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29화
7. 매니지먼트(2)
사업자 상호명.
본격적으로 콘텐츠 장사를 하기 위해 이번에 새로 매니지먼트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호명을 정하지 않은 터라 본격적으로 우석의 주변 파트너들에게 ‘XXX의 이우석입니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꺼내진 못하고 있다.
심지어 출판업계에서 이제 유명세를 타게 된 이우석이 자체적으로 매니지먼트를 설립한지도 모르는 곳도 가끔 존재한다.
대외적으로 공표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우석의 마음속에는 상호명이 정해져 있었다.
“반드 미디어로 할 거다.”
“반드 미디어?”
“그래.”
“무슨 뜻인데?”
철수가 선뜻 반드 미디어라는 상호명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묻는다.
릴리아나가 깎아준 배 한 조각을 입에 물며 우물우물 씹은 뒤, 우석이 다시금 입을 열며 설명을 들려준다.
“미디어라는 단어를 붙인 건 우리가 단순히 출판업 쪽만 종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 콘텐츠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단어다. 잘 알아둬라.”
“아니, 미디어라는 단어를 물은 게 아니라 반드가 무슨 뜻인지 묻는 거잖냐.”
“아…… 그렇군.”
우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철수는 우석이 레디너스 대륙에 있었을 당시의 과거를 모른다.
레디너스 대륙에 있었을 당시 대부호로 이름을 높였던 라울 더 그레이너.
라울이 운영하던 상단의 이름이 바로 반드였다.
그 단어를 고스란히 따 자신의 상호명으로 재활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내가 예전에 운영하던 사업체 이름이지.”
“너, 사업도 했었냐?”
“어.”
“거 참……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언제 그런 걸 다 했냐.”
어차피 상세하게 물어봤자 제대로 알려줄 거란 생각도 들지 않은 탓에 철수도 더 이상 그에 대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과거보다 현재, 그리고 미래가 더 중요한 법이니까.
* * *
사무실 개업과 동시에 반드 미디어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출판업계, 그리고 각종 관련 업계 쪽에서도 일파만파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특히나 우석과 오랫동안 같이 동업을 해온 파트너 중 한 곳이기도 한 민아 출판사의 경우에는 바짝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석이 직접 자체적으로 회사를 차렸다.
그 말인즉슨…….
굳이 민아 출판사를 거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종이책 작업을 비롯해 콘텐츠 생산 등을 주도할 수 있을 여력이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덕분에 민아 출판사는 때아닌 비상이 걸린 상태다.
“우석 씨는…… 뭐라고 하든가?”
이인정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오민고 이사에게 전화통화의 결과를 묻는다.
“우선은…… 오늘 회식이 있으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이런……!”
인정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사실 이인정은 우석이 조만간 자체적으로 회사를 차릴 거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만한 능력과 안목을 품고 있는데, 오히려 자기만의 회사를 차리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대표가 노리고 있던 것은 바로 우석을 자신의 산하로 두는 것이었다.
우석의 안목.
자금력.
그것들을 민아 출판사가 흡수하는 형태로 이끌어가려 했으나…….
우석은 이들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아니, 우석은 민아 출판사에게 있어서 철저한 갑(甲)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세상에 어느 멍청이가 갑의 자리를 포기하고 을이 되기를 희망하겠는가.
“설마 이런 식으로 먼저 선수를 치다니…….”
나이가 어린 우석이기에 세 치 혀로 이리저리 구워삶으면 그를 민아 출판사가 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우석은 민아 출판사 따위가 품기에 너무나도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
하나 이인정 대표는 아직까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다른 출판사, 매니지먼트에게도 반드 미디어의 출범은 크나큰 압박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콘텐츠 재활용으로 인해서 나름 많은 자금을 확보한 신흥 세력이다.
물론 판무협 시장이 만 부 단위로 팔려나갔을 시기부터 존재해 오던 출판사들과 비교하자면 자금력은 부족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굵직한 출판사들이 여타 다른 매니지먼트와 달리 유독 반드 미디어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우석의 안목 때문이다.
이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치 있는 콘텐츠를 누구보다도 빠르게 선점해야 한다.
우석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처럼 한 번 망했지만, 영화라든지 애니메이션, 웹툰 등 2차 콘텐츠로 인기몰이 역주행을 노릴 수 있다.
그의 안목은 다른 출판사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표님.”
“어떻게 하긴…….”
이인정 대표의 미간이 다시금 찡그려진다.
“당분간…… 또 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우석이 물어다 주는 일거리는 이제 민아 출판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그저 괜찮은 일거리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제 우석은 이들의 존속을 쥐락펴락할 만큼 많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젠장! 설마 우리를 철저한 을로 복종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일거리를 바쳤던 건가?!”
콰앙!!
이인정 대표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친다.
민아 출판사 역시 다른 이름 있는 장르문학 출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출판사다.
그러나 이런 출판사가 한순간에 이우석이라는 남자에게 이렇게나 심하게 휘둘릴 줄이야.
당장의 먹잇감에 한 눈이 팔려 미래의 한 수를 내다보지 못했다.
이인정 대표의 크나큰 실수였다.
하지만 우석이 당장 회사를 차렸다 하더라도 출판사가 아닌 매니지먼트다.
종이책 작업은 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끌 만한 여력이 되진 못할 것이다.
“종이책 작업만으로도 저희에겐 충분히 이득 아니겠습니까?”
오민고 이사가 진정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건네보지만…….
이인정은 최악의 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우석, 그자가 우리한테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원히 일거리를 줄 거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가뜩이나 일거리를 물어다 주는 우석을 노리는 출판사들이 많다.
만약 이번 반드 미디어 출범을 계기로 다른 출판사에서 의도적으로 우석에게 접근해 매니지먼트 & 출판사의 업체 간 협력 체제를 노린다면…….
민아 출판사는 끝장이다.
* * *
부천역 안에 위치한 대형 마트 주차장.
그 안에 차를 주차시킨 한 중년 남성이 썩은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은 곳이군. 왜 하필이면 이런 곳에 사무실을 잡았담…….”
좀 더 불만을 토로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도 부족하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걸음을 옮겨 특정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남성.
그와 동시에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젊은 남성, 이우석에게 다가가 말을 붙인다.
“혹시 이우석 대표님 아니십니까?”
“예, 맞습니다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화상으로 이야기 나눴던 도서출판 푸른강의 송진호라고 합니다.”
“아, 송 대표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우석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송진호.
명함 교환과 동시에 곧장 자신이 우석을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해 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송진호의 눈빛에 결의가 맺힌다.
“저희 출판사와 정식으로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