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95화 (195/197)

“부족했나. 무엇이.”

단테는 실소를 흘리곤 하늘에서 어린아이처럼 날뛰는 니힐을 응시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단테는 강해졌다.

미숙한 천마로서 죽었고, 완성된 군인이자 나이트 프레임의 파일럿으로서 이 자리에 섰다.

다만 대군주 역시 더욱 강해졌을 뿐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자신의 경지가 이전보다 더욱 올라섰기에 더욱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면, 지켜야 할 것이 있었으며 패도라는 길을 거닐던 때였다면 그저 투지로, 죽을 것을 알고도 놈에게 달려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단테는 그럴 수 없었다.

……너무도 멀다.

너무도 아득해서 닿을 수조차 없다.

“신격이라…….”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저럴까.

그때였다.

“놈이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째서…….”

콰아앙!

남궁연희는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냉철한 모습 따위 벗어던진 채, 공허함으로 가득 찬 눈으로 대지를 찍어 눌렀다.

그녀를 감싼 건 의문이었고, 분노였으며, 무력감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처음부터 끝까지 놈에게 놀아난 것이었다.

그녀는 대군주가 부정했다고 한들, 진실은 놈이 끝까지 자신들을 기만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망령에 불과한 그들이 이 세상에서 다시금 눈을 뜰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순간.

“……대군주는 여러분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미카엘의 말에 울분을 터트리던 남궁연희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고, 단테 역시를 그를 바라보았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원로들 역시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무력감에 차 있었다.

그런 그들 역시 미카엘을 바라보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대군주 니힐.

아니, 스스로 ‘공허의 신’이라 자칭한 니힐에 비해선 아니지만 엄연한 강자들인 그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쏠리자 당연히 미카엘은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는 이미 내뱉은 말을 거두기는커녕 그저 말을 이어 나갔다.

“여러분들을 부른 것은 바로 솔라이십니다.”

“뭐?”

그리고 이윽고 내뱉어진 미카엘의 말에 그들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이티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움타르는 분노로 가득 찬 시선으로 니힐을 바라볼 뿐이었고, 남궁연희는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다만 사마제천만이 그에게 물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에게 되묻는 사마제천조차도 믿음보단 그저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시선인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지만, 그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큭, 크큭…….”

당연히 그의 말은 비웃음을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리베라는 대놓고 실소를 터트렸고, 로한은 답답하다는 듯이 담배를 물었으며, 사마제천은 구태여 답하지 않고 제 나름대로의 답을 구하기 위해 니힐을 응시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그래, 그랬지.”

하늘에 떠 있던, 조금 전 비행함 절반이 폭발에 휩쓸린 모습을 예술 작품이라도 감상하듯이 지켜보고 있던 니힐이 미카엘의 말에 화답했다.

모두의 시선은 자연히 미카엘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미카엘은 말했다.

“블랙 가드의 원로와 단테 님께서 모두 저 공허의 신을 참칭하는 악신에게 삼켜진 세상 출신이라면, 어떻게 놈의 공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제야 그들은 조금이나마 진지하게 미카엘의 말을 경청할 수 있게 되었다.

“솔라가 우리를 불렀다고?”

남궁연희는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께서 행한 안배가 여러분입니다. 지난 50년의 세월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고 그 순간.

미카엘의 눈과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조금 전까지 미성을 자랑하던 그의 입가에서 전혀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악(惡)을 징벌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미카엘은 그 한마디를 내뱉은 직후, 곧바로 털썩, 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바, 방금 그건……?”

“시, 신탁! 신탁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조금 전 내뱉어진 것은 다름이 아니라 솔라의 신탁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악을 징벌할 것은 결국 인간이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있던 단테는 미카엘의 몸을 빌려 내뱉은 솔라의 말에 무심결 실소를 흘렸다.

악을 징벌할 것은 결국 인간이라.

그것보다 무책임한 말이 있을까?

“……다만.”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정말 신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을 내려다보는 니힐을 응시하며 조소를 흘렸다.

“내려다보는 꼴이 같잖구나.”

“크, 크하하하하핫!”

단테의 읊조림에 놈은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고, 폭소를 터트리며 눈을 번뜩였다.

“그렇게 같잖으면, 어디 한번 떨어트려 봐라, 미물.”

명백한 도발.

그것을 들은 단테는 고개를 끄덕인 채 화답하니.

“안 그래도…….”

그 순간, 단테의 목에 걸린 벤데타의 마스터키가 마나를 머금고 번뜩이니.

〔그럴 생각이었다, 버러지.〕

단테는 벤데타의 위에 올라,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대지를 딛고 하늘로 도약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직후.

“그래, 그러면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 볼까.”

니힐은 그렇게 읊조리며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벤데타를 응시하는 동시에 손가락을 튀기니.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끼이이이이이이이!

이제까지 경외를 머금고 있던 마수들이 고개를 치켜세우며 군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남궁연희 역시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미간을 좁힌 채 중얼거리니.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적어도, 놈의 육신에 생채기 정도는 내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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