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안으로 들어선 단테와 남궁연희는 군인들의 우려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거침없이 앞으로 향했다.
동시에 둘은 성의 내부를 살피곤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근본 따위는 없는 실내장식이네요.”
남궁연희의 읊조림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말대로 성의 내부는 그야말로 근본 따위는 없이 이것저것 되는 대로 합쳐 놓은…….
그래, 흡사 쓰레기장을 성으로 다듬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뿐이었다면 그저 실소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얼굴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으니.
“쯧.”
“허.”
단테를 혀를 찼고, 남궁연희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보니, 왜 그런지 알 것도 같군.”
성의 입구를 지나 정원 중심부, 다름이 아닌 무림맹의 현판이 분수의 꼭대기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백월신교의 현판은 그 옆의 동상의 일부분이 되어 반쯤 부서져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이 거대한 성의 모든 요소가 지금까지 대군주가 포식했던 세계의 유산들이라는 걸 말이다.
“많이도 먹었네요.”
남궁연희는 질린다는 듯이 성을 지탱하고 있는 무수한 문명들의 유산을 차례대로 훑었다.
그중에서는 그녀가 알고 있는 문명의 것도, 전혀 처음 보는 문명의 것도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둘이 분수대에서 발길을 잠시 멈춘 그때.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본성의 문이 열렸다.
자연히 살기를 방출하며 적을 격멸할 준비를 갖춘 둘의 앞에 한 메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 저벅-.
걸음은 영락없는 메이드의 그것이었으나 어딘가 불안정했다.
움직임 역시 기품과 천박함이 공존하는 그녀의 모습은 언뜻 기괴하며 소름이 끼쳤다.
“인간이 아닌가.”
둘은 머지않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태여 찾을 필요도 없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까?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이 인간의 외형이었던 그녀는 둘에게 다가설수록 그 이질감과 역겨움을 드러냈다.
-꿈틀.
메이드의 옷을 이루는 건 일반적인 천이 아니었고, 그것들은 마치 자아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기이하게 뒤틀리며 꿈틀거렸다.
그뿐인가.
메이드의 얼굴은 흡사 봉제 인형과도 같은, 살아 있는 생명의 살점과 뼈, 힘줄로 기운 얼굴을 한 채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무리 숱한 것들을 보아 온 그들이라도 인상을 일그러트리지 않을 수 없는 역겨운 외형이었기에 둘은 구태여 감정을 숨기지 않고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다.
-까닥.
그러나 정작 메이드는 그런 둘의 시선 따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입을 열어 말했다.
“기, 기다리고, 계, 계십니다.”
이제까지 뇌리에 울리는 읊조림을 내뱉던 여왕이나 네임드들과 달리, 성대를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읊조린 놈의 목소리는 단순히 기괴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억지로 기워진 살점을 갈가리 찢어 버리는 소리가 저러할까 싶은 놈의 목소리는, 인간의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흉내를 낸다고도 못 하겠어.’
단테는 혐오감이 뒤섞인 시선으로 놈을 바라보았지만, 메이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런 시선 따위에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몸을 돌렸다.
터벅, 터벅…….
때때로 기울어지고 제멋대로 뒤틀리면서도 어디론가 향하는 메이드의 육신은 말하는 듯했다.
“따라오라는 것 같네요.”
“그래.”
길을 안내할 테니 어서 따라오기나 하라고 말이다. 때문에, 단테와 남궁연희는 찰나의 순간 시선을 교환하곤 이내 메이드의 뒤를 따랐다.
둘의 걸음엔 망설임 따위 없었다.
물론, 조금의 역겨움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다가올 복수에 비하면 감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
“…….”
끼, 끼득.
때때로 뒤틀리는 몸을 벽에 부딪쳐 가며 위태롭게 그들을 안내하는 메이드를 뒤따라 복도를 거닌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메이드는 다른 성의 내부와 마찬가지로 온갖 양식과 문화가 어지럽게 뒤섞인 거대한 문의 앞에 다다랐고, 그제야 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려 부자연스럽게 몸을 굽혔다.
쁘드득! 까득!
그 과정에서 관절이 뒤틀린 듯 섬뜩한 소리가 울렸지만, 곧 허리를 편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거대한 문의 옆에 있는 복도로 사라졌다.
그제야 단테와 남궁연희는 그녀가 말한 ‘안내’가 끝이 났음을 깨닫고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허.”
둘로서는 많은 감흥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대군주가 문 너머에 있으리라는 기대,
혹여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경계.
단둘이서 충분할까, 하는 부담.
여기까지 와야만 했던 피로와 분노.
그야말로 온갖 감정이 둘의 척추를 따라 흘렀다.
과거와 달리 외형도 이름도 달라진 둘은, 잠시 서로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거대한 문을 향해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터억.
단테와 남궁연희.
아니, 천휘와 남궁연희의 손이 문에 겹쳐진다.
그리고 곧 둘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천천히 문을 열었고, 곧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의 안쪽에 있던 공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으니.
“아, 왔나.”
둘은 곧 권좌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을 보며, 시선을 맞췄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쯧, 성격 급하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지를 박차고 놈을 향해 쇄도해 나아갔다.
그러나 그 순간.
까닥, 하는 소년의 손놀림에 공간은 순식간에 길게 늘어졌고, 단테와 남궁연희는 급변하는 공간의 거리감 속에서 미간을 좁힌 채 이를 악물었다.
“이게 무슨-!”
비록 외형은 달랐으나 그들은 눈앞의 소년이 그토록 죽이고 싶어 마지않던 대군주, 거귀(巨鬼)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다른 이들이면 모를까.
직접 놈과 맞서 목숨까지 잃었던 둘이 놈을 앞에 두고 착각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대군주!”
단테는 거친 일갈을 터트리며 목에서 흔들리던 벤데타를 소환했고, 곧 크아아아아아아- 따위의 포효를 내지른 벤데타는 대지를 박차고 이전보다 월등하게 길어진 대지를 쇄도했다.
정작 소년은 여전히 코웃음을 칠 뿐이었으니.
“오버로드, 거귀, 재앙급 괴수, 아우터 로드…… 이제는 대군주인가? 마음대로 물러라. 너희 미물들이 붙인 이름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소년은 권태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그저 한없는 나태와 공허함이었으니, 그제야 둘은 터질 듯이 심장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른 채 소년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칠흑과도 같은 머리와 눈은 빛이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듯 찰랑거렸고, 육신을 이루고 있는 소년의 외형 뒤로는 거귀의 그림자가 일렁거린다.
또한, 단테는 느꼈다.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벤데타가 아무리 앞으로 쇄도한다고 한들 놈과의 거리는 아주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남궁연희 역시 매한가지였다.
꿀꺽.
침을 삼킨다.
투지는 꺾이지 않았으나, 둘은 일전에 맞섰던 거귀는 이미 놈에게 과거 탈피한 흔적 중 하나라는 사실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더 강해진 거지? 얼마나?’
단테는 끝없이 뇌리에서 수를 다듬었다.
어떻게 해야 저놈의 면전에 주먹을 틀어박고, 살점을 뜯고, 나아가 놈을 죽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때.
“궁금하지 않나?”
둘의 생각을 모두 읽고 있기라도 한 듯이 피식 웃음을 지은 대군주는 그렇게 읊조렸다.
곧 둘은 찰나의 순간 시선을 맞추고 여전히 권태롭게 권좌에 앉아 있는 대군주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맴돈 찰나의 의문을 읽은 것일까.
아니면, 이 공간에 이미 사로잡힌 둘의 생각 전부가 놈에게 흘러 들어가기라도 한 것인가.
“내가 어째서, 너희 같은 미물에게 50년의 시간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소년의 육신을 내세운 대군주는 입을 열었고, 동시에 손가락을 가볍게 튀기며 말을 이었으니.
“또, 너희가 어째서 이 세상에 다시금 살아 숨 쉴 수 있게 되었는지 말이야.”
그때, 씨익 말려 올라간 놈의 입꼬리를 본 단테와 남궁연희는 순간적으로 시야가 검게 물드는 것을 느끼며 놈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갑천마
작전명 : 여명 (5)
처음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건 두 가지였다.
끝을 모르는 갈증과 배고픔.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
‘여긴 어디지?’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 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직 끝도 없는 어둠, 어둠, 어둠일 뿐이었다.
갈증을 채울 것은 없었다.
배고픔을 채울 것도 없었고.
공허함을 메울 것 또한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저 시시각각 정신을 괴롭히는 비루한 욕망에 몸부림을 치며 잠이 들고 깨어나고 잠이 들고 깨어나고를 반복했다.
‘외로워, 배고파, 공허해, 아파, 쓰라려…….’
뒤틀리고 뒤엉킨 감정은 그 자신을 끝도 없이 몰아세운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어린 정신은 그저 쉼 없이 그런 단어를 읊조린 채 억겁을 세월을 버텼다.
근본적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기준처럼 흘러가는 것인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가늠하지 못하며 말이다.
그건 차라리 죽어 가는 삶이었다.
‘아니, 애초에 삶이 주어지긴 했던가?’
눈을 뜨고 온통 검은 곳에서 그저 고통 속에 흘러가는 것이 삶이라면, 어찌하여 나는 그런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또 다시 얼마만큼의 세월이 지났을까.
“공허의 저편에서 무언가 느껴지기에 와 보았더니, 이 무슨…….”
처음으로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척을 느꼈고,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바라본 ‘나’는 머지않아 눈이 멀어 버릴 듯한 통증과 압도적인 위압감에 몸을 떨었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두려움은 공포로 변했고, 눈앞의 절대적인 존재에 감히 대항할 이유도, 방법도, 다른 대안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머리가 백지로 변했다는 게 옳으리라.
죽을 거다.
눈앞의 존재가 손을 한번 움직이는 순간, 육신을 갈가리 찢기고 나아가 존재 자체가 이 공간 속에서 지워지겠지.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존재감의 압도가 첫 번째 이유였고.
살아야 할 이유의 부재가 두 번째 이유였다.
‘내가 산다고 의미가 있을까?’
옴짝달싹도 못 한 채 어두운 공간에서 끊임도 없는 자학을 곱씹는 삶이라면, 차라리 끊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공허 속에서 꿈틀거리던 작은 덩어리는 그런 자학을 곱씹으며 다가올 처벌을 기다렸다.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덩어리는 스스로가 죽으리란 확신에 차 있었다.
“가엾은 아이로구나. 동시에 추악하다.”
그런 덩어리에게 믿을 수 없는 속삭임이 흘러들어왔다.
동시에 존재만으로 육신을 갉아먹던 빛이 따끔한 정도까지 사그라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한 목소리가 영혼을 스쳤다.
“공허 속의 삿된 감정의 편린들이 너를 만들었는가. 태초부터 갈증하고 갈망하며 만족을 모르는, 자학적인 존재로 태어났으나 어찌 그것이 너의 잘못일까.”
그제야 덩어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눈앞에서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이 목소리는 다름이 아닌 신이며, 자신은 그런 그녀에게 동정을 받고 있다는 걸 말이다.
꿈틀.
때문에 덩어리는 외쳤다.
-살려 주세요. 배고파요. 아파요. 쓰라려요. 공허해요. 질투가 나요…….
자신의 외침을 들을 수 있기를.
비록 여전히 환한 빛에 그녀의 실체는커녕 존재의 실루엣만 간신히 바라볼 수 있었음에도 덩어리는 꿈틀거리며 성토했다.
그리고, 그런 덩어리의 꿈틀거림에 환한 빛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순간적으로 흩뿌리려던 처형의 손길을 멈추고 덩어리를 지그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겠지.”
비록 공허의 암적인 감정이 서로를 갉아먹고 갉아먹어 태어난,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할 삿된 것이라도 어찌 그것이 덩어리의 잘못이겠는가.
때문에 그녀는 단번에 덩어리를 죽이지 못한 채 안타까움과 애석함이 담긴 시선으로 그것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러나 동정은 동정일 뿐.
그녀는 이윽고 놈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소멸 대신 덩어리에 담긴 혼이 환생할 수 있도록 죄를 덜어 줄 생각이었다.
“이미 혼에 담긴 이상 삶의 순환을 적어도 수천, 수만 번을 해야겠으나 존재 자체가 악인 삶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녀의 손길엔 동정과 더불어 마치 태양처럼 따스한 빛이 머물러 있었고, 덩어리 역시 그것이 인도할 미래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억겁의 시간을 버틴다.
그렇게 마침내 삶을 찾는다고?
-기다렸어요. 기다렸어요.
그때, 처형의 살기 따위 없는, 온전한 동정과 베풂이 담긴 그녀의 손이 덩어리를 향해 뻗어진다.
덩어리는 환희했다.
드디어 이 고통을 끝낼 수 있었고…….
-쩌어어어억.
“무, 무슨?”
긴 시간 동안 그저 침묵 속에서 머금고 있던 갈증과 배고픔을 풀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환희에 찬 덩어리의 벌어진 입이 안온함이 머물던 그녀의 손을 물었다. 당황한 그녀가 다급히 신격을 끌어 올리려 했지만…….
-까드드드드드드득.
그 순간, 공허가 그녀를 응시했다.
“아, 아아…….”
이윽고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민 자선은 놈에게 갈증을 풀어 줄 한낱 양식에 불과했고, 덩어리는 공허가 자신을 삼키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는 걸 말이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라면 모를까, 이제 막 신격을 얻은 하급 신이 대항하기엔 공허의 시선은 서늘했고, 나아가 한없이 싸늘했다.
-까드드드득!
신격을 폭사하려고 해도 덩어리는 물었던 손을 놓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직감하곤 조금 전 가졌던 동정을 후회한 채.
“아, 아아아아아아악!”
-콰드드드득!
그저 살아 있는 채로 공허의 첫 번째 자식에게 뜯어 먹힐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허의 첫 번째 자식이자, 오직 탐식하고 유린하며 기만하되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무(無)의 존재, 니힐(Nihil)의 첫 번째 사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