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92화 (192/197)

비록 기사, 베를리힝엔을 죽였다고 쓰러트리기는 했으나 그로써 전투가 끝이 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전투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쿠어어어어!

-크, 크으으으으으!

둥지의 내부는 온갖 것들이 뒤섞인 모양이었다.

본디 전투가 있었던 곳에는 마수들의 시체와 인간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뒤섞인 것도 모자라 둥지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공간을 뒤덮은 검은 살점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불경합니다!

과연 대군주의 둥지라는 것일까.

비단 상, 중, 하로 나뉘는 마수들이 아닌 네임드 급도 심심치 않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정작 놈들은 원로들에게 막혀 단테나 남궁연희에게 닿지조차 못한 채 녹아내리고 있었다.

〔로한!〕

〔……전역, 전역.〕

로한과 보리스, 세실 등의 특임대 소속 에이스들 역시 마수들을 그야말로 갈아 버리고 있었고, 그들은 파죽지세로 둥지의 중심부로 향했다.

하지만 피해가 아예 없을 수는 없는 법.

〔끄아아악!〕

〔저, 적이 너무 많습-!〕

특공대의 에이스 4,000명 중 1할 손실.

투입된 50,000명의 보병 중 3할 손실.

나이트 프레임은 기체의 특성상 손실이 크지는 않았지만, 보병들은 벌써 3할 이상이 손실되며 피해는 늘어 가고 있었다.

심지어 정예들로 구성된 이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때문에, 아직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구속복을 입은 채 이송되고 있던 이슈페인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

만약 놈이 말한 대로 중심부에 대군주가 있지 않다면, 그들의 희생이 개죽음이 되는 것은 물론 어쩌면 전멸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수뇌부들의 이야기일 뿐이었고, 기체에 탑승한 에이스들과 보병들은 그저 생사를 걸고 전투에 임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정말 있는 거 맞아? 당주님?〕

하지만 불안감은 억누른다고 될 것이 아니었기에 결국 세이티나는 최상급 마수의 목을 분질러 버리곤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이슈페인 걔가 우리를 엿 먹이려고…….〕

그때였다.

〔여기는 세실, 현재 성과 같은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

특임대 예하 강습대를 이끌고 직접 선두에 나서 적들을 도륙하던 세실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정하겠습니다. 성문이 열렸습니다.〕

기갑천마

작전명 : 여명 (4)

선두에 선 정찰대가 성을 발견한 것, 그것은 크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본디 그들이 목표하던 것 역시 성의 중심부를 타격하는 일이었으니, 그 과정에서 둥지의 중심에 대놓고 서 있던 성은 누가 보더라도 의미가 있어 보이는 건축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변은 그때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끼이이이이이이!

이미 둥지를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특공대를 향해 달려들었던 마수들의 눈이 더욱 돌아간 채로 그들을 향해 밀려온 것이다.

조금 전까지 마수들의 기세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보다 배 이상은 광분하여 날뛰는 모습은 아무리 정예로 구성된 특공대라고 한들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수준이었다.

“노, 놈들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끄아아아아아악!”

역시 제일 큰 피해를 보는 건 보병과 포병들이었다.

그들은 죽기 전까지 마수들에게 용맹하게 대적했으나 이미 눈이 돌아간 마수들에게 인간의 분투 따위는 그저 우스운 발악에 불과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명령을!〕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자연히 수뇌를 구성하던 블랙 가드와 특임대의 일원들의 시선은 단테와 더불어 남궁연희에게로 향해 닿았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그들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그 둘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아무래도…….〕

〔그래.〕

남궁연희의 목소리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인 채, 미쳐 날뛰기만을 바라며 검은 심장을 두근거리던 벤데타를 망설임 없이 역소환했다.

우웅-!

짧은 빛이 번뜩인다.

이윽고, 정갈하게 갖춰 입은 검은 제국군의 군복이 펄럭거리며 지상으로 천천히 추락하는 단테의 궤적을 따라 흔들렸다.

곧 대지를 디딘 단테는 마찬가지로 기체에서 내려 곁에 선 남궁연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대군주는 딱 필요한 손님만 받으려는 모양이다.”

그는 그렇게 읊조리며 앞으로 걸었다.

“위, 위험합니……! 어?”

당연히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을 나이트 프레임에도 탑승하지 않은 채 걷는 단테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객기였기에 현장의 장교들은 경악하며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곧 그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으니.

“……마수들이, 건드리지 않아?”

마수들은 여전히 인간들을 적대하고 살육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비도 없이 성으로 걷는 단테와 남궁연희에게만큼은 그 어떤 마수들도 달려들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외치려고 해도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그들은 결국 단테와 남궁연희가 성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직후.

〔서, 성문이……?〕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성문이 닫혔다.

마치, 언제부터 열려 있었냐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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