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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10화 (10/201)

갑질의 신 10화

3. 갑질의 시작(1)

부천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어느 한 오피스텔 건물.

10층에 위치한 호실 하나를 둘러보던 우석이 내부 인테리어를 확인해 본다.

“어떻습니까? 참고로 이쪽은 현재 나와 있는 매물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특히나 젊은 층이 많이 선호하죠.”

“확실히 그럴 만도 하군요.”

“조건도 나쁘지 않습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 30만. 오피스텔에 10층 넘어가는 고층치고는 그래도 이만한 조건 찾아보기 힘듭니다. 집주인님이 만약 입주자가 원한다면 보증금 조금 올리고 월세 깎아주는 형태로 해도 상관없으시다고 했습니다. 가격도 고객님에 따라 조정할 수도 있고요.”

“……그렇군요. 알아두겠습니다.”

방 안을 둘러보던 우석이 공인중개사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해 준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때에도 중장년층보다 20대 청년층에 대다수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도보로 20분 내의 거리에 대학교가 있을뿐더러, 로데오 거리도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주로 오가고 하는 그런 가게도 많이 즐비해 있다.

큰길을 기점으로 우석이 현재 보고 있는 오피스텔이 위치한 구역은 대학로가, 그리고 반대쪽에는 회사들이 주로 몰려 있는 셈이다.

사실 근처에 뭐가 있든 간에 상관은 없다.

우석이 원하는 건 그저 한 가지뿐이었으니까.

“방이 넓군요.”

“그럼요! 오피스텔치고는 나름 넓은 편이지요. 게다가 풀옵션인 데다가…….”

“중개사님이 저한테 소개해 주실 만한 매물 중 가장 넓은 곳이 여기입니까?”

“……??”

순간 당황한 중개사가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모양인지 입을 다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여줌으로 인해 우석의 추측이 맞음을 실토한다.

“예. 그렇습니다.”

“좋군요. 그럼 여기로 계약하겠습니다.”

“다른 곳은 안 둘러봐도 됩니까?”

“네.”

“그, 그렇군요. 그럼 계약서는…….”

“집주인만 괜찮다면 바로 가서 도장 찍도록 하죠.”

중개사와 함께 다시 사무소를 찾은 우석.

한편, 사무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철수가 우석에게 다가와 묻는다.

“방은? 설마 벌써 정한 거야?”

“어.”

“미친…… 하나 보고 땡이냐?!”

“넓기만 하면 되니까.”

“…….”

우석이 방을 고르는 기준은 오로지 하나다.

넓으면 그만이다.

창고 겸 사무실 겸 릴리아나의 생활 공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 풀옵션이니 뭐니 이런 건 상관이 없다.

그리고 5천만 원 정도 있으니 보증금도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는다.

어차피 돈이야 곧 우석의 계획에 의해 금방 벌 수 있으니까.

* * *

입주 시기도 최대한 빠르게 잡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다음 날로 정했다.

“읏차!!”

우석과 함께 짐들을 옮기기 시작하는 철수.

사무실에 배치하는 물건이라고 해봤자 우석의 데스크탑, 의자, 그리고 사무용품으로 사용할 비품 정도가 고작이다.

이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데스크탑의 경우에는 우석과 철수가 둘이서 분담을 해 직접 인력으로 이곳 오피스텔까지 옮겨왔다.

“뭐…… 이 넓은 방에 고작해야 컴퓨터 달랑 하나 있으니 엄청 허전해 보이네.”

철수가 솔직한 감성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만을 놓고 봤을 때의 일일 뿐.

“앞으로는 책들 때문에 좁아터질 예정이니까 미리 이 방의 넓었을 때의 시절을 눈에 잘 새겨둬라.”

“그렇게나 많이 사둘 거야?”

“일단은.”

돈이 부족한 관계로 우선 로이 밍그레의 레일 아웃을 먼저 사재기할 생각이다.

우석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레일 아웃의 초판 부수는 2천 부였으며, 달랑 500부만 팔려나가고 1,500부는 현재 민아출판사의 물류 창고에 썩어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 너는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중고로 올라오는 레일 아웃을 전부 사들이면 된다. 돈은 내가 따로 인터넷 뱅킹 설정한 계좌 있으니까 그걸로 하면 되고.”

“뭐…… 그거야 어렵진 않지. 근데 넌 뭘 할 건데?”

“난 민아출판사와 유통 거래를 하는 총판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남아 있는 레일 아웃을 싹 사들일 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걸 해야지.”

“중요한 게 뭔데?”

“판권을 사들일 거다.”

“……뭐?”

철수는 사실 판권에 관해선 금시초문이었다.

우석을 단순히 중고품만을 모으는 게 아닌, 판권까지 따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일 아웃을 완전히 독점할 생각이구만.”

“물론.”

“그게 어떻게 돈이 된다는 거냐?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데.”

이제는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 질문을 던지는 철수였다.

잠시 짐 정리를 멈춘 우석이 냉장고에 미리 사둔 캔커피 하나를 철수에게 투척한다.

“엇!”

아슬아슬하게 캔커피를 받아든 철수에게 우석이 넌지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내가 개별적으로 조사를 해봤는데, 로이 밍그레란 작가는 레일 아웃을 쓰기 전에 런닝이라는 수필을 쓴 적이 있다고 하더군.”

“런닝이라…… 처음 듣는데?”

“우리나라에 정발되지 않은 책이니까.”

딸칵!

캔커피를 딴 뒤 목을 축이던 우석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외국에서 개봉한 영화 하나가 있더군. 내용은 한 남자가 자전거를 통해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이야기지.”

“제목이 뭔데?”

“마이 웨이.”

“마이 웨이라…….”

역시 철수가 들어본 적이 없는 영화다.

하나 우석은 철수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계속 말을 이어간다.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 전역에서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 영화다. 그 ‘마이 웨이’라는 영화는 사실 내가 앞서 말했던 ‘런닝’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두고 있는 영화지.”

“그거, 진짜냐.”

“계속 인기를 끌게 되면, 조만간 한국에도 개봉할 거다. 작품 내용도 좋은 편이니 아마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히트를 치겠지.”

“그럼 정발되지 않은 그 런닝이란 책의 판권을 따오는 게 더 좋지 않아?”

“이미 우리를 제외하고 몇몇 출판사들이 눈여겨보고 있을 거야. 쓸데없는 판권 경쟁이 붙으면 불리한 건 우리 쪽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미래의 수를 내다보는 거지.”

“그 미래의 수가…… 레일 아웃이라는 거야?”

“레일 아웃은 런닝의 후속작이거든. 참고로 이야기도 이어지지. 주인공도 같고.”

“오호…….”

“마이 웨이의 원작이기도 한 런닝의 후속작이라는 문구만 띠지에 붙여도 레일 아웃도 어느 정도 팔려나갈 거다. 이미 한 번 망한 책이지만, 다시 한번 디자인을 좀 더 고급스럽게 해서 책을 찍어내면, 분명 2천 부 이상은 팔려 나갈 게 틀림없어.”

이미 우석의 머릿속에는 두 수…… 아니, 다섯 수 이상의 계획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한 남자.

바로 덕립인쇄소의 대표, 고지식.

“최종적으로는 고 대표란 사람에게 진정한 갑질이 뭔지 보여주고자 한다.”

“어떻게?”

“넌 보고만 있으면 돼.”

라울 더 그레이너.

철수는 모를 테지만, 그는 한 번 당한 게 있으면 배로 갚아주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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