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4화
4. 떠보기(1)
포털 사이트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사이트, 미논.
이 미논에서는 현재 장르문학 시장에도 손을 뻗치기 위해 각양각색의 콘텐츠를 한꺼번에 수용해 자신들의 사이트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 나가고 있다.
그 덕분에 유료연재, 전자책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던 기존의 플랫폼들은 그저 손가락만 빨면서 미논의 매서운 성장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출판사들과 더불어 매니지먼트사는 앞다투어 미논에 자신들의 콘텐츠를 어떻게든 넣어보고자 스스로 을(乙)의 입장을 자처하고 있었다.
절대 갑(甲이) 된 미논.
물론 민아출판사 역시 다수의 을 중 하나에 포함된다.
그러나 민아출판사의 대표, 이인정은 자신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문학 평론가, 김도문으로부터 소소한 힌트 하나를 제공받게 되었다.
레일 아웃과 런닝의 판권을 가지고 있으면, 훗날 유렵에서 대히트를 치고 있는 영화 ‘마이 웨이’의 후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마이 웨이를 직접 감상한 김도문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영화는 분명 대한민국에서 대박을 칠 거라고.
문학 평론가로 일하며 도문의 자문을 받아 지금까지 민아출판사라는 회사를 키워온 인정은 다시 한번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레일 아웃, 그리고 런닝.
이 두 가지 판권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절대 갑으로 군림한 미논 측에서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올 것이다.
미논뿐이겠는가.
다수의 전자책 판매 플랫폼들이 앞다투어 민아출판사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플랫폼에 그 두 시리즈를 전자책으로 판매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부탁해 올 것이다.
하나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
바로 얼마 전, 민아출판사는 이우석이란 자에게 레일 아웃의 판권을 넘겨버린 것이다.
그것도 300만 원이라는 아주 싼 가격으로.
“어디 보자…… 저번에 거래했던 가격이 분명 300만 원이었죠?”
“예…… 그랬지요.”
“흐음.”
우석이 한껏 여유를 부리며 묻는다.
그러자 오민고 이사가 죽을 맛이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대박을 칠지도 모르는 콘텐츠가 고작해야 300만 원이라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미래를 보지 못한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이인정 대표가 속으로 자신을 탓한다.
민고가 처음에 레일 아웃 판권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당시, 이인정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대한 싼 가격을 걸어서라도 빨리 팔아버리라고 말이다.
이미 한 번 망한 시리즈다. 기적이라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다시 문학 시장의 수면으로 올라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나 그 기적은 벌어지고 말았다.
오랜 시간 동안 문학 출판사 사장으로서 종사해오던 그의 안목이 이번에는 대실패를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와서 판권을 다시 되팔라 해도…… 난감합니다. 저희는 이 레일 아웃을 다시 재판하기 위해 일부러 기존의 재고품까지 다 사들였다고요. 알고 계시겠죠?”
“그, 그건…….”
“물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재고품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1,500부였습니다. 물론 오민고 이사님께서 넓은 아량을 발휘해 천만 원까지 할인을 해주셨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
“그것보다 왜 갑자기 저에게 다시 판권을 팔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석의 시선이 민고를 지나쳐 이인정 대표에게로 향한다.
우석은 물론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하나 짐짓 모른 척을 하며 이 대표에게 이유를 묻는다.
순간적으로 내적 갈등에 휩싸이는 이인정.
이걸 있는 그대로 말해줘야 하나?
아니, 만약 말해주게 될 경우, 오히려 우석은 더더욱 판권을 팔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책 아닌가.
비록 한 번 망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후속작인 런닝과 마이 웨이의 후광을 받지 못해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다수 글로 된 책을 잘 안 읽으려 한다.
그러나 희한하게 유행이란 이름의 군중심리 코드에는 상당히 민감하다.
예를 들자면 천만 관객을 찍은 영화라는 타이틀이 걸리게 된다 치자. 그렇게 되면 ‘나도 봐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주변인들이 전부 그 이야기를 하니까.
집단에 끼기 위해선 자신도 그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결국 대국민 영화라 불리면 자신도 강압적으로 보게 된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의 군중심리다.
혼자서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집단에 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직까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인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 순간.
우석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그럼 이 협상은 끝이군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인정을 대신해 민고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우석을 다급하게 말린다.
그러고 나서 목소리를 낮추고 인정에게 사실대로 실토할 것을 권유한다.
‘대표님! 레일 아웃 판권을 회수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 청년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 게 어떻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더더욱 팔지 않으려 할 터인데.’
‘그렇다면…… 이유는 밝히지 않더라도 적당히 2~3배 정도 판권 가격 올려서 되팔라고 하면 알아서 넘어올 겁니다. 보아하니 사회 경험도 별로 없어 보이는 새파란 놈 아닙니까?’
‘가격만 올린다고 다시 되팔려고 할까?’
‘저만 믿으세요. 제가 저 녀석을 구워삶아 보겠습니다!’
‘……오 이사만 믿겠네.’
그렇게 인정을 설득한 오민고 이사가 다시 한번 협상을 제안한다.
“업계 기밀일 수도 있어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선 알려드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업계 기밀이라…….”
“대신, 레일 아웃 판권을 600만 원으로 다시 되파는 건 어떻겠습니까? 물론 재고본도 다시 저희가 회수하고, 돈도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되면 우석 씨는 아무런 수고를 들이지 않고 300만 원의 이득을 챙겨가는 겁니다. 보아하니 따로 출판사를 차린 게 아니라 개인으로 이번 일을 주도한 거 같은데…… 300만 원 정도면 샐러리면 1~2달 월급을 공짜로 받는 셈 아닙니까.”
“따로 판매된 중고품을 사들이는 데에도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어떻게 보상해 주실 겁니까?”
“그,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천만 원 어떻습니까?”
천만 원이라는 단위에 순간 이인정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이들은 결국 700만 원을 손해 보는 꼴이 된다.
하지만 그거야 지금 당장의 일이지, 앞으로 미논과 레일 아웃 전자책 판매권을 놓고 협상을 벌일 때는 더 많은 가격을 부르면 된다.
어차피 대형 플랫폼 아니겠는가.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책이 될 텐데, 고작 700만 원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
이 정도면 응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가지며 우석을 바라보는 두 사람.
그러나…….
“절 너무 물로 보시는군요.”
우석이 정색을 하며 입을 연다.
“적어도 억 단위는 제시해 주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