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38화
10. 콘텐츠 전쟁(1)
11월 13일은 대한민국의 대다수 고등학교 3학년들이 최후의 결전을 치르는 수능일이다.
우석의 여동생인 연주 또한 수능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학업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다녀왔습니다.”
“이제 오니?”
“네.”
집으로 들어오는 우석을 향해 그의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반드 미디어라는 회사에 정직원으로 채용되어 출퇴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우석은 반드 미디어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아직까지 가족들에게 자신의 창업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가족들에게 괜한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가난할수록 창업에 더욱 민감하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돈도 얼마 없는데, 사업 한 번 잘못해서 패가망신을 당하는 꼴이 허다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게다가 우석의 집안 또한 아버지의 사업이 망함으로 인해 가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만약 여기서 우석이 창업을 하고 있다면 그의 부모님은 지금 당장 회사를 팔아버리고 사업 같은 건 때려치우라고 말할 게 틀림없다.
우석은 괜히 자신의 가족들에게 간섭을 받기 싫어 일부러 창업에 관한 사실을 비밀로 굳히고 있었다.
어차피 이건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다.
나중에 좀 더 회사가 커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이 창업을 하고 있었단 것을 알려주면 그만이니까.
“오빠 왔어?”
때마침 방문을 열고 화장실에 가려던 찰나에 퇴근을 한 우석과 마주친 연주가 잘 갔다 왔냐는 식으로 묻는다.
연주의 얼굴을 이렇게 직접 보는 것도 근 일주일만이다.
그간 새로운 콘텐츠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우석인지라 연주를 포함해 가족들의 얼굴을 자주 마주하지도 못했다.
“오냐. 그러고 보니…… 수능이 얼마 안 남았다고 들었는데. 공부는 잘되어가나?”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지, 뭐.”
우석은 사실 이 집에 온 순간부터 연주가 꽤나 무리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우석의 부모는 연주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부모를 포함해 우석까지 전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매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로지 막내인 연주를 공부시키기 위함이다.
사립대학 등록금만 하더라도 한 학기당 300~400만 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매번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 후보에 오른 자들은 대학 등록금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지만, 실제로 이뤄진 사례는 거의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가난한 자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사회.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수능시험 잘 보고. 당일 날에 오빠가 태워줄 테니까 충분히 아침잠도 잘 자둬라.”
“오빠가?”
“최근에 차도 샀으니까.”
“아…… 그랬었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도 해야 한다.
가난 덕분에 소중한 가족들을 잃은 경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석은 가급적이면 이 가족들에게 최대한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다시 한번 연주에게 수능 힘내라는 식으로 인사를 건네준 뒤 방 안으로 들어서는 우석.
얼마 전에 구입한 패드의 전원을 켠 뒤 아이티가 전송해 준 명단을 바라본다.
최근 유료연재, 전자책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함에 있어서 장르문학 시장 역시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출판사와 작가, 계약서상에 명시된 한 명의 갑과 한 명의 을이 서로 출판 계약을 맺고 대여점에 책을 배포하는 형태를 거쳐 지금은 종이책보다 온라인상에서 업로드되는 이북과 연재 분량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시대가 왔다.
그 때문에 출판사의 형태가 아닌 매니지먼트 회사를 비롯해 요즘은 작가들이 직접 뭉쳐 콘텐츠 관리를 하는 창작 집단도 더러 생겨나기 시작한다.
우석이 노리고 있는 곳은 출판사, 매니지먼트, 플랫폼 형태의 회사가 아닌 콘텐츠 수급을 위한 창작 집단이다.
이건 참으로 골치 아픈 작업이다.
차라리 출판사나 매니지먼트, 플랫폼의 경우에는 해당 사업체가 얼마만큼의 수익을 창출하는지를 통해 그 회사의 가치와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웹툰, 웹소설에 관한 플랫폼이 50여 개 이상 늘어난 이 춘추전국시대에서 어느 플랫폼은 억대 이상의 매출을 거둬들이는 반면, 어떠한 플랫폼은 하루 매출이 백 단위에 머무는 곳도 있다.
유행을 타고 있기 때문에 매출 면에 있어서도 극과 극을 달린다.
잘나가는 곳은 잘나가고, 하위권에 머무르는 곳은 여전히 매출이 하락세다.
이러한 곳을 잘 찍어 계약을 하면 되지만…… 창작 집단은 다르다.
그나마 창작 집단의 가능성과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유명 필명을 지닌 작가가 속해 있느냐 마느냐일 것이다.
하지만 유명 작가를 원해 계약을 맺으려면, 차라리 작가와 일대일로 계약을 맺는 게 더 속 편하다.
우석이 원하는 건 주기적인 콘텐츠 수급이다.
전반적으로 평균치 이상의 작품 퀄리티를 계속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집단을 찾아내야 한다.
돈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안목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다.
“……역시 힘들군…….”
아이티로부터 창작 집단 명단을 건네받은 이후에 나름 조사를 해봤지만…….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지금 잘나가는 작가라 하더라도 차기작 역시 잘 나오란 보장은 없다.
해당 창작 집단의 가능성을 본다.
문학적인 가능성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우석이 모르는 면이 많다.
우석은 사업적인 수완이 좋은 것이지, 문학적 감각이 뛰어난 건 아니다.
“일단…… 실험 한번 해볼까.”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 중 하나를 꺼낸 뒤 가방에 미리 챙겨 넣어두는 우석.
그의 사소한 실험에 휘말릴 타깃은…….
바로 모니터 마니아, 아이티다.
* * *
“지금 저보고 이걸…… 읽으라는 겁니까?”
“그래.”
“…….”
이게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난데없이 이른 아침에 방문을 해온 우석이 대뜸 책 한 권을 내밀며 아이티에게 강제적으로 독서를 시킨다.
이 상황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던 아이티였지만, 언제 또 릴리아나가 찾아와 자신의 모니터를 부술 거란 협박을 늘어놓을지 몰라 마지못해 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한다.
1시간.
그리고 2시간이 지날 무렵.
“……다 읽었습니다.”
책을 다시 덮어두는 아이티.
그와 동시에 스마트폰을 매만지던 우석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온다.
“소감이 어떻지?”
“소감…… 말입니까?”
“그래. 소감.”
“뭐…….”
“정 힘들다면 재미있다, 재미없다 같은 이지선다 형태로 대답해도 된다.”
“…….”
우석의 의도를 도통 파악하지 못한 아이티였으나, 그래도 그는 자신의 상관이다.
자신이 읽은 책 ‘세리아나의 가르침 1권’에 대한 간단한 감평을 내놓는 아이티.
“재미없었습니다.”
“그렇군. 혹시 세리아나의 가르침이라는 책이 뭔지 알고 있나?”
“유명 소설 연재 플랫폼에서 베스트 순위 3위 안에 드는 인기 소설이었다가 2015년 8월 12일에 새신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1, 2권이 일주일 전에 출간되었지요. 참고로 작가는 23세 여성이며 취향은…….”
“아니, 작가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나저나 역시 정보의 신이군. 모르는 게 없어.”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옅은 한숨과 함께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우석.
예상은 했지만 역시 아이티에게는…….
“넌 문학적 감각이 없군.”
나름 아이티에게 기대를 걸어봤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릴리아나에게 또다시 능력을 지닌 비서를 추천받아야 한다.
이번에는…….
문학적 소질을 다분히 갖추고 있는 자를 데려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