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45화 (45/201)

갑질의 신 45화

12. 신인 작가와의 계약(1)

화염룡의 시선을 통해 반드 미디어가 찾아낸 작가는 총 10명.

우석의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기울이던 화염룡이 나지막이 말한다.

“좀 더 찾아볼까?”

허리를 숙일 때마다 화염룡의 신체 사이즈보다 훨씬 큰 티셔츠 사이로 얼핏 브래지어가 보일 만큼 많은 노출쇼가 연출된다.

그러나 우석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말을 이어갈 뿐이다.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녀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한다.

마음 같아선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싶지만, 이래 봬도 반드 미디어는 아직까지 사원 수가 얼마 되지 않는 소규모 매니지먼트다.

직원이 더 많다면 그만큼 관리할 수 있는 작가들의 상한선도 늘어날 테지만, 아직까지 그런 여유를 부리기에는 많이 힘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나아가면 그만이다.

어차피 여기에는 정보의 신인 아이티를 비롯해 화염룡과 소봉예화까지 버티고 있다.

소봉예화의 창작 작품 2개를 포함해서 다른 신인 작가 10명까지 총 12명 정도만 우선적으로 데리고 가본다.

기성 작가들을 데려오면 좋기야 하겠지만,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매니지먼트인데 누가 올 생각을 하겠는가.

게다가 아직까진 무리하게 기성 작가들을 데려오는 건 오히려 손해를 부를 수 있다.

기성 작가는 신인에 비해 몸값이 높은 편이다.

물론 화염룡 필명을 사용하는 소봉예화와 같이 예외적인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런데 굳이 무리하게 돈을 써가면서 기성 작가를 데려올 필요가 있을까?

우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반드 미디어가 유명세를 떨치게 되면, 기성 작가들이 알아서 반드 미디어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성 작가들의 공략은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은 소봉예화와 신인들의 작품으로 성과를 먼저 보이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스마트폰을 드는 우석.

우선 신인 작가 10명의 연락처를 확보했고, 그중에는 계약을 맺은 작가와 맺지 않은 작가가 있다.

오늘 우석이 공략할 대상은 바로 계약을 맺지 않은 작가들이다.

신인이긴 하지만, 출판업계에 대해 건너건너 들은 바가 많은 작가들의 경우에는 반드 미디어와 쉽게 협업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입장도 이해는 한다.

요즘 세상이 하도 무섭지 아니한가.

사기라도 친다면, 신인 작가들의 데뷔가 엉망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이미 반드 미디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출판사, 매니지먼트, 심지어 플랫폼마저 접근을 해오고 있는 요주의 신인도 2~3명 있다.

화염룡이 먼저 체크를 하긴 했지만, 그들 역시도 간발의 차이로 재능 있는 신인들을 알아본 것이다.

‘역시 경험이란…… 결코 무시할 순 없군.’

다년간의 출판업계 경력은 제아무리 우석이라 하더라도 간과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

어쨌든 간에 결국 다른 이들과 경합을 벌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대화, 혹은 문자라든지 메신저를 통해서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욱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지혜 씨.”

“아, 네!”

키보드를 두드리던 지혜가 우석의 말에 곧장 대답한다.

“잠깐 저랑 작가 미팅 좀 나가실 수 있을까요.”

“제가…… 요?”

“네.”

“그치만 매번 릴리아나 씨가 나갔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석이 미팅을 가질 때에는 대다수 릴리아나가 우석의 오른팔처럼 동행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혜에게 첫 동행을 요청해 왔다.

“비록 아르바이트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혜 씨에게도 이런저런 경험을 시켜드리고 싶어서요.”

“하지만 전…… 아무것도 몰라요. 업계 쪽에 대해서도 이런 건 전혀…….”

“괜찮습니다. 그저 제 옆에 앉아만 있으시면 됩니다.”

“……??”

그렇게 말하니 오히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지혜였다.

그러나 우석은 어떻게 해서든 지혜를 데리고 갈 생각이다.

이번에 만나러 갈 작가, 윤단순에 대한 정보를 얼핏 들었을 때 상당히 인상에 남는 개인 정보가 있었다.

흑발의 긴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 윤단순의 이상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아이티에게 일부러 이런 정보를 들려달라고 요구한 건 바로 우석이다.

반드 미디어에는 출판업계 전반을 통틀어서 여성 직원 외모 순위로 단연 1위를 달리는 회사다.

미인은 분명 돈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석이기에 이번 기회에 윤단순이라는 신인 작가한테 반드 미디어가 보유하고 있는 동양미인, 지혜를 활용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일종의 미인계(美人計)라고 할까.

물론 그렇다고 지혜에게 술집 가게에서처럼 똑같이 성접대를 하라는 건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

여성이란 존재는 딱딱한 미팅 분위기를 보다 부드럽고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우석이 노리는 게 바로 그것이다.

어디까지나 계약 이야기만 주구장창 말하는 그런 형식적인 미팅 분위기를 꾸려가고 싶진 않다.

계약이란 소재를 통해 상대방과 공적으로, 그리고 사적으로도 어느 정도 친분을 만들어둔다.

이 감정이 분명 훗날 원만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에 많은 공을 세울 것이다.

여하튼 우석의 지시를 받은 지혜가 주섬주섬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한편, 릴리아나는 자신이 우석의 곁을 보필할 수 없다는 점에 대단한 유감을 표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왜 우석이 자신이 아닌 지혜를 택했는지에 대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 아이티가 지혜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해줬으리라.

아이티의 존재와 능력을 잘 알고 있기에 릴리아나는 이번만큼은 얌전히 있기로 결심을 굳힌다.

그러나.

릴리아나와는 다르게 한 명의 비서는 우석의 결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인가 보다.

“우석 오빠! 왜 내가 아니라 지혜 씨를 데려가는 거야?”

“왜 너를 데려가야 하는데.”

“분명 아이티는…… 으음…….”

혹여나 지혜의 귀에 아이티가 들려준 윤단순 작가의 사적인 정보가 들어갈까 봐 일부러 잠시 말을 끊는다.

저돌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눈치는 있는 화염룡이었다.

“……아무튼. 아이티가 말한 조건에 해당하는 여자는 나잖아?”

“넌 얌전하지가 않으니까.”

“고작 그것뿐?!”

“그래.”

“우으…….”

미인을 데려가되,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어디까지나 미팅의 중심은 계약 이야기가 되어야지, 서브로 데려간 미인의 존재 여부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화염룡은 존재감이 상당한 여자다.

지혜 대신 화염룡을 데려가게 된다면 분명 미팅의 흐름을 깰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일부러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할 줄 아는 지혜를 데려가게 된 것이다.

“여기서 얌전히 소봉예화랑 바통 터치하고 내일 치 연재분이나 미리 써둬라. 내일 주말이니까 오늘 미리 예약 걸어놓게.”

“칫…… 우석 오빠, 오늘따라 좀 쌀쌀맞네.”

“업무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해야 하는 법이지.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처럼.”

“알았어, 알았다고.”

잔뜩 뿔이 난 화염룡이 흥!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홱 돌려 버린다.

지금 당장은 상당히 많이 삐쳐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것도 내일 지나면 초기화가 될 것이다.

매번 이런 패턴이었으니 말이다.

* * *

예전부터 무협에 관심이 있었던 28세의 남성, 윤단순.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던 그에게도 어느 날, 봄이 찾아왔다.

취미 생활로만 쓰던 자신의 첫 번째 무협작품, ‘충신학도(忠信學徒)’가 소설 연재 플랫폼 사이트에서 조회수 대박을 터뜨리게 된 것이다.

사실 전업 작가를 희망하긴 했으나, 요즘은 사실 무협이 그리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 판타지, 레이드물, 그리고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로맨스의 성장에 부딪힌 탓에 무협이 예전만큼 제대로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충신학도가 무협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단숨에 순위권까지 껑충 뛰어오르게 된 것이다.

충신학도가 연재 중인 소설 사이트 플랫폼, ‘S 페이지’뿐만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출판사, 매니지먼트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중이다.

하지만 워낙 일이 급작스럽게 전개된 터라 아직까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 업체 별로 한 번씩 만나면서 간을 보고자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오늘이 러브콜을 보내온 업체 중 하나인 반드 미디어와의 미팅이 잡힌 날이다.

카페 내에서 홀로 스마트폰을 만지며 반드 미디어 측 인원들을 기다리는 중인 윤단순.

그 순간, 카페 문이 열리면서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오세요!”

목소리와 동시에 고개를 돌리는 윤단순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크게 확장된다.

일반인과 비교해도 확연하게 외모적인 차이가 나는 미인이 카페 안으로 출입한 것이다.

긴 생머리.

잘록한 허리.

그리고 탐스러운 허벅지가 육감적인 몸매를 한층 더 강조한다.

“우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낸다.

같이 들어온 남성과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선, 아마도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닐까 싶다.

남자친구 측은 여성에 비해 비교적 평범하게 생겼다.

하지만 저런 미인을 여자친구로 두고 있으면, 남자친구도 평범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능력이 있으니까 예쁜 여자친구도 있겠지…….’

아직까지 윤단순은 편의점에서 카운터를 보는 아르바이트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충신학도 계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요즘 시기는 자고로 콘텐츠 시대라 할 수 있다.

한때는 글 쓰면 굶어 죽는다는 말도 나올 정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글과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나오는 시대다.

아니, 오히려 월급쟁이보다 더 많은 이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된다.

윤단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대박 작가가 되면, 저런 미인을 자신의 여자친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작품을 흥행시키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협력 업체를 먼저 선별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처럼 업체와 직접 미팅 일자를 잡아 오랜 시간을 할당해 계약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미인의 남자친구와 잠시 눈이 마주친 윤단순.

당황한 그가 빠르게 시선을 회피하지만, 남자는 오히려 윤단순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한다.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그럴 수도 있다.

남의 여자친구를 훔쳐보다가 졸지에 눈이 마주친 꼴이 아닌가.

28년 동안 여자친구 한 번 없던 인생인데, 남의 여자친구 봤다고 혼쭐이 나는 건 얼마나 비참할까.

속으로 오늘 참 재수 없다는 한탄을 늘어놓는 윤단순이었으나.

“실례합니다. 혹시 윤 작가님 맞으시죠?”

“네?! 아…… 예…… 그, 그렇습니다만…….”

쓴소리를 늘어놓을 줄 알았던 남자는 오히려 활짝 웃음을 선보이며 자신의 품 안에서 작은 명함을 꺼내 단순에게 건네준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드 미디어 대표, 이우석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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