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73화 (173/197)

리렌 원사는 반파된 내성을 지나 그들은 황궁 안으로 들어섰고, 밖과 마찬가지로 반파…… 아니, 거의 완파된 알현실을 돌아서 척 보기에도 경계가 삼엄한 별궁 쪽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거기까지 향하는 도중에 때때로 황실의 엠퍼러 가드들을 만나기도 했다.

왜인지 날이 서 있는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살벌한데.”

로한의 중얼거림이 스친다.

아닌 게 아니라, 황궁의 분위기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로한이나 보리스, 리베라와 세실이 척 보기에도 날이 서 있었다.

내성은 물론 알현실이 있는 건물마저 박살난 순간 황실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이었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을 법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1차적인 이유일 뿐.

‘정말 그 이유가 전부라고? 설마.’

로한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거의 다 탄 담배의 끝자락을 잘근 씹으며 피식 웃었다.

그의 말에 이어지는 대답은 없었다.

물론 다들 구태여 입을 열지만 않았을 뿐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충성.”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별궁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다다른 리렌과 일행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경례를 올린 검은 제복의 군인들은 리렌과 세실 등을 한번 훑어보곤 말했다.

“제3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3 회의실. 알겠어.”

단지 그 대화가 오갈 뿐, 경계를 서고 있던 군인은 그들의 방문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은 채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끼이익-.

별궁이기에 기름칠을 그리 열심히 해 두진 않았는지 약간의 녹슨 경첩음이 귓가를 울렸다.

리렌은 열린 궁성의 안으로 그들을 데리고 곧장 계단을 올랐다.

“…….”

“……흠.”

복도를 지나고, 또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두어 번을 반복한 그들은 건물 모퉁이의 가장 큰 방 앞에 다다랐다.

리렌은 묵묵히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들어가 말했다.

“데려왔습니다.”

“아, 고생했어요, 리렌.”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 대답한 것은 세실 등이 예상했던 단테의 낮고, 언뜻 무미건조하기까지 했던 목소리가 아닌, 웬 여자의 목소리였다.

“다들 들어오라고 하시죠.”

부드럽고 유한 목소리다.

사뭇 귀족적이라고도 할까.

하지만 이미 숱한 전장과 상황 속에서 살아온 그들은 그것이 꾸며 낸 가면이고 그 이면에 있는 것은 사뭇 다른 종류의 그것이라는 걸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으리라.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물론 리렌은 그들이 새로이 눈앞에 나타난 여자를 경계하든 말든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지만 말이다.

저벅.

사무적인 움직임으로 그들을 지나간다.

덕분에 그녀가 비켜섬에 따라 그들도 자연스럽게 회의실 내부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곧 세실은 무심결 읊조렸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군요.”

“일단 들어오지, 세실.”

단테의 말에 세실은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뒤를 따라 일행들 역시 제3 회의실로 들어섰다.

이윽고 문이 닫혔다.

제일 상석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는 단테의 표정은 척 보기에도 너희가 하는 생각이 보인다는 듯이 아주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피차 할 말은 많다.

그들도 단테, 그 자신에게 물어볼 것은 꽤나 많겠지.

‘장례식 도중에 사라지더니, 하룻밤 사이에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라든가.

‘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죠?’

……라든가 말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곁에서 그들을 반긴 이들은 비단 남궁연희 말고도 둘이나 더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으암……! 안녕?”

경쾌한, 그러나 또 완전히 감정이 배제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읊조린 세이티나는 이윽고 피식 웃으며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척 보기에도 온갖 구속 마법이 걸려 있는 구속구를 입고 있다는 점이었을까?

“어…….”

“결국 잡혔네?”

세실은 몰라도 이미 보리스와 리베라는 그녀와 직접 나이트 프레임에 올라 싸워 보았기에 특히 감흥이 더했다.

로한은 뭐,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때문에 그들의 어색한 기류를 읽은 세실은 단테를 지그시 바라보며 직설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뭡니까?”

“일단 좀 앉지.”

단테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러곤 그들이 자리에 앉기 전까지 의자의 팔걸이에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들의 물음은 곧바로 답할 수 있다.

다만, 말이 조금 길어져서 그렇지.

‘하지만 그 전에.’

단테는 자신과 맞은편에 앉아 지그시 바라보는 세실을 향해 시선을 옮겼고, 곧 그녀 특유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잘 묻어 주고 왔나?”

“예?”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를 생각하던 그녀는 이윽고 단테가 말하는 것이 다름 아닌 세로스의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아.”

눈을 깜빡거린다.

예상치 못한, 어쩌면 뜬금이 없는 그 한마디에 그녀는 잠깐 무어라 답해야 할지를 고르는 듯하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잘 묻어 주고 왔습니다.”

“잘했다.”

그는 그녀의 대답에 단지 고개를 끄덕인 채 이젠 익숙해진 손짓으로 품에서 푸른 숨결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특유의 푸른 연기가 회의장 천장으로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그 연기를 폐부 깊숙하게 밀어 넣은 단테는 이내 입을 열었으니.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대화를 좀 나눠 보지.”

“대화라면?”

“다른 주제가 있나?”

단테는 붉은 안광을 터트렸고, 이내 이제까지 쉬이 보여 준 적이 없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당연히, 대군주를 어떻게 죽여 버릴지에 대한 대화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