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으윽!
기사, 아니 베를리힝엔은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 신음을 삼키면서도 안광을 번뜩였다.
언제부터 자아를 가졌는지, 언제부터 이곳에 존재했는지도 스스로 알 수 없는 놈은 그저 내려진 명령을 스스로 되뇔 뿐이었다.
침입자를 배제한다.
침입자를 말살한다.
침입자를 격살한다.
침입자를 제거한다.
침입자를…….
그러나 놈이 스스로에게 한없이 읊조리는 명령에는 ‘어째서?’가 근본적으로 제거되어 있었다.
어째서 그런 명령을 받았는가.
어째서, 자신은 그것을 행해야 하는가.
놈은 어떠한 의문도 없이 검을 휘둘렀고, 천천히 갉아 먹히는 듯한 육신의 고통에도 그저 눈앞의 적들을 배제하고, 말살하며, 격살하고, 제거하기 위해 움직일 따름이었다.
콰드드드드득!
단테는 놈이 뻗어 오는 검을 피한 후, 어떤 의문도 영혼도 느껴지지 않는 베를리힝엔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놈은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다.’
스스로의 자유의지도 없다.
지향하는 목적지도 없으며, 육신조차도 둥지 안에 틀어박힌 채 그저 살육만을 반복할 인형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과연, 망자와 인형 중 누가 이길까.’
콰아아아아아아앙!
단테는 벤데타의 어깨 장갑을 뜯어내며 뻗히는 놈의 검격을 본능적으로 피하며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다.
손끝이 꿈틀거린다.
당장이라도 놈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 그였지만, 이윽고 고개를 저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도 그럴 것이…….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번 전투의 주역은 단테가 아닌, 다른 이들이었으니까 말이다.
〔하루크! 투라!〕
일전 황궁에서 울려 퍼졌던, 기원을 알 수 없는 읊조림이 또 다시금 이 세상에 내뱉어진다.
동시에, 갈색 빛인지 아니면 구릿빛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특유의 문신까지 도장으로 각인되어 있는 근육질의 기체, 캄푸트는 시그니처를 읊조리지도 않은 채 그저 묵직한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력으로 뻗어진 주먹을 뒤따라 흙빛이 일렁거리며 뒤쫓았고, 둥지의 수호자, 베를리힝엔은 신음을 삼키며 어깨로 그것을 받아 냈다.
그리고, 그것이 놈의 패착이었다.
〔오만하고도 우둔하다! 흐타암!〕
움타르는 콕피트 안에서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주먹의 가속력을 더해 단번에 베를리힝엔의 견갑을 부숴 버렸고, 동시에 움타르의 어깨를 밟고 세이티나의 기체, 네카토르가 날아올랐다.
〔세이티나!〕
〔으하하핫!〕
당연하게도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반발력과 더불어 목표를 빼앗기게 생긴 움타르는 그녀의 이름을 거칠게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지 웃음뿐이었다.
네카토르(Necator).
룬어를 제국어로 해석하자면 ‘살해자’.
세이티나는 그것을 다시금 되뇌며 생각했다.
실로 어울리는 기체의 이명이라고 말이다.
붉게, 또는 보랏빛으로 물든 네카토르는 기체 특유의 입질을 하는 동시에 콕피트 안에서 기체를 조종하던 그녀는 본능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내면에 잠들어 있던 마기를 폭사시켰다.
키이이이이이이이!
흡사 살덩이가 염산에 녹아내리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마기에 잠식된 혈관과 피부가 보랗게, 벌겋게, 검게 물들어 감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눈과 입, 코에서 피가 흘렀다.
보랏빛 액체는 게걸스럽게 그것을 머금고 나아가 붉은 안광을 터트리며 까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육신을 뒤튼다.
콰드드득!
기형적인 날개가 솟아난다.
굽어진 허리와 날카롭게 돋아난 손톱은 그 자체로 소름이 끼쳤다.
“아, 악마……!”
먼 곳에서 실루엣을 살피던 한 군인의 읊조림처럼 그것은 흡사 악마였다.
하지만 그때.
“그래, 악마지.”
담배를 문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이니.
“……우리 쪽 악마.”
콰드드드드드득!
직후, 마침내 안개 안쪽에서 울려 퍼지는 섬뜩한 피육음과 함께 거대한 기사의 육신이 허물어졌다.
-아, 아아아…….
네카토르의 손톱에 갈가리 찢어발겨지며 놈이 내뱉은 것은 단말마의 읊조림일 뿐.
그것을 지켜보던 단테는 생각했다.
결국, 놈은 마지막까지 인형일 뿐이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