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하하하!”
제2 원로 움타르 도 라으.
그는 특유의 호쾌한 웃음을 흘리며 새로 지원을 온 엠퍼러 가드들을 무참히 찍어 눌렀다.
몇몇 이들은 검과 도끼, 혹은 총으로 그에게 대항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커어억!”
갈고닦은 무투술은 그의 앞에선 그저 의미 없는 허수아비의 허우적거림일 뿐이었고.
“괴, 괴물이잖아!”
찌르고 베어도 핏방울 하나 나지 않는 강철과도 같은 육신은 그 자체로 기묘한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무식하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사마제천 역시 상황이 그리 다르진 않았다.
촤르르르르륵!
그의 손끝에서 펼쳐진 길고 흰 두루마리가 바닥을 구르며 빛을 번뜩였고, 곧 그를 노리고 달려오는 이들은 특유의 진법과 기묘한 사술에 잡아먹히기 일쑤였다.
엠퍼러 가드는 물론이고 로열 가드들 역시 뇌리에 두려움이 각인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저, 저딴 놈들을 어떻게 이겨!”
“으아아아!”
차라리 둘뿐이었다면 조금이나마 나았을 터.
하지만 두려움에 떠는 그 순간에도 하운드들이 그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수백이었던 로열 가드의 수는 순식간에 줄었다.
새로 돌입한 엠퍼러 가드는 움타르의 공격에 그야말로 녹아내렸고 말이다.
이로 인해 모두가 황태자의 패배를 직감했다.
“아, 아아…….”
엠페러 가드를 지휘하던 황태자마저 말이다.
그러나 그때.
“아.”
“흠.”
제각기 엠퍼러 가드와 로열 가드를 사냥하고 있던 움타르와 사마제천은 동시에 멈춰서 알현실의 천장을 응시했고, 곧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나란히 읊조렸으니.
“드디어 왔나.”
“쯧.”
그들은 망설임 없이 상대하던 이들을 밀쳐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황궁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아주 익숙한, 언뜻 보이시하면서도 쾌활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니.
“이야, 움타르. 이게 얼마 만이야?”
이름이 불린 움타르는 연기 속에서 걸어오는 한 여자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마주 웃으며 화답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세이티나.”
기갑천마
동상이몽 (4)
쿠구구궁!
족히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황실의 드높은 천장이 하릴없이 무너져 내렸다.
당연히 그 아래에 서 있던 이들에겐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이었기에 모두가 진동을 듣고 고개를 들자마자 눈을 부릅뜬 채로 사색이 되어 외쳤다.
“무, 무너진다아!”
“도, 도망쳐!”
“으아아악!”
무너진 천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 깔리는 순간 불구가 되는 것은 확정된다고 봐도 좋기에, 로열 가드는 물론 하운드들조차 일단 몸을 뒤로 빼기에 급급했다.
“아, 아아.”
물론, 애초에 권좌 앞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황태자는 그들이 몸을 빼든 말든 그저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제, 제국의…….”
금색으로 치장된 샹들리에는 지지할 곳을 잃자 쇠사슬과 함께 비스듬하게 추락했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른다.
떨어지는 석재와 기둥.
자욱하게 핀 회색빛 먼지.
마침내 바닥에 닿아 산산이 부서지는 샹들리에의 파편들까지…….
텅 빈, 애초에 뚫려 있었다는 듯이 검은 밤하늘을 드러낸 천장은 그의 마음처럼 공허한 동시에 어지럽게 반짝였다.
“알현실이, 황성이…….”
잿빛의 눈동자가 위태롭게 뒤흔들렸다.
무너지는 황실이 마치 바닥까지 끌어 내려진 황권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대한 망상일까, 아니면 합리적인 의심일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문득 그의 시선 끝자락에 황제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시스 폰 레벤스라트가 닿았다.
황태자인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황가의 상징인 잿빛 머리카락과 눈을 가진, 노년기에 접어들었다고는 쉬이 믿기지 않는 거구를 가진 그의 모습.
‘당신은 어째서…….’
지금은 기억도 희미한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때는 아버지이자 황제를 동경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의 그에게 황제이자 아버지인 시스 폰 레벤스라트는 대륙의 무수한 왕국들이 무너질 때조차도 끝까지 제국을 지킨, 후대에 길이 남을 성군이자 철인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두 허상이었지.’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작금의 황제는 철인이나 후대에 길이 남을 성군 따위가 아니었다.
그 증거가 블랙 가드다.
기껏해야 황실의 심부름이나 하는 블랙 가드는 월권을 넘어서 황제의 눈을 가렸고, 나아가 군부나 사회 전반에 기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자라 버린 지 오래다.
헌데 황제는, 자신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던 아버지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빠득!
시르투스는 이빨을 세게 악물었다.
말 그대로 황제인 시스 폰 레벤스라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려는 불만으로, 불만은 분노로 변했다.
또한 작금의 제국을 그 자신이 이어받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분노와 더불어 위기감이 차올랐다.
아비의 실정을 바로잡는다는 대의(大意).
훗날의 권력을 탐하는 사욕(私慾).
두 가지의 충동은 그에게 황위 찬탈이라는 행위를 부추겼고, 때마침 같은 생각을 하던 엠퍼러 가드의 수장인 류튜스와 일부 신하들이 그것에 동조했다.
대의로 사욕을 포장한다.
비단 황태자뿐만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모두가 그러했고, 그들은 황제가 블랙 가드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확신하며 기꺼이 이번 일을 실행한 것이다.
그래, 분명히 그럴진대…….
“어째서…….”
황태자는 어느새 분노 대신 의문과 혼란스러움으로 잠식된 눈으로 황제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의 눈은 총기를 잃지 않았는가를 고민하며 말이다.
마치 황제는 그에게 묻는 듯했다.
정녕 네가 알고 있는 아둔한 모든 것이 진실인 것으로 보이냐는 듯.
“이, 이 무슨…….”
그러고 그런 황태자의 혼란스러움이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것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으니, 그건 다름이 아니라 무너진 천장의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한 여자 때문이었다.
“이야, 움타르. 이게 얼마 만이야?”
읊조리듯 내뱉은 목소리는 낯설다.
하지만 서서히 걷히는 연기 너머로 보이는 군복을 본 황태자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장을 무너트린 주범이자 블랙 가드의 원로들과 적대 관계인 듯한 여인이 입은 군복 역시 블랙 가드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황태자도 아예 바보는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그가 생각하는 상식과 예측 선에서 아득히 멀어졌다는 걸 인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지에 대한 혼란이 과중되면 결국 미쳐 버린다고 했던가.
황태자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채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당혹감에 직면한 황태자의 어깨로 무언가 손이 탁- 하고 올라오자 고개를 돌린 그는, 머잖아 낯선…… 그러나 어딘가 눈에 익은 얼굴을 확인하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네놈은?”
무도하게도 황태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황가의 상징인 잿빛의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그의 핏줄 안에 각인된 선민의식은 혼란스러움으로 머리가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감히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는 말하려 했다.
‘그 더러운 손을 치워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언뜻 소년처럼 보이는 이가 입을 열었으니, 그것은 존경과 존중 따위가 담긴 게 아닌 그저 한없이 무시하는 듯한 한 마디였다.
“이거 참, 떠먹여 줘도 못하면 어떡합니까, 예?”
“뭐, 뭐라?”
당연히 그의 오만하고도 무도한 읊조림에 황태자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소년, 아니 이슈페인은 황태자가 아닌 그의 곁에 서 있던 로열 가드의 제1 단장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도 그렇습니다.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길래…….”
건방지게도 놈은 로열 가드의 제1 단장에게도 하대를 하고 있었다.
부하의 모욕은 곧 주군의 모욕.
때문에 황태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꾸짖기 위해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벌리려던 그때였다.
털썩.
“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단장은 무릎을 꿇었고, 그 모습을 본 황태자는 그저 허탈한 탄식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예상 밖으로 개입이 빨랐던 터라…….”
“뭐, 놈들이 이렇게 기민하게 움직인 건 예상 밖이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정보통이 있던 양이죠.”
이슈페인은 그렇게 말하며 턱을 가볍게 쓸었다.
그의 말대로 본디 이번 쿠데타는 아주 조용하고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시기도 꽤나 좋았는데 말이다.
‘망르는 물론, 다른 곳도 꽤 손실이 있었는데.’
물론 망르 해안가에서 벌어진 공방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으나 최근 블랙 가드의 손실이 이전에 비해 큰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절대 무리한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간파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당주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제1 원로가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나.”
이슈페인은 특유의 소년 같은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연륜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습니다. 알고 있겠죠?”
“예, 원로님.”
로열 가드의 제1 단장은 이슈페인의 명령에 가까운 말에도 일말의 망설임 따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장으로 향했다.
당연히 그 모습에 황태자는 물론이고 막 정신을 차린 류튜스 역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배, 배신한 건가?”
“배신이라니요.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그들의 떨리는 읊조림에도 이슈페인은 일말의 당혹감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놓친 걸 짚어줄 뿐인 것이다.
“처음부터 당신들은 꼭두각시였습니다. 배신을 당한 게 아니라 이용을 당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잔인하리만큼 적나라한 표현이다.
때문에 황태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대로 권좌에 쓰러지듯 앉았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한없이 화려하게 치장된 권좌는 황태자를 감쌌으나, 그 모습은 역설적으로 한없이 초라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슈페인은 생각한다.
대체 무엇이 그리도 억울한 것일까.
‘우리가 없었다면 지금쯤 살아 있지도 못했을 놈들이.’
이슈페인은 무심결 입술을 잘끈 깨물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주제 파악도 못 하는 놈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는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사마제천을 마주 바라보며 손가락을 튀겼다.
타악! 하는 소리가 알현실을 울렸다.
동시에 곧 무너진 천장 너머에서 일련의 그림자가 빠르게 알현실 내부로 난입하니, 이어진 것은 당연히 폭력과 폭력의 맞부딪침이었다.
“간다아앗!”
“우타!”
시작을 연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움타르와 세이티나의 격돌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제각기 서로를 구성하는 마기와 흙의 기운으로 육신을 감싼 채 주먹을 뻗었고, 곧 엄청난 폭음과 파장이 알현실 내부를 덮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선 모두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 눈앞의 저 격돌은 단순히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더 큰 충격이 자신들을 덮치리라는 걸 말이다.
“폐하를 모셔라.”
때문에 사마제천이 그런 명령을 내린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황제는 자신을 호위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는 하운드들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되었다. 의자나 좀 가져다주겠느냐.”
“괜찮으시겠습니까?”
“……복구나 잘해 놓거라.”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만.”
사마제천은 점차 격해지는 움타르와 세이티나의 격돌을 힐끔 쳐다보며 ‘재건축이 빠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구태여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사마제천의 하운드들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꽤 휘황찬란한 의자를 가져다가 황제의 뒤에 놓았고, 황제는 그 자리에 앉아 사마제천에게 말했다.
“죽이진 말게.”
“알겠습니다, 폐하.”
그가 말하는 것이 황태자를 지칭하는 것임을 모를 사마제천이 아니었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맹약에도 포함된 내용이 아니던가.
황가의 핏줄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해하지 않겠다는 내용 말이다.
이를 상기한 사마제천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곤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이슈페인을 마주 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폼이나 잡고 있을 겁니까? 혹시 도망치고 싶으면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또 모르잖습니까? 대군주한테 가서 여왕이나 시켜 달라고 하면 만들어 줄지도. 하핫!”
“……그 독사 같은 아가리는 여전하구나.”
이슈페인의 눈이 푸른빛으로 번뜩였다.
동시에 사마제천 역시 동그란 안경으로 유하게 가리고 있던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마주 보니.
“움타르으으으!”
“세이티나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앙!
때마침 울려퍼지는 세이티나와 움타르가 격돌하는 일갈과 함께 폭음이 터지고, 그 순간 사마제천과 이슈페인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지를 박찼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하면 난폭한 세이티나와 움타르의 격돌과는 달리, 둘의 도약과 격돌은 한없이 정적이었다는 것일까.
번뜩!
파아아앙!
때때로 빛이 번뜩거리고 날카로운 마나의 잔류만이 뺨을 스칠 뿐이다.
“내분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제는 무심결 그렇게 중얼거렸고, 곧 언젠가 자신을 찾아왔던 일곱 명의 남녀를 떠올리며 눈을 감고 읊조렸다.
“시간이란 참으로 빠르군. 또한 야속해.”
그건 언뜻, 회한이 담긴 읊조림이었다.
기갑천마
악몽은 언제나 밤에 찾아온다
“그래! 이 맛이지!”
일전에 그저 그런 나이트 프레임도 아닌, 리베라의 기체 모스트리와 보리스의 기체 이데아를 상대로 압도적인 전력을 펼쳤던 그녀다.
제6 원로 세이티나.
때문에 그때를 기억하는 소수의 블랙 가드와 하운드 중 일부는 그녀가 움타르에게 압도적으로 이기진 못하더라도 우세를 점하거나 적어도 비등하리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그것이 얼마나 멍청하고 또 우둔한 생각인지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으니.
“……과연, 원로급은 격이 다르다 이건가.”
“대단하군.”
달려드는 엠퍼러 가드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제압한 둘의 대화처럼 제6 원로 세이티나와 제2 원로 움타르의 전투는 그 자체로 격이 다른, 인외의 전투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크하하하핫!”
호쾌하게 울려 퍼지는 세이티나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의 꽉 쥔 주먹에서 흐르는 보랏빛 마력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세로로 길쭉한 황금색 눈동자 또한 더욱 밝게 번뜩이며 특유의 붉은 색 머리가 부스스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마나와 궤가 다른, 흔히 마기라고 불리는 기운이 단번에 움타르를 찢어 죽을 듯이 뻗어진다.
당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 중 태반이 움타르의 죽음을 점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 전 속삭이듯 말했던 것처럼 모두의 예상은 너무나도 손쉬우면서도 충격적인 방향으로 깨지고 말았다.
“하루크! 투라!”
기원조차 알 수 없는 주문과도 같은 읊조림은 그 자체로 단단하고 또한 묵직했다.
동시에 그의 육신의 곁에 일렁거리던 흙빛의 무언가가 마치 갑주처럼 근육을 감싸기 시작했고, 내뻗은 주먹의 뒤로 일순간 무언가의 환영이 스쳤다.
-쿠어어어어어!
늑대를 무두질해 손질한 듯한 가죽을 뒤집어쓴 거인의 형태가 그를 감싸고, 머지않아 깃털과 함께 흔들리는 거인은 움타르를 대신하여 세이티나의 일격에 맞서 주먹을 뻗었다.
눈이나 한 번쯤 깜빡일 시간이 흘렀을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제국의 심장부나 다름이 없는 황궁의 알현실에서 울리는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폭음이 그들의 몸을 감싸듯이 스쳤다.
곧 황태자는 물론 황제마저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누구의 승리로 끝나든, 알현실은 새로 지어야겠다.’라고 말이다.
한편 세이티나와 움타르는 주변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내뻗고 있었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더 강해졌네, 움타르!”
“같은 생각이다! 오늘 네년의 그 송곳니를 뜯어내 주지!”
세이티나의 목소리엔 그야말로 정제되지 않은 광기와 호승심이 가득 차 있었고, 움타르의 육신을 향해 뻗어 내는 주먹은 그 자체로 위압적이었다.
콰드드드득!
인간의 형상을 띤 살갗을 꿰뚫고 날카로운 손톱이 도드라졌다.
동시에 그녀는 일갈했다.
“누가 할 소리를!”
오늘에서야 기필코 저 보기 싫은 흙더미를 갈가리 찢어발겨 우둔한 놈들의 뇌리에 누가 진짜 강자인지를 각인시키리라.
그녀는 그런 읊조림을 속으로 다짐하곤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악마 족의 피를 일깨웠다.
“하하하하하핫! 크트!”
전사는 전사의 도전을 거절하지 않는다.
움타르는 마치 그렇게 읊조리듯이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뻗었고, 동시에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거인의 환영 역시 움타르의 움직임에 맞춰 거구를 움직였다.
쿠구구구궁!
모래 먼지가 일렁거렸다.
분명히 모래 먼지 따위는 있을 수가 없는 공간일진대, 그들은 현실을 왜곡시키듯 서로를 향해 투기와 살의를 흩뿌리는 것이다.
“도망쳐!”
“크아아아악!”
주먹과 주먹이 맞닿을 때마다 세이티나와 움타르의 주변은 빠르게 초토화되었다.
그것에 휩쓸린 로열 가드와 엠퍼러 가드는 물론 블랙 가드 일부 역시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둘의 전투에서 감히 눈을 떼지 못했으나,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저, 저게 바로…….”
눈앞의 것은 초인과 초인의 전투.
지금은 잊힌, 과거 대륙에도 존재했던…… 인간을 뛰어넘은 이들의 전투라는 걸 말이다.
“하하하핫! 즐겁구나! 세이티나!”
“크하하하핫! 동감이다!”
물론 그들의 전투가 알현실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이티나와 움타르의 전투가 힘과 힘, 투지와 투지, 호승심과 호승심이 오가는 전사의 일기토에 가까웠다면, 이슈페인과 사마제천의 전투는 철저히 상대의 목숨을 거두기 위한 냉철한 살인이었다.
그 증거로 둘은 세이티나와 움타르처럼 살갑게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단지 서로를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묵묵히 상대를 향해 공격을 휘두를 뿐이었다.
파아앗!
콰드드득!
그들의 일격에 대리석이 갈라지고 날카로운 바람이 이리저리 휘몰아쳤으나, 정작 부수적인 피해는 나오지 않았다.
오직 상대만을 노리는 정교한 공격.
그것이 둘이 흩뿌리는 공격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이리라.
촤르르륵!
사마제천의 손안에 쥐인 두루마리 종이가 빠르게 풀어지며, 동시에 그는 쥔 붓으로 유려한 선을 그려 넣었다.
선은 곧 글자가 되어 그의 의지를 대변하니.
사마제천은 특유의 검은 동공을 번뜩이며 일반적인 붓과는 달리 잉크가 밀려 나오는 푸른 붓으로 획을 마무리했다.
한 획(劃)마다 짙은 내력이 스며든다.
일전에도 보았던……. 아니, 이미 숱하게도 보아 온 사마제천 특유의 기술이었기에 이슈페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슈페인은 그저 몸을 나노 입자로 흩뿌리며 빠르게 그를 압박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때.
씨익, 하며 입꼬리를 올린 사마제천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잡기술을.”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 펼쳐진 두루마리 종이는 육신이라도 얻은 듯이 빠르면서도 불규칙적이고 유려한 흐름으로 입자로 변한 이슈페인을 압박했다.
물론 이슈페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당연히 그의 내력을 읽고 몸을 틀어 피했다.
다만 그가 미처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으니.
“큭!”
아직 일전에 입었던 충격을 전부 수복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눈앞의 사마제천은 그가 여태까지 가늠했던 것보다 더욱 강했다는 사실이었다.
입술을 잘근 깨문다.
동시에 이슈페인은 밀려오는 강대한 기력에 타들어 가는 나노 머신의 입자를 느끼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과연……!’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마제천은 늘 웃음으로 자신을 가리고 살아가지만, 그 실상은 당주를 제외하고 블랙 가드의 누구보다 위험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막연히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으니까.
“크큭.”
이슈페인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사마제천에게 접근하는 무언가를 확인하곤 승리를 자신하는 듯 웃고 있는 그에게 말했으니.
“일전에 네가 말했지. 우리의 생각은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고.”
이젠 유명무실해져 버린 십계명 따위를 운운하며 자신들을 훈수하던 그때의 말을 떠올린다.
동시에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마제천을 향해 답했다.
“그런데 어쩌나? 아무래도 블랙 가드 내부에서도 우리의 망상이 꽤 타당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말이야.”
“뭐?”
의미심장한 한 마디에 사마제천의 얼굴이 굳었다.
동시에 그의 뒤로 흔들리던 그림자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사마제천의 어깨를 꿰뚫었다.
“컥!”
비단 어깨의 고통만이 아닌, 몸에 두른 호신강기가 깨짐으로써 육신을 뒤흔드는 충격이 그를 감싼다.
때문에 그는 미간을 좁히며 고통에 신음했고, 곧 자신의 어깨를 관통하고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그림자를 상기하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베데눔까지? 큭!”
소매 속에 감춘, 푸른빛이 도는 철로 된 붓을 흩뿌려 이슈페인의 접근은 차단한 후에 곧바로 몸을 뒤로 빼냈다.
파앗!
동시에 그의 위험을 직감한 하운드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경계했다.
그들 덕분에 시간을 번 사마제천은 시선을 내려 검게 썩어가는 어깨를 응시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이건 좀 의외인데요. 인정하겠습니다. 허를 찔렸어요.”
담백하리만큼 자조적인 사마제천의 읊조림에도 이슈페인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림자를 안식처 삼아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안광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할 뿐인 것이다.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되나?”
“제가 바보겠습니까. 허헛! 다만 이건 좀 충격적이긴 하네요.”
사마제천은 품속에서 바늘이 돋아난 마도구를 꺼내 어깨에 박았다.
파악!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주입된 약물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한층 밝게 만들어 주었고, 사마제천은 곧 목에서 올라오는 묽은 핏물을 퉤- 하고 뱉으며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말에 답했으니.
“베데눔.”
사마제천은 어느새 깨져 버린 동그란 안경을 스윽 벗어 바닥에 대충 던져 버리고는 되물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답조차 없이 안광을 번뜩거리는 남자…… 아니, 제5 원로이자 그림자 일족의 왕이었던 인물에게.
“당신은 저런 망상에 관심 없는 것 아니었습니까?”
물론 당연하게도.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