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33화
8. 접대(4)
송진호 대표의 뒤를 따라 안내된 곳은 가게 내부에 수도 없이 마련되어 있는 룸 하나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휘황찬란한 조명과 더불어 노래방 기기도 마련이 되어 있다.
“우와…….”
철수가 작은 탄식을 자아낸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들이 진열되어 있다.
반면, 우석은 침착함을 유지한다.
“자자, 다들 앉으시지요.”
“그럼…….”
우석이 먼저 자리를 잡자, 덩달아 철수도 당황스러운 감정을 억지로 추스르며 자리에 앉는다.
송 대표 역시 제자리에 착석을 하면서 슬며시 우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고 보니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지 아직 소개를 못 받았습니다만…….”
“저와 같이 반드 미디어에서 일하고 있는 제 친구입니다. 김철수라고 해서…… 아마 제가 자리를 비우게 될 경우에는 이 친구가 대신 반드 미디어를 총괄해 운영해 나갈 겁니다. 제 부사수 같은 개념이지요.”
“뭐? 내가?!”
난생처음 듣는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철수.
이건 사전에 이야기가 오간 내용이 아니다.
우석의 부사수라니.
그 말인즉슨, 반드 미디어 내에서는 이우석 다음으로 철수가 서열 2위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난 그냥 일개 직원 아니었냐?!’
‘아닌데.’
‘이런 미친…… 그런 중요한 일 정도는 미리 일러주라고!’
뒤늦게 우석으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들은 탓에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우석이 그만큼 철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마저 느낀다.
사실 우석의 입장에선 자신의 부사수로 철수를 지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우선 아이티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철저하게 정보 수집 업무에만 특화된 녀석이다.
대외적인 활동 같은 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릴리아나의 경우에는 다른 의미로 맡길 수가 없다.
우선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 융통성이 없다.
더불어 너무 가난함에 찌들어 있다 보니 오가는 계약금 단위가 천만 원 단위만 되어도 머릿속에서 제대로 계산을 못 한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철수를 고르게 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그래도 훈련을 시키면 그래도 한 사람 몫은 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일부러 우석은 민아 출판사로부터 접대를 받을 때, 그리고 지금처럼 송 대표와 같이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도 일부러 철수를 데리고 나왔다.
앞으로 우석을 대신해 철수가 이런 자리에 나오게 될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우석으로부터 철수에 관한 대략적인 소개를 받게 된 송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이 대표님과 절친이라…….”
“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철수가 어설픈 표정으로 송 대표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직 철수는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다.
절로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송 대표는 철수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실권을 쥐고 있는 건 이우석이다.
철수의 태도에서 반드 미디어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금방 파악하는 데에 성공한 송 대표.
반드 미디어는 상호명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작은 회사지만, 결국 이우석이라는 인물 한 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에 불과하다.
다년간의 영업 능력을 통해서 사람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있다고 자부하는 송 대표가 보기엔, 철수는 결코 영업에 익숙한 인물이라 볼 수 없다.
반면 우석은 다르다.
결국 우석만 잘 구슬리면 된다.
“그보다 절 보자고 하신 이유는…….”
우석이 선뜻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을 연다.
굳이 송 대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저번에 말했던 바로 그 협력 체제 관련 계약 건수 때문이다.
“전에 이 대표님에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와 따로 협업 체계를 갖췄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만…… 아직도 보류 중이신가요?”
“예, 일단은요.”
“하하, 그렇군요.”
우석이 제시한 ‘보류’란 단어를 길게 풀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너 하기에 달려 있다.
‘어디 한번 성의를 보여봐라’라고 해석한 송 대표가 오늘, 수십 년간 다져진 영업 능력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곳으로 그들을 불러오게 되었다.
이우석과 김철수.
타깃은 바로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다.
게다가 이제 겨우 막 거액의 돈을 거머쥐기 시작한 나이 어린 사업가들에 불과하다.
혈기왕성한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이 있다.
송 대표는 그 방법으로 오늘, 우석에게 자신이 원하는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실례합니다.”
문이 열리면서 고혹적인 외모를 지닌 여성이 빼꼼 얼굴을 들이민다.
“애들 준비 다 되었어요.”
“바로 들여보내 주세요.”
“네.”
마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등장하는 아리따운 미녀 3인방.
순간적으로 철수가 ‘헉!’ 하며 헛숨을 삼킨다.
길을 걷다 보면 외형적으로 어여쁜 여성들을 쉽사리 볼 순 있다.
하지만 거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수준의 외모들이 아니다.
얼굴이며 몸매까지.
어느 하나 빼놓지 못할 만큼 훌륭한 미인 3명이 송 대표와 우석, 그리고 철수에게 각각 인사를 건넨다.
“어머나, 송 대표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3명 중 송 대표와 어느 정도 면식이 있는 모양인지 타이트한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다가가 콧소리를 낸다.
“오늘 중요한 손님 두 분 모셔왔으니까 알아서 잘 챙겨드려라.”
“물론이죠! 어머…… 이번에 모시고 오신 분들은 꽤 젊으시네요.”
“젊다고 결코 무시하지 마라. 내게 있어서 엄청 중요한 분들이시니까.”
“호호, 알고 있어요.”
붉은 원피스의 여성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미나라고 해요.”
“이우석이라고 합니다.”
“기, 김철수입니다!!”
담담하게 인사하는 우석과 다르게 철수는 긴장한 나머지 말을 더듬고 만다.
미나의 인사와 동시에 송 대표가 추가적인 말을 들려준다.
“여기 있는 여성들은 현재 걸그룹 데뷔를 위해 연예계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연습생들입니다. 이 대표님하고 같이 오신 친구분을 위해 제가 특별히 급이 좀 되는 애들로 데려와 달라 했지요.”
“거, 걸그룹 연습생……!!”
송 대표의 부가적인 설명에 철수가 다시 한번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움을 선보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석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우석을 꼬득이기 위해 송 대표가 이런 식의 접대를 해올 거라는 사실은 이미 우석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접대 대상자가 혈기왕성한 20대 청년들 아니겠는가.
한창 여자를 밝힐 법한 젊은 남자들인데, 성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접대 한 번 해주고 나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석의 마음은 그 여느 때보다 편치 못했다.
그가 원하는 갑질은…….
……이런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