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39화
10. 콘텐츠 전쟁(2)
이른 아침.
본래는 차를 가지고 출근을 서둘러야 하는 아침이지만, 오늘만큼은 출근이 아닌 다른 용무를 먼저 치러야 한다.
오늘이 바로 우석의 여동생인 연주의 수능시험일이기 때문이다.
미리 차에 시동을 거는 우석.
그때, 책가방을 들고 집 바깥에 모습을 드러낸 연주가 우석에게 다가온다.
“준비 다 끝났어.”
“잊은 건 없겠지?”
“응.”
다른 평일도 아니고 수능시험 당일날 아니겠는가.
연주도 몇 번이고 계속해서 챙겨갈 물건들이 제대로 가방 안에 있는지 없는지 살펴봤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확인을 마치고 나서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헤 집을 나선다.
연주로선 오늘 하루만큼 긴장되는 날도 또 없을 것이다.
“그럼 바로 가자.”
“응.”
우석의 뒤를 따라 차량에 탑승하는 연주.
그녀의 오빠가 이끄는 차를 타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빠, 운전면허는 언제 땄어?”
“차 뽑기 얼마 전.”
“돈이 어디서 나서…….”
“첫 월급으로 땄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
하긴. 면허도 없는데 어떻게 차를 뽑아 몰고 다닐 생각을 하겠는가.
어찌 되었든 우석 덕분에 비교적 편안하게 인근 고등학교에 도착하게 된 연주.
“그럼 갔다올게.”
“마지막까지 문제 잘 읽고 신중하게 풀어. 시간이 남는다고 일찌감치 OMR 카드에 사인펜으로 색칠부터 하지 말고, 제대로 문제를 풀었는지 검사까지 하고 나서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답안 작성하는 거, 항상 명심해라.”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오빠는 정작 수능시험도 건성으로 봤으면서 왜 이리 참견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아무튼, 부담 없이 치르고 와.”
“……응.”
일찌감치 공장에 들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우석은 공부라는 걸 진작부터 포기를 해야 했다.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장남으로서 그는 학업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학 진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석의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 연주만큼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품고 있다.
그 마음가짐은 우석 역시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여동생은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오빠의 마음이 우석의 가슴 한쪽 구석에 남아 있었다.
물론 이 감정은 우석의…… 아니, 라울의 것이 아니다.
그저 이전의 이우석이란 남자의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 가족들의 염원을 우석이 멋대로 바꾸거나 할 생각은 아직까지 없다.
지금은 그저 가정 내에선 지금까지 살아온 이우석을 연기한다.
그것이 라울이 선보일 수 있는 최선의 둔갑술이다.
* * *
이 세계의 문화와 관습을 관장하는 세계의 비서.
그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릴리아나에게 먼저 물어본 우석이지만, 그가 얻은 대답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우선 문학계에 종사하는 세계의 비서는 존재한다.
하지만 연락이 두절되었기에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게 릴리아나가 우석에게 제공한 정보다.
그렇다고 딱히 실망을 할 이유는 없다.
정보의 신이라 불리는 아이티에게 가면, 문학계에 종사하던 그 비서의 행적을 우선적으로 파악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티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군.’
앞으로 자주 비싼 모니터 한두 개 정도 사주면, 우석을 향한 충성심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정보의 신이라 불리는 아이티지만, 모니터 앞에는 환장을 하는 모니터 마니아이기 때문에 그의 환심을 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아이티에게 가기 전에 한 가지 미팅 건수를 치루고 가야 한다.
잠시 민아 출판사에 들리게 된 우석.
그가 출판사 대표실이 위치한 5층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경리 직원이 화들짝 놀라 우석에게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한다.
“이 대표님 오셨나요!”
“이인정 대표님은 어디 계시죠?”
“지금 사무실 안에 계십니다. 불러드릴까요?”
“아니요. 마침 긴히 들을 말도 있으니,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경리 직원의 친절과 함께 대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인정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석을 반긴다.
“이 대표님!! 연락이라도 하고 오셨다면 제가 직접 마중을 나갔을 텐데…….”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번 달 판매 현황에 대해서 좀 들어보려고요.”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인정 대표가 허둥지둥 서두르기 시작한다.
우석은 이렇게 주기적으로 민아 출판사를 들려 자신이 제공한 콘텐츠 종이책 판매 현황이 얼마만큼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어가곤 한다.
오 이사가 빠르게 자료를 준비해 프린트물을 우석의 앞에 제공한다.
이윽고 이번 달 판매 현황에 대해 자세히 언급을 하기 시작한다.
“저번 달 초에 3쇄째 재판에 들어간 ‘너와 나의 통화목록’ 시리즈는 이번 달에 곧장 4판째로 바로 증쇄에 돌입할 듯합니다. 반품률도 10% 때밖에 되지 않고, 종이책도 순조롭게 잘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재판을 찍을 때마다 미리 만 단위로 넉넉하게 찍어둘까 합니다.”
오민고 이사로부터 보고를 받은 우석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준다.
“너와 나의 통화목록을 출간했던 회사가 외주를 넣어 그 소설을 스마트폰용 게임으로 구현한다고 합니다. 장르는 연애 시뮬레이션이고, MNN 측에서 곧장 퍼블리싱을 해 한글화도 추진할 거라도 하더군요. 앱 스토어에서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운을 받는지 예의주시해 파악한 뒤, 다운 순위 3위권 내에 들면 재판 부수를 보다 더 확 늘리고 일반판과는 다르게 하드커버로 해서 소장판으로 따로 한 번 더 종이책 작업에 들어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미 미논 측과 협의를 해 그쪽에서 너와 나의 통화목록 한글판을 출시할 때, 종이책 역시 같이 프로모션을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너와 나의 통화목록 소장판을 구입한 유저들에게는 히든 스토리를 플레이할 수 있는 DLC(Download Contents)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둔다고 하니, 소장판도 어느 정도 팔릴 겁니다.”
“오오…… 언제 그런 협약을…….”
“아직까지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구두상의 협약일 뿐이니 변경 사항은 언제든지 있지요. 일단 한글화 작업이 들어가고 나게 되면 아마 본격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거 같습니다. 물론 MNN와 계약서상에 같이 명시되는 거래처 상호명은 저희 반드 미디어입니다만…… 종이책에 관해선 이쪽에 전담을 맡길 테니 너무 심려치 말고 소장판 퀄리티에 신경 좀 써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미래에 돈의 흐름을 주도할 사업 아이템은 바로 콘텐츠다.
종이책뿐만이 아니라 게임,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과 웹소설 등등.
각양각색으로 사업을 뻗쳐 나갈 준비를 하는 우석이었다.
“그럼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죠. 이만 실례를…….”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에, 갑자기 어느 한 남성이 대표 사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외친다.
“대표님!! 댓글란에 ‘화염룡’이 등장했습니다! 녀석이 댓글을 단 작품은…….”
“……화염룡?”
난데없이 등장한 남자.
우석은 이 남자를 잘 알고 있다.
민아 출판사에서 편집팀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서오진.
우석이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묻자, 이인정 대표가 서오진에게 쓴소리를 늘어놓는다.
“이 대표님과 미팅 중이라는 거 모르고 있었나!!”
“죄, 죄송합니다!”
민아 출판사에게 있어서 이우석은 최중요 인물이다.
설마 자신의 회사 대표가 우석과 사무실에서 미팅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나 보다.
하나 우석은 오진의 무례한 행동보다 다른 쪽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것보다 ‘화염룡이 댓글을 달았다’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 그게…….”
이인정 대표가 식은땀을 흘린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던 끝에 결국 마지못해 오진이 한 말의 진의를 들려준다.
“화염룡은…… 요즘 출판업계 관련 인물들이 모두 귀추를 주목하고 있는 독자 닉네임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 화염룡이라는 독자가 어쨌다는 겁니까?”
“그자가 댓글을 달기만 하면 해당 작품은 대박을 친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물론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고요. 실제로 화염룡이란 독자가 댓글을 달면, 그 작품은 웬만하면 최소 평타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고 합니다.”
“오호…….”
화염룡.
도대체 얼마나 작품 보는 눈이 좋길래 출판업계에 그런 소문이 퍼지는 걸까.
우석의 관심이 급격하게 쏠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