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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41화 (41/201)

갑질의 신 41화

10. 콘텐츠 전쟁(4)

특정 좌표로 이동하게 된 우석과 릴리아나.

주변을 둘러보던 릴리아나가 이곳이 어디인지를 눈치챈 모양인지 슬며시 입을 연다.

“여긴…… 신도림역 근처 아닙니까?”

“맞아.”

“이곳에 소봉예화가 있을 줄이야…… 전혀 몰랐습니다.

세계의 주인을 모시는 자 중에서 문화, 관습, 풍습을 담당하는 비서, 소봉예화.

그녀는 릴리아나의 순간이동, 아이티의 정보수집능력과 더불어 문학적인 감각이 특출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현대 시대의 트렌드라든지 유행 코드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는 감각은 우석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이기도 하다.

우석은 돈의 흐름…… 소위 말해서 돈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소봉예화는 대중들에게 대박을 칠 콘텐츠의 냄새를 잘 맡는 여자라고 한다.

아이티로부터 소봉예화의 소재지와 기타 정보를 입수한 우석.

따로 아이티에게 소봉예화와 만날 시간과 약속을 잡아두고 연락을 취하란 명령을 내려뒀다.

서로 만나기로 한 장소는 신도림역 1번 출구 앞.

개찰구 앞에서 기다리는 우석과 릴리아나의 모습에 행인들이 슬며시 시선을 던진다.

어딜 가나 릴리아나의 외형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모델 같은 체형에 긴 금발까지.

반면 우석은 비교적 평범한 외모이기 때문에 행인들의 머릿속에는 ‘여자가 아깝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이다.

딱히 사람들의 이런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우석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독보적인 존재감이 우석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도 종종 있다.

그때는 릴리아나 대신 지혜를 데리고 다니든가 하면 될 일이다.

반드 미디어에 일하고 있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미인이라 큰일이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품고 있을 무렵.

“우석 님.”

“무슨 일이지?”

생각에 잠겨 있던 우석을 릴리아나가 나지막이 부른다.

이윽고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한다.

“소봉예화가 왔습니다.”

“저 여자가…….”

첫인상으로 말하자면 대략 이렇다.

노는 여자.

날씨가 비교적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맨다리에 속옷이 얼핏 보일 만큼 짧은 미니스커트, 그리고 화려하게 채색된 손톱과 각종 장신구 등등이 클럽 좀 다녀봤을 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

한동안 멍하니 소봉예화를 바라보던 우석이 재차 묻는다.

“난 아이티에게 들은 바로는…… 분명 문화와 관습, 풍습을 관장하는 비서라고 들었는데.”

“예, 그녀가 바로 소봉예화입니다.”

“……그런가…….”

우석은 내심 참하고 얌전한…… 그리고 조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문학소녀 같은 이미지일 줄 알았다.

그러나 뭐라고 할까.

너무 안 어울린다.

도대체 누가 저 여자를 문화 담당 비서 자리에 올린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맡고 있는 분야와 겉모습이 너무 이질감이 심해 잠시 패닉 상태에 빠졌던 우석이었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는다.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선 안 되니까.

두 사람에게 다가온 소봉예화가 빙그레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이야, 릴리아나. 그쪽이 새로 취임한 세계의 주인 오빠?”

“이상한 호칭 붙이지 마라, 소봉예화. 이분은 이우석 님으로서…….”

“아, 우석 오빠구나! 잘 부탁해.”

살짝 앙칼진 목소리에 윙크까지 더해준다.

겉모습만으로도 문화 담당 비서와 상당한 이질감을 심어주던 예화였으나, 언행까지 접하니 더더욱 그 이질감이 심해진다.

“이우석이라고 한다.”

우석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의 손을 마주 잡아주는 소봉예화.

노는 티가 좀 많이 나긴 하지만, 기본 베이스는 예쁘장하게 생겼다.

조금만 더 참한 행동을 보여준다면 괜찮은 여자처럼 보이겠지만…… 첫 만남부터 너무 가벼운 느낌을 선사해준다.

“그럼 근처 카페라도 들어가 볼까.”

우석이 먼저 자리 옮기기를 제안하자, 소봉예화가 때마침 추천할 만한 가게가 있는 모양인지 먼저 앞장선다.

“괜찮은 곳이 있어. 그쪽으로 안내해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난데없이 우석과 팔짱끼기를 시도한다.

순간 옆에 있던 릴리아나가 소봉예화의 손을 탁! 쳐낸다.

“버르장머리 없구나, 소봉예화. 세계의 주인님에게 감히 그런 파렴치한 밀착을 시도하다니.”

“파렴치함은 무슨.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스킨십이잖아, 스킨십. 그것도 몰라?”

“그러니까…….”

릴리아나아게 있어서 애정 어린 스킨십이란 개념은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우석이 먼저 나서서 두 사람의 말을 끊는다.

“일단 이동부터 하지. 대화를 이어가는 건 그때부터 해도 충분해.”

“새로 취임한 세계의 주인 오빠는 마음에 드네.”

한껏 더욱 우석에게 과도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예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릴리아나는 속으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지만, 그렇다고 우석의 말에 함부로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첫 만남부터 폭풍의 예감을 간직한 채 세 사람은 그렇게 신도림역을 떠난다.

* * *

자리를 잡은 순간, 곧바로 우석이 본론을 꺼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너를 영입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다.”

“나를?”

“그래.”

비서들을 상대로 말을 꺼낼 때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빙빙 돌리면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새로 취임한 차기 주인이 자신을 보자고 한 것부터가 이미 다시 자신을 채용하기 위함을 뜻하는 거니까.

우석의 목적을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잡다한 말들을 섞을 필요는 없다.

간결하게 목적을 말하면 된다.

이미 우석은 비서들과의 대담에서 커다란 이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결재’의 존재 여부다.

우석의 결재가 있어야 이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비서들은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능력을 활용하고 싶다면 우석의 결재가 필요하다.

우석은 비서들과의 관계에서 이미 ‘갑’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것은 소봉예화도 잘 알고 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예화 역시 직설적으로 묻는다.

우석이 원하는 것.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너한테는 콘텐츠를 보는 안목이 있다고 들었다. 그 눈으로 돈이 될 만한 콘텐츠를 찾아내거나, 혹은 네가 직접 만들어주거나 하면 된다.”

“직접 만드는 건 우석 오빠의 결재가 필요해. 하지만 콘텐츠 찾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어떤 게 있는데?”

“문화를 관장하는 비서라고 하니까 잘 알겠지만…… 최근, 아마추어 소설 연재 사이트나 웹툰 플랫폼에서 대박이 될 만한 조짐이 보이는 작품에는 항상 댓글을 다는 독자가 있다 하더군. 화염룡이라고 했나…… 그자처럼 흥행 조짐이 보이는 콘텐츠를 골라 나에게 알려주면 된다.”

“화염룡? 그거 난데?”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예화.

그러자 우석이 예상대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네가 화염룡이었군.”

“응. 하지만 그 댓글들을 단 건 내가 아니야. 다른 사람이라고 할까…… 다른 존재라고 해야 할까…….”

“다른 존재? 무슨 뜻이지?”

“그게…….”

어색한 웃음을 짓는 예화.

뒤이어 그녀의 숨겨진 또 다른 비밀 하나를 공개한다.

“사실 난…… 이중인격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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