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96화 (196/197)

콰아아아아아앙!

허공에 검은 균열이 생겨날 때마다 대지가 진동한다.

단테는 벤데타의 장갑을 넘어 자신에게까지 밀려오는 충격에 전율했고, 동시에 내력을 긁어 터트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묵환강(天魔黙丸鋼)

원을 그리는 묵 빛 기운이 패도적인 내력을 뿜어내며 그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놈에게 닿지 못했다.

“하찮다. 하찮고도 지루하다.”

니힐은 자신에게 닿지조차 못하는 단테를 향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곧 흥미가 식었다는 듯이 미간을 좁힌 채 손을 뻗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커헉!〕

〔단테!〕

대지에 틀어박힌 단테의 입에서 묽은 핏물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단테뿐만이 아닌 모든 이들의 처참한 광경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네, 네임드가 너무 많-! 크아아악!〕

수십 마리의 최상급 마수 토벌전에 참여했었던 에이스 파일럿이 핏물을 흘리며 쓰러졌다.

〔커어억!〕

미쳐 날뛰던 움타르의 기체 캄푸트가 네임드들의 합공에 쓰러졌다.

그건 세실이나 리베라, 로한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끄아아아악!”

“살려, 살려……!”

“크, 크크크!”

보병들은 밀려오는 마수들에 의해 절반이 갈려 나간 상황이었고, 비행함들과 유게네스 태반은 검게 그을린 고철 덩어리에 살점을 태운 쓰레기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 뿐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폭력.

그리고 그 구렁텅이 속에서 단테 역시 나뒹굴고 있었다.

‘예상은 했다만.’

단테는 내상이 터져 흐르는 핏물을 입가로 쿨럭거리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한 웃음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저걸 어떻게 잡는다는 말인가.

흔히 말하는 생사경(生死境) 정도는 되어야 놈을 죽일 수 있지는 않을까?

시야가 아득해진다.

동시에 단테는 그저 쓴웃음을 흘리며 일말의 흥미조차 잃은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니힐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끝인가.’

그러나 그 순간.

-크르르.

단테의 귓가로 낮게 깔리는 벤데타의 울음소리가 그의 정신을 깨웠다.

곧 전투 때마다 그에게 읊조렸던 벤데타의 속삭임이 다시금 들려왔다.

찢는다.

죽인다.

배제한다.

단순히 적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한 적의가 단테의 척추를 따라 흘렀고, 단테는 날것의 적의를 온전히 느끼며 무심결 실소를 흘렸다.

“……무식하기는.”

이미 벤데타가 예사 기체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무식할 줄은 몰랐다.

끼기기긱-!

단테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벤데타와 단테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지를 박차고 놈을 향해 쇄도했다.

쿠우우우우우웅!

-크롸롸롸롸롸롸!

벤데타의 붉게 물든 안광이 길게 선을 그리며 니힐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다.

그 순간 니힐은 단테가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깨닫고 미소를 흘렸다.

“오호.”

기세가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벤데타의 메인 코어인 검은 심장 역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으니 말이다.

“꽤 흥미롭지만, 결국 딱 그 정도인가.”

하지만 그조차도 니힐의 기준에 닿기엔 한없이 모자란 것이었기에, 그는 혀를 쯧- 하며 차고는 단테를 끝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일렁거리는 공허의 음기가 단테와 벤데타를 노리며 작은 원을 그렸다.

그러나 그때.

“음?”

벤데타가 막 니힐의 육신에 날카로운 손톱을 뻗으려던 그 순간, 가슴팍의 콕피트가 열리며 벤데타의 눈에 맴돌던 붉은 기운이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단테는 모든 내력을 긁어모아 놈을 향해 흩뿌리며 나지막이 읊조리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참(天魔修羅斬)

뻗어진 내력이 뭉쳐지며 그의 손아귀에 묵빛의 검을 만들어냈다.

“그래, 이건 꽤 신선했다, 미물.”

그것을 응시한 니힐은 실소를 흘리며 손을 뻗었으나.

백월신공(白月神功)

묵월참(墨月斬)

바로 그때.

단테의 읊조림에 비어 있던 왼손에 환한 빛 무리가 일렁거리며 또 다른 검을 만들어 낸다.

“……응?”

양손에 쥔 압도적인 무력.

그것을 본 니힐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걸 맞으면, 그 자신도 멀쩡할 수는 없으리라고 말이다.

때문에, 처음으로 얼굴을 굳힌 니힐은 이를 악물며 일갈을 터트렸다.

“감히, 하찮은 미물 주제에……!”

우우웅!

공허의 색과 닮은 칠흑의 장막이 놈을 감쌌지만, 그 순간 단테는 이미 양손에 쥔 검을 맞닿으며 나지막이 속삭이니.

“그래, 그 하찮은 미물과 함께 죽는 거다.”

“……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단테는 이제까지와 달리 환한 미소를 흘렸다.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악착같이 축기해 왔고, 소림의 대환단을 먹으며 증폭시켜 놓은 내력을 쏟아부으면 놈을 죽일 수 있으리라는 확신 말이다.

‘물론, 무사하진 못하겠지.’

모든 내력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그의 목숨 역시 도외시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구나, 버러지.”

목숨 따위는 애초에 포기한 지 오래가 아니던가.

단테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쥔 상반된 참격을 겹쳤다.

그 순간 자신을 덮치는 폭발에 니힐은 그야말로 절망에 가득한 목소리로 절규했으니.

“안, 안 돼애애애애애애애!”

겉으로나마 신격을 참칭할 만큼의 무력을 얻은 만큼, 그는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미래가 가리키는 것은 오직 어둠.

끝도 없는, 어둠뿐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환한 묵빛의 섬광이 전장을 뒤덮는다.

화아아아악!

죽어가던 군인도.

포효를 내뱉던 마수도.

절망에 빠져 담배를 태우던 병사도.

마지막 발악을 이어 가던 원로들까지도.

“……단테.”

“아, 아아……!”

모두가 직감했다.

저 폭발에서 니힐 역시 온전하진 못하겠지만, 단테 역시 멀쩡할 수는 없으리라고 말이다.

털썩.

남궁연희는 무릎을 꿇었다.

“…….”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전 생에서 홀로 거귀를 향해 내달렸던 모습과 겹쳐지며,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아아아…….”

또다시 잃는 것인가.

또다시, 또다시…….

〔단, 단테.〕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녹색의 창을 쥐고 마수들에게 대항하던 세실도.

〔……거짓말.〕

미친 가면을 벗어던진 채, 멍하니 폭발을 응시하고 있는 리베라도.

“하, 씨발.”

과열된 총신이 일그러져 기체를 역소환 한 채 담배를 태우고 있던 로한도.

그를 알고 있던 모두가 그저 멍하니 단테가 일으킨 폭발의 바람 속에서, 눈이 멀어가는 섬광과 폭음 속에서 멍하니 그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아?”

그들의 시야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비추었다.

빛 무리에서 추락하는 그것은 흡사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그것이 단테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단테에!”

그 직후, 전장에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이들은 그가 추락한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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