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72화 (172/197)

에브게니아에서 치러진 세로스를 비롯한 망르 해안가의 전사자들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 그제야 로한과 리베라를 비롯한 특임대의 일원들은 단테가 제도로 향했다는 걸 전해 듣고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물론 그들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큼, 괜찮으십니까?”

세실은 자신에게 조심스러운 어투로 전하는 로한의 물음에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것이 진심이라고 믿는 이는 없었기에 그들이 탄 군용차의 내부에는 정적만이 맴돌 뿐이었다.

“……으음.”

이번만큼은 그 리베라조차도 입을 다문 채, 다소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스치는 풍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라고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건 아니었기에.

그렇게 얼마나 도로 위를 달렸을까.

애초에 에브게니아에서 제도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그들은 머지않아 제도로 돌입했고, 거주 구획을 지나 내성에 진입한 그들은 문득 앞을 가로막는 제1 군단의 군인들에 의해 차를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정지! 정지해 주십시오!”

그들은 군용차를 정지시키고 창가로 걸어왔다.

곧 조수석의 창문을 내린 로한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충성!”

로한의 계급은 일전의 법국 일로 강등당해 중사였으나 상대는 상병에 불과했기에 반말로 물었다.

상병은 각이 잡힌 경례를 올림과 동시에 뒷좌석에 앉아 있는 세실과 리베라, 보리스를 힐끔 바라보고는 말했다.

“……어, 죄송하지만 차에서 내리셔야 할 거 같습니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비단 로한뿐만이 아니라 그런 말을 들은 리베라는 물론 보리스조차도 같은 시선으로 상병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때 묵묵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던 세실이 고개를 들어 상병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

그녀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상병은 물론, 내성 앞에서 그들의 앞을 막아선 제1 군단의 군인들은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군용차나 관용차들을 모두 세워서 차에서 내릴 것을 주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상병은 자신이 설명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볼을 잠시 긁적거리다가 이내 말했다.

“그게 말입니다. 내성 안쪽 도로가 아예 박살이 나 버렸지 뭡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걸으셔야 할 거 같습니다.”

“뭐?”

하지만 그가 내뱉은 말은 더욱 믿기 힘든 것이었으니, 로한은 인상을 일그러트린 채 말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갑자기 하늘에서 여왕이라도 떨어졌냐?”

무려 다른 곳도 아니라 제도, 그러니까 제국 수도의 내성이 아닌가.

황제가 기거하며, 상주 중인 병력과 블랙 가드만 해도 엄청날 텐데 자동차의 바퀴조차 굴러가지 못할 정도로 박살 났다는 말을 믿을 수가 있겠냔 말이다.

“……이해합니다, 믿기 힘든 거.”

하지만 인상을 찡그리던 로한은 곧 상병의 뒤에서 걸어오는 중위 계급 장교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 중위는 로한이 했던 말이 백번 이해가 된다는 듯이 나름의 공감을 던지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그는 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로한에게 건네며 말했다.

“태우십니까?”

“예, 뭐…….”

로한은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그가 건네는 담배를 받아 들었다.

곧 중위는 로한이 입에 문 담배의 끝자락에 불을 붙여 주고는 말했다.

“일단 차에서 내리시죠. 그리고 직접 확인해보시면 알게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뒤에 타고 계신 중령님과 소령님들도 일단은 내리셔야 합니다. 독단이 아닌 라리이 중장님의 지침 사항이니 부디 이해해 주시길.”

스읍, 후-.

이름 모를 중위는 그렇게 말하며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연기를 삼켰다.

당연히 로한 역시 마찬가지였고, 곧 그는 백미러 너머로 세실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요- 따위의 시선을 보냈다.

“…….”

단테가 자리를 비운 지금, 결정을 내릴 사람은 다름이 아닌 세실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잠시 중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차 내부의 손잡이를 잡아 열고는 말했다.

“확인해 보지.”

내리는 순간 갈색의 머리가 찰랑거린다.

동시에 그녀는 다소 수척해진 시선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를 이어 보리스와 리베라 역시 차에서 내려 그녀를 따라갔다.

“에이, 이게 무슨…….”

로한 역시 그렇게 읊조리듯 중얼거리며 차에서 내렸고, 그들이 모두 차에서 내리자 중위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특임대원에게 말했다.

“좌측으로 빠지면 임시 공터에 만들어 놓은 주차장이 있을 거다. 거기에 주차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부우웅-.

그렇게 그들을 태웠던 차가 주차장으로 떠나고, 중위는 지친다는 듯이 미간을 한번 일그러트리곤 담배의 끝을 질겅질겅 씹었다.

그때 곁에 선 상병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내성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했기에 이 자리에선 보이지 않았으나, 몇 시간 전에 내성 안쪽 공병대를 도우러 다녀온 상병은 보았다.

그 안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말이다.

“글쎄다.”

콰직.

상병의 물음을 받은 중위는 이제 비어 버린 담뱃갑을 가볍게 구겨 바닥에 툭 버렸고, 곧 머리를 한번 긁적거리며 답했으니.

“몰라, 시발. 정말 괴물이라도 다녀갔나 보지.”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최대한 그 일과 엮이기 싫다는 소망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뭐야, 이거.”

“그러게 말입니다. 허헛!”

몇 번의 군인들과 더 마주치며 내성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내성의 박살 난 광경을 응시하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로한은 실소를 터트렸고, 리베라는 재미있는 일이라도 발견했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으며, 보리스는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심지어 세실조차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이게 무슨…….”

그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군인들은 물론 내성 안으로 출근하기 위해 향했던 제도 관청의 공무원들 역시 시력을 의심하며 눈을 비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끼기기긱!

쿠구궁!

“거기 잔해 조심해!”

“무너진다!”

찬란한 역사와 유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제도의 관청들은 거의 3분의 1이 무너져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아직 진화되지 못한 불들이 검은 연기를 일렁이며 제1 군단 소속 공병대의 손에 의해 진압되고 있었다.

〔끄으응차!〕

쿠우우우웅!

전장을 종횡해야 할 자랑스러운 나이트 프레임들은 인간이 옮길 수 없는 거대한 잔해를 부수거나 옮기고 있었고, 거대한 비행함은 임시로 만들어진 공터에 멈춰 격납고 가득 돌덩이들을 채워 인근 산에 버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영락없는 전후 복구 작업이었던 것이다.

잠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들은 문득 황궁으로 시선을 옮겼고, 곧 아예 무너진 건물 하나를 발견하더니 서로 시선을 맞췄다.

“……설마.”

“에이, 아무리 그래도.”

로한이 내뱉은 말에 리베라가 애써 부정했다.

그러나 그때, 보리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미 한번 무너트려 보긴 하셨잖습니까.”

“아.”

그의 말에 세실이 무심결 탄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전에 단테는 과거 프란틴의 왕궁이었던 건물을 무너트린 적이 있지 않은가.

차라리 그뿐이면 말을 안 한다.

단테가 하필 이 시기에 제도로 향했다는 걸 전해 들은 이상 그들은 그가 이 일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크흠.”

그리고 곧 그들은 침묵 속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단테가 한 일이 맞는 것 같다고 말이다.

기갑천마

각자의 걸음걸이

내성의 피해가 워낙에 컸던 탓일까?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들은 조금 긴 시간 동안 눈앞의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며 충격을 수습해야 했다.

하지만 곧 세실을 비롯한 일행은 낯이 익은…… 그러나 딱히 반갑지는 않은 얼굴과 마주했으니.

“단테 대령님, 아니 단테 준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따라와 주시길.”

단테가 준장 계급을 달았다는 사실은 그들로서도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딱히 놀라운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일군 업적이 업적이지 않은가.

다만, 그것과 별개로 리베라의 표정은 썩 달갑지는 않았다.

“언니? 언제 또 여기에…….”

“임무.”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눈앞에서 단테 대령이 보냈다고 걸어온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리베라와 비슷한, 그러나 그녀와는 달리 단발에 언뜻 날카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무표정을 짓고 있는 리렌 원사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녀가 리베라와 자매라는 사실은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둘 사이에 맴도는 묘한 기류도 눈치채지 못할 그들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일행들 역시 다가오는 리렌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세실 중령, 아니 세실 대령님.”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금 중요한 일은 리베라와 리렌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걱정하며 자매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려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단테의 부재로 일행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세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리렌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를 부탁하지.”

“예, 알겠습니다.”

비단 단테뿐만이 아니라 망르 해안가 전선에 참여했던 장교라면 기본적으로 1계급 진급이 예정되어 있기에 리렌의 말을 대강 받아넘긴 그녀는 곧바로 뒤를 돌아 따라오라는 듯이 걷기 시작했다.

“가시죠.”

이미 세실은 앞서 걷고 있었고, 리베라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보리스는 곁에서 주섬주섬 새 담뱃갑을 꺼내는 로한에게 말했다.

“예이.”

로한은 입에 담배를 질겅 물고 고개를 끄덕였고, 곧 그들은 내성의 폐허를 지나 곧바로 황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거기 조심해!”

“정신 안 차릴래!”

지난밤의 소동으로 거의 몇 달에 걸친 내성 복구 작업을 이게 막 시작한 불쌍한 제1 군단 소속 공병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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