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8화
4. 떠보기(5)
이른 아침.
“음…….”
실눈을 뜨며 창가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던 우석이 주변을 둘러본다.
매번 아침을 맞이하던 자신의 방과 이질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공간.
아니, 익숙한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이곳에서 밤을 지새워보는 건 처음이다.
임시방편으로 우석과 철수, 그리고 릴리아나가 사무실 대용으로 사용하는 오피스텔의 천장을 바라본다.
“…….”
근처에 놓여져 있는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현재 시각, 오전 7시 반.
“……늦었군.”
우석은 부지러움이 습관처럼 박혀 있는 사람이다.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때도 평일, 쉬는 날 가리지 않고 새벽 6시에는 항상 눈을 뜨곤 했다.
자신이 보다 많이 활동할수록 그만큼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아무리 늦어도 오전 7시에는 기상을 하는 버릇을 들이게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30분이나 늦잠을 자버렸다.
물론 아침 일찍부터 미팅이 잡혀 있거나 그러진 않다.
그냥 기분이 좀 찝찝할 뿐.
“후우.”
옅은 한숨을 내쉬며 상반신을 일으킨다.
창가를 통해 햇살이 내부를 강하게 비춘다.
보이는 거라고는 2,000부에 가까운 똑같은 책들과 그 위에서 자고 있는 릴리아나.
바닥에 쌓아놓은 책들을 마치 침대처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코믹스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좁은 공간에 2천 부에 달하는 책들을 한꺼번에 보관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릴리아나는 책들을 침대 삼아 평소에도 이렇게 잠을 청한다.
“…….”
아침 해가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천사처럼 새근새근 단잠에 빠져 있는 릴리아나.
눈부신 아침 해와 어울릴 만큼 아리따운 외모와 밝은 금발이 우석의 시야를 만족시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릴리아나 같은 수준급의 미인을 볼 수 있다니.
어떤 의미로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싶다.
릴리아나를 깨울까 말까 순간적으로 고민하던 우석이었으나, 전기세 아깝다고 선풍기도 안 틀고, 씻을 때도 누수를 모아 사용한다고 하니 그 처지가 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만 더 자게 놔둘까.”
가만히 방치하면 알아서 일어날 것이리라 생각한 우석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정리한다.
* * *
우석의 절친이자 지금은 그의 든든한 사업 파트너로 활약 중인 철수.
그는 매번 러시아워라 불리는 지옥의 출근 시간에 1호선 전철로 몸을 싣는다.
“잠깐만…… 잠깐만 좀 지나갈게요!!”
겨우겨우 인파를 헤치고 부천역에 하차한 철수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친다,
죽을 뻔했다.
그것이 철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덕립인쇄소에 다닐 때는 새벽이 출근 시간인지라 러시아워 이전에 회사로 출근을 마칠 수 있었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우석이 마련한 보증금으로 오피스텔 하나를 월세로 계약한 후에 그곳을 사무실로 삼아 출퇴근을 반복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대략 3달 정도 되었을 것이다.
사실 월급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우석은 자신을 도와 일을 하는 이상 월급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며 철수에게 월 150만 원씩 꾸준하게 주고 있다.
본인의 취업 기회를 잠시 접어두고 우석을 전면적으로 도와주고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우석도 그에 대한 보답은 충분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철수의 집안도 우석과 마찬가지로 그리 유복한 환경은 아니다.
우석처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 하는 철수이기 때문에 더더욱 월급을 챙겨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철수도 4대보험이라든지 그런 것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150만 원씩 꾸준히 월급을 준다는 게 어디인가.
‘그 녀석……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온 거야.’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품으며 사무실로 사용하는 오피스텔 앞에 마주 선 철수.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누르고 잠금장치를 푼 뒤 안으로 들어서자…….
“어……?!”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왔냐.”
앞치마를 두른 채 사무실 청소에 한창이던 우석이 철수를 반기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옷도 어제 입었던 옷과 동일하다.
“너…… 혹시 여기서 자고 갔냐?”
“어.”
일말의 고민 없이 대답하는 우석.
그러자 철수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오피스텔은 우석과 철수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무실 겸…….
……릴리아나의 숙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룻밤을 머물고 갔다는 의미는…….
“우석아.”
텁!
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려놓은 철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남자가 된 걸 축하한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들어오기나 해라. 오늘을 기점으로 엄청 바빠질 테니까.”
“알았다, 알았어. 짜식…… 부끄러워하기는. 그래, 우리 제수씨는 어디 계시냐.”
“그러니까 아가리 좀 닥치라고 했잖냐.”
우석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미 철수의 머릿속은 ‘릴리아나=제수씨’라는 공식이 새겨진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앞치마를 두른 우석을 마주한 것과 더한 광경이 펼쳐진다.
“…….”
아직도 단잠에 취한 채 누워 있는 릴리아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게 아닌가.
매번 사무실에 출근을 할 때마다 깔끔한 외형으로 철수와 우석을 반겨주던 릴리아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제수씨, 어디 아픈 거냐?”
“아직도 그 이상한 착각을 계속 이어가고 있군…… 아픈 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세상만사 모르게 자는 구간이 있더라.”
“무슨 동면기도 아니고…….”
우석도 최근에 안 사실이다.
처음 릴리아나의 이 수면 현상을 접했을 당시에는 그녀가 죽은 줄로 알았다.
그러나 멀쩡히 호흡 활동은 하고 있고, 그리고 해가 중천이 되고 나서야 그때쯤에 슬슬 알아서 일어난다.
이것들을 미루어 보아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체력의 부족을 잠으로 충당한 것으로 판명된다.
마땅히 병은 아닌 거 같고, 건강상의 문제도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겨왔던 일이다.
“릴리아나는 잠시 놔두고, 오늘 일정은…….”
철수에게 오늘 할 일에 대해 설명할 준비를 마치는 우석.
그 순간.
-띠리리리링!!
그의 스마트폰이 매섭게 울린다.
“잠깐만.”
말을 끊은 뒤 통화를 진행한다.
“여보세요? ……아, 네. 제가 이우석입니다만…… 하하! 반갑습니다! ……예, 그것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나눠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우석이 작게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후후…… 올 게 왔구만.”
“뭐가? 누구랑 통화했길래 그러냐.”
아무것도 모르는 철수가 나도 좀 알려달라는 식으로 묻는다.
하나 우석은 그저 알 듯 말 듯 한 수수께끼 같은 말을 들려줄 뿐이었다.
“거물급 녀석이 드디어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