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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19화 (19/201)

갑질의 신 19화

5. 협상(1)

우석이 수준에게 몰래 돈을 찔러주면서까지 널리 기사를 유포하라 했던 점들은 사실 큰 이슈 거리는 아니다.

그저 유럽에서 영화 ‘마이 웨이’가 대호평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이 웨이가 로이 밍그레의 여행기를 다룬 책, ‘런닝’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는 점들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 런닝이 ‘레일 아웃’의 두 번째 이야기라는 것이다.

레일 아웃이 영화화 진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도 수준의 기사를 통해 아마 각종 유명 인기 포털 사이트 메인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었을 것이다.

‘서수준…… 그 친구, 나이도 엄청 젊을 텐데 언론사에서 꽤나 영향력이 있나 보군.’

학교를 다니다가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이른 나이에 곧장 언론사에 취직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설마 우석이 기대하던 것 이상으로 많은 활약을 보여줬다.

자고로 기사라 함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기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노출될 정도라면, 웬만한 사람들은 적어도 기사 제목 정도는 훑어 내려가듯 봤을 거란 뜻이다.

하물며 영화, 그리고 문학 쪽에 연관되어 있는 업계인들 모를 리가 있을까.

이미 이들 사이에선 마이 웨이, 런닝, 그리고 레일 아웃이라는 세 단어가 널리 퍼졌을 것이다.

그래서 기사가 나오자마자 며칠 뒤부터 우석의 스마트폰은 사실 지금까지 구입한 이례로 무수한 통화들을 소화해야 했다.

런닝의 판권 경쟁에 실패한 출판사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

그게 바로 레일 아웃이다.

이우석이이라는 남자가 레일 아웃의 판권을 가지고 있다!

그 소식이 업계에 널리 퍼지자마자 그를 향해 구애의 손길이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민아출판사와 같은 소규모 출판사로부터 제법 이름값이 널리 알려져 있는 중견 기업까지.

앞자리가 ‘070’이라는 숫자로 시작되는 번호를 제외하곤 모르는 전화번호가 걸려오면 웬만큼 다 받아봤다.

판권을 팔라는 건 기본 내용이었고, 거기에 더해서 얼마를 더 쳐주느냐 하는 그런 것들까지.

우석은 소위 말해서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선 기본적으로 판권을 구입하는 데에 들어간 돈 3백만 원과 민아출판사의 물류 창고에 있던 재고본 천만 원, 거기에 더해 개인이 파는 중고품까지 총 다 합해서 1,500만 원 정도 이상은 받으려고 생각 중이다.

물론 최소 7~8배 이상인 억 단위로.

그래서 일부러 판권 말고 재고품들까지 사들인 것이다.

판권 가격 하나만 놓고 보자면 30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재고품들까지 더미로 우석이 껴안은 덕분에 300만 원짜리가 졸지에 1,500만 원으로 건너뛴 것이다.

아마 민아출판사 총수인 이인정 대표를 통해서 출판업계 전반에 우석이 재고품까지 다 싹 쓸어갔다는 게 널리 퍼졌을 게 틀림없다.

대한민국 출판업계는 좁으니까.

재고품까지 다 쓸어갔단 의미는, 결국 판권을 사들이는 데에 재고품 가격까지 고려를 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우석은 이들이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제시하느냐, 그리고 이 판권 경매 경쟁이 얼마나 더 과열되느냐 지켜보고 있었다.

기한은 한 달.

그리고 그 한 달 뒤.

드디어 우석이 기다리고 있던 거물급이 등장한 것이다.

* * *

이른 오전부터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바쁜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하는 우석.

전신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깔끔하게 매는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신중해 보인다.

사람과 사람, 특히나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와의 만남은 첫인상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우석은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아침부터 본의 아니게 꽃단장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철수가 의자를 돌리며 말한다.

“어쭈구리. 누가 보면 애인 만나러 가는 줄 알겠네.”

“연인관계도 3~4년 차 이상 되면 이렇게 꾸미지도 않는다.”

“그래, 말을 정정하마. 1년 미만의 꽃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애인 만나러 가는 이우석 군.”

“그다지 좋은 표현은 아닌 거 같군.”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갈하게 가꾸기 시작하는 우석.

“만나러 가는 그 애인이 누구인지 이름이나 들어볼 수 있냐?”

철수가 아침부터 계속 들려줬던 질문을 반복한다.

통화를 마친 이후부터 우석은 자신이 오늘 만나러 갈 상대가 누구인지 입에 올리지 않고 있었다.

철수가 계속 물어봤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회피한다는 건 딱 봐도 ‘일부러’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석이 대답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물어본 것일 뿐이다.

그리고 대답은 철수가 예상했던 그대로다.

“나중에 일 처리하고 와서 확정이 되면 그때 알려주마.”

“하아…… 비밀이 많은 남자는 이성에게 인기 없다고.”

“대신 업계의 큰손들한테는 인기가 많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물론 알려줄 수는 있다.

하지만 우석이 사업이라는 분야에서 가장 크게 염두에 두는 건 바로 ‘기밀 보안’이다.

우석이 보아온 철수의 이미지는 비교적 ‘가볍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혹여나 자신이 아침에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과 미팅을 가지고 있을 때,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당시에 철수가 상대방에게 ‘우석이 XX랑 미팅 있어서 나갔어요’라고 말을 해버리면 큰일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일부러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

마지막으로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한껏 치장한 머리를 고정시키는 것까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그 뒤.

“슬슬 가보마.”

“그래, 잘 다녀오고.”

“오냐.”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우석.

그러기를 얼마 뒤.

“……!”

상반신을 벌떡 일으켜 세운 릴리아나가 주변을 둘러본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자마자 옅은 탄식을 내뱉는다.

“……제가 또 늦잠을 잤나 보군요…….”

그러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아마도 우석을 찾는 행동이리라고 보여진다.

“우석이 녀석이라면 이미 누구 좀 만나고 온다고 나갔어요.”

“그 누구가…… 누구인가요?”

릴리아나가 되묻자, 철수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인다.

“글쎄요. 어디 숨겨놓은 애인이라도 있나 보죠.”

* * *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어느 카페.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민철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3번 테이블이 어디 있나요?”

“3번이면…… 저쪽이에요.”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3번 테이블 쪽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우석.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한 젊은 남성이 그를 반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악수를 건넨다.

“이우석 씨인가요?”

“예, 맞습니다.”

“젊으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이대가 어리신 거 같군요.”

“도 부장님께서도 상당히 젊어 보이시는데요, 뭘.”

“하하하! 이래 봬도 40대 아저씨입니다.”

젊은 남성이라 생각할 만큼 동안 외모를 지니고 있는 남자, 도한수가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낸다.

“전화상으로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상대방에게 명함 내용이 잘 보이게끔 건네준 뒤.

도한수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미논 콘텐츠 관리팀에서 부장직을 맡고 있는 도한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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