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5화 (5/201)

갑질의 신 5화

1. 세계를 사버린 남자(4)

“일찍 나왔으면 후딱 기계 돌려라!!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예, 예. 알겠습니다.”

못마땅한 얼굴을 애써 감추며 고 대표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철수.

마음 같아선 이딴 직장, 지금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지만, 못 받은 임금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

혀를 차면서 우석을 데리고 강제로 자신들이 할당받은 장소로 향하기 시작한다.

“가자. 더 잔소리 듣기 전에 일이나 해야지.”

하나.

우석은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이런 말을 들려준다.

“왜 일해야 하지?”

“……뭐?”

“돈도 안 주는데. 아니…… 지금까지 일한 수당조차 주지 않는데 왜 저자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거지? 납득이 안 간다만.”

“아까 말해줬잖냐. 여기서 일 안 하고 밀린 임금 달라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고. 그렇다고 신고하면 도리어 부당해고 당할 게 뻔하고…….”

철수의 말을 듣고 있던 라울이 진심을 담아 한마디를 내뱉는다.

“한심하군.”

그러더니 이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마치…….

여기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돈도 못 받고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데, 계속 이 생활을 고집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구만. 내가 조사한 바로는, 이 세계는 계급 사회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왜 스스로 노예가 됨을 자처하는 거지?”

“야, 너 미쳤어? 왜 그래, 갑자기?”

“넌 가만히 있어라.”

우석이 손을 뻗어 철수에게 얌전히 있으라는 식으로 제스처를 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더더욱 언성을 높인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데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며 일할 생각을 하다간, 평생 노예 취급을 받으며 살 것이다. 돈을 벌려면 돈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먼저 파악해라. 정말로 돈을 벌고 싶다면, 우선 이 공장부터 때려치우기를 권하마.”

라울이 보기엔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포함해 고지식 대표까지 전부 돈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자들뿐이었다.

여기는 전혀 발전이 없는 곳이다.

처음 이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라울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라울의 외침 소리가 들린 모양인지 고지식 대표가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이게 정신이 나갔나! 어디다 대고 큰 소리냐!! 짤리고 싶어?!”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다만, 날 해고시키기 전에 여기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미지급된 임금은 전부 다 지불하시지.”

“이 미친 새끼를 봤나……!”

지금 당장에라도 우석에게 쓴소리를 날리려는 고 대표였으나.

이를 잘근 깨물던 고 대표가 머릿속을 정리한다.

‘아니지…… 침착하자. 다른 놈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고압적으로 녀석을 다스렸다가, 나중에 또 다른 불만이 제기될 수 있어.’

여기서 우석과 논쟁을 펼쳐도 득이 되는 건 없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철수를 비롯해 생각 없이 마냥 일만 하던 둔탱이 같은 놈이 어떻게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추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성가신 건 변함이 없다.

괜히 우석이 다른 이들에게 파업의 여지를 만들게 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어허, 우석아. 잘 생각해 봐라. 우리 회사가 요즘 좀 많이 어렵잖냐. 이럴 때일수록 가족같이 지내면서 함께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해야 하지 않겠냐.”

“…….”

“조금만 더 힘내면 된다. 우리는 가족 아니냐.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하는 사이인데, 매정하게 이러면 쓰나. 좀 더 회사가 살아나면, 그때 제대로 보상을 해줄 터이니 너무 그러지 마라.”

“보상?”

우석이 되묻는 말에 고 대표의 눈빛이 가늘어진다.

“그래. 지금까지 못 돌려준 임금의 배를 주마.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고 같이 열심히 일해보자꾸나. 그리고 내가 방금 들은 말은 특별히 잊어주마.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욱할 수도 있지. 암, 그렇고말고.”

고 대표가 우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가볍게 토닥여준다.

좀 더 나은 보상을 준다.

지금까지 지불하지 않은 임금의 배로.

그러니까 지금은 좀 더 힘내보자.

이런 식의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우석을 설득해본다.

우석과 철수는 이곳이 첫 직장이다.

최종학력이 고졸에 아무런 자격증과 특별한 기술도 없는 이 두 사람을 받아준 곳도 바로 이 덕립인쇄소다.

마땅한 경력도 없는 그들이 이직할 곳이라고는 역시나 마찬가지로 덕립인쇄소 같은 소규모 중소기업밖에 없다.

‘이런 녀석들은 살살 꼬시기만 해도 금방 넘어오는 법이지…… 크크큭.’

이런 식으로 우석과 철수를 공짜로 3개월 동안 부려먹었다.

어차피 녀석들은 사회경험도 없는 놈들에 불과하다.

잘 구슬린다면 공짜 인력으로 한동안 써먹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하더라도 상황이 더욱 나아지리란 보장은 없다.

다른 이들도 그 점을 잘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게 가족이잖냐. 우석아, 너하고 내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냐. 나중에 제대로 임금 다 돌려줄 테니까 힘들더라도 미래를 보고 일하자꾸나. 응?”

“…….”

“자자, 방금 우석이가 했던 말은 다 잊고 다시 힘내서 일해봅시다! 우리는 가족 아닙니까!”

기고만장해진 고 대표가 가볍게 박수를 치며 이들의 호응을 유도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이가 없군.”

“……?!”

고 대표의 표정이 순간 굳어진다.

그러나 우석은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간다.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선 생계를 먼저 보장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에겐 여기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 아니라 그저 구슬리기 좋은 노예들에 불과하겠지. 임금 주는 걸 미뤄도 쉽사리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안성맞춤형 노예들 아닌가.”

“우, 우석아……!”

“다시 한번 경고한다. 여기 있는 자들에게 그동안 밀렸던 임금을 모두 지불해라. 그렇지 않다면 내 직접 노동청에 가서 당신이 저지른 모든 부당행위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만천하에 알리도록 하지. 아니면 국세청에 연락해서 세무조사도 겸하게 해줄까?”

“너, 너 이 녀석……!!”

“판단은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된다. 그리고 한 가지 충고해주지.”

우석의 눈에 강한 이채가 어리기 시작한다.

“어설픈 말로 사람들을 회유해 노동력에 들어가는 돈이라도 아껴보려고 하는 거 같은데…… 잘 기억해둬라. 돈을 벌기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건 생산기기 설비도 아니고 각종 자제들도, 그리고 회사의 터전이 될 건물과 토지 같은 부동산도 아니다. 바로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해줄 부하 직원의 마음부터 사야 한다. 하지만 당신은 가장 먼저 사야 할 사람의 마음을 사두지 않았군.”

들고 있던 작업복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지는 우석.

이윽고 분에 사무쳐 부들부들 몸을 떠는 고지식에게 이별을 고하듯 마지막으로 할 말을 들려준다.

“당신은 돈 버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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