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단은 아니에요.”
단테의 중얼거림에 남궁연희는 그렇게 화답했다.
“대환단은 청색이 아닌 백색의 빛을 띠고 이것보다 크기가 더 커요. 주먹밥 정도의 크기라고 해야 할까요?”
그녀의 말에 단테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언제 이슈페인이나 세이티나 등에게 싸늘한 모습을 보였느냐는 듯이 한없이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는 남궁연희에게 되물었다.
“대환단이 아니라고?”
“예, 애초에 본 적도 없잖아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황실과 정파의 연합체인 무림맹에서 공인한 ‘마교’의 수장이었던 단테가 소림사의 고승들이 평생을 바쳐 연단한다는 대환단의 실물을 보았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그가 대환단이라 중얼거린 이유는 단 하나, 곱게 뭉쳐진 청색의 환단 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내력의 파장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한 그 순간 그녀는 새하얀 손끝으로 툭- 하고 청색 빛을 띠는 대환단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아예 틀린 건 아니에요.”
그녀의 설명은 간결했다.
대환단을 만들고 싶어도 이 세계에 빙의하거나 환생한 소림사의 일원은 방법을 모르는 무승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영약을 만들 줄 아는 건 소림사의 스님들뿐만이 아니죠.”
소림의 대환단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겠으나 사천의 당문 역시 환단을 만드는 연단술에는 꽤 일가견이 있었고, 어지간한 대문파 역시 연단을 전문으로 하는 전각을 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흔히 연금술사라고 불리던 이들이 있었지. 대부분 이단으로 불려서 탄압받고 있긴 했네만.”
그녀의 설명에 황제 역시 말을 덧붙였다.
그런 그들의 설명을 묵묵히 듣던 단테는 문득 느껴지는 이질감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윽고 둘에게 물었다.
“통제하고 있었나?”
“통제라기보다는…….”
그녀는 말을 흐렸으나 그것이 일부는 긍정한다는 태도인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단테는 세계에 왔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한 가지 의문점을 재차 떠올렸다.
-어째서 이 세계에 영약이 없는가?
일전에 로한에게도 물었던 물음이었다.
그때 로한이 무어라 답했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그런 건 모른다는 식으로 화답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에 대한 답을 남궁연희가 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우리가 무슨 영약을 무수히 찍어 냈다거나 한 게 아니에요. 애초에 이 물건도 시험 삼아 한번 만들었다가 가장 믿을 만한 곳에 보관하고 있는 거였죠.”
제국이 열린 이래 가장 큰 신임과 더불어 권력을 가지고 있는 황제의 집무실 서랍보다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
그녀는 그것이 황제의 생각이었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단테의 의문에 대해서 덧붙였으니.
“이건 대환단에 필적하는 내공을 머금은 영약이지만……. 효율이 좋지 않아요.”
“당장 이놈이 잡아먹은 아룡(兒龍)의 하트가 3개가 넘었지.”
“정확히는 3개하고 절반이었죠. 그 외에 최상급 마석 등도 깨졌고요.”
그녀의 설명은 간결했다.
이 환단이 머금은 마력을 주입하기 위해 소실된 마력은 2배에 필적한다.
즉, 소모된 마력을 정제하고 흡수하기 적절하게 조정하는 동안 절반의 마력이 허공으로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는 말이다.
“효율이 좋지 않다.”
“네, 그래서 우리는 이걸 더 효율적으로 개선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갈구했죠.”
“뭐지?”
“나이트 프레임. 그리고 마석을 기반으로 한 마도 공학.”
밀려오는 마수들의 수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초인이라 불리던 이들은 날이 갈수록 전장에서 산화하며 그 수가 줄어 갔다.
그들을 다시 키워 내기엔 현실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소수의 강자가 아닌, 다수의 상향평준화.
황제의 협조 아래에 제국의 모든 마나를 머금은 물건이 한곳에 모였다.
황실 지하 금고에 있던 온갖 종류의 아티팩트와 마나를 담고 있는 마정석, 무기와 방어구는 기본이었고, 심지어는 사치품 등에 박혀 있던 것들 역시 모조리 회수되고 압류되었다.
“그렇게 등장한 게 바로 마석이죠.”
나이트 프레임의 메인 코어를 이룬다.
전선에 선 병사의 총탄을 대신한다.
철로 된 무거운 기차를 움직이고.
웅장한 비행함을 하늘로 끌어 올린다.
“……허.”
거기까지 들은 단테는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말하고 황제가 고개를 끄덕인 여태까지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마나를 품고 있는 모든 물건을 가지고 마석을 찍어 냈답니다.’가 아닌가.
“영약으로 쓸 물건이 없을 만도 했군.”
“깡그리 긁어서 써먹었으니까요.”
“황궁의 보호석도 뽑았지. 쯧!”
황제는 그렇게 말하곤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지만, 그건 딱히 의미가 없는 말이었기에 단테도, 남궁연희도, 심지어 말을 내뱉은 황제조차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그래서, 이게 네가 말한 거래인가?”
남궁연희는 별다른 답도 없이 단지 고개를 끄덕인다.
매우 간결한 계산 아닌가.
황제는 대군주를 막을 힘이 필요했고, 블랙 가드는 제국을 움직일 명분과 더불어 모든 반발을 누그러트릴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했다.
피를 흘려서 쟁취하면 된다고?
“우리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제각기 과정은 달라도 ‘상실’이라는 것에 대한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들이었다.
아무리 마모되고 욕망에 삼켜진다고 한들, 그들을 진심으로 죽이고자 하지 못한 이슈페인은 과연 무엇에 발목이 붙들린 것일까?
“우리는 망자잖아요? 죽지도 못한 채 또다시 이 지옥에 끌려 들어온 존재들.”
때문에, 그녀는 단지 그 말과 함께 황제가 꺼낸 목함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선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