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90화 (190/197)

“……우욱!”

둥지의 외양은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거대하기만 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했지만, 그 천장을 꿰뚫고 내부로 돌입한 강습 육전대는 줄을 타고 내려가는 와중에도 애써 구토를 참아야 했다.

“무슨 악취가 이렇게…….”

“제기랄, 유서 한 장으로는 안 됐겠는데?”

일반적인 군인과 달리 얼굴 전체를 덮는 헬멧을 쓰고, 기동성과 파괴력이 보장된 기관단총을 쥔 그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미처 삼키지 못한 말을 내뱉곤 대지를 디뎠다.

물론 그 이상의 불평은 사치였지만 말이다.

-구어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으으윽!〕

미리 돌입한 기갑지원사단과 강습육전대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밀려오는 마수들을 상대로 틈을 만드는 동안, 빠르게 줄에서 내려온 보병들과 공병들은 이동식 토치카를 조립하고 대(對)마수용 포탑과 기관총을 거치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조금이라도 늦는 순간 우리는 다 뒈지는 거라고!”

“어, 어어어!”

〔비켜! 비키라-! 커허어어억!〕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둥지의 내부를 완전히 파악하기도 전에 돌입한 그들이었기에 내부 안에서 갓 태어난 마수들을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연하게도 초반 돌입한 1,500명 중 절반의 죽음이라는 참혹한 대가를 요구했다.

“이, 이 개새끼들아! 깡그리 뒈져 버려!”

“으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개죽음인 것은 아니었다.

나이트 프레임들은 강습할 공터를 확보한 즉시 공병들이 제작하는 포대와 토치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졌고, 최소 10m에서 20m씩이나 되는 기갑기들과 더불어 끊임없이 투입되는 인력은, 마침내 둥지 내부에 부족하지만 참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피, 피이이이이이이!

“프란틴의 눈물이다. 이 개 같은 괴물 새끼들아아아-!”

타다다다다다다당!

프란틴에서 망명 후 육전대에 자진 입대한 상병의 외침과 함께 포대와 기관총들은 본디 둥지의 주인이었던 마수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화력을 쏟아부었다.

임시 참호에 점차 궤도포대까지 안착해 나가자 일반적인 마수들은 그들에게 접근조차 하기 힘들게 되었다.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어느 분야에서든지 흔히 말하는 ‘기세’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건 당연하게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느낌의 영역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꽤 신뢰성이 높은 것이기도 했다.

때문에, 군인들은 제각기 손에 쥔 포대와 기관총의 손잡이를 꽈악 쥔 채 밀려오는 마수들을 갈아 버리며 생각했다.

‘이대로 잘 풀리기만 한다면……!’

무수한 피를 흘린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고양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어?”

희망은 언제나 배신당하기 마련이었다.

-고요한 이곳에 누가 파문을 일으키려 하는가.

둥지 안, 모든 군인의 뇌리를 스치는 목소리.

-우둔하기에 유죄, 오만하기에 유죄, 방만하기에 유죄이니라.

누군가에겐 차가운 서릿발 같았고.

누군가에겐 따스한 바람과 같았으며.

누군가에겐 소름 끼치는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저, 저건…….〕

전선에 선 나이트 프레임들은 멍하니, 두려움으로 굳어 버린 육신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대체, 뭐야?〕

쿠구구구구구구궁.

공기가 진동한다.

단순히 무거운 육신을 움직였기에 진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무수한 마수들과 대적하던 군인들조차도 멍한 눈으로 눈앞에 나타난 마수를 응시하며 전율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압도적인 존재를 본 것에 대한 두려움?

아득한 미지에 대한 역겨움?

격이 다른 것에 대한 경외심?

‘아니.’

모든 군인들은 시야를 넘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는 백색의, 청색의, 흑색의, 적색의, 모든 빛을 머금고 있는 거대한 기사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초월.”

그래, 그건 차라리 격의 초월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군인들은 태반이 정예다.

그 말은 즉, 그들 중 다수가 네임드는 물론 여왕과의 전투에 참여해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때문에 그들은 알았다.

네임드도, 여왕도 아니다.

지금까지 모습을 보였던 개체와는 격이 다른 또 다른 개체.

“……무슨 초월체라도 되는 건가? 빌어먹을.”

허탈감에 기관총의 손잡이를 쥐었다가 놓은 강습 육전대의 한 사내는 그렇게 읊조렸다.

그리고 마침내, 둥지 안에서 그 거대한 육신을 일으킨 놈은 기사의 투구 안쪽에서 안광을 번뜩이며 말한다.

-따라서, 처형이니라.

세상의 모든 빛을 머금기라도 한 듯한 거대한 기사의 육신이 이제까지 마주쳤던 마수들과 달리, 어떤 잡음조차 없이 유려한 선을 그리며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때문에 군인들은 찰나의 순간이나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머금은 채 눈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서걱.

일말의 흔적조차 없이 뻗어진 실선은 군인들을 빠르게 스쳤다.

누군가에겐 서늘한 바람처럼, 누군가에겐 그저 흘러가는 물결처럼 맞닿은 그것은 인간의 인식보다 빠르게 세상을 훑고 지나가니.

〔어-.〕

군인들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전장에 서 있던 모든 나이트 프레임의 육신이 반으로 갈라진 후였다.

“하, 하하하…….”

실소가 흘러나온다.

끼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조금 전까지 든든하게 마수들을 대적하던 수십 기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무너졌다.

그 핏물과 살점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흩날리는 전장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본능적으로 각인된다.

두려움, 공포, 혐오, 압도감, 경외심, 역겨움…….

그들은 침묵했고, 마수들조차도 기어이 모습을 드러낸 둥지의 수호자에게 경외를 감추지 않았다.

-절멸하리라.

기사는 선언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이뤄지리라.

그 순간 모든 군인은 자신들이 잠시나마 가졌던 희망이 얼마나 덧없고도 허황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으며 눈을 감았다.

아니, 감으려고 했다.

〔대군주의 가디언쯤 되는 건가.〕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무미건조하다 싶은 한 남자의 목소리와 더불어-.

〔오래 끌 시간은 없다. 그러니…….〕

쿠구구구구구궁!

끼이이이이!

〔빠르게 끝내지.〕

하늘에서 추락하는, 제각기 다른 빛과 생김새를 가진 기체들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단테를 필두로 한 그들의 기체가 기사와 맞닿은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전례가 없는 폭음과 더불어, 솟구친 붉은 기둥이 둥지의 천장을 다시금 꿰뚫고 하늘로 승천했다.

기갑천마

작전명: 여명 (3)

폭발과 섬광이 뒤섞인 붉은 불기둥은 단번에 기사와 벤데타, 그리고 그를 필두로 하는 나이트 프레임들을 집어삼켰다.

“아, 아아아…….”

“맙소사.”

그리고 그 순간, 전장에 서 있던 군인들과 더불어 한발 늦게 강하해 상황을 자세히 알 리가 없었던 이들조차도 눈앞의 광경에 아연실색하며 몸을 떨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 중, 과거 초인들의 시대를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또 있다고 해도 그것이 현세에 다시 나타나리라 믿는 이는 또 얼마나 있겠는가.

이미 폭력과 괴이는 인간을 떠났다.

초인들의 영광과 서사시는 전설 속의 한구석만을 차지하는 세상이었고, 인간은 그저 다가오는 종말에 몸을 웅크리며 발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조금 전 빛무리에 기사와 나이트 프레임들이 함께 뒤섞여 사라진 순간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공멸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단번에 둥지의 지붕을 꿰뚫고 솟구친 붉은 기둥의 모습은 흡사 재앙이었고, 그것을 그저 연약한 피육을 가진 인간이 재현하고 버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망상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끝인가?”

물론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단번에 지붕을 꿰뚫은 그것은 그들의 생각과 같이 기사가 뻗어 낸 일격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인과관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었다.

-그런가. 네놈들이 바로……!

〔시끄럽다.〕

-커허어어억!

그것은 놈의 공격이 아닌, 방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굳이 단테까지 나설 필요조차 없었다.

〔시끄럽다잖아!〕

리베라의 은빛 눈이 가늘게 변한다.

입꼬리는 말려 올라가고, 동시에 다른 일반적인 기체들과는 달리 유려한 외형을 가진 기체, 모스트리의 거대한 기체가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며 그대로 은빛 안개를 흩뿌린다.

시그니처(Signature).

도깨비검무(鬼劍舞).

이미 숱한 전투에서 보여 주었던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붉은빛의 기둥을 가르고 기사 모습을 한 놈에게 쇄도한다.

안개가 그녀의 뒤를 그림자처럼 뒤따르고.

머지않아 섬광이 번뜩이며 리베라는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걸 피하네?〕

하지만 놈의 수난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모르는 그녀가 아니었기에 망설임 없이 몸을 뒤로 빼내며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군인들을 향해 일갈했다.

〔뭐 해? 가만히 있다가 뒈질 거야?〕

“……아?”

그녀의 호통에는 상급자가 가져야 할 권위나 아량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군인들의 뇌리에 단단히 각인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보았다.

-크아아아아아아!

-끼이이이!

충격과 공포, 나아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던 군인들과는 달리, 단지 기사에게 경외를 표하기 위해 고개를 조아리던 마수들이 다시금 적의에 가득 찬 눈으로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정예였다.

비록 인지하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광경을 눈에 담아 멍하니 서 있는 추태를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여태까지 싸우고 겪어 본 것에서 온 무수한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철컥-.

끼이이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관총을, 포대를, 기관단총을 쥐었다.

혹자는 엎드렸고, 누군가는 참호 속에 숨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토치카에 숨어 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

빛무리가 사라지고 기사와 나이트 프레임들이 흙과 살점, 핏물로 점철된 안개 속에 가려진 그 순간 울려 퍼지는 마수의 포효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갈겨어-!”

“쓸어버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당!

콰아아아아아앙!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마력 포대는 물론, 궤도 위에 올려진 포탑 역시 다시금 밀려오는 마수들을 향해 화력을 쏟아부으며 그야말로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조금만 기다려! 어차피 곧 나이트 프레임들이 온다고!”

“왔다! 왔어어!”

그리고 그들의 사기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리베라의 모스트리는 물론, 보다 많은 나이트 프레임들이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강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쿠우웅!

콰드드드득!

때때로 착지를 실패하거나 대지를 딛자마자 마수에게 공격당해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분명히 있긴 했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기사의 등장으로 잃었던 사기와 기세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그들은 머지않아 눈치챌 수 있었으니.

“설마?”

“……그 설마가 사실이기를 빌어야지!”

조금 전 기사와 뒤섞인 십여 대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 기사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시사하는 점을 모를 정도로 멍청한 군인은 이 둥지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싸우고 있다! 싸우고 있다고!”

“아직 지지 않았어!”

단 일격에 수십 기의 나이트 프레임을 반으로 갈라 버린 기사. 그런 놈에게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사기는 이전보다 더욱 높아졌다.

때문에 그들이 할 일은 단 하나뿐.

“우리는 이곳을 사수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교두보가 되어, 그들의 발목을 잡지 않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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