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34화 (34/201)

갑질의 신 34화

8. 접대(5)

미나는 자연스럽게 송 대표의 옆에 가서 앉는다.

우석과 철수가 고를 수 있는 여자는 둘 중 한 명.

“우석아…… 어떻게 하냐?”

“…….”

이런 호사를 노리는 것 자체가 처음인 철수는 머릿속이 이미 패닉 상태에 빠져든 지 오래다.

태어나서 여자친구를 단 한 번도 사귄 적도 없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목적보다도 오로지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묵묵히 일해온 철수다.

그런 그에게 여자란 존재는 그저 판타지에 가깝다.

“난…… 저쪽이 좋겠군.”

우석이 먼저 모범을 보이려는 듯이 손가락으로 특정 한 여성을 가리킨다.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긴 흑발의 여성이 가볍게 눈웃음을 치며 반응을 보인다.

또각또각.

힐 굽 소리조차 요염하게 들릴 정도로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보라색 원피스 여성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이동해 우석의 옆에 앉는다.

“선택해 줘서 고마워요, 젊은 사장님.”

“이름이 뭐지?”

곧장 그녀의 이름부터 묻는 우석.

그러자 여성이 가볍게 자기소개를 들려준다.

“지애. 22살이에요.”

“지애라…….”

물론 우석도 그녀가 방금 들려준 지애란 이름이 본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본래 퇴폐업소에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본명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뿐더러, 혹여나 괜히 본명을 사용했다가 문제가 될 만한 여지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게는 가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외워두는 우석.

송 대표와 우석의 선택으로 인해 남은 한 명의 여성이 철수에게 다가간다.

“그럼 전 이쪽 오빠랑 파트너네요? 잘 부탁해요.”

“자, 자자잘 부탁하겠습니다!”

“어머, 이 오빠 귀엽네.”

너무나도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티에 쇄골 부근이 깊게 파여 있어 가슴 굴곡까지 그대로 다 보인다.

눈을 둘 곳이 없을 만큼 노출도가 심한 복장에 철수는 그저 안절부절못한다.

한편, 우석과 철수의 파트너가 정해지자 송 대표가 기분 좋은 듯이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 자, 그럼 일단 한 잔씩 시원하게 원샷부터 합시다!”

“그러죠.”

우석이 고개를 끄덕여주며 송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든다.

송 대표의 접대는 지극히 빤히 보인다.

20대 젊은 남성을 겨냥하기 위한 요소들로 치장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여자, 그리고 술이다.

잔 하나에 시원스럽게 담겨지는 고급술.

보기만 하더라도 꽤나 가격이 나가 보이는 술 앞에서 철수가 몸서리를 친다.

“이거…… 엄청 비싼 거일 텐데…….”

정말 마셔도 되는 걸까.

푸른강 출판사는 반드 미디어랑 아무것도 계약이 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우석은 푸른강 출판사에게 ‘보류’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 대표는 보다 더 크게 접대 자리를 펼쳤다.

철수의 말을 들은 모양인지 송 대표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연신 괜찮다는 말을 들려준다.

“하하! 부담 없이 마셔도 됩니다! 그저 저는 우리 젊은 갑(甲)이신 두 분에게 성의를 보이고 싶을 뿐이니까요.”

송 대표는 자신이 을로서 해야 할 행동들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잘 파악하고 있다.

더불어 맨정신이 아닌 알코올이 들어간 상태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주도하는 모습 또한 익숙함마저 느껴진다.

상대가 젊기에 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이들의 어깨에 더더욱 힘을 주게 만든다.

잘 대우해 주는 만큼, 알아서 좋은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송 대표가 믿는 건 그것이다.

* * *

“내 안에 너를 담아두고~ 떠나는 그대를 위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지애.

걸그룹 연습생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제법 춘다.

외형뿐만이 아니라 제법 끼도 있다.

‘실력도 좋은데…… 왜 연습생 단계에 머물고 있는지 모르겠군.’

우석의 기준으로 봤을 때에는 지금 당장 데뷔해도 늦지 않을 만큼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곳은 대중들이 열렬하게 환호하는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닌, 성접대라는 추악한 무대 위에 서 있다.

‘놓치기 아까운 인재야.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어.’

자고로 미인은 돈을 끌어오는 요소 중 하나다.

재능 있는 미인과 알아둬도 나쁘진 않으리라.

게다가 외모로 봐도 릴리아나와 견주어 봤을 때 결코 밀리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송 대표의 접대 속에서 건진 유일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

노래가 서서히 끝날 무렵, 송 대표가 슬쩍 우석에게 이야기를 건네본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제가 드렸던 그 제안은 아직 생각 중이십니까?”

“어떤 제안 말이죠?”

“허허…… 서로 손을 잡고 이 장르문학 업계를 평정해 보자는 제안 말입니다. 혹시 잊으신 겁니까?”

“아~ 물론 기억하고 있죠.”

이들이 비운 술병만 하더라도 근 3병이 다 되어간다.

한 병마다 알코올 도수가 족히 40도를 넘어가는 제법 센 술이다.

이미 철수는 정신줄을 반절 놓을 정도다.

우석 역시 제정신을 추스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슬쩍 저번에 들려줬던 제안을 다시 꺼내본다.

“어떻습니까? 민아 출판사 말고 저희와 함께 전속 계약을 맺으심이…….”

“…….”

송 대표의 접대 자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우석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송 대표님, 제가 왜 보류라는 답변을 들려줬는지 혹시 아십니까?”

우석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제아무리 술을 많이 먹였다 하더라도…….

우석의 정신은 결코 곯아떨어지지 않는다.

“송 대표님은 순간적인 접대 자리에만 모든 신경을 쏟고 계십니다. 본인을 스스로 을이라 주장을 한다면, 갑을 회유할 만큼 매력적인 제안을 들고 와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 그래서 이번 자리를…….”

“접대 자리가 얼마나 호화로운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린 매력적인 제안이라 함은, 바로 계약 조건을 말하는 겁니다. 갑을 회유할 수 있을 만큼의 파격적인 계약 조건!! 반드 미디어를 노렸다면 단순한 쾌락만을 만족시켜 주는 이런 싸구려 접대 자리가 아니라 보다 더 파트너십을 견고하게 다져줄 수 있을 만큼 좋은 계약 조건을 들고 오셨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

“그저 을의 입장을 내세워 비굴하게 ‘일거리를 주세요’라고 말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화끈하게 갑의 마음을 매료시킬 수 있는 그런 괜찮은 계약 조건을 들고 와주시기 바랍니다.”

우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순간적으로 싸해진 분위기.

이미 더 이상…….

이 접대 자리에 남아 계속 있는 건 도리어 시간만 아깝다.

“나중에 좀 더 괜찮은 계약 조건을 들고 오신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바깥을 나서는 우석.

덕분에 철수 또한 덩달아 가게 문을 나선다.

“야…… 우석아.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지 않아도…….”

“잘 기억해 둬라, 철수야.”

“뭘?”

이해가 잘 안 간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철수.

그를 향해 우석이 잊지 말라는 식으로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을 들려준다.

“갑이란…… 조금이라도 을한테 얕보여지게 되는 순간, 계속해서 갑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법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