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1화
3. 갑질의 시작(2)
우석에게서 대충 그의 계획이 어떠한지 듣게 된 철수가 고개를 끄덕여준다.
확실히 만약 레일 아웃을 독점하게 된다면…… 심지어 판권까지 따온다면, 분명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우석이 말한 그대로 흘러간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럼 난 여기서 그 레일 아웃이라는 서적 중고품이나 찾아보고 구입하면 된다 이거지?”
“그래. 거두절미하고 오늘부터 그 일에 착수를…….”
말을 이어가려던 도중에.
갑자기 우석의 말을 끊은 소리가 들려온다.
띵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우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현관문으로 향한다.
“누구세요.”
이제 막 이삿짐을 옮기고 있는 두 사람이다.
음식 배달을 시킨 적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곳에 볼일이 있어 온다는 건가.
“접니다, 라울 님.”
“…….”
우석에게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간지럽힌다.
잠금장치를 열어주자, 평상복 차림을 갖춰 입은 금발의 미인, 릴리아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연락받고 바로 왔습니다. 짐은 이쪽에 두면 되나요?”
“그래…… 그보다 짐이 어디 있는데?”
짐이라고 할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릴리아나의 손에 담긴 작은 종이봉투가 전부였다.
“이겁니다만.”
“……이게 짐이라고?”
“네.”
“…….”
순간 할 말을 잃은 우석이 멍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나 자세히 생각을 해보면,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게 현재 릴리아나의 상황 아니겠는가.
그녀가 지니고 있는 개인 짐이라고 해봤자 갈아입을 여벌의 옷 2벌 정도와 속옷 세트, 그리고 신발과 저번에 우석한테 보여줬던 2G 폴더 폰이 전부다.
정말 단촐하기 그지없는 짐들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라.”
“예.”
앞으로 자신이 거주할 곳이란 생각을 가지니 주변을 상세하게 둘러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도는 잘 나오는지.
그리고 가스도 정상적으로 나오는지 체크하기 위해 벨브를 열려고 하자, 우석이 도중에 그녀의 행동을 말린다.
“가스는 아직 안 들어왔다. 내일부터 들어올 거야.”
“그렇군요.”
“그리고 다른 곳은 확인 안 해도 된다. 어차피 내가 다 확인했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예,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우석이 아주 작은 목소리를 유지하며 릴리아나의 귓가에 속삭인다.
“라울 님이라는 호칭은 가급적이면 언급하지 마라. 이 세계 주민들은 내가 아직도 이우석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짧은 찰나의 순간에 릴리아나로부터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해주는 우석.
한편 릴리아나가 드디어 방에 모습을 드러내자, 철수가 순간 헛숨을 삼킨다.
한 번 본 적은 있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에 압도당할 것 같은 아우라가 풍겨온다.
철수가 우석에게 대충 들은 바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릴리아나가 우석의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점.
우연치 않게 알게 된 지인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어떤 계기가 있어야 이런 이국적인 미인과 연을 맺을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해선 알려준 바가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이제부터 릴리아나는 이 오피스텔에서 머물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 오피스텔을 계약한 것도 우석이고, 돈벌이 수단을 계획한 것도 우석이다.
그러나 릴리아나와 함께 일해야 하다니…….
‘……정말로 괜찮은 걸까.’
속으로 이런 의아함을 자아내는 철수였으나,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 오피스텔에서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고 해봤자 데스크탑이 전부니까 말이다.
“모두 다 모였군.”
우석이 철수와 릴리아나를 한 번씩 바라본다.
조촐하기 그지없다.
하나 우석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이들만으로도 충분하다.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때에도 우석은 오로지 자신의 뛰어난 머리와 돈에 대한 감각으로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성공도 그 맛을 본 자만이 안다고 했다.
다시 한번 성공의 맛을 보기 위해 슬슬 움직일 필요가 있다.
* * *
민아출판사는 여타 다른 출판사들에 비해 그리 규모가 큰 출판사는 아니다.
한때는 학습지로 돈 좀 만져본 출판사였지만, 여기저기 사기도 당하고 악재가 겹치는 바람에 지금은 회사 규모를 많이 축소한 편이다.
게다가 종이책 시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찍어내는 서적의 종수와 양도 필수불가결적으로 줄여가야 했다.
찍어내는 양의 급락.
그것은 곧 출판사의 수입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그러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제안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레일 아웃의 판권을…… 사고 싶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민아출판사에서 이사 직함을 달고 있는 중년의 남성, 오민고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재차 눈앞에 있는 우석에게 질문을 던진다.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정말로 그 망작을…… 어흠, 죄송합니다. 레일 아웃의 판권을 사고 싶다 말씀하신 겁니까?”
“네.”
“…….”
솔직히 말해서 오민고는 이우석이란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타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는 영업 사원도 아니고, 출판 쪽이랑 전혀 관련이 없는 남자가 왜 레일 아웃의 판권을 사겠다는 건가.
게다가 심지어 책이 잘나간 편도 아니다.
민아출판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석의 이 제안은 정말 두 손을 들고 환영할 만한 건수이긴 하다.
어차피 재판을 찍는 건 물 건너간 셈이니까.
한편, 오민고의 표정 변화를 계속해서 응시하던 우석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고 있었다.
내심 우석은 오민고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품고서 레일 아웃의 판권을 팔지 않는다고 말을 해오면 어쩌나 싶었다.
그러나 표정을 보아하니, 민아출판사 측에서는 아마 유럽 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이 밍그레 신드롬 현상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듯하다.
하기사. 출판업계란 원래 해외 시장보다 내수 시장 쪽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곳이다.
해외 시장의 정보를 그날그날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숙지하려는 태도를 고수하진 않는다.
그저 미디어에서 ‘이 책이 잘나간다더라’ 하는 기사가 조금씩 모습을 보이게 되면, 그때가 되어서야 슬슬 판권 경쟁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출판사가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민아출판사는 해외 쪽 소식에 귀를 열어놓고 있는 그런 개방적인 출판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마무리만 잘 지으면 되겠군.’
판권 이야기까지 꺼냈으니, 이제 우석이 꺼낼 수 있는 또 다른 히든카드를 제시할 차례다.
“판권뿐만이 아니라, 아직 창고에서 자리만 차지한 채 썩어가고 있는 레일 아웃의 초판 재고본도 저희가 구입을 할까 합니다만.”
“재, 재고본까지……!!”
“네, 그렇습니다.”
이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팔리지도 않는 책들을 가지고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 당장 계약합시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고 레일 아웃의 재고본과 판권을 따냈다.
손쉬운 결과 덕분에 우석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