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아아아아아!”
“거, 검은 기체? 저건 대체-!”
“단테 대령님이잖냐! 우린 살았어! 살았다고!”
전장에는 믿을 수 없는 경악과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일선에서 아직도 몰려오는 마수들과 전투를 이어 가는 부대를 제외한 참호선의 장병들은 그야말로 신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느끼며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저런 게 가능하다고? 정말로?〕
〔허, 조만간 실직자 될 일만 남았네.〕
나이트 프레임에 탑승하는 파일럿들 중에서도 우수하다고 공인된 에이스들조차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비비거나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리건만, 일반적인 장병들이 느끼기엔 어떻겠는가.
“이, 일격에 놈을……!”
조금 전까지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던’ 놈이다.
그런 놈을 비행함에서 낙하하며 단번에 갈라 버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전설이 됨과 동시에 그들이 죽지 않아도 된다는 하나의 희망으로 각인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뒤이어 강습한 세실 등의 특임대원들 역시 단테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던 그때였다.
콕피트 안에서 단테는 미간을 일그러트렸고, 곧 그들을 향해 일갈하니.
〔모두 피해!〕
이제까지 느껴 본 적이 없는 다급한 외침.
〔예?〕
〔그게 무슨…….〕
단테를 향해 내달린 타국의, 혹은 특임대에 소속되지 않은 제국의 파일럿은 그저 반문했으나 특임대의 행동은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
〔빌어먹을!〕
〔조금만 더 늦게 강습할걸!〕
〔뭐해! 다들 뒤로 물러서거나 하다못해 포탄 구멍에라도 찾아서 들어가!〕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단테의 명령 아닌 명령에 일말의 의문과 망설임도 없이 주변에 있는 이들을 챙기며 빠르게 퇴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행동은 현명했다.
뿌드드득!
반으로 갈라진 채 추락한 뼈들이 재조립된다.
빛을 잃은 4개의 눈은 다시금 생기를 되찾고, 터진 장기와 살점, 핏물은 마치 시간을 되감듯이 암피스-바에나의 육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단테가 무엇을 해 볼 새도 없이 육신을 재생한 놈은 반쯤 이성을 잃은 것인지 눈깔이 돌아간 채로 포효했고.
〔성가신 놈이군.〕
단테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기갑천마
암피스-바에나 (2)
〔쯧.〕
단테는 혀를 찼다.
조금 전, 단테가 놈을 반쯤 찢었던 공격은 절대로 가벼운 수준이 아니었다.
비록 초식명을 읊조리진 않았다고 한들, 이미 일전의 경지를 뛰어넘은 단테의 공격은 네임드를 일격에 한 줌 혈수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이 있었다.
허황된 것이라고 매도할 수조차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전례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래도 놈은 다른 모양이었다.
-쿠어, 쿠어어어어어어어어!
반쯤 이성을 잃어버린 듯이 눈깔이 돌아가긴 했으나 생명체라면 응당 허리가 부러지며 장기가 가죽을 꿰뚫고 돌출되는 순간 목숨을 잃었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놈은 생각보다 쉽게 죽어 줄 생각 따위는 없는 듯했다.
끄드드드드득!
끼기이이!
갈라지고 부서졌던 뼛조각들이 엇갈리며 맞추어지고, 반쯤 뜯겼던 허리의 살점과 근육이 꿀렁거리며 본래의 자리를 찾아 간다.
스스스…….
대지로 추락하며 진창과 뒤섞인 핏물 역시 시간이 되돌아가기라도 하듯이 빠르게 흡수되었고, 마수들과 인간의 시체로 가득 찬 진창에 처박힌 놈의 두 머리 역시 안광을 번뜩이며 치켜세워진다.
쩌저적 벌어지는 입.
그것은 흡사 과거 실존했던 드래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으나 그들과 같은 중압감과 품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추잡하군.〕
때문에 단테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이미 한번 숨이 끊어진 짐승 주제에 당연한 순리를 거부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일반 장교들이나 병사들에겐 언데드를 연상시켜 두려움을 각인시켰지만, 정작 단테에겐 정말 성가시고 추잡한 존재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쉽게 죽지는 않는가.’
단번에 숨통을 끊기 위해 그로서도 나름 무리를 하며 뻗은 일격이었다.
그런데 그걸 맞고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는 건, 애초부터 죽지 않거나 죽음을 야기하는 약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전자는 배제한다.’
죽음을 언제까지고 부정할 수 있는 생명은 이미 생명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단테는 놈의 눈에 맺힌 감정을 읽었다.
-쿠어어어어어어어어!
안광을 터트리며 다시금 비루한 몸뚱어리를 일으키는 모습은 그 자체로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지만, 두 머리에 박힌 눈동자에 맴도는 감정은 분노, 모멸감, 그리고…….
‘공포.’
씨익, 하고 입꼬리를 올린다.
잿빛의 물이 가득 차 있는 콕피트 안에서 손목을 부드럽게 돌리고, 흑색의 머리가 이리저리 휘날리며 가려진 붉은 눈동자에서 안광이 터진다.
‘공포를 느낀다는 건, 죽음을 느꼈다는 것.’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겠는가?
두근, 두근, 두근-.
단테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벤데타의 검은 심장이 미친 듯이 꿈틀거렸고, 그 순간 재생을 끝낸 암피스-바에나는 목 위에 달려 있는 입을 벌려 분노가 담긴 일갈을 내뱉었다.
-미천한 종족의 번견이로구나! 감히! 감히이이!
단테는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짐승의 배를 찢고 나온 귀축이, 되도 않는 고상한 말을 내뱉으며 도발한다고 해서 분노를 할 리가 있겠는가?
당연하게도 말을 나눌 필요성조차 없다.
놈이 이제부터 할 일은 단지, 비루하게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찢기고 또 찢기는 암울한 미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꿈틀.
단전에서 내력이 휘몰아친다.
동시에, 단테는 막 분노를 터트리고 있던 놈을 향해 어떠한 전조도 없이 내력을 폭사하며 도약했다.
쿠구구구구구궁!
대지를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친다.
벤데타의 검은 장갑이 꿈틀거리는 내력의 물결을 따라 뒤틀리고, 나아가 마수와 인간의 핏물과 살점으로 점철된 진창에서 구정물이 튀어 일대를 더럽혔다.
그리고 그 직후, 궤적을 그린 벤데타는 놈이 반응하기도 전 손에 쥔 거대한 흑색 검을 휘두르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파멸참(天魔破滅斬).
우우우우우우웅!
공기가 몰아친다.
내력은 단번에 벤데타의 몸 곳곳에 연결된 케이블을 따라 종횡했다.
곧 검신을 따라 모인 거대한 내력은 단번에 놈을 벨 듯이 쇄도한다.
“미, 미친.”
“……내가 뭘 보는 거지?”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은 그저 입을 벌린 채, 혹은 경악과 경외가 담긴 시선으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머리가 두 개인 드래곤에게 검을 휘두르는, 거대한 갑주를 연상시키는 벤데타의 모습은 흡사 어린 시절 들었던 영웅의 서사시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저건, 단순히 에이스라고 말할 게 아니잖아. 제국 놈들아…….〕
〔빌어먹을, 우리도 처음 본다고!〕
물론 소위 파일럿이라고 불리는 나이트 프레임의 조종사들의 감상은 그것보다 더욱 현실적인, 동시에 미지의 것을 보는 공포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단테가 벤데타를 타고 보여 준 무력은 단순히 나이트 프레임의 파일럿 중 에이스라고 불리기엔 무리가 있는 탓이다.
그래, 무리가 있다.
제국의 군복을 입고, 기동 불가능한 상태까지 몰린 나이트 프레임의 콕피트에 앉아 있던 한 장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대체…… 어느 에이스가 저럴 수 있는데?〕
동시에 자조한다.
저걸 에이스라고 부르면 민폐다.
차라리, 초인이나 괴물 쪽이 조금 더 격에 맞지 않을까?
물론, 모두가 그렇게 감상에 젖어 있지는 않았다.
“지금 군을 뒤로 물린다.”
“예? 하, 하지만…….”
함교에 서 있던 미카엘의 명령에 부관들은 놀라거나, 혹은 단테를 버리는 것이냐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미카엘은 알았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앞을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인상을 일그러트린다.
평소 웬만해선 존대를 입에 담던 그조차도 거칠게 말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동시에 이는 지극히 냉철한 판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버러지가아아!
〔이번엔 팔이다, 도마뱀!〕
단테와 암피스-바에나는 이미 공중은 물론, 그들이 서 있는 지상 아래에까지 무자비한 살수를 흩뿌리며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암피스-바에나는 공중에서 직선으로 지상에 내리꽂히는 섬광을 흩뿌렸고, 단테는 자유자재로 벤데타를 움직이며 놈의 살갗을 찢고, 찌르고, 베고, 뜯어내고 있었다.
“모르겠나! 지금 전선에 있는 병력들 대부분이 단테에겐 인질이라고!”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비슷한 내용의 전문을 각국의 지휘관에게 전송했다.
물론 반응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여기서 전선을 뒤로 물리면-!〕
“저는 지금 법국의 차기 추기경이 아니라, 이 전선의 총 책임자로서 명령하는 겁니다. 이견은 받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것을 모두 권위로 찍어 부른 채 빠르게 전선을 뒤로 물렸다.
당연히 일선 장교들은 역습할 기회를 놓쳤다거나, 혹은 단테를 버린다고 판단하며 불만을 토로했으나 그들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서 있던 뒤에 남은 참호선은 단 하나.
말하자면 바로 뒤가 최후의 보루이거늘, 이리도 쉽게 참호를 포기하자니 속이 쓰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머잖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이이이이! 언제까지고 쥐새끼처러어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피해! 피하라고!”
“으아아아악!”
단테가 정확히 열두 번째로 놈의 한쪽 팔을 뽑아 버리자 격노한 암피스-바에나가 섬광을 쏟아 내었고, 그것이 빗나가 전선에 돌출되어 있던 참호선을 직격한 것이었다.
“아악-!”
“아, 안 돼애-!”
섬광을 응시한 병사와 장교들은 제각기 몸을 내던지며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으나, 섬광이 한번 훑고 간 자리엔 단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구덩이만 파여 있을 뿐이다.
“……물러선다. 빨리!”
“최소한의 엄호 병력만 남기고 뒤로 빼라고!”
“물자?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들고 가!”
그 광경을 보면서 미카엘은 무심결 생각했다.
역시, 인간은 열 마디 말보다 한 번 눈깔에 넣어 주는 게 제일 편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는 일전보다 더욱 강한 믿음으로서 목에 맨 솔라의 묵주를 꽉 쥐었고, 점차 뒤로 물러서는 함교 너머로 보이는 일련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특임대.’
그가 미쳤다고 아무런 생각도, 방책도 없이 군을 뒤로 물렸을 리가 있겠는가.
그는 믿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전선의 지휘를 맡게 되어버려서 특임대에서 잠시 나온 상태지만, 그가 본 특임대는 대륙에서 마수를 배제하는 데에 필요한 인재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보고.〕
전장에 선 세실은 기체의 위에 올라 평이한 목소리로 물었고, 곧 특임대의 중추를 이루는 장교들이 화답했다.
〔강습사단 전원 강습 완료했습니다!〕
〔여기는 함교, 함대 역시 대형을 갖췄습니다.〕
〔나이트 프레임 573기, 전원 강습 완료했습니다.〕
특임대란 본디 마수들을 사냥하기 위한 군이다.
당연히 각국의 군세가 어우러지며 내부의 알력 다툼이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단테의 압도적인 무력에 경도된 이들과 더불어 유능한 참모진이 내부적인 조율을 해 큰 잡음 따위 없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블랙 가드가 개입하지 않은 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세실은 묵묵히 기체의 손에 쥔 녹색 빛을 띠는 창을 한 번 응시하곤 생각했다.
‘우리가 맡은 바 임무는 하나.’
그녀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한다.
저 멀리 허공에서 단테와 암피스-바에나가 격돌하는 모습이 잠시 눈에 들어왔으나 그들이 상대할 적은 네임드가 아니었다.
-쿠어어어어어어!
-끼이이! 끼이이이이이!
그들이 상대할 적은 다름 아닌, 제각기 괴이한 괴성을 내지르며 대지를 가득 메우는 파도처럼 진군하는 마수들이었다.
스읍, 후-.
세실은 낮게 심호흡했다.
동시에, 그녀는 통신기에 말한다.
〔모조리 죽여라.〕
단 한마디.
그녀의 말이 통신기를 따라 특임대의 사이에 울려 퍼진다.
혹자는 긴장에 침을 삼킨다.
혹자는 호승심을 불태웠다.
혹자는 분노에 몸을 떨었으며.
혹자는 복수심에 냉정을 곱씹었다.
전장에 선 이들에게 이유란, 동기란 제각기 다르기 마련이었지만, 결국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일 뿐.
‘모조리 죽인다. 죽이고, 또 죽인다.’
우리를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마수를 죽인다.
대륙을 찢고, 씹고, 맛보기 위해, 게걸스러운 이빨을 나에게, 연인에게, 부모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들이대려는 역겹고도 지긋지긋한 놈들의 몸에 총탄을 먹여 주는 것이다.
〔온다아!〕
콰드드드득!
세실은 그렇게 외치며 앞서 내달리던 상급 마수의 눈에 정확히 창을 찔렀고, 놈은 단번에 뇌가 반으로 갈라져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그건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철컥- 드르르르륵!
특임대원들은 조금 전까지 각국의 군세들이 자리하고 있던 참호 곳곳에 기관총을 거치한 채 밀려오는 마수들을 향해 흩뿌렸다.
강습 대원들과 함께 비행함에서 강습된 궤도 포대들은 보병들의 이동형 토치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끼이이익!
쿠구궁!
나이트 프레임의 파일럿들은 에이스이든, 양산형에 탄 조종사들이든 가릴 것조차 없이 손에 쥔 무기를 꽉 쥔 채 마수들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드드드득!
단테는 어느샌가 손에 쥔 검을 버린 채, 날카로운 벤데타의 손으로 놈의 가슴 깊숙이 손을 박아 넣은 채 심장을 틀어쥐었다.
-커허어억!
오만하던 놈의 태도는 고통과 경악이 담긴 괴성으로 바뀌었고, 단테는 망설임 없이 놈의 심장을 쥔 채로 말했다.
〔어디, 심장이 터져도 살 수 있나 보지.〕
비릿하게 입꼬리를 비튼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아주 잘 지킬 자신이 있었다.
백월신공(白月神功).
만월파멸격(滿月破滅擊).
-끼이이이이이이이!
놈의 심장이 단테의 손끝에서 일렁거리는 백색의 섬광에 뒤덮이고, 이윽고 몇 번의 점멸의 끝으로 터져 나간다.
파아아아아앙!
폭음과 더불어 이번엔 가슴팍의 뼛조각과 함께 살점이 벤데타의 정면을 뒤덮었다.
단테 역시 충격파에 밀려 대지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쿠우우웅!
벤데타의 육중한 하체가 대지를 디딘다.
동시에, 단테는 허공에서 추락하는 놈을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심장도 아닌가.〕
놈은, 이번에도 재생하고 있었다.
기갑천마
암피스-바에나 (3)
‘……심장도 아니다.’
단테는 추락하다 말고 찢어지다 못해 내부가 반죽이 된 가슴의 재생을 이어 나가는 암피스-바에나를 응시하며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곱씹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삶을 역행하고 죽음을 거부한다고 한들…… 심장을 터트렸음에도 이번엔 추락조차 끝나기 전에 재생한다니, 그건 허리를 반쯤 갈랐을 때보다 더 여력이 남았다는 소리가 아닌가.
‘허리를 반절로 잘라도 안 되고, 심장을 터트려도 재생 한다라…….’
이제까지 마주친 적이 없는 놈이다.
물론 근본부터가 괴이하고 그릇된 마수들이기에 상식 이상의 재생력을 보여 주는 개체도 여럿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명체의 범주 또는 강자의 여력 정도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의문인 것이다.
‘강하지 않다.’
전선의 병사들이나 함교에 서 있던 미카엘이 단테의 속마음을 듣는다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되묻고 싶은 말이겠지만, 진실이 그러했다.
놈은 강하지 않다.
여왕과 비교할 것까지 없이, 단테가 불과 10시간 전에 죽이고 왔던 거대한 눈동자는 그 존재만으로 전선 하나를 통째로 궤멸시킨 데에 반해, 암피스-바에나는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슬아슬하긴 했으나 전선은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덕분에 단테도 놈을 단번에 찢어발긴 것이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약점은 무엇일까…….’
-죽이겠다아아! 죽여 버리겠어어어!
단테는 뻗어지는 섬광들을 피하면서 고심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폭음과 더불어 자욱한 안개와 섬광이 당장이라도 단테를 태우고 있는 벤데타를 잡아먹을 듯이 번뜩였으나, 정작 단테에겐 닿지 못했다.
물론 오래 끌어서 좋을 건 없다.
비록 7일에 걸쳐서 대환단을 받아들여 벽을 넘었다고 한들, 그것이 온전히 전생의 경지보다 더욱 높은 곳에 데려다주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력만 넘쳐흐른다고 모두가 경지를 넘을 수 있었다면, 이미 일전 무림에서 온 무림의 영약을 모아 고수들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어 결사대를 만들었을 테니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단테는 또다시 곁을 스친 폭음에 힐끔 시선을 올려 날뛰는 암피스-바에나를 응시했다.
딱히 좋은 생각이 난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지금 해야 할 일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죽이고, 죽이고, 죽인다.’
꿈틀, 하고 내면의 내력이 움직임과 동시에 벤데타 역시 안광을 터트린다.
허리를 끊고 혈관을 터트린다.
살점을 뜯고, 가죽을 찢는다.
장기를 뽑고 뼈를 부러트린다.
눈알을 찌르고 혀를 적출한다.
단테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생각인지, 벤데타가 읊조리는 것인지 모를 방법들이 그의 뇌리를 스쳤으나, 어차피 구분은 무의미했다.
히죽.
단테는 입꼬리를 올렸다.
동시에 벤데타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섬광을 피하며 입을 가로막고 있는 철갑을 뜯고는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이미 놈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마수들이라고 단테와 암피스-바에나의 전투를 경의 담긴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턱이 없었고, 당연하게도 놈들은 섬광이고 뭐고 단테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키이이이이!
-캬아아아!
괴성 소리만 놓고 본다면 벤데타나 마수나 똑같은 짐승처럼 들린다는 점이 다소 우습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로한!〕
특임대 역시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세실은 거대한 녹색 창을 들어 눈앞의 거미와 오크를 반쯤 반죽한 듯한 괴이한 마수를 반으로 갈라 버리곤 일갈했고, 동시에 로한 역시 기체의 손에 쥔 라이플을 앞으로 뻗으며 마나를 메인 코어에 밀어 넣었다.
우우우우웅!
마나를 머금은 메인 코어는 맹렬하게도 진동하며 회전했고, 나아가 그의 기체 레기온은 붉은 장갑보다 더욱 붉은빛을 번뜩이며 전방을 향해 가지고 있는 모든 총구를 겨눴다.
철컥-!
묵직한 울림이 기체의 관절을 따라 콕피트 안의 로한에게 온전히 전해지고, 그는 침을 한번 삼킨 채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전투는 언제나 달갑지 않은 일이다.
미쳤다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장에서 쾌락을 느낄 리가 없지 않은가.
리베라거나, 혹은 세이티나인디 세티나인지 모를 그 원로 빼고는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다 뒈져어어!〕
투두두두두두두두두!
콰드드드드득!
오직 레기온을 위해 쥐어진 마나의 총탄을 마수들에게 박아 주는 것이라면 그도 반기면 반겼지, 거부할 일이 절대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그처럼 총을 쥔 것은 아니다.
당장 보리스나 세실까지 가지 않아도 이젠 한 사람의 군인으로 대우를 받는 유엘과 페고르만 해도 이를 악물고…… 혹은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대검과 창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비단 그들뿐만이 아닌, 특임대의 모든 일원은 물론 전선의 후퇴를 돕기 위해 남은 군인들은 본능적으로 단테를 향하려는 놈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대군주를 못 막으면 모두 끝이야! 우린 여기서 죽는다!〕
〔시발! 애 아빠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빌어먹을……!〕
나이트 프레임에 탄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있는 화력 전부 끌어다 박아!”
“하, 하지만 전방에 기갑기들이-!”
“그렇다고 포대를 전부 놀려? 어차피 우리가 안 쏘면 다 뒈진다고!”
포병들의 수중에 들어있는 마력포는 마석이 동날 때까지 미친 듯이 포신을 뜨겁게 달궜다.
그건 궤도 위에 실린 포탑들 역시 매한가지였다.
콰아아아아앙!
이미 포병들 중 몇몇은 폭음에 귀가 멀어 갈 지경이었고, 나아가 전선에 투입된 나이트 프레임을 오인 사격을 할 가능성도 적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포격을 멈출 수도 없었다.
어차피 나이트 프레임은 어느 정도의 충격 정도는 충분히 받아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당장 인류가 꺼낼 수 있는 카드 중 폭격은 배제할 수가 없는 탓이다.
“갈겨어어어어!”
“카트리지나 가지고 오십쇼! 이러다가 화망 뚫리면 그땐 마수들의 개껌 되는 거라고요!”
물론 그건 보병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기관총은 쉴 틈 없다 못해 총열이 터질 정도로 혹사되었고, 일반 화기조차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아무런 소득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단테는 무능하지 않았다.
-커어어어억! 아, 앞이! 앞이이이!
단테를 반드시 찢어 죽이고 말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암피스-바에나도 두 번이나 겪은 죽음의 공포에서 느낀 점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꼬리 쪽에 있는 머리를 움직여 벤데타의 거동을 제한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 움직임은 단테가 놈의 눈알을 뽑아내는 것을 수월하게 했을 뿐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에 찍힌 눈알은 족히 작은 문짝만 했으나 벤데타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취했고, 뒤를 이어 단테는 내력을 끌어모아 놈을 향해 출수했다.
구태여 무공을 섞진 않았다.
첫째로는 급격한 움직임 중이었던지라 미처 여력이 되지 않았던 데다가, 둘째로는 어차피 죽이려는 마음은 거둔 후였기 때문이었다.
‘놈도 고통은 느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구태여 공포도, 분노도, 일갈도 터트리지 않고 그저 시간을 질질 끌거나 아예 단테를 무시한 채 전장을 박살 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놈은 어떤가?
놈은 분노하고 있었고, 공포에 떨었으며, 나아가 그것을 감추기 위해 단테를 향해 침을 튀기며 짖어 대고 있다.
놈은 고통을 느낀다.
일단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번엔 머리를 날려 보자꾸나.〕
-감히이이! 감히이이이!
단테의 손끝에서 내력이 응집된 일종의 환(環)이 생성되는 바로 그 순간, 또다시 죽음의 위험을 느낀 암피스-바에나는 단테를 감싸듯이 술식을 펼쳤으나,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후였다.
쿠드드드드드드득!
-끼, 끼이이이이이!
눈알이 뽑힌 자리에 강렬한 열기와 힘을 가진 폭탄이 터지면 어떤 기분일까?
단테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술식의 잔형을 꿰뚫고 대지로 잠시 떨어져 내리며 조소했다.
하지만 그 순간.
-더는 못 봐주겠군. 쯧!
이제까지 오만하고 경박했던 암피스-바에나의 목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중후하게 바뀌었다.
그 안에는 일말의 두려움이나 분노 따위는 담겨 있지 않았다.
위화감이 드물게 단테를 맴돈다.
단테는 시선을 옮기니…….
아니나 다를까,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는 육신을 소모할 생각하지 마라, 멍청한 놈.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눈이 뻥 뚫린 바로 그 자리가 폭발해 입만 뻐끔거리던 목 위의 머리의 눈에 초점이 사라진다.
물론 이전처럼 안광을 터트리긴 했으나 한쪽짜리 눈으로 인형처럼 추욱 늘어지는 모습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쿠우우우우웅!
때마침 놈에게 닿기 위해 대지를 박찬 벤데타의 거체가 다시금 전장의 땅 위에 섰다.
균형을 잡고 하늘을 지켜본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곧 단테는 무심결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바에나-암피스라고 불러 줘야 할는지.〕
우습다는 멸시가 뒤섞인 한마디였으나 아무도 단테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지금 육신이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뿌드드득!
본래 꼬리였던 것은 치켜세워져 목이 된다.
이미 순리대로 정해졌던 팔과 다리의 관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떤 저항도 없이 뒤틀렸다.
변형은 비단 팔다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놈의 몸체가 완전히 정반대로 뒤집히는 것이다.
‘꼬리가 주도권을 잡았나.’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단테는 순간 뇌리에 무언가 한 가지 흥미로운 방법이 스침을 느끼며 놈을 응시했다.
때마침 놈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힘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천치가 육신의 키를 잡아 네놈에게 뜻하지 않은 결례를 범했군. 이제부터 제대로 대적하겠다.
중후한 목소리에는 이제까지 엿볼 수 없던 신중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것이 놈을 존중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으리라.
단테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도 않고 내면에 각인한 채, 통신기를 쥐었다.
그러나 연결된 것은 특임대가 아니었으니.
〔남궁연희.〕
찰나의 정적.
〔네.〕
이윽고 돌아오는 화답.
〔미친년이 필요하다.〕
단테가 그리 말하자 통신기 너머의 남궁연희는 다른 비행함보다 배는 높게 올라가 있는 함교 내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며 화답했다.
〔딱 좋은 년이 있긴 하네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시선 끝에 닿은 이는 다름이 아니라 함교 내에서 구속복을 입은 채 어떻게든 과자를 집어먹고 있던 세이티나였다.
“세이티나.”
“움?”
남궁연희는 나긋하게 그녀를 불렀다.
당연하게도 세이티나는 그녀가 자신을 부른 의미를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기에, 이내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린 채 입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과자들을 우득, 씹고는 이어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내심 기대하고 있음을 느낀 남궁연희는 싱긋 웃으며 물었으니.
“미친년이에요?”
“……어?”
세이티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끼야아아앗!〕
세이티나는 곧 구속복을 벗은 채 기체-네카토르 위에 올라 그대로 놈을 향해 추락했다.
기갑천마
암피스-바에나 (4)
〔끼야아아앗!〕
세이티나가 내뱉은 괴성은 그 자체로 그녀가 단테가 바라고 남궁연희가 불러 마지않은 미친년임을 시사했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군인들에게 잘 보이지도 않는 상공에서 추락하는 보랏빛 기체는 그 자체로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저, 저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군이겠지?”
당연한 일이다.
에이스가 타는 전용기는 그 자체로 양산기와 다른 개성적인 외양으로 눈길을 끄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특히 벤데타와 같은 0세대 나이트 프레임인 네카토르는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에이스 파일럿의 기체와는 궤가 달랐으니까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앙!
세이티나의 쾌활한, 어쩌면 광기가 느껴지는 외침과 함께 추락한 거대한 기체는 사방에 핏물과 뒤섞인 진창을 튀도록 만들었다.
……참으로 그녀다운, 미친년다운 등장이다.
그런 감상은 단순히 단테에게만 닿지 않았는지 꼬리가 주도권을 잡은 암피스-바에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쯧, 경박하기 짝이 없는 미물이구나.
일전보다 중후해지긴 했어도 인간을 미물 따위로 낮잡아 부르는 그 특유의 말투까지 고칠 수는 없었는지, 아니면 딱히 고칠 이유가 없었는지는 몰라도, 놈은 그렇게 읊조리며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대지를 디딘 세이티나를 응시했다.
그러나 달라진 점 역시 있었다.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은 여전했으나 놈의 시선 안에는 이전과 다른, 명백한 경계가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한없이 무능하게 광선만 쏘아 대면서 꼴에 같잖은 시선으로 인간을 내려다보던 일전에 비해서 꼬리 쪽에 달린 머리는 그나마 이성이랄 게 남아 있는 놈이라는 증거였다.
물론, 그것이 인류에게 좋은 일인가?
……라고 되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었지만 말이다.
일전에 바보 놈을 갈가리 찢어발기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바보인지, 아니면 바보가 아닌 척하는 건지 모를 놈을 갈가리 찢어발겨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단테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미 힘의 격차는 확실했고, 놈의 미래는 그리 쉬이 바뀌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조금 번거로워졌을 뿐.
그런 단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 대지에 발을 디딘 채 특유의 보랏빛 기류를 줄곧 뿜어내던 세이티나는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올리며 단테에게 물었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 건데?〕
이미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구속복이 아니라 나이트 프레임의 파일럿들이 입는 제복이었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단테가 답할 것 역시 하나뿐이라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덤빌 게 아니라면, 할 일은 하나인 걸 알고 있을 텐데?〕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한데, 일단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네. 크핫!〕
단테의 답은 세이티나에게 해야 할 일을 적시하는 동시에 괜한 흥에 취해 깝죽거리지 말라는 타박이었기에 그녀는 잠시 눈을 번뜩이며 혀로 입술을 한번 훑었지만, 그뿐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기다린 답과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이슈페인의 대의, 혹은 같잖은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 이상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쓰임새를 인정받거나, 그게 아니라면…… 처분되거나.
물론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뭐, 아쉽긴 하지만.’
그녀가 이슈페인의 편에 선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갈증이었다.
처음 이 땅에 떨어졌을 땐 어이가 없었다.
본디 그녀를 비롯하던 대공들이 지배하던 마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마수들이 들이닥친 것도 어이가 없는데, 패한 것도 모자라 죽은 후 눈을 떴더니 그 지긋지긋한 마수들이 날뛰는 곳이라니?
어이가 없다는 말도 지극히 순화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비록 마인화를 하고 본신의 힘을 꺼내기 위해 적잖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등의 부작용은 있었지만, 그 덕에 오갈 데 없던 복수심과 살심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때 나타난 게 바로 블랙 가드였고, 더 많은 마수, 더 나아가 대군주라고 명명된 마수들의 왕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꺼이 조직에 몸을 담았다.
‘그땐 몰랐지, 피도 몇십 년을 보다 보면 질린다는 걸.’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마수를 죽이고 또 죽이는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놈들을 죽이는 것 자체는 여전히 기꺼운 일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 맞는 말이리라.
때늦은 헛바람인지, 아니면 잃었던 것에 대한 갈증인지는 모른다.
-제안을 하지요. 세이티나.
그때 다가온 이슈페인이 그리는 그림은 근본적으로 그녀의 갈증을 해결해 줄 명안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대안 정도는 되어 주었다.
‘하지만 제대로 망했고.’
세이티나는 히죽 웃었다.
망했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이슈페인의 반란은 너무나도 손쉽게 제압당했고, 그녀는 이슈페인보다 마음 편하게 대안을 포기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이제 와 쓰임을 증명해야 한다면 그녀는 기꺼이 할 생각이었고, 남궁연희 역시 그런 세이티나를 알기에 기꺼이 구속복을 풀어 준 것이리라.
결국, 그렇다면 답은 하나이지 않은가.
〔그럼, 어디 한번 날뛰어 볼까!〕
세이티나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일전의 흉터가 있음에도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얼굴이었으나 그것도 찰나였다.
콰아아아아아앙!
파아아악!
일전 공중에서 추락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한 반동력에 작은 구덩이마저 파여 허공으로 보랏빛 거체를 하늘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하찮다!
놈의 발작적인 태도는 은연중에 그녀로부터 위협을 느껴 경계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방증임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아도 되리라.
끼기기기기기기-!
보랏빛의 섬광을 그림자처럼 이끄는 네카토르는 특유의 악마와도 같은 모습으로 날카로운 발톱을 앞으로 뻗는다.
물론 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이미 주도권이 꼬리에 달린 머리에 넘어간 암피스-바에나의 입이 쩍 벌어지고 일전보다 배 이상의 출력을 가진 섬광이 그녀에게 향했다.
여전히 되도 않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공격의 방식도, 그에 대한 대처도 목 위에 붙어 있던 놈보다 빨랐고, 또한 이성적이었다.
〔허.〕
때문에 단테는 실소를 흘렸다.
그 광경은 단테에게 놈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시사함과 동시에 가설에도 힘을 실어주었지만, 우습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감흥은 찰나일 뿐.
뿌드득-!
단테는 손을 풀었다.
그와 동시에 벤데타 역시 단테의 움직임을 그대로 답습했다.
시선을 위로 올린다.
이윽고 단테는 마침 격돌하는 암피스-바에나의 흰 섬광과 세이티나의 기체에서 뻗히는 보랏빛의 기류를 응시했다.
곧 단테가 눈을 한번 깜빡이는 순간 격돌하여 사방에 폭발의 잔향을 흩뿌렸다.
파앗 하는 파공음이 스친다.
하지만 그것은 곧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
이윽고 몇 번의 빛이 점멸했고, 곧 뒤를 이어 파도가 몰아치듯 엄청난 바람과 폭발음이 전장을 뒤덮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섬광의 격돌은 빛이 빛에 잡아먹히는 구도로 흐르리라 예상되고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제각기의 형형색색의 빛들이 얽히고설키며 현실에 도래하기 위한 서로의 촉매가 되었을 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몇 차례나 더 폭음이 울렸다.
그 폭발의 여파는 순식간에 암피스-바에나의 머리와 세이티나의 기체를 게걸스럽게 삼켰다.
그것을 지켜보던 전장의 모든 눈동자는 어느 쪽이 우세를 잡았는지조차 쉽사리 점치지 못해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로선 비록 단테가 아니라고 한들, 척 보기에도 에이스 중 수위에 달하는 그녀가 패배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충격일 테니 말이다.
〔……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이 머지않아 보게 된 건 엄청난 굉음과 파장을 꿰뚫고 추락하는 네카토르나 암피스-바에나의 모습 따위가 아니었고, 다름이 아닌 벤데타가 솟구치는 광경이었다.
쿠구궁!
일전 네카토르가 대지에 폭탄을 터트린 듯한 잔해를 남긴 채 솟구친 것과는 대비되는 조용하고도 묵직한 울림이었다.
“세상에!”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그 사실만으로도 황홀한, 또는 전율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은 이윽고 단테가 뻗은 마나, 정확하게는 내공의 궤적을 보며 전율했다.
다만, 그가 향한 곳은 모두의 예상과는 달랐다.
단순히 육안으로 보기엔 세이티나가 노린, 꼬리에 달린 목이 아니라, 이제는 침묵한 본디 목이었던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것이 그가 적의 등을 취하려 한다고 파악했고, 그건 특임대의 일선을 맡은 세실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듯싶군.〕
하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단테가 향한 곳은 놈의 등 따위가 아니었으며, 되레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이제는 역으로 꼬리가 되어 버린 또 다른 머리라는 것을 말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묵환강(天魔黙丸鋼.)
묵빛의 마나가 단전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혈도를 따라 종횡하고, 머잖아 손끝으로 뻗어져 단테의 의지를 만천하에 흩뿌린다.
그러나 일전의 그것과는 달랐다.
“……훗.”
남궁연희는 그저 옅게 미소 지었다.
“허.”
사마제천은 실소와 더불어 내면에 꿈틀거리는 기이한 감정을 애써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숨겼으며.
“맙소사.”
“……끝났군.”
이미 단테를 알고 있던 특임대를 비롯한 군인들은 애써 튀어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삼키거나 공허한 웃음으로 심정을 대변해야 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테의 의지를 대변한 벤데타의 손끝에서 뿜어지는 건 더 이상 섬광이나 빛의 구 따위의 수식어와는 닿지 않는 무언가였으니까 말이다.
-미, 미물!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반쯤 녹아내린 머리를 돌리며 내뱉어진 암피스-바에나의 경악 어린 목소리와 합쳐진 그것은 이미 신화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그건 놈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이제까지 어디까지나 심증, 내지는 해 볼 만한 시도쯤으로 여기고 있던 일이 놈의 평정을 앗아 간 순간, 단테는 조금의 무리를 더해 환강의 폭력을 더했다.
〔어딜 보는 거야! 쿨럭!〕
동시에 세이티나 역시 단테가 하고자 하는 일의 진의를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깊게 파고들자면 그건 이해나 눈치의 영역보단 본능에 가까웠으나 어찌 되었든 단테가 하고자 한 일에 도움이 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꺄하하핫! 뒈져 버려!〕
세이티나는 이젠 광기나 마인화를 제어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보랏빛 섬광을 줄줄 흘리며 머리를 반쯤 돌린 놈의 미간에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다.
우우웅-!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단테의 벤데타 역시 그 체구와 맞먹는 거대한 내력의 구를 놈의 또 다른 머리에 향했다.
-아, 안 돼애애애애애애!
당연하게도 퇴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암피스-바에나는 한쪽밖에 남지 않는 눈을 부릅뜬 채로 일갈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내, 내가! 내가아아! 고작 이딴……!
그러나 그때.
〔시끄럽다, 버러지.〕
내공을 무리하게 짜낸 피로감으로 얼굴에 살짝 핏기가 가신 얼굴로 단테는 콕피트 안에서 노곤한 어조로 읊조렸고.
콰드드드드드득!
파아아아아아앙!
이어진 것은, 단지 전장에 울리는 유례없는 피육음과 더불어 일전 눈동자를 터트렸을 때보다 더욱 많이 쏟아지는 육편과 혈수일 따름이었다.
기갑천마
최종장의 서막
얼마 전, 아니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채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최상급 마수를 잡았다고 말한다면 아마 군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헛소리, 또는 농담으로 생각하고 웃어넘기거나.
아니면 마약이나 정신병 따위로 병원에 집어넣거나 말이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와.”
“허.”
누군가는 어색하게 실소를 흘렸다.
누군가는 아득해진 현실감에 주저앉았으며.
누군가는 자신이 전설 속에 서 있음을 실감하며 뺨을 꼬집었다.
심지어 이 전선에 서 있는 군인 태반은 단테가 불과 10시간 전, 또 다른 네임드를 끝장내고 왔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음에도 그러했다.
……당연한 일이다.
당연해 마지않는 일이다.
조금 전까지 오만한 소리를 내뱉던 네임드는 그 본질이 마수였으되, 그것을 관철할 힘이 있었기에 누구도 놈의 말에 개소리라 화답하지 못했고, 그저 가축처럼 죽어 갈 뿐이었다.
하지만 단테가 도래한 이래 어떤가.
그 가축처럼, 인간을 도축하던 놈의 삶이 몇 번이고 꺼지지 않았던가!
처음엔 허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다음에는 심장이 뽑혔으며.
종국엔 머리 두 개가 동시에 터짐으로써 비로소 그저 하나의 거대한 고깃덩어리로 돌아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단테! 단테에에!”
감탄은 경외로, 경외는 곧 환호로 변모한다.
전선에 선 군인들은 물론 나이트 프레임에 오른 파일럿들조차도 대지를 디딘 벤데타 안에 있을 단테를 연호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임대, 빠르게 정리를 시작한다.〕
시작은 세실의 명령이었다.
〔최대한 몰아치세요.〕
그리고 이어진 블랙 가드의 명령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네임드가 죽었다는 단순 명제에 흥분하기엔 특임대와 블랙 가드는 너무나도 많은 전투를 겪어 왔다.
일단 첫 번째로 마수들은 네임드가 죽어 주춤했으면 주춤했지, 쉽사리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단테 역시 무사했기에 그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단순 계산해도 네임드를 4번 죽인 거야.’
콰드드드득!
세실은 미간을 좁힌 채 달려드는 마수의 턱과 입 사이에 정확히 창날을 꽂아 넣으며 생각했다.
아마 당주인지 뭔지 하는 여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단테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으리라는 것 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괜찮아?〕
막 암피스-바에나를 생기 없는 고깃덩어리로 다져 놓은 단테의 앞으로 다가온 세이티나의 물음에도 단테는 곧바로 화답하지 않았다.
물론 역소환이 될 정도라거나 중상을 입어서 그런 건 아니었으나…….
‘쯧. 쓸데없이 힘을 낭비했어.’
욱신거리는 단전.
밀려오는 두통.
저릿한 손목과 간헐적으로 경련하는 근육들.
무리를 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일전에 세실이 짚었듯이 단순 계산만 해도 네임드와 네 번의 전투를 치른 셈이니까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는 이윽고 시선을 전장으로 돌렸다.
‘나머지는 맡겨도 되겠군.’
단순히 피곤하다고 떠넘기는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네임드가 사라졌으니 그가 없어도 전선을 정리할 여력은 차고 넘치는 것이다.
〔네임드가 사라졌다!〕
〔전 함대! 돌격!〕
시작은 이제까지 제공권을 잃었던 것에 악에 받친 비행함들이 대거 앞으로 약진한 것이었다.
그들은 동력원인 마석이 과열되어 터질 때까지 앞서며 마력포를 마수들에게 쏟아부었다.
수십 척의 거대한 비행함이 일제히 퍼붓는 마력포는 여전히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마수들을 그야말로 한 줌의 혈수, 내지는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끼, 끼기기기기!
콰아아아앙!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마 놈들이 인간과 말을 나눌 수 있는 지성이 존재했다면 아마 제공권의 상실을 토로하며 울부짖지 않았을까?
물론 의미 따위는 없는 말이었겠지만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마력포들은 정말 무차별적으로 내리꽂혔다.
〔모조리 쏟아부어! 갈기라고!〕
〔여, 여분의 마석이 없습니다!〕
〔그럼 다른 함선에서 빌려 오든가!〕
제공권이 상실되었음에도 후방에서 적에게는 닿지도 않는 마력포를 쏘아 아군이 갈려 나갔던 것에 대한 참회인지, 아니면 이제야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환희인지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끼, 끼이이이이익!
콰드드드드드득!
비행을 할 수 있는 놈이 맞서거나.
무언가를 쏠 수 있는 놈들이 마력포를 격추하거나.
하다못해 두꺼운 외피나 갑주를 가진 놈이 포격을 버틴다고 한들, 놈들의 미래는 단지 고깃덩어리가 되어 나뒹구는 것뿐이라는 걸 말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까지 네임드의 비호 아닌 비호로 마수 쪽이 전장에서 우세를 점했다는 것은, 네임드가 사라지면 마수의 우세 역시 한때의 환상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뜻했음이 자명했으니 말이다.
-까, 까드득!
다만, 마수들에겐 그것을 점칠 지능이 없었음이 놈들에겐 불행이었을 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비행함의 포격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이내 동력을 위한 최소한의 마석만이 남자 일제히 전선을 이탈했다.
물론 그것이 전선의 소강상태를 뜻하진 않았다.
〔으아아아아아!〕
〔죽어어! 죽어어어어!〕
이미 마력포 세례에 한차례 초토화된 마수들은 악에 받친 나이트 프레임들의 먹잇감에 불과했고, 특임대는 전선에 남아 있는 군인들과 보조를 맞추며 빠르게 남은 마수들을 한 줌의 육편과 혈수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그사이, 단테는 세실 등의 호위를 받아 전장을 이탈한 후였고 말이다.
아직 여력이 남은 세이티나가 전장의 최전선에서 날뛰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하하하핫!〕
네카로트 특유의 보랏빛 섬광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수많은 마수들이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으나, 누구도 그것에 대해 동정을 입에 담지 않았다,
직후, 전장에는 악에 받친 군인들의 외침과 마수들의 고통어린 괴성만이 자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당연하면 당연하게도…….
“쓸어버려!”
“깡그리 죽인다!”
놈들에게 동정을 던지는 이들은 그 누구도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