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5화
4. 떠보기(2)
“억…… 이라구요?!”
“네. 그래야 이해타산(利害打算)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작해야 300만 원에 팔아치운 판권을 되찾는 데에 억 단위를 제시하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만!’
오민고 이사와 이인정 대표가 속으로 우석에게 강한 살기를 품지만, 자칫 그랬다가 어렵사리 마련한 이 협상 테이블이 망가질 우려가 있기에 억지로 참아낸다.
억이란 단위를 어떻게 지불하겠나.
그렇게 되면 회사 재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저기…… 우석 씨. 그건 다소 무리가 있는 제안이라고 봅니다만…….”
“그런가요? 전 오히려 현실성에 입각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저희 사정도 좀 봐주심이…….”
“알겠습니다. 그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억 어떻습니까.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
아무래도 우석은 억 단위 밑으로 시세를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까지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는 건 두 가지 이유로 해석된다.
첫 번째.
민아출판사와 거래를 하기 싫기 때문이다.
거래를 하는 데에 있어서 확실한 거절 수단은 상대방에게 현실 불가능한 제안을 내뱉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그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한다면, 우석의 입장에선 오히려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어느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든 간에 분명 우석에게 이득이 되는 쪽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실제로 레일 아웃이란 콘텐츠가 억 단위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석이 판권을 되파는 조건으로 억 단위를 제시한 건 첫 번째도 아니오, 두 번째 이유도 아니다.
바로 둘 다였다.
민아출판사에게 팔기도 싫을뿐더러, 레일 아웃은 분명 억 단위 이상의 매출이 나올 것이다.
“오 이사.”
“…….”
이인정 대표가 조심스럽게 민고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구태여 말로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이번 건수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짓는 쪽으로 하죠.”
오민고가 입맛을 다시며 결국 판권을 포기하겠다는 식으로 말을 꺼낸다.
고개를 끄덕인 우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좋은 콘텐츠를 팔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도록 하죠. 물론 오늘처럼 서로 얼굴 붉히면서 감정 상하는 일 말고 좋은 일로 만나 뵙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작별 인사를 들려주며 대표실을 나서는 우석과 그의 비서인 릴리아나.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 이인정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불과 얼마 전.
레일 아웃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콘텐츠였다.
그러나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등장해, 갑자기 레일 아웃의 판권을 빼앗은 것이다.
이것은 이우석이란 청년이 지니고 있는 미래의 안목과 동시에 민아출판사의 시장 조사 실패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 * *
“미친…… 억대를 제시했다고?!”
구석에 잔뜩 쌓여 있는 재고품들을 정리하던 철수가 기겁을 한다.
우석이 민아출판사와 다시 레일 아웃 판권의 소유를 두고 거래를 하러 가겠다는 건 직접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철수는 내심 우석이 판권의 가격을 2~3배 정도로 올려서 다시 되팔지 않을까 생각했다.
레일 아웃이란 콘텐츠가 돈을 왕창 벌어다 줄 대박 콘텐츠의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전히 ‘확률’에 불과하다.
모든 사업이 항상 성공하란 법은 없다.
때로는 성공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패로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게 바로 세상이라는 것이다.
레일 아웃도 자칫 잘못하다가 실패할 수 있다.
그래서 철수는 가급적이면 우석이 판권의 시세를 올려 다시 되파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으면 하고 바랬다.
하나 오히려 우석은 억 단위를 제시하며 민아출판사를 당황케 만들었다.
“그렇게 허세 부려도 되는 거냐? 그러다가 망하려면 어쩌려고.”
“망할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 그것보다 너 말이다.”
컴퓨터 의자 앞에 앉아 있는 철수에게 다가가 뭔가를 묻는다.
“혹시 아는 사람들 중에 ‘기자’ 직업을 가지고 있는 지인 없냐?”
“기자?”
“그래. 설마 기자가 뭐하는 직업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알고는 있는데…… 그보다 기자는 왜?”
“질문에 답변이나 먼저 해줘.”
“뭐…… 있을 거 같긴 한데.”
“누구지?”
“너도 잘 알잖냐. 서수준이라고…… 우리랑 같은 반에 있던 애. 정치외교학과 다니다가 최근에 학교 때려치우고 어디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하더라.”
“나쁘지 않군.”
팔짱을 낀 채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우석.
이윽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볍게 혀를 찬다.
“연락처 알고 있냐?”
“일단은.”
“그럼 나중에 좀 알려줘라.”
“어, 알았어.”
민아출판사에게 단단히 으름장을 늘어놓은 우석.
사실 이인정이 진짜 억대를 내놓겠다 하더라도 우석은 그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왜냐하면 우석은 레일 아웃 독점으로 단순히 ‘돈을 벌겠다’라는 1차적인 목적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석 또한 인정이 알고 있는 현재 문학 시장의 변화와 흐름에 대해 아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우석은 레일 아웃 판권을 통해 ‘인맥’ 라인을 형성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맥이란 사실 별거 없다.
미팅 한 번 가지기 위해 서로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인맥이 생성된다.
‘우선은…… 레일 아웃의 판권 경쟁에 불을 붙여볼까?’
이제부터 한창 더 바빠질지도 모른다.
* * *
사실 우석은…… 아니, 라울은 우석의 고등학교 시절 때 어떤 교우관계를 맺고 다녔는지 정확하게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사실 철수가 서수준을 언급했을 당시에도 그의 외형이 어떤지 곧장 떠올리기 힘들었다.
일단 초등학교를 시작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앨범까지 전부 싸그리 뒤져서 동급생들의 얼굴을 다 기억해 뒀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성형수술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 서수준의 얼굴은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그래서 철수를 별도로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기로 한 우석.
릴리아나가 호위 차원에서 자신도 같이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그녀의 동행도 물리쳤다.
둘이서 조용히 나눠야 할 은밀한 대화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수와 릴리아나를 놔두고 혼자서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수준을 기다린다.
그러기를 대략 10여 분 뒤.
“어서 오세요!”
종업원의 목소리와 함께 양복 차림을 갖춘 한 남자가 카페 안에 모습을 드러낸다.
말끔한 인상.
올빽으로 넘긴 독특한 머리 스타일.
그리고 피곤함을 나타내는 다크서클까지.
“여기다, 수준아.”
우석이 올빽 머리의 남자, 서수준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