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70화 (170/197)

“이상으로, 판결을 마친다. 반론은?”

“……없습니다.”

한편 류튜스의 미래 또한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곧바로 제국 군사 법원으로 인계되었고, 모든 이들의 만장일치로 사형이 구형되었다.

류튜스는 고개를 떨궜다.

그러고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한마디를 덧붙였으니.

“……관대한 처분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것은 회한과 허탈, 무기력함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혐오가 담긴 한마디였다.

물론 그것에 판사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류튜스는 곧바로 엠퍼러 가드들의 삼엄하고 거친 손에 의해 법정 밖으로 끌려 나갔고, 채 1시간이 지나기 전 그는 광장으로 끌려가 형장의 이슬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빌어먹을 놈!”

“퉤!”

시민들은 류튜스의 시체에 침을 뱉었고, 돌을 던졌으며, 나아가 혐오와 안타까움이 담긴 눈으로 목을 잃은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군중 사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연희는 곁에 선 단테에게 말했다.

“결국, 류튜스가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로 죽었네요. 나름 숭고한 희생이라고 할 법해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류튜스의 죽음에 시민들이 분노했으나, 그가 어째서 ‘관대한 처분’이라고 말했겠는가.

“일에 동조한 엠퍼러 가드 중 죄를 인정하는 이들은 모두 형벌 부대에 배속됨으로써 목숨을 구했어요. 심지어 류튜스 백작가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물론 그 귀한 엠퍼러 가드님들이 형벌 부대에서 적응하려면 어지간히 고생 좀 해야겠지만 말이에요.’라는 말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남궁연희는 곁에서 묵묵히 류튜스의 죽음을 눈에 담고 있는 단테에게 말했다.

“관대하죠. 관대하고말고요.”

본디 쿠데타, 즉 반란에 대해선 국가의 원수라면 민감할 수밖에 없기에 기본적으로 그것에 대한 대가는 일을 시행한 개개인의 죽음은 물론 그 주변인들까지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네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검을 빼 들었으면 그 검에 소중한 이들이 다치는 것 역시 감수해야 한다는 그런 경고 말이다.

그것은 비단 제국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50년보다도 더 전의 국가들 역시 그러했으며, 작금의 법국이나 연합 왕국은 물론 시대 속에서 사라진 프란틴 공화국마저도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황제는 기꺼이 선처를 베풀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쩌겠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담긴 감정은 내뱉은 말과는 맞지 않게 안도가 담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허름한 구형 트럭의 뒤에 오르고 있는 한 부인과 아이를 발견했다.

“……우둔한 사람.”

부인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은 다름이 아닌, 류튜스 백작의 목이 잘린 단두대 위였다.

“도련님, 보지 마세요…….”

“어떡해……. 흑, 흐윽……!”

시녀 몇몇이 어린아이의 눈을 가린다.

아직 어린아이는 저것이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인지도 모른 채 눈을 깜빡였고, 부인은 한참이나 그의 시신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시녀들의 손에 이끌려 트럭 위에 힘없이 앉았다.

그때 묵묵히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있던 남궁연희의 귓가로 단테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스쳤다.

“백작 부인인가.”

“네. ……이젠 아니겠지만.”

류튜스 백작의 가문이었던 아르테미안 백작가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을 빼앗겼고, 재산 대부분을 몰수당한 채 평민으로 돌아가 제도에서조차 내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관대했지만 말이다.

“몰살당하는 것보단 말이죠.”

“몰살이라…….”

단테는 단지 그렇게 읊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트럭이 털털거리며 천천히 제도 밖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두 남녀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광장 옆의 「빈디카」라는 명패를 단 건물로 들어갔다.

“화, 환영합니다!”

둘의 정체를 이미 전해 들은 카운터의 여직원이 떨며 그들을 건물 내부를 지나 지하로 안내했다.

곧 그들의 앞에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오셨군요. 당주님. 그리고…… 대령님.”

금테의 단안경(외눈 안경)을 쓴, 언뜻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을 지닌 중년인.

대륙의 5대 상단 중 하나인 빈디카의 제도 지부의 지부장이자 블랙 가드의 제7 단장인 리스울은 그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분들…… 아니, 반역자들 모두 깨어 있습니다.”

기갑천마

망상의 무게 (1)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제국의 심장부인 제도(帝都)의 한복판에 자리한 광장 옆, 그것도 대륙 5대 상단이라 불리는 빈디카 상단의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말이다.

“너는.”

“예, 이미 아는 얼굴이시겠죠.”

단테가 자신을 바라보자 리스울은 그렇게 읊조리듯이 말하며 얼굴에 걸치고 있었던 단안경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올렸다.

그러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먼저 단테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적절한 예의와 경의를 담아 말하니.

“일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만 당주님의 명령이었던 점을 부디 생각해 주시길…….”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단테를 블랙 가드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일부 잡음이 있었던 것, 그게 단테의 입장으로선 꽤 불쾌하게 다가올 방식이었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뿐인가.

일전에 그에게 벤데타를 전해 준 것 또한 리스울이었기에 단테 역시 꽤 낯이 익은 상태였다.

그에게 딱히 감정은 없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었고, 아예 불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남궁연희의 발버둥이었음을 알게 된 후였으니까 말이다.

다만 의문이 있다면 한 가지.

단테는 고개를 숙이다가 막 허리를 다시 세우는 그와 남궁연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곁에 선 남궁연희에게 물었다.

“우리와 같은 처지인가?”

‘우리’와 같은 처지인가.

그것은 꽤 많은 것을 담은 물음임과 동시에 이제 단테가 복잡하고도 엉망으로 뒤엉킨 이 세계의 이면을 완벽하게 파악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는 무심결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의 물음에 리스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쉽게도.”

날카로운, 또는 냉정하게 보이는 얼굴에 묘한 감흥이 뒤섞이고, 그는 덧붙였다.

“저는 이 세계의 원주민입니다. 물론 남들에 비해선 꽤 다사다난하게 살았지만…….”

그 ‘다사다난’이 감히 당신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겠지요, 따위의 뒷말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리스울은 과연 지부장다운 눈치라고 해야 할지, 그는 더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다는 걸 아주 잘 알았기에 살짝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혹시 몰라 내부에 인원을 배치하긴 했습니다만, 불편하시다면 곧바로 물리겠습니다. 언제든 말씀하시길. 그럼.”

구태여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걸 아는 단테와 남궁연희 역시 대답을 덧붙이지 않고 그저 리스울이 문고리를 밀며 감옥 내부로 들어갈 뿐이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 음과 함께 굳건하게 닫혀 있던 철문이 옅은 먼지를 일으키며 열렸다.

공간 하나를 두고 서로를 차단하고 있던 문이 열리며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곧 안으로 들어선 단테는 묵묵히 그 안을 훑었다.

내부는 예상했던 대로 감옥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흔히 생각하는 감옥과는 조금은 궤가 달랐다.

‘뭐랄까…….’

단테는 천천히 내부를 훑었다.

그러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중원식인가.”

“그보다 정확히 말하면 남궁세가의 건축 양식이죠. 저희 가문 내에 있던 감옥을 본떠 만들어 봤어요.”

단테는 비록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이 세계를 이루는 문명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론 법치를 추구하는 제국의 감옥은 대부분 목조에 적절한 시설도 갖추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엔 여러 복잡한 현실이 끼어 있을지라도, 요점은 지금 눈앞의 감옥은 제국 신민의 시점으로 본다면 매우 ‘구식’인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감옥은 번듯한 현대 건물인 빈디카 상단의 지하에 있음에도, 구태여 투박하게 깎은 돌과 무식하게 생긴 쇠창살, 그리고 족쇄 등으로 죄수들을 묶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겉으론 구식일지 몰라도 그 이면은 달랐다.

“족쇄엔 아직 세간의 기술로는 풀리지도 않은 기술로 만들어진 구속 술식이 각인되어 있어요. 억지로 풀려고 하면 가한 힘의 10배를 되돌려 주는 장치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래, 그걸 까먹고 풀려고 했다가 아까 잠깐 기절했다니까? 쿡!”

남궁연희의 말에 다소 갈라진, 그러나 분명한 호쾌함이 담긴 여자의 목소리가 덧붙여진다.

그리고 그것은 둘에게도 익숙한 목소리였으니.

단테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곧 머리를 긁적거리며 차가운 감옥의 바닥에 앉아 있던 그녀는 단테를 발견하자 씨익 웃고는 말했다.

“어, 왔네?”

실룩 올린 입꼬리가 보이는 하관.

너절하게 대충 기댄 몸.

그리고 한없이 평온한 목소리.

그녀의 외면에선 단테나 남궁연희에 대한 어떤 분노나 원망도 보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의문이 들려는 찰나, 그녀가 말했다.

“뭐, 내가 다짜고짜 욕이나 저주를 퍼부을 줄 아셨나? 걱정 마. 그런 건 취향도 아니고 뭐같이 찌질한 짓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을 하곤 무심결 목을 긁는다.

일전에 족쇄를 풀려고 했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그녀의 목에는 붉게 달아오른,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가 보였다.

그녀는 잠깐 그 상처가 간지러운 듯이 긁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때마침 비춰진 내부의 조명에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고, 곧 미처 가라앉지 못한 흉터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

얼굴로 향하는 둘의 시선을 느낀 걸까?

세이티나는 목을 긁적이다가 이내 얼굴로 손을 옮겨 살짝 우둘투둘 거리는 표면을 훑었다.

보랏빛이나 고름이 묻어나는 상처는 없었지만, 마기를 극한으로 끌어 올린 탓에 흉터가 남은 것이었다.

“제때 억누르질 못했지, 누구 덕분에.”

그렇게 말하며 단테를 향해 피식 웃었다.

딱히 원망이나 분노가 담긴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뺨 부근에 난 흉터는 언뜻 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우려와 달리 그것이 그녀의 얼굴을 추하게 만들진 못한 탓이었다.

스스로 그걸 느낀 걸까.

아니면 겉으로 보이는 허물 따위는 아무렴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그들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세이티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긴 채 붉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그래서, 우릴 어떻게 할 건데?”

세이티나의 물음에 그들은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곁으로 옮겨 나머지도 함께 훑었다.

“…….”

그녀의 바로 옆방에서 목과 양손에 구속구를 차고 있는 베데눔은 그저 침묵한 채 고개를 숙이고 구석에 앉아 있었다.

짧게 흔들리는 조명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그의 모습을 감춰주듯이 일렁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게 누구신가? 쿨럭!”

여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니, 어쩌면 말을 내뱉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슈페인이 무거운 몸을 벽에 기대어 일어나며 단테와 남궁연희를 향해 이죽거렸다.

“좋으시겠습니다, 당주님. 쿨럭! 그렇게 찾고 찾으시던 남자를 만났으니까……. 거기에 적까지 알아서 처리해 주니 백마 탄 왕자님이 따로 없군요. 큭큭!”

이슈페인의 몰골은 셋 중 가장 정상이 아니었다.

왜인지 손끝은 살점이 먼지처럼 살짝씩 흩어졌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고, 푸른빛으로 번뜩거리던 안광은 전기가 반쯤 끊기기라도 한 것처럼 옅은 빛만 겨우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단테는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세이티나는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남궁연희를 힐끔 올려보며 물었다.

“당주님, 담배 하나만…….”

“이럴 때만 당주님이지.”

남궁연희는 무심결 피식 웃고는 곁에 선, 리스울이 배치했다던 블랙 가드에게 눈짓했다.

그는 곧바로 품속에서 새것 같은 담배를 꺼내 창살 너머 그녀의 입에 물려 줬고, 손수 불까지 붙여 주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스읍, 후-.

익숙하게 연기를 삼켰다가 내뱉었다.

세이티나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곧 철창을 따라 몇 바퀴를 회전하다가 이윽고 흩어져 사라진다.

치익…….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자신과 마찬가지로 입에 푸른 숨결을 문 남궁연희를 힐끔 바라보다가, 창살 너머 서 있는 이슈페인과 자신을 등지고 서 있는 단테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으니.

“재미있겠네.”

그건 썩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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