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가드의 원로들.
그들이 전장에 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하루에 한 마리, 많게는 세 마리 꼴로 튀어나오는 네임드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대대적인 반격을 위해서였다.
그래, 대대적인 반격 말이다.
이 전쟁이 장장 50년의 세월을 기점으로 끝을 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것은 거의 한계까지 몰려 있던 인류에게 최후의 희망이었고, 나아가 처음으로 보이는 진정한 끝이었다.
이미 그것이 알려진 후였다.
때문에 각국의 왕들은 머잖아 결단을 내려야 했다.
법국의 법왕도.
연합왕국의 여제도.
제국의 황제도.
프란틴 유민의 수뇌부조차도.
“가자! 우리의 대에서 모든 것을 끝내자!”
“이제야 끝이 보인다!”
청년들은 전선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영웅이 되리라는 헛되고도 부푼 꿈을 가지고 열차에 올랐다.
누군가는 징집되어 억지로 군복을 입고 가족과 이별했으며.
누군가는 전장에서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 지인을, 가족을, 연인을 찾기 위해 스스로 군복을 입고 열차에 올랐다.
전선에는 순식간에 지금까지 갈려 나갔던 수 이상의 병력이 충원되었고, 그건 곧 이어질 대공세의 발판이 되어 전선을 빠르게 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전진! 전진하라!”
“끄아아아악!”
그렇게 하루, 일주일, 그리고 또다시 일주일.
총을 쥔 병사가 죽고.
보충된 신병이 시체가 되고.
전선의 수많은 물자가…… 소모된 시간.
“2주하고도 하루.”
남궁연희는 함교의 가장 끝자락에 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해가 뜨려는 여명의 시간이었기에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이는 단 한 명, 단테뿐이었다.
그러나 둘의 시선은 서로를 향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시선은 함교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대군주의 둥지로 향할 뿐인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요.”
둘은 대군주의 검디검은 둥지를 바라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기갑천마
놈의 꿍꿍이
근 이 주하고도 하루.
그사이 대륙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격동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대군주가 나타났다는 건 그렇다고 쳐도, 지난 50여 년 동안 대륙에 모습을 드러냈던 네임드와 비슷한 숫자가 단 이 주라는 시간 동안 대군주의 검은 둥지에서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으니 말이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
눈 한 번 깜빡이는 시간.
숨 한 번 내뱉는 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사상자의 숫자는 쉼 없이 뒤바뀌었고, 그마저도 반쯤 집계를 포기한 상황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새로이 전선으로 병력을 보충하는 일조차 보급관과 행정관들을 가며 진행하는 와중인데, 전쟁 이후를 생각할 여지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빨리, 빨리 움직여!”
“군복은 전선에서 나눠 줄 겁니다! 일단 타십쇼!”
-삑, 삐빅!
“거기 탈영병 잡으라고!”
각국에서 징집되었든, 아니면 자진해서 전장으로 걸어 나왔든 하루에도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에 이르는 신병들이 짧은 교육만을 받은 뒤 전선으로 보급되었다.
자원이 허용하는 이상 나이와 성별은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절절한 이별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 채 전선으로 나가 죽은 이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이미 한 세대의 종말은 넘어섰다.
다만, 후대에서 측정하기에 근 이 주 사이에 네임드의 습격과 전선의 대공세가 진행되던 과정 속에 죽은 이들은 특정 가능한 수만 해도 대략 100만에 이른다고 전해질 뿐이었다.
“……그것조차 우리 블랙 가드가 개입해서 나온 결과라니.”
그런 사실을 곱씹은 남궁연희가 씁쓸함, 내지는 질린다는 듯한 쓴웃음을 지은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부적인 소요를 정리하고, 대군주까지 모습을 드러낸 이상 원로들이 더 이상 음지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들이 나섰음에도 네임드가 우후죽순으로 나타나며 입은 피해가 상상을 초월했기에 마냥 다행이라고 웃을 수도 없는 것이 씁쓸할 따름이었다.
“얼마나 많은 세계를 포식했기에 그렇게 뱉어 내고도 저렇게 힘이 남는 건지.”
남궁연희는 함교의 끝, 유리 너머를 가득 채우는 대군주의 검은 둥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네임드의 수만 특정해도 20개체 이상인 건 둘째로 치더라도, 전선을 뒤덮는 무수한 마수들 역시 둥지에서 뱉어 내고 있는 놈들이 절반 이상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머지 절반이 망르 해안가나 이미 놈에게 넘어가 버린 전선 후방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음을 감안한다고 해도, 대군주의 둥지의 역량은 상상하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언가였다.
‘우리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남궁연희는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특유의 남색 눈동자를 가볍게 떨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만약, 블랙 가드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이 세계는 또 다시 얼마만큼의 피로써 대가를 치렀을까?
하지만 상황은 일전의 모든 세상보다 결단코 절망스럽다고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마지막이 될 거에요.”
놈이 끝이 나든.
……우리가 끝이 나든.
“……너무 많이 죽었어요.”
블랙 가드에서 찾은 환생, 빙의자 중 4분의 1이 이때까지 함께하지 못한 채 죽어 나갔다.
때문에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혹여, 대군주가 죽지 않은 또 다른 세계선에서 아직도 망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많이.”
그녀는 뒤에 서 있는 단테에게 말했다.
그렇게 얼마나 분위기가 어둡게 물들었을까.
-짝!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남궁연희는 함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을 때 짓고 있던 어두운 표정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추고는, 동시에 옅은 미소를 띤 채로 단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준비는 됐죠?”
한마디에 불과한 읊조림.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감정을 어찌 그가 모를 수 있을까?
하지만 구태여 단테는 공감하지 않았다.
-끄덕.
다만, 고개를 끄덕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