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49화
13. 짧은 치마(3)
웹소설, 웹툰 연재 사이트 플랫폼 중에서도 비교적 큰 규모를 자랑하는 S 페이지.
이곳 S 페이지 본사에 들리게 된 이인정 대표는 정장을 한껏 차려입은 채 회사 안으로 들어선다.
오늘은 중요한 미팅이 있다.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자가 차량으로 편도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온 이인정 대표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젊은 여직원의 물음에 이인정 대표가 미소를 띠며 자신이 찾아온 용무를 말한다.
“문태현 대표님 좀 만나러 왔습니다.”
“아, 민아 출판사에서 오셨군요. 잠시만요.”
여성 직원이 금세 이인정 대표를 알아보고 수화기를 든다.
한편, 다른 직원이 이인정 대표에게 다가와 회의실 쪽으로 안내한다.
“마실 음료는…… 차로 드릴까요? 아니면 커피로…….”
“차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잠시만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민아 출판사에 비해 직원 수만 따져도 3배 정도 되는 듯하다.
종이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나 콘텐츠로 영업 활동을 하는 매니지먼트와 다르게 이들은 소설 연재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다.
근 8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비록 최근에는 M 컬쳐에게 톱이라는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지만 이들 역시 매출이라든지 플랫폼 이용자 수 또한 만만치 않다.
회의실에서 잠시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사이에,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두 명의 남녀가 들어온다.
“반갑습니다. 문태현입니다.”
“이인정입니다. 뒤쪽에 계신 여성분은…….”
“아, 저희 편집팀에서 일하고 있는 서도희라고 합니다.”
문태현과 비슷한 30대 연령대로 추정되는 서도희가 고개를 숙이며 이인정에게 예를 갖춘다.
S 페이지 대표, 문태현.
3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장르문학 업계에 있어서 결코 무시 못 할 영향력을 지닌 S 페이지라는 플랫폼을 만들어 이끌고 있다.
지금은 어엿한 사장이 되었지만, 한때는 이인정 대표의 밑에서 일을 했던 직원이기도 하다.
20대 중반에 독립 선언을 함과 동시에 플랫폼 시장에 뛰어든 이후, S 페이지를 만들게 되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뵙게 되니 반갑군요.”
이인정 대표가 중요한 안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근황을 묻고자 하는 어투로 말을 꺼낸다.
그러나 이인정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어 보이던 문태현이 섭섭하다는 식으로 입을 연다.
“대표님. 저희가 언제 남이었습니까? 그냥 평소 하듯이 편하게 대해주세요. 대표님께서 저한테 말을 높이시니 제가 다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허허…… 이거 참…… 부탁을 하러 온 입장인데…….”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저도 이인정 대표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러 온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CP에 대한 이야기죠.”
“어흠…….”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문태현의 말 그대로다.
사실 이인정은 오늘, S 페이지에게 민아 출판사 CP를 따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보통은 플랫폼에서 유료연재를 할 경우에는 출판사 CP가 없는 경우에 작가 본인이 직접 자신의 아이디로 유료연재를 올리곤 한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CP 계정을 가지게 되면, 작가한테서 원고 수급을 받아 편집 과정을 걸치고 업로드를 하는 형태를 취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아이디로 유료연재 분량을 올릴 수 있을 만한 여력이 되는 건 아니다.
연재 플랫폼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에게 ‘유료연재는 본인이 직접 올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여러 가지 이유로 출판사 CP를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이인정 대표였다.
“요즘은 대표님뿐만이 아니라 다른 출판사, 매니지먼트 측에서 CP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니까요. 처음 대표님이 절 찾아온다고 했을 때부터 사실 이미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야…… 더 이상 감출 건 없겠구만.”
“예. 그냥 전화상으로 말씀만 해주셔도 바로 만들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실 필요는…….”
“아닐세, 아니야. 오랜만에 자네 얼굴도 좀 볼 겸해서 와야지. 암, 그렇고말고.”
“하하하…….”
문태현은 이인정에게 악감정이 남아 있거나 하진 않다.
아니, 오히려 이인정의 밑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인정의 CP 부탁 역시 거절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문태현이 자진해서 이인정에게 S 페이지에 민아 출판사 CP를 만들어줄 터이니 콘텐츠 수급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했던 참이다.
“저희도 슬슬 다른 플랫폼들이 치고 올라오기 전에 다량의 콘텐츠들을 뿌리는 식으로 할까 합니다만…… 대표님께서 괜찮은 콘텐츠들 주신다면 저희가 따로 특별관을 만들어서 이벤트라든지 프로모션 한 번 제대로 푸쉬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민아 출판사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의 분량도 제법 된다.
한때 직원으로 일했던 문태현이기에 그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한 번 출판되었던 글이라 하더라도 유료연재, 전자책으로 다시 재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예전에는 유료연재, 이북이 종이책과 함께 나오거나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그런 것들이 가능해졌지만, 예전에는 이런 전자책 시스템이 제대로 잡혀 있지도 않을뿐더러 수요 측면에서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성과를 보여주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종이책 시장보다 유료연재, 이북 시장의 매출이 더욱 크게 늘었다.
PC와 스마트폰의 보급화가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덕분에 S 페이지의 위상 역시 크게 상승했다. 한때는 재정난에 흔들거렸던 S 페이지지만, 지금은 출판사나 매니지먼트 부럽지 않을 만큼의 수익을 자랑한다.
“그럼 오신 김에 여기서 계약 이야기를…….”
문태현이 계약에 관한 말을 꺼내려던 찰나에, 갑자기 이인정의 스마트폰이 매섭게 울리기 시작한다.
“미안하네. 진동으로 바꿔놓는다는 걸 깜빡했구만.”
“하하, 아닙니다. 바쁜 건 아니니 전화 받아보세요.”
“음…….”
스마트폰 액정화면을 바라보며 누가 전화를 걸어왔는지 확인을 해본다.
“오 이사 전화로구만. 왜 이 시간에…….”
이인정은 미팅 시간에 전화를 받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걸 잘 알기에 오민고도, 그리고 출판사 내부에 나름 직급 있는 사원들도 이인정이 미팅 시간을 가질 때 즈음에는 웬만해선 급한 일을 제외하곤 잘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었다.
혹여나 무슨 다급한 일이 발생하기라도 했을지 모르니 말이다.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본론을 묻는 이인정 대표.
그와 동시에 오민고의 당혹감에 휩싸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 대표님! 지금…… 이우석 대표가 우리 측에서 경력 있는 편집팀 사원 한 명을 반드 미디어로 파견을 보내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뭐?!”
종이책 작업에 숙달된 직원을 파견해달라고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이인정 대표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쉽사리 답변을 들려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내가 중요한 미팅이 있다고 나중에 답변 준다고 핑계라도 대라. 일단 시간을 좀 더 벌고…….”
-지금 당장 확답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설사 이들이 우석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우석은 본인이 직접 경력자를 채용하거나 하면 그만이다.
결국 결과는 정해져 있다. 단지 그 결과에 민아 출판사가 관여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선택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파견을 한다면 반드 미디어에게 어찌 되었든 간에 민아 출판사가 도움을 줬다는 형태가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석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편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알았다고 전해줘라.”
-예……!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래도 최근 반드 미디어의 상승세를 생각한다면, 이들과 척을 지는 것보다 차라리 같이 커가자는 식의 상생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한편, 이인정의 통화 모습을 지켜보던 문태현이 슬쩍 통화 내용을 묻는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벌어졌나 보군요.”
“안 좋은 일이라기보다는…… 아, 아무튼. CP 이야기나 좀 나누도록 하지.”
나중 일은 나중이고.
지금 당장의 일에 집중할 시간이다.
* * *
민아 출판사로부터 파견 사원을 지원받기로 확정된 반드 미디어.
덕분에 부천역 근처에 위치한 백화점에 들러 새로 합류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 사원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기 위해 잠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본래는 철수를 보내려 했지만, 갑자기 사정이 생겨 오늘은 출근하지 못할 거 같다는 연락을 받은 터라 우석이 직접 릴리아나와 함께 움직이기로 한다.
백화점 내부에 들러 데스크탑 전용 책상과 사무용품 등을 둘러보던 중.
“…….”
릴리아나의 신경이 유독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고 싶은 물건이라도 있나 보군.”
“저…… 말입니까?”
살짝 당황한 듯한 반응으로 보아선, 우석의 추측이 맞는 듯하다.
돈은 있지만, 워낙 가난한 습관이 몸에 배어 제대로 된 소비문화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바로 릴리아나다.
모처럼 백화점에도 왔으니 그녀가 원하는 게 있으면 통 크게 사주기로 결심한 우석이 선뜻 제안을 한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골라봐라. 돈은 내줄 테니까.”
“그치만…….”
“세계의 주인이 비서한테 선물 하나 못 해줄까. 그 정도 능력은 되니 부담 가지지 마라.”
“…….”
잠시 고민하던 릴리아나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인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바로 의류 코너.
‘……옷이라…….’
잠자코 릴리아나의 행태를 지켜보기로 결심한다.
한편, 여직원과 함께 무언가 대화를 나눈 뒤 우석에게 다가와 작은 부탁을 들려준다.
“옷 하나를 골라서 입어볼까 합니다만…… 봐주실 수 있습니까?”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
“감사합니다.”
릴리아나와 함께 탈의실에 자리를 잡는 우석.
이윽고 탈의실 커튼을 들추자…….
“……!”
순간적으로 우석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릴리아나의 하반신에 걸쳐 있는 짧은 치마.
탄력적인 허벅지가 그대로 다 드러날 만큼 노출도가 높은 치마다.
매번 정숙한 차림을 고수하던 릴리아나가 이런 옷을 입을 줄이야.
‘지혜와 화염룡의 영향인가…… 어쩐지 요즘 들어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하더니, 이런 이유였군.’
우석이 속으로 릴리아나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에 대해 추론한다.
그 와중에 살짝 얼굴을 붉힌 릴리아나가 우석에게 직접 의견을 묻는다.
“어…… 떻습니까? 우석 님.”
이런 질문이야말로 이미 대답이 정해진 거 아닌가.
굳이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준다.
“잘 어울리는군.”
“정말입니까?!”
“그래. 거짓말은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릴리아나치고는 보기 드물게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오랜 고민을 한 끝에 직접 행동으로 임한 보람이 생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