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화
프롤로그
라울 더 그레이너.
사람들은 그를 향해 이런 별칭을 붙여줬다.
돈의 왕.
레디너스 대륙의 모든 돈이란 돈은 전부 다 그의 손 아래에 움직인다고 한다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갑부이며…….
최고의 부자다.
신의 자리조차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알려진 남자가 바로 그다.
하나 제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사람의 생명은 결국 한계가 있는 법이다.
돈의 왕이라 불리던 그 역시 세월 앞에선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는 한 노인.
라울 더 그레이너의 눈이 천천히 감긴다.
바람 앞의 촛불마냥, 그의 생명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단 한 번만이라도 그는 격렬하게 저항하고 싶었다.
그가 가진 거라곤 오로지 ‘돈’뿐이다.
만약…….
돈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거래를 해야 한다.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 새로운 인생을 사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
돈으로!
그가 가진 전부를 투자해서라도!
라울의 눈꺼풀이 점점 닫히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았을까.
“……라울 더 그레이너…… 돈의 왕이라 불리던 자도 세월 앞에선 덧없군.”
“…….”
반투명한 인영(人影)이 라울을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린다.
“협상을 원하는가? 돈의 왕이여.”
“…….”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다 죽어가는 마당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좋다.”
반투명한 존재가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라울의 눈이 감긴다.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 남자, 라울 더 그레이너.
하나…….
끝날 줄 알았던 그의 인생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 * *
“……!”
갑자기 눈을 뜬 한 남자가 천장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이윽고…….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게 아닌가.
난데없는 남자의 행동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그를 조사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던 경찰관이었다.
“이봐요. 갑자기 왜 그래요?”
“여긴…….”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마치 이 장소가 어디인지 묻는 듯한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어디긴요. 경찰서잖아요.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방금 전의 일도 기억 못 하는 겁니까?”
“술? 경찰서?”
“어휴…… 민태야! 이분, 많이 취하신 거 같으니까 잠깐 좀 쉬게 해드려라. 신원조사는 그 뒤에 하자꾸나.”
“예, 알겠습니다.”
제복을 갖춰 입은 젊은 남성이 천천히 다가와 그를 인도한다.
“일단 의자에 좀 앉고 쉬세요.”
“…….”
졸지에 술주정뱅이로 낙인찍힌 남자, 라울 더 그레이너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처음 보는 공간이다.
아니, 레디너스 대륙에 이런 인테리어를 갖춘 구조물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머릿속은 아직도 혼돈 그 자체였으나.
이상징후가 생긴 건 바로 그 뒤였다.
“뭣……?!”
방금까지 자신에게 다가온 젊은 경찰관의 행동이 그대로 정지한다.
그뿐이랴.
키보드를 두들기던 경찰관도, 그리고 시곗바늘의 움직임도.
전부 다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이건…….”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던 라울.
그러나 동시에,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누구냐.”
본능적으로 인기척을 느낀 라울이 뒤를 돌아보자, 그 자리에 있던 존재가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건넨다.
“어허,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자네에게 좋은 물건을 건네준 나한테 이러기인가?”
“좋은…… 물건이라고?”
목소리를 듣자 하니, 분명 라울이 숨을 거두기 전에 나타났던 그 반투명한 존재가 틀림없다.
여전히 반투명 상태의 모습을 취하고 있기에 표정도, 그리고 성별의 유무도 알 수가 없다.
인간인지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그래, 그래.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자네를 위해서 내가 친히 직접 거래를 주도했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인가 보군.”
“넌 누구지?”
본능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라울을 향해 반투명의 존재가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연다.
“자네에게…… 이 세계를 팔아넘긴 존재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