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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천마-167화 (167/197)

단테의 공격을 매끄럽게 쳐 낸 세이티나는 이윽고 그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손목을 돌리며 쳐올린 순간, 그녀는 확신했다.

‘먹혔다!’

정확하게 갈비뼈를 치고 올린 공격이다.

때문에 그녀는 이것으로 단테를 제압할 수는 없어도 일정량의 피해는 확신했으나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으니.

“컥!”

단테는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지 않았다.

다만 바늘 하나 들어갈 정도의 차이로 유려하게 피해 내고는 그녀의 목을 틀어쥔 것이다.

“아차.”

세이티나는 무심결 탄식하듯 읊조렸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건 한 방은 반드시 먹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세이티나가 스치듯 턱 하고 잡힌 목의 감각을 느낀 찰나 그녀의 시야는 한 바퀴를 돌았고, 곧 원을 그리며 추락한다.

돈다. 세상이 돌았다.

반전되는 세상 속에서 그녀는 내뱉지 못한 신음을 삼켰고, 곧 단테는 대지에 그녀의 몸이 닿기 전에 속삭이듯 읊조리니.

“죽지는 않겠지.”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진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곧 세이티나는 뒤늦게 단테가 말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이런 미치-.”

백월신공(白月神功).

만월격진(滿月搹紾).

만원을 잡아 비틀다.

단지 그뿐인 초식의 구결이었으나 이 순간 그것보다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그녀의 목을 잡아 꽂는 선의 끝자락, 만월을 가리는 듯한 어스름한 묵빛 아지랑이와 더불어 그 뒤를 따라 백색의 섬광이 터진다.

깜빡-.

일순간 반짝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커허어억!”

그녀의 육신이 대지에 닿는 그 순간 단테의 손끝에서 섬광이 터지며 그녀의 육신은 도로 아래로 그대로 찍어 눌러졌다.

쿨럭, 하며 내뱉은 핏물이 길게 선을 그린다.

그녀는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마저 마기를 끌어 올려 억눌리는 무형의 내력에 저항하려 했으나.

“끄으으윽……!”

날뛰던 내면의 마기를 겨우 진정시킨 그녀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를 중심으로 내려앉은 대지는 꽤 큰 구덩이를 만들었고, 먼지가 걷힌 그 모습을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던 군인들은 이젠 놀랄 기운조차 없다는 듯이 그저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응시했다.

“하, 하핫, 하하하핫!”

대(大)자로 누운 세이티나는 핏물과 함께 허탈한 웃음을 흘렸고, 그 위에 오롯이 서 있는 단테는 그저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따름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 싸움.

그렇기에 단테조차도 그저 그녀를 한번 내려다보곤 이내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쿨럭, 대체 뭐가 나쁜데?”

핏물이 섞인 마른기침 사이로 그녀는 물었다.

단테는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곧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한 채 언뜻 자조적인 미소를 띠고 말했다.

“……뭐가 나쁘냐고, 이 빌어먹을 놈아.”

끄응, 하며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나마 안정되었던 마기는 조금 전 충격에 다시 날뛰기 시작했는지 그녀의 혈관은 보랏빛으로 물들며 꿈틀거렸지만, 정작 세이티나는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단지 단테를 향해 황금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물을 뿐이다.

“쿨럭! 우리가, 없었으면 애초에 망했을 세상이잖아. 안 그래? 어?”

그녀의 말은 이슈페인을 비롯한 그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생각이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없었으면 망했다.’라는 것은 그저 가정에 불과했으나,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당연한 일이다.

세이티나는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우리는 이 세계로 떨어지고, 블랙 가드라는 게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도 눈앞의 놈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웠어.”

그것은 진실이었다.

블랙 가드라는 이름을 알기도 전.

이 세계에서 눈을 뜬, 놈들에게 고향을 잃은 망자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된 듯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마수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이어 나갔다.

……남궁연희가 그러했고, 무수한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죽었고, 우리는 그보다 많은 마수들을 죽였어. 그뿐인가?”

콰드드드득!

그녀는 손끝으로 흙을 꽉 쥔 채 일갈했다.

아니, 그건 차라리 일갈이 아닌 분노였다.

“이 대륙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우리가 구축하고 만든 질서 속에서 살아가! 그런데 기껏 그렇게 피를 흘려 놓고 뭐? 아무런 대가도 없이 조용히 살아간다고? 빌어먹을!”

단테는 묵묵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자그마치 50년이야! 50년을 개같이 구른 대가 좀 받겠다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그것도 고작 이제 2년밖에 되지 않는 네가 어째서, 무슨 권리로……!”

그것은 광기인 동시에 상실이었다.

욕망이었고, 갈 곳 잃은 안정감을 갈구하는 이의 비참한 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단테는 말했다.

“전제가 틀렸다, 세이티나.”

“……뭐?”

여전히 무심한 단테의 말에 그녀는 반문했다.

자신의 이름을 드디어 제대로 불러준 것조차 깨닫지 못한 그녀는 눈을 깜빡였으나, 정작 단테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할 뿐이었으니.

“너희가 틀렸다고 말한 적이 없을 텐데.”

“그, 그게 무슨……. 그럼 대체 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세이티나는 단테에게 다시금 되물었고, 이윽고 단테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혀 그녀의 목으로 손을 뻗으며 덧붙였다.

“다만, 성가셨을 뿐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 컥!”

단테의 손끝은 그녀의 목과 명치를 훑었고, 그 순간 밀려오는 압박감에 세이티나는 몸을 잠시 떨다가 이윽고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혈도를 짚었다기엔 무식했고, 단순히 폭력을 행사했다기엔 정교한 그의 방식.

이를 무림인들이 본다면 아마 꽤 흥미를 느꼈지 않을까.

단테는 무심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멱살을 잡고 끌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구덩이 밖으로 나온 그는 파괴된 내성을 훑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기에 왜 날뛰어선……. 쯧.”

그런 말을 한 단테의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렀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금 황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투를 비교적 빨리 끝낸 덕분인가.

거칠었던 전투의 현장이었지만 알현실의 반쪽은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 멀리 한창 전투에 한창인 나이트 프레임의 굉음이 귓가를 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떠나가는 단테와 끌려가는 세이티나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중위는 이윽고 무전기를 꺼내 말하니.

“사, 상황 종료…….”

그건 얼떨떨함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꽤나 우스꽝스러운 한마디였다.

기갑천마

제도의 밤 (10)

세이티나를 마치 들고 옮기기 적당한 짐짝처럼 취급한 그의 움직임은 언뜻 위태롭게 보였으나, 그것을 느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아니, 그런 평이한 말로 눈앞의 광경을 설명한다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일 수도 있겠다.

그 흔한 마른기침조차 내뱉지 않는다.

군모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고, 훈장을 매일 달고 다닐 순 없기에 만들어 놓은 약장들이 뜯어져 너덜거리는 실들만이 남아 있었다.

……그뿐인가.

턱 선을 따라 흐르는 핏물은 그의 입 안쪽이 찢어졌음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지만 정작 단테는 별다른 감흥도 없다는 듯이, 혹은 그저 질척거리는 것을 치워 버리는 듯이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한 소매를 스윽 닦아 버릴 뿐이었다.

“…….”

“……어.”

단테와 세이티나가 벌여 놓은 난장판, 아니 단순히 난장판이라고 말하기에도 뭐한 극렬한 전장의 현장은 황궁과 적잖은 거리가 있었다.

그 덕분에 단테는 꽤 긴 거리를 세이티나를 질질 끌며 걸었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광경은 그들을 포위하던 제1 군단의 군인들의 눈에도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애매해.’

한 장교는 무심결에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애매하다.

진심으로 이 상황은 애매하다.

아무리 생각을 곱씹고 이 상황을 뜯어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보더라도 ‘상식’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그들의 모양새는 내성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세이티나는 물론 단테 대령 역시 체포해야 마땅하다.

아니, 말이 체포지 강제적인 구금은 물론 곧바로 군법 재판에 넘긴다고 해도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한다.

“어, 어떻게 합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식’ 선에서 보는 것.

작금의 상황은 그들이 여태까지 구가했던 상식이라는 것과는 한참, 어쩌면 그보다 한 발자국쯤은 더 멀게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인 동시에 묘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단테 대령이지.’

이름 모를 장교는 어느새 자신을 지나, 황성의 앞까지 다다른 단테 대령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막아야 한다.

어떻게?

첫째, 라리이 중령은 방관을 택했다.

둘째, 그것은 황명이었다.

셋째, 눈앞의 단테 대령 역시 특급 황실금성훈장을 받았고.

그 말인즉슨 그의 지위는 단순히 ‘대령’ 따위가 아니라 황족에 준한다는 말이다.

즉, 장교가 내린 결론은 간결했다.

‘막을 수 없다.’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순간 그는 갈등하며 쥐고 있던 통신기를 아래로 내렸고, 때마침 통신기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울리니.

〔사, 상황 종료…….〕

마치 그 한마디를 기다렸다는 듯이 라리이 중장은 말했다.

〔현장 수습 후, 제1 군단은 그 자리를 고수한 채 혹시 이어질지 모르는 이변에 대비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말에 반박하는 군인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제각기 목적으로 항명하려 했던 이들은 모두, 블랙 가드의 손에 제압당해 어디론가 끌려갔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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