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87화 (187/197)

사실상 후자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정이 난 순간부터 모든 절차와 군의 움직임은 철저하게 효율을 중심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가, 그렇게 되었군.〕

〔……허.〕

회의에서의 결정은 결재를 위시한 통보 형식으로 각 국가의 수장들에게로 전해졌고, 통신기 앞에 선 그들은 모순된 감정 속에 침묵했다.

600만, 어쩌면 그보다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하지만 그보다 우수한 인재들을 이번 작전 한 번에 모조리 잃을 수도 있으리라는 두려움까지.

‘후자라면, 우린 또 얼마의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또 다시 기회가 오리라는 보장조차 할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신음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작전명 : 여명」

작전의 명확한 지향점이 나왔고, 윗선의 허락이 떨어졌으며, 추진할 수 있는 모든 인재가 준비된 시점부터 ‘작전명 : 여명’이라는 이름 아래에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차출 명령서입니다. 귀관은 현 시점부로…….”

“여기 데그레챠 대위가 있나?”

“멜롬 소령님, 계십니까?”

제일 먼저 에이스들이 차출되었다.

물론 전선 역시 유지를 해야 했기에 모든 에이스를 차출할 수는 없었지만, 가능한 모든 에이스들이 좋든 싫든 특공대로 향했다.

어설픈 실패도, 어설픈 성공도 용인되지 않는다.

이 작전에서 어설프다는 것은 곧 인류의, 대륙의 미래를 시궁창 속에 처박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건 비단 나이트 프레임뿐만이 아니다.

“제1 기갑지원사단과 강습 육전대가 뒤따를 겁니다.”

기갑지원사단의 1만 5천 명.

강습 육전대의 5천 명까지 포함된 2만의 정예 병력이 제국에서 차출되었다.

연합 왕국 측과 법국 역시 비슷한 수의 보병대를 지원해 주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은 모두 배제되었다.

각 전선에 흩어져 있던 정예 병력들을 모으고 걸러 새로이 창설된 기갑지원사단은 비록 수는 많지 않았으나 기갑기, 나이트 프레임과 보조를 맞추는 것에 익숙한 병사와 장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강습 육전대는 근본부터가 나이트 프레임과의 전투를 위한 보직이었다.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물론 현장에서는 아무리 정예라고 해도 수가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우려를 표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블랙 가드와 특임대, 나아가 에이스들의 대답은 하나였다.

“너무 수가 많아도 곤란합니다.”

애초에 대군주의 둥지가 거의 제국의 수도와 비슷한 수준의 크기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천 단위의 보병을 지원받은 채 돌입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번 작전에서 보병의 역할은 차출된 에이스들이 둥지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두보 역할임과 동시에 퇴각 후에도 시간을 끄는 일종의 전략적인 버림 말이었다.

“전원, 유서를 쓴다.”

그들이라고 어찌 그것을 모를까.

그들 중 태반이 숱한 전장을 오갔고, 부사관들만 하더라도 본디 병사 출신이었던 이들이 절반을 넘어갔다.

그들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전투에 투입되었다는 건, 생환할 가능성 따위 거의 없다는 말과 같은 걸 말이다.

“두려우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죽기 싫은 놈을 억지로 사지로 밀어 넣는 취미 따위는 없다.”

그 때문에 장교들은 유서를 나눠 주면서 끝까지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일반적이라면 권위로 찍어 눌렀을 일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던 탓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 중 태반은 마수들에게 많은 것을 잃은 이들이었다.

누군가는 가족을.

누군가는 애인을.

누군가는 고향을.

누군가는 추억을.

……그렇게 소중한 것들을 잃어 가던 시대였고, 잃을 수밖에 없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잃지 않을 수 있다.

대군주를 죽이고, 태어날 때부터 뇌리에 각인된 마수들을 모조리 이 세상에서 쓸어버린다.

‘다시, 평화롭게!’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

그것을 뇌리에 각인시킨 병사들이었기에 장교들의 말에도 묵묵히 유서를 채워 나갔을 뿐이었다.

그렇게 특공대가 조직되는 당일까지 집계된 공식 이탈자는 단 3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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