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30화
8. 접대(1)
기존에 이우석 패밀리들이 사용하던 사무실은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새로 입주하게 된 남자, 아이티의 차지가 되었다.
“나의 콜렉션들을 다 진열할 수 없다는 점은 실로 매우 유감이지만…… 이 정도야 뭐, 어쩔 수 없지.”
세계의 주인을 받드는 비서 중 한 명인 아이티.
그의 담당 분야는 바로 ‘정보’다.
수많은 모니터를 통해서 온라인상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 곳곳의 사건들을 자신의 뇌에 기억해 둔다.
아이티도 릴리아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과 다르게 특출난 능력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압도적인 기억력이다.
머리가 좋기로 소문난 우석도 아이티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만큼 그는 기억력의 천재다.
한 번 스쳐 지나간 사람의 인상착의라든지 생김새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양 기억해 낼 수 있고, 책 하나를 골라잡아 스윽 읽어봐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조릴 수 있다.
그의 능력은 우석마저도 감탄할 정도였다.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기억력을 통해 아이티는 세계의 거의 모든 정보를 자신의 뇌 속에 입력해 두고 있다.
그래서 그가 바로 ‘정보의 신’이라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력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머리까지 좋다는 건 아니다.
그는 분명 다수의 정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우석이 아이티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센스를 보여준다.
사실 콘텐츠 재활용 프로젝트를 봤을 때만 해도 아이티는 우석의 잔머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이티의 무수한 정보 데이터와 우석의 응용 능력이 합쳐지면 두 사람이서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우스울 정도가 아닐까.
“아니지…… 이미 그 이우석이란 남자는 세계의 주인이기도 하니까…… 굳이 세계 정복을 노리거나 하진 않겠지.”
혼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소중한 모니터들을 바라본다.
18인치부터 시작해가지고 20인치, 24인치, 그 이상의 것들도 크기별로 존재한다.
“모니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이지…….”
방구석폐인이기도 한 아이티에게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창문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최근, 자신의 이 소중한 콜렉션의 신분을 위협(?)하는 자가 등장했다.
딩동~!
벨이 울리는 순간, 아이티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누, 누구세요.”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고 만다.
불안한 예감은 늘 적중한다고 했던가.
인터폰에서 가급적이면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다.
“……또 너냐.”
아이티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어여쁜 외형을 지닌 미인이지만, 속내는 아이티에게 있어서 폭력녀라는 이미지로 굳어진 여인, 릴리아나가 방문을 해온 것이다.
-우석 님께서 슬슬 널 데려오라 하시더군.
“나를? 왜.”
-왜긴. 금일 20시 15분에 반드 미디어에 소속되어 있는 사원들과 함께 회식이 예정되어 있다. 불참은 용서치 말라는 우석 님의 엄명이 있었다.
“그 세계의 주인인지 뭐시긴지 하는 사람은 내가 방구석 폐인이라는 걸 잊은 거 아니냐? 난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게 더 좋다고. 괜히 바깥에 나갔다간 수명만 단축된다고 전해줘라.”
-……어쩔 수 없군.
가볍게 한숨을 내쉬던 릴리아나가 갑자기 어디론가 손을 뻗는다.
이윽고.
삐빅!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서, 설마?!”
이곳은 이우석을 비롯해 철수, 그리고 릴리아나까지 3명이 사용하던 사무실이다.
특히나 릴리아나의 경우에는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모를 리가 없지 않겠는가.
문이 열림과 동시에 릴리아나가 복도에 있는 다수의 모니터들을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릴리아나가 모니터 하나를 바닥에 눕힌 채…….
……조심스럽게 발로 즈려밟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악!! 네, 네년!! 뭐, 뭐하는 짓이냐?!”
“인질이다.”
“인질은 개뿔!! 애초에 모니터가 사람도 아니잖냐!! 빨리 그 무거운 발, 어서 치워라!!”
“……무겁다고?”
릴리아나의 한쪽 눈썹이 추켜올라간다.
아이티의 방금 그 말은 여성의 자존심을 건드린 꼴이 되어버렸다.
“네놈의 모니터 내구도 한계치가 얼마인지 직접 한번 실험시켜 줄까?”
“미미미미미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좀 가만히 있어줘!!”
“회식 참가는?”
“가면 되잖냐!!!”
결국 비명을 내지르며 회식 참석의 뜻을 밝히는 아이티.
정보의 신이라 불리며 세계의 거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거물급 인사, 아이티지만…….
모니터로 인질극을 펼치는 릴리아나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 * *
푸른강 출판사는 민아 출판사와 다르게 2년 전, 새로 장르문학 시장에 당찬 포부를 밝히며 뛰어든 출판사 중 한 곳이다.
광범위한 영업 능력을 펼치면서 지금은 출판업계 매출 순위 내에서도 상위로 손꼽히는 푸른강 출판사.
하지만 갈수록 대여점 숫자도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종이책 시장 역시 축소화됨에 따라 이들도 또 다른 활로를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최근 뜨고 있는 E북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와중에 이우석이라는 걸출한 재목이 난데없이 출판업계 사이에 등장을 한 것이다.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콘텐츠들만 어떻게 잘 알고서 집중적으로 판권을 사들인 우석.
게다가 유명 포털 사이트인 미논의 MNN과 최근 협력 관계를 구축해 조금씩 더 발을 넓히고 있다.
우석이 민아 출판사에게 종이책 의뢰를 거의 전담으로 맡기다시피 하면서 일거리를 주고 있다는 건 푸른강 출판사의 대표인 송진호도 잘 알고 있다.
같은 종이책 조건으로 승부를 볼 생각도 없다.
송진호가 제시한 것은 종이책 작업뿐만이 아니라 우석이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그 콘텐츠를 가지고 다수의 플랫폼들에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푸쉬해 주겠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우석은 미논에게만 독점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송진호는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면서 미논뿐만이 아니라 기타 매출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는 플랫폼 메인 배너에 우석이 제공한 콘텐츠들을 적극적으로 노출시켜 광고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메인 배너에 걸리고 안 걸리고의 매출액 차이는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다.
광범위한 인맥을 앞세워 프로모션 공약까지 내건 송진호.
하지만.
우석에게 들은 말은 실망 그 자체였다.
“젠장…….”
대표 사무실에서 들었던 우석의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가 들려준 대답은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보류’였다.
“그렇게나 밀어준다고 장담을 했는데…… 쯧쯧.”
인상을 팍 쓰며 의자에 몸을 묻는다.
“어쩔 수 없지…….”
안 되면 되게 하라.
그것이 그의 철칙이다.
“좀 더 농후한 방법을 사용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