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27화
6. 정보의 신(4)
세계의 주인이 되었을 당시, 우석은 한 가지 의구심을 줄곧 품고 있었다.
이 세계를 사들였다 해도 우석에게 전지전능한 능력이라든지 이런 건 부여되지 않았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비를 내리게 하고, 기침을 한 번 하는 행동으로 태풍을 만들어내는 그런 능력 같은 건 전혀 없다.
말 그대로 무능력(無能力)이다.
아무런 능력조차 부여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석은 능력 대신 ‘권한(權限)’을 얻었다.
세계를 관리하고 있던 전임자의 밑에는 우석의 눈앞에 있는 정보의 신, 아이티와 순간이동 능력을 지니고 있는 릴리아나 등 다양한 능력자들이 즐비하고 있다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세계를 변화시킬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을 하자면 대략 이런 식이다.
카페 하나가 있다고 치면, 그 주인이 우석이라고 치자.
그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이 아이티와 릴리아나라고 본다면, 이들이 과연 자신들 멋대로 카페를 처분하거나 할 수 있을까?
천만에.
그러한 권한은 오로지 우석에게만 있다.
정당성을 보장받은 남자.
그게 바로 이우석이다.
이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세계를 좌지우지할 권한이 없는 이상, 능력을 마음껏 부릴 수 없다.
카페 알바가 혼자서 멋대로 카페를 처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건 바로 ‘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 정보의 신.”
“……뭡니까?”
“만약 네가 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네 멋대로 능력을 사용한다면, 넌 어떻게 되지?”
“…….”
“난 예전부터 그게 궁금했거든.”
우석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이티.
이 남자가 정보의 신이라면, 분명 우석이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터.
“어쩔 수 없지. 난 원래 평화주의자이긴 하지만…… 그렇게 나온다면야.”
근처에 있는 모니터로 향하는 우석.
그의 행동에 불길함을 느낀 아이티가 다급하게 외친다.
“아, 알겠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요!!”
“진작 그랬어야지.”
말이 안 통하면 행동으로.
이건 아마도 세계…… 아니, 차원 공통으로 통용되는 법칙이 아닐까 싶다.
* * *
우우웅!!
릴리아나의 순간이동 능력을 통해 다시 부천으로 돌아온 우석.
가볍게 몸을 풀던 그에게 릴리아나가 다가와 묻는다.
“피곤하신 거 같습니다. 커피라도 한 잔 드시겠습니까? 마침 제가 잘 아는 커피 가게가 있습니다.”
“오, 나쁘지 않지.”
나름 기대감을 가지고 흔쾌히 허락하는 우석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릴리아나는 그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다.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여기 있습니다, 우석 님.”
“……이게 뭐지?”
우석이 건네받은 건 바로 커피가 담겨진 일회용 종이컵이었다.
그의 물음에 릴리아나가 손가락으로 커피 자판기를 가리킨다.
“제가 찾아낸 커피 가게에서 뽑아온 최고급 커피입니다. 밀크커피라고…… 자그마치 500원이나 합니다.”
“……그래, 너한테 뭔가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보다 자판기는 보통 커피 가게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네 비서 소양 목록에 포함시켜 둬라.”
“죄, 죄송합니다…….”
그래도 천 원으로 두 잔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릴리아나는 작은 행복감을 선사해 준다.
여하튼 종이컵 하나씩을 든 채 사무실로 향하는 이들.
도중에 우석은 아이티에게 들은 말을 상기시켜 본다.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아이티라든지 다른 능력자들은 자신들이 멋대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오로지 우석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
비서들은 그것을 속칭 ‘결재(決裁) 시스템’이라 부르고 있다.
우석에게 결재를 맡아야 이들이 능력을 사용해 세계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우석의 결재 없이 본인들 멋대로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정도에 따라 그들에게 ‘천벌(天罰)’이 내려진다고 한다.
그 천벌의 내용은 실로 각양각색이다.
정도가 약한 천벌은 가벼운 신체 손상, 혹은 약간의 돈을 잃어버리는 정도에 끝나는 경우도 있다 한다.
하지만 우석에게 결재받지도 않은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다면, 자칫 잘못하다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티가 우석의 허락 없이 멋대로 정보를 이용해 수십조의 돈을 벌어들였다고 치자.
하지만 다음 날 갑자기 아이티가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천벌’의 무서움이다.
그 천벌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우석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릴리아나에게 물어봤지만, 그녀라고 이 세계의 시스템을 전부 다 아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이런 건 차근차근 알아가는 재미가 있으니까.’
여하튼 중요한 건 비서라 불리는 능력자들이 우석의 결재 없이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임자가 우석에게 말했던 ‘권한’을 지닌 자의 위력이다.
세계의 주인이 결재를 해줘야 비서들이 능력을 부릴 수 있다.
결국 이 비서들의 능력을 통해 우석은 자신의 마음대로 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릴리아나, 너는 내 결재 없이 능력을 사용했는데…… 어떻게 가능했던 거지?”
“우석 님이 저와 같이 동행을 하는 것 자체가 간접적으로 결재를 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겁니다.”
“과연…… 그렇군.”
이것으로 하나 더 좋은 정보를 얻게 되는 우석.
결재의 방식은 서면이든 구두로든 심지어 행동으로 보여줘도 상관없다.
즉, 양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건 편하군.’
진짜 모 기업의 대표처럼 매번 올라오는 결재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고충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과 귀찮음에 사로잡혀 있던 우석이지만, 그 걱정은 릴리아나 덕분에 한 방에 날아갔다.
여하튼 아이티도 이제 본격적으로 우석에게 협력을 해주기로 했으니…….
“릴리아나.”
“예.”
“최대한 연락이 되는 비서들의 명단을 작성해서 나중에 나와 만날 수 있게끔 스케줄과 장소를 조정해 둬라.”
“예, 알겠습니다.”
비서들을 많이 확보할수록 우석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좋은 재목(材木)은 그 회사를 먹여살리는 데에 큰 기여를 한다.
‘우선은 인력 확보군.’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걷던 우석.
갑자기 그가 길을 멈추며 어느 한 곳을 응시한다.
“여긴…….”
4층 높이의 허름한 건물 하나가 그의 발길을 붙잡는다.
부천역에 자주 왕래하는 우석이지만, 텔레포트를 위해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으려다 보니 자주 오지 못한 지역까지 오게 되었다.
덕분에 건물의 존재 자체를 처음 보게 된 셈이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우석 님.”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 릴리아나가 그의 안부를 묻는다.
한동안 폐허 같은 건물을 올려다보던 우석이 대뜸 발길을 돌린다.
“사무실에 가기 전에 잠시 어디 좀 들려야겠군.”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발걸음을 재촉하던 우석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가볍게 대답해 준다.
“요 근처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좀 가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