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94화 (194/197)

“쿨럭!”

“……하윽!”

환각 속에서 빠져나온 단테와 남궁연희는 밀려오는 탈력감과 더불어 진실의 편린을 본 대가로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이미 대군주, 아니 니힐이 앉아 있는 권좌와의 거리는 원래대로 돌아온 후였으나 단테도 남궁연희도 그저 몸을 떨 뿐,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압도적인 위용 앞에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은 기꺼이 미물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려 했던 니힐에겐 꽤나 만족스러운 추태였다.

“자아가 더 성숙해지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그때 처음으로 먹었던 그년이 솔라의 딸이더군. 덕분에 힘이 미약했던 때에 죽을 뻔한 적이 몇 번이었는지.”

겉으로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으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는지 입술을 잘근 깨문다.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공허 속에서 이변을 느끼고 날아온 여신은 솔라의 딸 중 하나였다.

이후 그녀가 소멸했다는 걸 깨달은 솔라는 공허 속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던 니힐을 죽이려 했고, 거의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는 공허의 첫 번째 자식이 가진 끈질긴 생명력을 미처 알지 못했고, 그 결과 니힐은 그녀의 감시가 닿지 않는 외곽의 세계부터 끊임없이 포식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 세계는 꽤나 만족스러운 양식이었다. 신격을 다루는 데에 서툰 신과 더불어 풍부한 영압은 가히 별미였지. 덕분에 급하게 먹느라 체할 뻔했지만. 큭큭.”

니힐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겉으론 소년이 장난스럽게 낄낄거리는 모습에 불과했으나, 단테와 남궁연희에겐 그저 역겹고 추악한 괴물처럼 보였음은 당연한 일이리라.

“……그래서, 솔라가 있는 이 세계를 놔뒀다는 건가? 미식이라도 하듯이?”

그때, 단테와 달리 이 세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던 남궁연희가 분함과 한이 담긴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녀의 말을 들은 니힐은 역시 알아먹을 줄 알았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화답했다.

“크하하하핫! 바로 그거야!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런 이유도 있었지!”

“……허.”

당연히 남궁연희는 이제까지 쓰고 있던 마지막 가면마저 부서지는 것을 느끼며 과거 냉혈한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결국, 내가 했던 건 의미가 없었던 일이었나.”

허탈감과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놈에게 놀아났다는 분노가 그녀의 남색 눈동자를 가득 메웠다.

그때, 단테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럼 우리를 다시 살려서 이 세계로 처박은 것도 네놈이겠군.”

의문이 아닌 확신이 담긴 읊조림이다.

놈의 말대로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까울 테니까 말이다.

“아, 그거?”

그러나 니힐은 단테의 말에 칠흑과도 같은 머리를 긁적거렸고, 곧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쉽게도 그건 내가 아닌데.”

“뭐?”

“뭐라고?”

단테와 남궁연희.

두 사람은 동시에 미간을 좁히며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놈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니힐은 의문으로 가득 찬 둘의 시선에도 어떤 답도 내놓지 않은 채 그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그저 권좌에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분명히 찰나에 불과하거늘, 억겁의 세월과도 같았던 시간이 지난 직후.

쿠우우웅-!

-빨리빨리 움직-!

“……이 소리는?”

단테와 남궁연희는 점차 가까워지는 귀에 익은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끼이익-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들이 권좌가 있는 내성 안으로 박차고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저, 저건……?”

거칠게 밀고 들어온 그들은 첫 번째로 단테와 남궁연희가 무릎을 꿇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으며, 그들이 적대하고 있는 주체가 다름이 아닌 어린 소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소년이 바로 이 참극을 빗어 낸 대군주라는 걸 깨닫고 전율했다.

물론, 단테와 남궁연희 역시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어떻게……?”

지금 상황에서 지원군은 물론 나쁘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녀와 단테는 눈앞의 희망에 눈이 멀어 전체적인 상황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우둔하지 않았다.

‘너무 빨라.’

분명 밖에서 날뛰던 마수들의 수는 이토록 짧은 시간에 뭘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지도, 사기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물론 둘을 걱정한 특공대가 결사의 자세로 뚫고 들어왔으리라는 가능성 또한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의 군세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견주어 봐도 크게 차이가 없었다.

때문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선두로 나선 미카엘이 풀어 주었다.

“……마수들이 물러났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싸우고 싶어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길을 내주더군요. 한쪽 팔이 잘린 네임드가 길을 안내하겠다며 인사까지 했습니다.”

“길을 열어 주었다고?”

그 말을 들은 단테는 고개를 돌려 대군주, 니힐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니힐은 씨익 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자, 그럼 모든 건 다 준비가 되었으니…….”

타악, 하며 손을 튀겼다.

쿠구구구구궁!

그와 동시에 온갖 거짓된 문명의 흔적들이 뒤섞여 있던 기만의 성은 무너져 내렸고, 동시에 권좌에 앉아 있던 소년은 몸을 일으켜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니.

“비로소 오늘, 나는 신격을 얻는다.”

니힐은 그렇게 읊조리며 둥지 안을 날아 진입한 수백 대의 비행함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이 눈을 한번, 단 한 번 깜빡인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비행함의 절반이 반으로 갈라지며 폭발했다.

“미, 미친……!”

그 광경을 간발의 차로 피한 비행함의 한 승무원이 훗날 진술하기로, 그는 그날…….

현세의 지옥을 보았다-라 말했다.

기갑천마

작전명: 여명 (6)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너진 성이 둥지의 하늘을 드러냈다.

그 하늘을 가득 채우던 비행함의 절반이 손짓 한 번에 날아간 그 순간, 지상에 선 이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신이시여.”

“아, 아하하하!”

그제야 그들은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감히, 누구와 대적하겠다고 나선 것인지를 말이다.

비행함 수백 척이 순식간에 산화했다.

그건 흡사 신이었고, 재앙이었으며, 살아 숨 쉬는 절망이었다.

감히 누가 저것에 대적할 수 있을까.

겉모습은 영락없는 소년에 불과했으나 특공대의 전원은 보고야 말았다.

-까드득, 까드드득.

칠흑과도 같은 외형을 한 소년의 뒤로 보이는 검은 형체를 말이다.

“아아, 아아아아!”

대군주, 니힐은 전율했다.

마침내 다가온 신격의 고양감은 육신을 타고 흘렀고, 그는 발밑의 미물들이 아닌 하늘 위를 바라보며 일갈했다.

“네년의 딸을 그리했듯이, 너를 탐할 거다. 씹고, 뜯고, 삼켜서 비로소 나는 신이 되리라!”

빛조차 거부하는 눈에 광기가 머금었다.

동시에, 모든 마수들이 두려워하며 그에게 경배하며 고개를 조아리니.

“내가 바로, 공허의 신 니힐이다!”

인류는 그제야, 자신들이 대적하던 것이 신살자이자 모든 신을 죽이고자 한 악신(惡神)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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