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7화
2. 재활용(2)
철수를 계속 거실에 방치하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일단 방 안으로 끌고 오다시피 데려온다.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어라. 괜히 여동생한테 눈초리 받기 싫으면 말이야.”
“천하의 우석이 여동생의 눈치도 다 보냐?”
“고등학교 3학년한테 괜한 스트레스 주지 말라는 뜻이다.”
“연주가 벌써 고3이야? 시간 참 빠르구만.”
우석의 부모님을 포함해 전(前) 이우석은 가급적이면 연주를 대학 진학까지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대학 등록금은 상당히 비싸다.
국립이 아닌 이상, 사립대학교 등록금은 한 학기별로 500~700만까지 하는 대학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연주도 사실 집안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우석처럼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곧장 취업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너 하나만이라도 잘되야 한다는 부모님의 강력한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금은 한창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다.
우석도 연주처럼 대학에 진학시키고 싶어 하셨지만, 우석은 본인이 스스로 포기를 한 모양으로 추측된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냐.”
의자에 걸터앉은 철수가 대뜸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져온다.
“뭘.”
“뭐냐니. 취업 말이다. 너, 집안도 가난한데 계속 이런 식으로 컴퓨터나 하면서 놀 거야? 그건 아니잖냐. 너희 부모님도 걱정하시더라.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일주일 동안 컴퓨터만 하고 있다고 말이야.”
“내가 노는 것으로 보였었군.”
동시에 철수가 왜 이곳으로 방문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석은 회사를 관둔 뒤 철수에게 별도로 연락을 취한 적은 없다.
애초에 연락을 주고받을 생각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석이 일주일 동안 컴퓨터를 만지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분명 우석의 부모님이 그의 단짝 친구인 철수에게 연락을 해 이야기 좀 나눠보라는 식으로 부탁을 했을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하나 이 세계를 사들인 남자, 라울이 그들의 장남이 되었다는 진실을 모르고 있다면 그런 걱정을 보이는 것도 정상이리라 생각된다.
“논 게 아니라 공부하고 있었다.”
“무슨 공부?”
“정보와 어학.”
“……?”
철수의 표정이 미묘하기 일그러진다.
우석은 사실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학창시절에도 제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겨우 중위권에 들까 말까 한 머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공부를 하겠다니.
“정신이 나갔구만. 송충이는 자고로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머리도 나쁜 우리가 이제 와서 뒤늦게 공부를 한다고 한들, 상황이 나아지겠냐? 그냥 하던 일이나 계속하는 게 좋지.”
철수도 우석과 마찬가지로 집안이 그다지 좋지 않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동생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다.
덕분에 철수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직장을 때려치우고 우석에게 온 것이다.
“일단 이력서나 넣어보자. 오면서 신문 가져왔으니까 구인공고 찾아보면…….”
“생각 없다.”
“야, 이우석. 너 미쳤냐? 돈 안 벌 거야?”
“물론 벌어야지.”
“취업 안 하고 무슨 수로 돈을 번다는 거야.”
“……거참 말 많은 놈이구만.”
옅은 한숨을 내쉬던 우석이 철수를 빤히 바라본다.
초등학교에 재학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친구 관계를 유지해 온 두 남자.
우석의 개인 기록에 의하면, 철수는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리파라고 한다.
‘어쩔 수 없지.’
우석의 계획에서 약간 벗어난 셈이지만, 혹시나 비서란 존재가 너무 늦게 찾아올 것을 대비해서라도 철수와 협업을 해두는 편이 좋을 거란 판단을 내리게 된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책들 보이나.”
“책?”
자리에서 일어선 철수가 대략 10권 정도 쌓여 있는 책들을 바라본다.
하나둘씩 들춰보던 중에 자신이 아는 책을 발견한 철수가 입을 열기 시작한다.
“이건…… 덕립인쇄소에서 발간했던 책이잖아.”
“맞아. 창고에서 몰래 하나 가져왔지.”
처음이자 마지막 출근에서 슬쩍 하나 챙겨왔다.
아르티몬이라는 외국 소설가가 집필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라는 소설이다.
2015년인 현재를 기준으로 정확하게 2년 전에 출간되었던 아르티몬의 첫 소설 단행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거…… 반응이 엄청 안 좋았던 소설이잖아. 창고에도 재고 엄청 많이 쌓여 있고. 고 대표가 악성 재고라면서 욕 엄청 하던데.”
“그래서 조만간 내가 다 사들일 예정이다.”
“그렇구나…… 뭐, 뭐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던 철수가 이윽고 화들짝 놀라며 새된 비명을 지른다.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따지듯 말한다.
“아니…… 너, 미쳤냐? 그걸 왜 사려고 그래.”
“돈 벌려고.”
“버는 게 아니라 날리는 꼴이겠지…… 그걸로 뭘 하려고?”
“선행 투자다.”
“이 녀석이…… 일주일 동안 컴퓨터만 하더니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보구만. 그게 무슨 투자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나랑 같이 이력서나 쓰러 가자.”
“김철수.”
목소리를 깔며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호명하는 우석.
순간적으로 모든 행동을 정지한 채 그를 바라보던 철수가 눈을 흘기며 우석을 노려본다.
“또 무슨 이상한 헛소리를 하려고 그러냐.”
“별다른 수고 없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고 있냐?”
“그거야……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냐.”
“간단하다. 특정 물건을 싸게 사들이고, 다른 곳에 가서 비싸게 팔면 된다.”
“얌마. 우린 무역 같은 거 할 돈도 없다고. 그걸 어떻게 해.”
“장황하게 할 필요는 없다. 가진 게 없으니까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이득을 보는 플레이를 하면 되니까.”
“그게…… 이 책이랑 관련 있는 거냐?”
철수가 다시 한번 아르티몬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라는 소설 단행본을 들어 보인다.
민아출판사에서 2013년에 발간되어 초판을 3천 부 찍은 외국 소설이지만, 철수가 말했듯이 그다지 반응은 좋지 않았다.
초판으로 찍은 3천 부도 다 나가지 않았으며, 심지어 1천 부 정도가 남아 창고에서 썩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한번 흥행에 실패한 서적이다.
하나 우석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그 책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었다.
“남은 재고 1천 부를 비롯해 중고란 중고는 전부 다 싹 쓸어서 구입할 거다. 목표는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그 책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수거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책뿐만이 아니라 민아출판사에 가서 판권까지 다시 사들일 생각이다. 그래야만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지.”
“계획이라니…… 도대체 그게 뭐냐.”
“넌 그냥 내가 하라는 것만 하면 된다. 같이해 볼 생각이 있다면 내 쪽으로 붙고, 싫다면 네 갈 길 가라. 어차피 나랑 손을 잡는다 해도 너한테 피해는 안 갈 테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
일주일 전부터 우석의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이우석이 아닌 듯하다.
하나 별수 있겠는가.
의리파로 소문난 철수인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면 된다.
게다가 실패해도 철수한테 피해가 안 가는 거라면 한 번쯤은 시도해봐도 괜찮을 듯하다.
“그래, 까짓것 뭔진 모르지만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해서 미약하지만 우석의 작은 조력자가 합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