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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12화 (12/201)

갑질의 신 12화

3. 갑질의 시작(3)

판권 인수인계 계약서와 더불어 남은 레일 아웃 재고본 1,500부를 전부 인수인계를 받게 된 우석.

“정말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오늘도 오피스텔에 놓인 데스크탑을 통해 레일 아웃 중고품을 찾아 헤매던 철수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의구심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한편.

스마트폰을 매만지고 있던 우석이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답변을 들려준다.

“내가 하라는 것만 하면 돼. 그럼 문제없다.”

“……돈은 얼마 남았냐?”

“어디 보자…… 오피스텔로 빠져나간 보증금, 그리고 저번 달과 이번 달 월세를 포함해 대략 370만 원을 포함해서 판권 사들이는데 3백만 원, 남은 재고본을 사들이는데 할인을 받아서 대략 천만 원, 나머지 중고품들을 구입하는 데 대충 백만 원이라고 친다면…… 1,770만 원 정도 나간 셈이군.”

“오천만 원에서 벌써 2천 가까운 돈이 나갔단 말이지…….”

만약 그 5천만 원을 이러한 일들을 하는 데에 소비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들에게 5천만 원이란 돈은 결코 적은 게 아니다.

만약 정상적으로 회사에 취직을 해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해왔다면, 거의 2~3년에 해당하는 연봉과 같은 금액이다.

그런데 이 금액을 가지고 우석은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전부 올인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철수는 사실 이 돈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별수 있겠는가.

이 사업 자금은 철수의 돈이 아닌, 우석의 돈이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래도 우석이 본인의 돈 가지고 마음대로 사용하겠다는데 태클 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중고품 구매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확인 차원에서 묻는 우석에게 철수가 곧이곧대로 결과를 이야기해 준다.

“이제 거의 없는 듯한데.”

어차피 판권은 우석이 직접 민아출판사에 가서 이전을 받았다.

설사 품절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이미 판권을 넘긴 터라 민아출판사 측에선 더 이상 레일 아웃을 출판할 순 없을 것이다.

결국 레일 아웃이 품절되었다는 건 다시 말해서 절판되었다는 말과도 같다는 뜻이다.

“계획대로 잘 흘러가는군.”

넌지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우석.

그의 귓가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나가보마.”

철수에게는 계속 업무를 보라는 식으로 말을 한 뒤 우석이 직접 현관문으로 향한다.

“누구세요.”

인터폰으로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묻자,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인터폰의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기 시작한다.

“접니다, 라울 님…… 이 아니라, 우석 님.”

아직까지 라울 님이라는 호칭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모양인 듯 말실수를 한다.

그러나 이내 다시 칭호를 수정한다.

본래 습관이라 함은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니다.

차차 나아지리라 생각하며 우석이 현관문을 열어준다.

“그래. 어떻게 되었지?”

“지금 지하 주차장에 트럭이 와 있습니다.”

“그렇군…… 철수야!”

컴퓨터를 매만지고 있던 철수가 고개를 현관문 쪽으로 돌리며 대답한다.

“또 왜.”

“일할 시간이다.”

“일? 지금 하고 있잖아.”

“사무일 말고 육체노동.”

“……??”

“따라오면 알 거다.”

우석이 한 말의 뜻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철수였으나…….

이내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육체노동이라 하더라도 크게 어려운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던 철수였지만.

머지않아 그의 생각이 안일했음을 깨닫게 된다.

* * *

“헥…… 헥……!”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슬슬 겨울 시즌이 다가오는 탓에 날씨도 제법 쌀쌀하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여름에 땀 흘리는 운동선수처럼 굵은 땀방울을 연신 뚝뚝 떨어뜨리는 철수가 결국 그대로 오피스텔 바닥에 엎어진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남자 녀석이 고작 이 정도로 힘들다고 투정부리나.”

“이 정도라고?! 미친!! 1,500부의 책을 지하에서 10층까지 옮기는 데에 얼마나 힘든지 알고서 하는 말이냐?”

“너 혼자 옮긴 것도 아니잖냐. 나도 그렇고, 릴리아나도 똑같이 일하는데 왜 너만 힘들다고 징징대냐.”

“…….”

우석은 그래도 나름 이해할 수 있다.

원래부터 뭐라고 할까. 몸 쓰는 일은 그래도 나름 체질이었던 녀석이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다르다.

한눈에 봐도 연약해 보이는 외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릴리아나는 여자라고 차별대우 받는 걸 원치 않다면서 두 남자와 동등한 무게의 종이 상자를 들고 나르기까지 했다.

심지어 옮긴 종이 상자의 개수로 따지면 오히려 릴리아나가 철수보다 많은 편이었다.

‘저 사람…… 진짜 여자 맞나?’

혹시 여장을 하고 있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하나 릴리아나는 생물학적으로 엄연히 여자다.

물론 다른 여자들에 비해 근력이 조금 있다는 것만 빼면 정상이다.

한편.

바닥에 누워 방전된 체력을 회복 중인 철수를 대변해 우석이 그녀에게 소소한 질문거리를 던진다.

“평소 운동 같은 걸 즐기기라도 하는 건가? 체력도 다른 여성들이 비해 제법 괜찮은 편인 거 같은데.”

“네. 라울 님…… 이 아니라 우석 님을 지켜드리고자 각종 무술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모시는 주인님을 지켜야 한다는 건 비서로서의 기본 소양이지요.”

“책임감 있는 마인드라고 생각하지만, 내 몸 정도는 충분히 간수할 수 있으니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설사 네가 각종 무술을 익혔다 하더라도 날 이길 순 없겠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석…… 아니, 라울 더 그레이너는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당시에 돈을 지배하는 남자로 잘 알려져 있는 최중요 인물이다.

그를 암살하기 위한 시도 또한 여러 번 있었다.

늘 목숨을 위협받으며 살아온 그였기에 검술이라든지 이런 기본적인 기술 같은 건 이미 전부 다 익혀뒀다.

릴리아나는 우석을 지키기 위해 정형화된 무술을 익혔지만, 우석은 생존을 위한 기술을 배웠다.

살기 위해서.

기껏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섰는데, 암살 같은 거에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래서 라울은 돈의 왕이라 불리면서 동시에 무술의 달인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소드 마스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레디너스 대륙에선 아마도 강함의 순위를 따지면 탑 10위 안에는 들었을 것이다.

“이제 슬슬 다시 일해볼까.”

우석의 작업 지시를 듣자마자 철수가 새된 비명을 내지른다.

“조금만 더 쉬면 안 되겠냐?!”

“어허. 근무 태만이다, 이 녀석아.”

우석과 릴리아나.

이런 두 사람에 비해 철수는 그저 허약한(?) 도시 남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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