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80화 (180/197)

*

〔으아아아아아!〕

클리에는 괴성이 담긴 비명을 터트리며 전용기 갱플랭크의 팔을 들고 쉼 없이 회전하는 메인 코어에 마력을 쑤셔 넣었다.

본디 나이트 프레임의 기반은 인간이다.

그럼에도 손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거대한 주포를 앞으로 뻗은 그녀는 그야말로 평원을 뒤덮듯이 밀려오는 엄청난 수의 마수들을 향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일갈했다.

〔깡그리 뒈져 버려!〕

일전에 보여 주었던 여유로운 웃음 따위는 없다.

다만 주포가 불을 뿜음과 동시에 번뜩이는 섬광과 시야를 가득 메우는 포연 속에서도 그녀는 미친 듯이 눈동자를 굴리며 전장의 상황을 파악할 뿐인 것이다.

-키에에에에에!

-캬아아아아아!

고통이 섞인 마수들의 괴성이 울려 퍼진다.

검은 핏물, 푸른 살점, 녹색의 척수, 분홍빛의 눈동자가 바닥을 어지럽게 뒹굴다가 같은 마수의 발에 짓눌려 터진다.

“사, 살려 줘! 으아아아아아!”

“갈겨! 갈기라고!”

길게 펼쳐진 참호 속에선 기관총과 마력포 들은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휘어지기까지 해서 할 수 없이 기동을 중지했다.

어떻게든 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허공에서는 비행함들이 미친 듯이 포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엉!

아마 이 전장에 참전했다가 돌아간 놈들 중에 고막이 멀쩡할 수 있는 놈들은 몇이나 될까?

클리에는 무심결 그런 생각을 하며 헐거워진 갱플랭크의 토크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 순간 콰드득, 따위의 소리와 함께 대지 깊숙하게 발이 고정되었다.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밝게 번뜩인다.

마나를 머금은 이 눈빛은 벌써 이 전장에서만 수십 번을 사용한 기술의 전조였다. 그녀의 기체인 갱플랭크가 거대한 주포를 전장으로 뻗어 내는 것만으로도 일대의 병사들은 다급히 사격을 멈추고는 참호 속에 고개를 파묻었다.

“제독님이 그걸 쓰신다!”

“에, 예? 무, 무슨!”

“엎드려, 고막 나가기 싫으면!”

어제, 어쩌면 오늘 투입된 병아리들이 언제 뒈졌는지도 모를 놈의 군모를 쓰고 어벙하게 서 있는 모습에 병장들이 무릎을 걷어차거나 멱살을 틀어쥐어 억지로 참호 속에 처박았다.

그렇게 병사들이 어느 정도 대비를 끝내자, 곧 그녀는 피로와 짜증, 마수에 대한 혐오감이 그득한 목소리로 터트리듯 일갈했다.

〔진짜, 못해 먹겠네에-!〕

마나 하트가 한계까지 달아오른다.

클리에의 날카로운 송곳 같은 목소리가 통신기를 꿰뚫고, 곧 그녀는 어느새 다시금 평원에 가득 자리한 마수들을 향해 욕설을 삼키며 입을 벌렸다.

시그니처(Signature).

함대사격(艦隊射擊).

이미 혹사될 대로 혹사된 주포가 미친 듯이 떨리며 그녀가 남은 한 방울까지 털어 낸 마나를 머금었다.

그것들은 곧 섬광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아까운 모습으로 변하며 일대를 뒤덮은 마수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콰과과과과과과!

콰드드드득!

마치 전기톱으로 살점을 미친 듯이 도륙하고 갈라 내면 이런 소리가 날까, 싶은 소음들이 전장을 가득 메웠다.

뿌득.

클리에의 눈가에 혈관이 터졌다.

그녀는 미친 듯이 조여 오는 심장의 부담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놈들을 향해 포탄을 쏟아부었다.

-카, 카가가가!

-끼에에에!

거대한 살점들이 튀었다.

마수들의 핏물은 허공에서 다시금 뻗어진 총탄에 산산이 흩뿌려지고, 털은 녹아 거죽에 엉겨 붙었으며, 거죽은 사방으로 찢어져 부질없이 추락해 버렸다.

“미, 미친.”

그야말로 압도적인 화력에 미처 고개를 숙이지 못한 이등병은 먹먹한 소음 속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함대사격이 발출된 순간 섬광이 터지며 시신경 일부가 손상되었고, 뒤따르는 폭음에 고막까지 터졌지만, 그딴 것 따위 현실에 재현된 전설을 마주하며 치른 대가로는 그리 비싸지 않지 않겠는가?

“야, 엎드리라고!”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살 수 있…….”

콰드득!

“저, 저 멍청한 새끼!”

물론…… 그건 이등병의 착각이었다.

겁도 없이 참호 위로 머리를 든 그는 총탄에 의해 사방으로 비산한 마수의 뼛조각에 휩쓸렸다.

뒤에서 기겁하며 놈을 숙이게 하려던 병장은 쥐었던 옷 조각을 멍하니 바라보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아…….”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이등병은 거대한 뼛조각에 휩쓸려 사지가 산산이 찢어진 채로 죽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두렵다.’

조금만 더 저 멍청한 놈을 일찍 당겼더라면 살릴 수 있었으리라는 자책은…… 떨리는 손, 먹먹한 고막으로 인해 자칫하면 함께 휩쓸렸을지 모른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그를 뒤덮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말 잠시일 뿐.

“후, 하-.”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러고는 그는 이내 묵묵히 수통에 몰래 숨겨 두었던 술을 한 모금 삼키며 참호 속에 몸을 더욱 웅크렸다.

“정신 차리십쇼! 모르겠어? 지금 너 빼고 장교는 다 뒈졌다고!”

“아, 아아…….”

곁에서 상사가 신임 소위의 뺨을 치며 정신을 차리게 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신이시여, 전능하신 솔라이시여, 제발 저를, 어린 양을 버리지 마시옵고…….”

다른 쪽에선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솔라인지 라솔인지 모를 같잖은 신에게 기도를 하는 상병의 모습이 보였고.

“아악! 아아아아아악!”

다른 쪽에선 나가 버린 고막에 발광하며 참호를 굴러다니는 또 다른 이등병이 눈에 들어왔다.

지옥이다.

여긴, 지옥이다.

병장은 그것에 일말의 의심도 없었기에 수통에 남은 술을 모조리 입에 털어 넣은 뒤, 묵묵히 죽은 전우들의 시체를 뒤져 소총의 카트리지를 챙겼다.

“……지옥이면 어때.”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 그는, 언제 멈추었는지 모를 갱플랭크의 포격 소리에 옅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중대 전원 갈겨!”

그리고 곧 들려온 정신이 나가 버린 소위를 포기하고 권총을 뽑아 든 채 외치는 상사의 말에, 참호 밖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몰려오는 마수들에게 총탄을 박아 넣으면 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병장은 단지 그 생각을 한 채로 이제껏 그러했듯이 전방에 총구를 겨눴다.

〔저, 저건 무슨……?〕

하지만 그 순간 귓가를 스치는 클리에의 경악 어린 목소리를 들은 직후, 무언가 본능적인 감각이 그의 척추를 따라 흘렀다.

홀린 듯이 상체를 다시금 참호 속에 처박았다.

“야! 너 지금 무슨-!”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병장의 모습을 발견한 상사는 인상을 일그러트린 채 그에게 무어라 외쳤다.

그러나 그 순간.

“어?”

찰나의 순간, 은색 빛의 무언가가 상사를 덮쳤다.

비단 상사뿐만이 아니다.

고막에 피를 흘리며 총구를 쥐었던 이등병, 귀족 출신이라고 거들먹거릴 새도 없이 미쳐 버린 소위, 참호 저편에서 걸어오던 수많은 나이트 프레임들까지.

“아…….”

참호 속에 웅크린 시야는 반절의 현실을 그의 눈동자에 박아 주었고, 곧 그가 현실을 파악한 순간 병장은 망설임 없이 총구를 자신의 입에 물었다.

“허허, 히발-.”

실소를 흘린다.

밀려오는 술기운 덕분인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조금의 희망조차 깔끔하게 없게 만들어 준 적 덕분인지…… 망설임은 전무했다.

더듬듯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당긴다.

타앙-!

뒤통수에 뜨거운 무언가가 박히는 순간.

병장은 생각했다.

‘……다음 생은 없길.’

이딴 인생이라면 없는 게 차라리 나을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