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를 필두로 한 특임대는 네임드를 죽인 직후, 잠시 머무르라는 만류에도 곧바로 전선을 향해 다시금 날아올랐다.
물론, 지상에서 단테만 탑승한 건 아니었다.
“열차에서 소개했지만 다시 소개해야겠군요.”
아스렌은 자신을 떨떠름한, 또는 흥미가 간다는 얼굴로 지켜보는 특임대의 이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로 손을 올렸다.
스윽.
정갈하게 눌러 쓴 중절모를 벗어 가슴팍에 가져다 댄 후 허리를 숙인다.
흔히 신사들이나 할 법한 예법.
“3대 패밀리 중 제일인 드사 노스라의 조직원으로서 제국 지부에서 활동 중인 아스렌 벤투스 드사 노스라. 그리고…….”
이윽고 고개를 살짝 올린 그는 가볍게 웃음을 흘린 채 덧붙였다.
“블랙 가드의 제3 원로이자 정보국장입니다.”
“정보국장?”
그의 말에 단테는 실소를 흘렸고, 리베라와 로한은 물론 다른 특임대의 간부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 가드의 명성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상관없이 널리 퍼트린 이가 누구인가.
다름이 아닌 ‘압도적인 정보력’이다.
그런데 눈앞에 그것을 진두지휘하는 직위에 있다고 말하는 이가 서 있었으니, 그들로서는 내심 신기하면서도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여태까지 우리 정보의 원천이……. 엘프들이었다고?”
로한은 그렇게 반문했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은 아스렌이 아니라 함교 한쪽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남궁연희였다.
“정확히는 엘프 쪽 정보망의 도움도 있었다고 봐야겠죠? 설마 정보 자원이 마피아만 있을 리가요.”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시사하는 말이었으니, 아스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전부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마피아들이 쥐고 있는 정보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그럼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겠군.”
“만날 생각으로 프란틴으로 향한 건 맞지만, 열차 내에서의 조우는 정말로 우연이었습니다. 그 열차 습격부터가 저희 쪽은 정보가 없었거든요.”
아스렌은 싱긋 웃음을 흘렸다.
단테는 잠시 놈의 웃음이 만연한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이윽고 찔리는 게 있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남궁연희의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고, 정보나 뱉어라.”
“어…… 의외네요?”
“뭐가?”
뭐가 의외라는 것인지 묻는 단테의 말에 아스렌은 이번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머리를 한번 긁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솔직히 딱 죽기 직전까지 맞을 건 각오했거든요. 하핫!”
단테의 성격은 뭐랄까,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말해야 할까?
때때로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패도를 지향하는 듯하면서도 그 자신만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타인과 자신의 안위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무심한 듯하면서도 막상 결정적일 때가 되면 무심결 망설이는 모습도 보인다.
거기에 아스렌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쨌든 단테를 속였고, 그건 그가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단테가 참는다고?
비단 아스렌 뿐만이 아니라 로한과 리베라, 보리스 등 역시 묘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곤 단테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지금 네놈을 죽인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나.”
“지극히 합리적인 말씀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입을 열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딱 죽기 직전까지만…….”
단테의 말이 끝나기도 전, 아스렌은 곧바로 함교의 중심부로 빠르게 걸어가 품속에서 꺼낸 작은 수정 칩을 함교의 조정패드에 밀어 넣었다.
끼릭,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뜩인다.
그렇게 몇 초나 흘렀을까?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함교 내에서 가장 큰 스크린에 그들이 향하는 전선의 지도가 펼쳐지고, 아스렌은 곧 중심부에 보이는 거대한 검은 원을 가리키니.
“모든 전역을 분석해 본 결과, 대군주가 둥지를 튼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게 바로 놈이죠.”
아스렌은 그렇게 말하며 슬며시 단테의 눈치를 살폈다. 단테가 계속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이었다.
“대충 면적은 작은 산맥 하나쯤 되겠군요.”
“허.”
“쓸데없이 크기도 하네.”
보리스는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었고, 로한은 으레 그랬듯이 담배를 입에 물고 너털웃음을 흘렸다.
물론 아스렌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현재까지 모습을 드러낸 네임드는 조금 전 대령, 아니. 준장님께서 죽이신 놈이 전부였습니다. 정확히는 조금 전까진 말이죠.”
-조금 전까지는 말이죠.
그 말이 시사하는 바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한 이들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고, 아스렌 역시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화면을 넘겼다.
“이름도 없이 뒈져 버, 아니. 죽어 버린 눈동자 괴물과는 달리, 놈은 말을 한다고 하더군요. 스스로 이름도 밝혔습니다.”
“뭐지?”
침묵하던 단테는 되물었고, 아스렌은 단테가 당연히 물어볼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화답했다.
“암피스-바에나.”
그것을 들은 세실은 단번에 뜻이 룬어라는 걸 깨달았다.
이윽고 보리스가 나지막이 그 뜻을 읊조렸다.
“양쪽으로 가는 것?”
그리고 곧,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암피스-바에나의 모습을 확인한 그들은 어째서 놈의 이름이 그런 의미를 지녔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영원의 굴레, 반복되는 연옥, 끊어지지 않는 순회이니라.
전선의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맑았다.
하지만 그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솔라교의 신도들이 그토록 읊조리는 밝디밝은 태양이 아닌, 거대한 용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
“머리가 2개?”
흥미롭다는 듯, 혹은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다는 듯이 호승심이 찬 눈과 목소리로 중얼거린 리베라의 말대로 거대한 용의 육신에 자리를 잡은 머리는 두 개였다.
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쌍두룡(雙頭龍)과는 다른 것이었으니, 놈의 한쪽 머리는 다름이 아닌 본디 꼬리가 달려 있어야 할 곳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은 로한은 그 자신도 의식하기 전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별 해괴한 놈들이 다 나타나네.”
그가 내뱉은 말은 지극히 조소적이었으나 동시에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불과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용…… 아니, 드래곤을 보는 것으로도 평생 가는 업적 내지는 저주받은 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 않았던가?
한데 채 반세기를 넘겼다고 이젠 목 위가 아닌 엉덩이에 머리를 달고 다니는 드래곤을 본 그들로선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저게 전부인가?”
단테는 그렇게 말하곤 어느새 입에 물고 있는 푸른 숨결을 한 모금 삼켰다.
아스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직까지는 말입니다.”
“전선까지의 거리는?”
“대략 열 시간 후면 도착할 듯싶습니다만.”
그들이 있던 후방에서 지원하던 전선으로 곧바로 직진하는 것이었다면 비행함인 만큼 열 시간이 아닌 한 시간이면 도착했겠지만, 저 네임드 암피스-바에나가 나타난 전선으로 가려면 남쪽으로 향해야 했다.
“알겠다. 잠시 쉬고 있지.”
때문에 고개를 끄덕인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객실로 향했다.
뒤에서 그를 지켜보는 특임대원들의 시선을 가볍게 흘려 넘기며 복도를 걷는다.
터벅터벅…….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를 위해 일부러 비워 둔 객실 앞에 다다른 단테는 문득 드넓은 창밖으로 보이는 전선을 내려다보았다.
“…….”
고도가 높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청력이 좋아졌다고 한들 저 아래 거대한 괴수들 발아래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도 없다.
때문에 단테는 그저 묵묵히 아래를 보았다.
폭발하는 나이트 프레임의 연기.
무너진 전선에서 마치 개미떼처럼 퇴각하는 보병들과 그들을 엄호하는 무수한 포격.
그리고 둥지가 있을 방향에서 끝도 없이 밀려오는 마수들의 파도까지.
“……대군주.”
단테는 시선을 옮겼다.
그가 향한 방향에는 꽤나 먼 거리임에도 한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렸고, 곧 그는 붉은 안광을 터트리며 나지막이 읊조렸으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건 스스로와 대군주에게 동시에 내뱉는 약속이었다.
기갑천마
암피스-바에나 (1)
〔솔라의 이름으로!〕
〔영원한 빛으로 우리를 보우하소서!〕
광신적인 외침이라기엔 지극히 처절하다.
적어도 그들의 현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저 단 5분 만이라도 전장의 상황을 지켜본다면 그들, 법국의 나이트 프레임 파일럿들이 외치고 있는 저것 말들은 그저 몸을 움직이기 위한 자기 세뇌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끄아아아악!〕
〔아, 안 돼애!〕
믿음은 언제나 배신을 담보로 한다.
그리고 법국의 파일럿들은 지금 그 믿음에게 배신당하며 비루하게 죽어 가고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찾던 솔라 신은 어디에 있는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비루하게 죽어 가야 한단 말인가?
죽어 가는 모든 이들은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게 될 태양을 응시하며 답을 갈구했으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응답은 없었다.
-가여운지고. 영원히 돌아가는 어버이의 굴레 속에서 그저 한때를 차지하는 종족이여.
용, 아니 거대한 드래곤의 형상을 한 놈의 머리 쪽에 달려 있는 머리가 그렇게 말하며 입을 쩌억 벌리자, 그 순간 허공에 기이한 형상들이 맺힌다.
우웅-!
마나가 공명하는 소리가 울렸다.
기이하게 엮인 형상은 때때로 합쳐지고, 또 분열하며 놈이 쩌억 벌린 입 좌우에 맴돌았다.
〔마법인가?〕
〔피해! 산개해라!〕
법국의 나이트 프레임들은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마치 천사를 연상시키는 기체를 움직여 놈에게 용맹하게 돌진했지만, 그 순간 선두에 선 나이트 프레임의 파일럿은 머지않아 깨달았으니.
〔빌어먹을.〕
콕피트를 꿰뚫고 뺨을 스치는 마력은 그저 단순한 공격 따위가 아니었고, 그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하곤 창을 들었다.
죽기 전에 놈에게도 한 방은 먹이리라.
끌어당긴 창대를 쥔 기체의 팔은 단번에 놈의 눈을 꿰뚫을 듯이 팽창했고, 그를 비롯한 법국의 제식 기체- 유게네스의 파일럿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공격이 쏘아지기 전 창을 놈에게 뻗었다.
파아앙!
쇄애애애액!
거대한 창이 허공을 꿰뚫는다.
신성력으로 점철된 흰색의 기류가 창대의 끝자락을 좇았고, 그들은 별다른 저지 없이 놈에게로 쇄도하는 창대를 바라보며 일말의 희망을 머금었다.
‘어쩌면……!’
그래, 정말로 어쩌면, 이대로 놈에게 상처라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바로 그때.
-불씨조차 피우질 못하는구나.
비웃음과 더불어 읊조려진 놈, 아니 암피스-바에나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고.
〔……어?〕
〔뭔가 이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어어엉!
엄청난 폭음이 울린다.
그와 거의 동시에 암피스-바에나의 머리 좌우 곁을 맴돌던 거대한 원에서 폭사된 섬광은 단번에 허공을 날고 있던 법국의 나이트 프레임들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켰다.
뒤이어 울리는 폭음은 나이트 프레임에서 났다.
그 말인즉, 놈이 섬광을 뻗어 내는 데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허.”
당연히, 그 광경을 법국 비행함의 함교에서 지켜보고 있던 미카엘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암피스-바에나라고 했던가? 어처구니도 없군.”
일단 머리와 꼬리에 각각 드래곤의 머리를 단 듯한 기이한 생김새와 우습지도 않은 이름은 둘째 쳐도, 놈의 공격은 그 자체로 위협적인 동시에 짜증 나는 것이었다.
소리도 울리지 않는다.
그토록 정예 병종 취급되는 나이트 프레임의 파일럿들이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이며, 기껏 공격의 전조를 알 수 있는 건 허공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이한 문양들뿐인 것이다.
“……피해 정도는?”
“혀, 현재까지 전선의 병력 15%가 전투가 불가능한 사상자로 집계됩니다만, 오차 범위와 누락된 이들까지 합치면 20%는 넘는다고 보시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함교에 앉아 있는 부관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역시나 절망적, 미카엘은 미간을 좁힌 채 한숨을 내쉬며 목에 걸고 있는 나무로 조각된 태양신 솔라의 묵주를 손안에서 굴렸다.
‘얼추 10만은 넘는다는 소리인가. 미치겠군.’
그가 서 있는 전선에 투입된 법국, 연합왕국, 프란틴 공화국의 유민으로 이루어진 의용군, 마지막으로 제국군까지 합치면 군세는 대략 60만을 넘었다.
그중 10만이 조금 안 되는 수의 병종은 보급이나 공병 계열의 보조군인 것을 생각하면 전선에 투입된 이들은 대략적으로 50만.
사상자가 부상자와 사망자를 모두 합친 수인 것을 생각해도 전선을 후방에 다시금 구축한 지 며칠이나 흘렀다고 이런 피해가 나왔다는 사실을 도저히 낙관적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뿌득-!
함교 내부에 미카엘이 이빨을 가는 소리가 울렸으나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일단 법국의 함선이니만큼 미카엘보다 상급자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이라고 미카엘의 기분과 같았으면 같았지, 절대 다르지 않았다.
미카엘이 미간을 좁힌다.
솔라의 묵주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눈에는 원망이 가득 담긴 광채가 스친다.
터벅.
걸음을 옮겨 함교의 끝으로 걸었다.
지극히 군사적인 용도로 개발된 제국의 비행함이나, 과거 해상강국이었던 역사를 살려 묘한 기풍을 섞은 연합왕국의 비행함과 달리 법국의 비행함은 마치 신전을 연상토록 꾸며져 있었고, 그가 향한 곳은 다름이 아닌 솔라 신의 성상이었다.
“신이시여, 나의 주신이시여.”
그는 그 앞에 서서 그것을 묵묵히 올려다보았다.
흔히 묘사되는 솔라 신의 외양은 중성이다.
어떤 이는 ‘주 어머니’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주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
그런 신의 성상 앞에서 미카엘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고, 곧 고개를 조아린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의 주, 나의 어버이, 나의 주신이시여, 진정으로 우리가 멸하지 않기를 바라신다면…….”
곱씹는 말에 점차 감정이 맺힌다.
“부디, 어떠한 답이라도 주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정말로, 정말로 우리가 멸하길 바라시나이까. 그것이 당신께서 빛을 비추어 빚어낸 자식들에 대한 신벌입니까?”
말하는 주체는 단순히 미카엘이었지만, 그 안에는 지난 50여 년의 세월 동안 무수히 순교한 모든 교인의 의문과 원망, 분노와 실망, 나아가 애절한 애원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았다.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태양을 상징하는 왕관을 쓴 저 신상은 미카엘의 답에 절대로 답해 줄 리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기, 기수님!”
기도를 울리고 있던 미카엘의 귓가에 다급한 목소리가 스치고, 곧 고개를 돌린 그는 저 멀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암피스-바에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이런, 젠장.”
신을 섬기는 이가 내뱉기엔 한없이 천박한 말이었으나 지금은 입에 담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왜?”
어떤 사제가 무심결 읊조린 것처럼 지금 암피스-바에나라는 이름을 가진 저 괴물이 그들이 타고 있는, 후방의 기함을 바라보는 것만큼 부자연스러운 일은 없었으니까.
미카엘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곤 곧바로 무언가 명령을 내리려던 그때.
“오, 옵니다!”
“신이시여! 정녕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암피스-바에나는 특유의 기이한 얼굴을 구기며 그들의 방향을 향해 무어라 외쳤고, 곧 일전의 나이트 프레임들을 그야말로 녹아내리게 만들었던 공격이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미카엘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도무지 피할 방법이 없다.
비행함이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놈이 작정하고 이곳까지 쏘아내는 섬광을 온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고, 피한다고 해도 뒤이어 폭발한 다른 기체들의 유폭에 휩쓸려 더 고통스럽게 죽겠지.
미카엘은 무심결 뒤를 돌았다.
멋대로 신에게 답을 내놓으라 일갈한 대가인가?
그게 아니라면, 신 따위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세상의 비웃음일까?
그는 답을 알지 못했고, 그렇기에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성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
그는 보고야 말았다.
분명히 대리석으로 조각되었을 성상의 면사포, 그중에서도 눈에 해당하는 부분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말이다.
“저, 저건?”
그것이 무엇인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성상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그가 그 모습을 올려다보며 혼돈과 두려움, 나아가 자신이 잠시나마 머금었던 불경에 몸을 떨려던 그때.
“어?”
조금 전까지 그의 곁에서 신에 대한 원망을 쏟아 내며 몸을 떨고 있던 사제 중 한 명이 마치 단말마의 숨소리처럼 나지막이 읊조렸고, 그 순간 고개를 돌린 미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으니.
“……이것이, 당신의 안배였습니까?”
그는 눈앞의 광경을 시야에 담으며 그대로 털썩 주저앉더니, 곧 미소를 띤 채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좇아 향한 그곳엔.
-끼에에에에에에엑!
조금 전의 오만하고도 역겨운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허리가 반으로 갈라지며 목과 꼬리, 두곳에 달린 입으로 연신 비명을 내지르는 암피스-바에나의 처절한 모습과…….
〔더럽게 시끄럽군. 돌연변이 이무기 주제에.〕
전용기- 벤데타의 위에 올라 무신경하게 읊조리고 있는 단테의 모습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직후.
미카엘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성상을 보았다가 곧 온갖 감정이 담긴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허.”
그도 그럴 것이, 그 성상에는 아무것도 맺혀 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