 이제 와서 이렇게 직접 둘을 보니, 연인이라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내가 오해했던 걸까?’

그래도 아직까지 의심의 끈을 놓을 순 없다.

릴리아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래의 새언니가 될 사람이 자신의 담당을 맡고 있다고 한다면 더더욱 잘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괜히 미래의 새언니가 될 사람한테 마감을 잘 지키지 않는다느니, 원고 상태가 엉망이니 하는 일들로 스트레스를 줬다가 훗날 그것으로 인해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

미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스스로의 포지션이 애매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의도치 않은 복잡한 생각이 연주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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