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63화 (163/197)

콰드드드득!

벽을 뚫고 네카토르는 황성의 정원을 따라 긴 선을 그리다가 이윽고 몇 바퀴를 뒹굴고 이내 자세를 바로잡았다.

〔꽤 아픈데!〕

그러나 기체가 보여준 무력한 모습과 달리 통신기 너머로 울리는 세이티나의 외침은 한없이 경쾌했기에 단테도 눈치챌 수 있었다.

조금 전 그녀가 일부러 자신의 주먹을 맞았다는 걸 말이다.

‘실력을 가늠할 생각이었나.’

그리고 단테가 그런 생각을 하는 바로 그때 그녀는 자세를 바로 한 직후 단테를 향해 대지를 박차고 그에게 쇄도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단 수준 이하야!〕

콰아아아아앙!

네카토르의 육중한 발이 대지를 디딜 때마다 대지가 흔들렸다.

곧 그녀는 벤데타를 향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부우우우우웅!

거대한 도끼가 공기를 가른다.

동시에 그것은 단번에 벤데타의 오른팔을 잘라 뜯어버리려는 듯이 내리쳐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은연중에 생각했다.

아무리 그 단테 대령의 벤데타라고 해도, 저 공격은 피할 수 없으리라고 말이다.

〔쯧.〕

그러나 곧 그들의 기대는 보기 좋게 박살이 나 버리고 말았으니, 무심한 듯하면서도 어쩌면 오만한 읊조림이 그들의 귀를 스쳤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어깨로 내리찍히는 거대한 도끼를 응시하던 단테는 말했다.

〔누가 누구의 실력을 보겠다는 건지…….〕

가소롭다는 단테의 마음이 전염이라도 된 걸까.

벤데타의 안광이 붉게 터지며 번뜩인 순간, 그의 의지를 대변하는 벤데타는 어깨로 쇄도하던 그녀의 도끼를 믿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무슨?〕

이번만큼은 세이티나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의 혼란스러움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으나 그건 곧 신음으로 변했으니.

〔커헉!〕

벤데타의 주먹이 복부에 꽂혔다.

동시에, 그녀는 콕피트 안에서 황금색으로 물든 눈을 번뜩거리며 이어질 단테의 공격을 피해 몸을 뒤로 박찼다.

콰아아아앙!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대리석 등으로 잘 닦였던 황성의 대지는 내면의 속살을 드러내며 뒤집혔고, 벤데타 역시 그녀의 기체를 뒤쫓기 위해 대지를 박차고 도약했다.

〔퉤, 제법이야!〕

〔시끄럽다.〕

세이티나는 진심으로 호승심이 가득한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그 뒤를 따르는 단테의 얼굴에도 아주 옅은 웃음기가 스쳤다.

둘의 기체는 순식간에 황성을 넘었다.

그리고 곧 온갖 행정 관저가 가득 찬 내성의 시가지를 따라 공격을 주고받기 시작했으니.

콰아아아아앙!

퍼어엉!

주먹과 도끼가 서로를 향한다.

둘은 그것을 피하고, 피한 궤도에 있던 것은 본디 가지고 있던 형체를 잃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관청들이 무너져 내린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가 뿌리째로 뽑혔고, 전란이 오기 전 완공된 황제의 대로가 갈라지고 뒤집혔다.

“저, 저런 미친!”

“제국 국세청 본관이 무너졌습니다!”

“당장 막아!”

“어떻게 말입니까!”

그리고 내성 안에서 황성을 묵묵히 지켜보며 개입할 때만을 노리던 제1 군단 예하 군인들은 그 모습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무려 제도에서, 그것도 제국의 심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성에서 일어난 혼란이다.

전례가 없다.

아니……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라, 라리이 중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명령을!〕

때문에 그들은 곧바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한마음으로 통신기를 쥐고 한 사내의 이름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눈이 있다. 제군.〕

이어진 대답에 제1 군단의 장교들은 물론 현장에 있는 장병들 모두 그가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라리이라는 사내는 언제나 과감한 행동력과 합리적인 일 처리로 휘하 장교들에게 지지받았던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예하 장교들은 병사들이 즉각 출전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그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즉각 대응하라거나 제압하라는 말이 아닌 참모장을 향한 것이었으니.

“거주 구획까지 거리는?”

“아직 꽤 남긴 했습니다.”

참모장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지 태연하게 답했다.

라리이 역시 별달리 긴장감이나 분노를 느끼지 않는 태연한 얼굴로 통신기를 쥐고 말했다.

“거주 구획 넘기 전까진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본다.”

〔예? 하, 하지만 이대로라면 내성 안의 관청들이……!〕

“어차피 사전에 주요 장부나 서류는 이전했으니까 상관없어. 거기에 내성은 원래 사람이 거주하는 구획도 아니니까. 지금은 일단 단테 대령을 믿고 기다린다.”

장교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곧 그들은 라리이가 말한 말을 진의를 깨닫고는 제각기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명령은 곧…….

‘내성이 얼마나 박살이 나든 지켜보라는 말이잖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명령이다.

이에 그들이 무어라 항명을 하려던 그 순간.

라리이는 아직 내려놓지 않은 통신기를 쥔 채로 그들에게 말했다.

“참고로 황제 폐하께 인가받은 사실임을 알고 있도록.”

황제 페하에게 인가를 받은 사실.

즉, 황명이란 소리다.

그 때문에 무언가 항명을 하려던 군인들은 그저 숨을 죽인 채 라리이의 명령대로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참모장과 함께 나이트 프레임의 손바닥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리이는 피식 웃고는 나지막이 읊조렸으니.

“잘 패는구먼. 역시 천마인가.”

그의 말에 참모장은 화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가뜩이나 적었으나, 이젠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남궁세가의 일족이 하기엔 꽤 위험한 농담이었다.

기갑천마

제도의 밤 (6)

나이트 프레임의 외형은 기본적으로 인간, 혹은 그와 닮은 이종족의 그것을 따온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기체의 전투 방식 역시 인간의 그것과 큰 차이점은 없다.

주먹을 뻗는다.

대지에 발을 디디고 허벅지로 육신을 지탱하며, 동시에 각기 마기와 내력이라 읊조리는 이형의 힘을 끌어내 서로를 향했다.

투기와 호승심이 맞닿는다.

분노는 절제되고, 살의는 갈무리한다.

둘은 제각기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번뜩거리는 안광을 반짝이며 서로의 콕피트를 향해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까드드득!

충격파와 함께 장갑이 뒤틀린다.

우그러진 금속이 깨지고 뒤엉키며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으로 추락하고, 곧 둘은 콕피트 너머로 서로를 응시하며 미묘한 감정이 담긴 입꼬리를 올렸다.

〔크아아아아!〕

세이티나는 단테와 마찬가지로 보랏빛 액체가 일렁거리는 콕피트 안에서 입을 벌린 채 짐승에 가까운 괴성을 내질렀고, 곧 그녀의 의지를 대변한 네카토르는 특유의 악마 같은 육신을 움직여 손에 쥔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공기가 갈라진다.

도끼의 날은 단번에 벤데타의 목을 날려 버릴 듯이 비스듬하게 쇄도했다.

세이티나는 이젠 광기가 뒤섞인 웃음을 감출 생각조차 없이 외쳤다.

〔죽어어어!〕

비록 지금은 과거의 육신마저 잃어버린 채 반쪽짜리 몸으로 살아가는 신세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단 하루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적이 없었다.

마족들의 정점에 서 있던 7대공 중 한 명.

과거, 마계라고 불리던 세계의 지배자 중 하나였던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온전히 내 힘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대!’

비록 움타르가 있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방어에 치중하는 그의 전투 방식은 그녀에게 무언가 아쉬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마제천이나 이슈페인과 같은 이들은 말을 할 필요조차 없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늘 갈증에 차 있었다.

주먹을 뻗고, 서로의 피를 확인하며 살을 찢고 뼈를 꺾는 싸움을 하고 싶었다.

한데 마침내 그런 상대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때문에 그녀는 네카토르의 갑주 일부가 깨지고 우그러지는 충격 속에서도 흥분이 가득 찬 미소를 띤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래! 이거지!〕

콰아아아아앙!

쿠구구구궁!

이미 그들이 서 있는 주변의 대로는 갈라지고 엎어져 검은색에 가까운 흙더미를 드러낸 지 오래였고, 제국의 긴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던 관청들 역시 그저 산산이 부서져 하릴없이 추락할 따름이었다.

“미, 미친……!”

“제국의 천년 수도가……!”

결국 황명이라는 라리이의 읊조림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 제1 군단의 병력들은 그저 망연한 표정으로 탄식한다.

하지만 곧 그들은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으니.

세이티나의 네카토르와 단테의 벤데타가 내성을 휘저은 몇 분은, 단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의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걸 말이다.

〔스읍, 후-.〕

세이티나는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동시에 때마침 소강상태에 이른 전투 속에서 콕피트 안에 있을 서로를 응시하던 찰나 그녀는 입꼬리를 올린 채 입을 열었다.

〔이제 좀 본격적으로 해볼까? 어때?〕

우드득.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네카토르의 어깨 관절을 한 바퀴 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궁금하긴 했다.〕

〔응? 뭐가?〕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또한,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가가 말이다.〕

그렇게 말한 단테의 눈은 낮게 가라앉았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읽은 것일까, 세이티나는 이전보다 더욱 흥미가 담긴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단테는 생각했다.

‘대군주가 온다.’

작금의 경지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채 2년이 되지 않은 기간에 쌓아 올린 경지라고 생각하면 기염을 토할 정도였으나, 그럼에도 갈증은 타들어 가는 듯이 그의 목울대를 스쳤다.

단테의 시선 끝에 세이티나가 닿는다.

분명히 기체 위에 올랐을 텐데,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은 단테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헌데 고작 그녀조차 꺾지 못한다면, 다가올 대군주에겐 저항조차 할 수 없으리라는 건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때문에 단테는 옅은 숨소리를 내뱉은 직후 언젠가부터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벤데타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다.

……그러니 무릎을 꿇리자고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두근거리는 벤데타의 검은 심장이 단테의 강렬한 의지에 화답하듯 꿈틀거렸고, 이어진 것은 앞으로 미끄러지듯 뻗어지는 벤데타의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저,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단테 대령…… 그저 과장된 명성인 줄만 알았는데.”

그 모습을 아니꼽게 지켜보던 제1 군단의 군인들마저 무심결 감탄하게 만드는 움직임이었고, 그건 그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세이티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단테의 읊조림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아니면, 단지 다가올 전투의 호승심에 몸을 맡긴 채 광기와 투기를 끌어 올린 것인가.

뜻 모를 웃음을 흘린 그녀는 손에 쥔 거대한 도끼를 무너진 관청의 폐허 위로 내던졌고, 곧 주먹을 뻗는 단테에게 마주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우웅!

파아아아아앙!

벤데타와 네카토르.

각기 검은색과 보랏빛의 섬광이 서로를 향해 몰아쳤다.

그들은 곧 각기 몸에 두른 무형의 기운이 서로의 공격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끄으으윽!〕

〔쿨럭!〕

읊조린 기술의 이름도 없는, 그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마기와 내력의 격돌이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둘의 힘 싸움은 더욱 팽배하게 진행되었다.

콰드드득!

쿠구구구궁!

진동하는 공기가 건물의 파편을 가루로 화한다.

갈라진 대지는 또 다시 밀려오는 충격에 하나로 합쳐졌다가 이윽고 다시금 갈라졌다.

그 광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몇몇 말단 군인들은 충격파에 휩쓸려 주저앉으며 라리이 중장을 찾았다.

〔주, 중장님! 정말 개입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 내성 안에서의 소요라고 치기엔 둘의 격돌은 그 자체로 신화 속의 두 거인이 맞붙는 것 이상의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

돌아오지 않는 라리이 중장의 말 대신, 한 장교는 강풍에 날아간 군모를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나지막이 중얼거리니.

“개입한다고 하면…… 막을 수는 있고?”

당연하게도…….

그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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