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아아아앙!
단테의 콕피트 안에 가득 찬 묵빛 액체가 벤데타를 강타한 촉수에 의해 위태롭게 흔들렸다.
콰드득!
검은 장갑이 섬뜩한 소리를 흘리며 우그러지고, 그 충격은 곧바로 단테에게 직격되어 그의 육신을 두드렸다.
〔큭!〕
드물게 단테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그러나 그에게 대적하는 여왕의 상태 역시 절대 정상은 아니었으니.
-……아프구나.
여왕의 입가에서 마치 물처럼 투명한 핏물이 흘러 턱까지 흘렀다.
비단 입술만이 아니다.
등에서 솟구친 촉수는 처음 뻗어진 게 무색하게도 절반가량이 끊어졌다.
순백의 나신 역시 곳곳이 단테의 공격에 온갖 흉터가 나고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뿐.
여왕은 여전히 무심한 푸른 눈동자로 미친 듯이 촉수를 잡아 뜯고 주먹을 뻗어 대는 벤데타의 모습을 응시하다가 옅은 숨결을 삼켰다.
-하아.
내뱉고 들이마신 숨결.
생명체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그 행동에 그녀의 기세가 달라졌다.
곧 그녀는 콕피트 안에서 내력을 끌어 올리고 있는 단테를 지그시 응시하며 입을 들썩였다.
-부족하다.
그것은 짐짓 오만한 한마디.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건 오만하거나 우둔한 읊조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제까지와는 궤가 다른 힘을 가진 촉수가 미친 듯이 단테의 벤데타를 향했고, 주먹을 뻗던 단테는 느껴지는 여왕의 힘에 이를 악물며 팔을 교차했다.
그의 직감은 대부분 옳았다.
특히 전투적인 부분에서는 더더욱.
이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폭음이 울리고, 단테는 강력한 여왕의 출력에 곧바로 대응하는 대신, 그 반발력을 이용하여 뒤로 물러서기를 택했다.
물론 전장을 이탈한다거나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벤데타에게만 와닿는 말일 뿐이었다.
“끄아아아아악!”
“나, 날아온다아아!”
“피해애!”
제각기 다른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물론.
〔회피해야 합니다!〕
〔큭!〕
나이트 프레임들 역시 마수들에게 잠시 팔 한쪽을 내줄지언정 몸을 비틀어 모래사장을 굴렀다.
-끼이이이이!
-캬아아아아아아아!
심지어는 마수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전투가 한창이던 망르 해안가 모래사장의 한부분이 일순간 비워지고…… 아니나 다를까, 벤데타의 육중한 기체가 여왕의 일격에 허공을 날아 그 위로 추락했다.
쿠구구구구궁!
일순간 느껴지는 진동.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고, 이제까지 물안개가 시야를 어지럽히던 것과는 달리 모래가 튀며 일대에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차라리 그뿐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콰드드득!
콰지직!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군인들과 마수들의 살점이 사이사이 튀었다.
‘한 방 먹었군……!’
당연히 기감이 예민한 단테가 그런 점을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었으나, 지금 그에게 직면한 것은 추모가 아니라 전투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먼지가 걷히자…….
-자비를.
조금 전부터 기세가 달라진 여왕은 그가 날아온 궤적을 좇아 허공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11)
전투가 벌어진 이래 망르 해안가의 하늘은 점차 검게 물들어 갔다.
머지않아 그들의 머리 위를 덮은 하늘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스러진 시체는 어둠이란 장막에 덮인다.
핏물은 물결을 따라 바다로 흩어지며 옅어졌고, 마수들이 짓밟아 우그러진 군번줄과 시체들만이 현실에 도래한 절망을 시각적으로 보여 줄 따름이었다.
“아, 아아아.”
읊조리듯 내뱉은 탄식은 장송곡이 되었다.
“끄으윽!”
신음과 함께 부여잡은 상처는 당장이라도 목숨을 앗아 갈 듯한 사신의 칼날과 같이 서늘하게 군인들을 옥죄어 간다.
그리고 그런 와중.
콰아아아앙, 따위의 폭음과 함께 지축을 흔들며 해안가로 추락한 단테와 그 뒤를 쫓는 여왕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서 하여금 많은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단테 대령.”
“저 기체가…….”
특임대와 법국.
제국과 연합 왕국, 이젠 망국(亡國)한 프란 공화국 잔존 병력 중 합류한 이들까지.
단테 대령이란 사내가 보여준 압도적인 무력이라는 형태를 눈앞에서 지켜본 그들은 그저 침묵 속에서 침을 삼키며 그가 또다시 무언가 새로운 역사를 쓰리라는 기대감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아.”
“……전부 끝이야.”
반면 그를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그를 처음 보거나 믿지 못하는 군인들은 그저 나지막한 탄식으로 다가올 패배를 점치며, 느리지만 분명히 다가올 죽음의 한기에 절망을 삼켰다.
어찌 보면 후자의 반응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분명 해안가에서 떨어진 바다 멀리에서 전투를 벌이던 여왕에 의해 단테의 기체 벤데타는 허공을 날았고, 그 뒤를 쫓아 온 여왕의 모습은 그 자체로 누가 우세한지를 보여 주는 듯했다.
그러니 이미 세로스라는 구심점을 한번 잃은 군인들에게 희망의 추락이란 믿기 힘든 낭설이 아니라 눈앞에 직면한 현실이었다.
〔끝이군.〕
〔……아무리 단테 대령이라고 한들, 여왕을 단신으로 막는 건 무리일 수밖에.〕
그렇다고 섣불리 지원할 수도 없다.
비록 단테 대령이 밀리고 있다고 한들 그의 힘은 진짜였으며, 에이스도 되지 못한 양산형 나이트 프레임으로 여왕을 공격한다고 한들 그저 의미 없는 개죽음일 뿐이었으니까.
아니, 사실 두려움이 컸다.
파스스스!
등 뒤에서 반쯤 녹아내린 촉수들이 재생되었다.
그대로 허공을 날아 단번에 벤데타를 찢어 버릴 듯이 추락하는 여왕의 자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재앙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말이다.
-가련한지고.
순백의 나신은 인간의 그것과 하등 다르지 않아 은연중 몇몇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태다.
그러나 동시에 본능에 가까운 역겨움이 고개를 치켜들었으니.
“……개소리를.”
해안가에서 한쪽 팔이 마수에게 찢어진 채, 전우들의 손에 의해 후방으로 끌려가던 한 부상병은 흐릿한 시야 너머로 읊조리는 여왕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끼기긱-!
자욱한 흙먼지 안에서 나이트 프레임 파일럿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기계음이 귓가를 스쳤으니.
〔스으으…….〕
내뱉는 숨결에 서슬 퍼런 살기가 섞인다.
마석에 의존하는 통신기에는 담기지 않을 감정의 편린일진대, 그것은 모두의 귓가를 스치며 무심결 전율토록 만들었다.
동시에 그들은 통일된 한 가지를 떠올렸다.
‘단테 대령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이 전장에 살아 숨 쉬는 모두에게 성토하듯이 자욱하게 일어난 연기를 꿰뚫고 주먹을 뻗었다.
파아아앙!
단순히 연기를 꿰뚫을 뿐인 주먹이다.
그러나 그것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여왕의 시선 속에선 푸르스름한 혼란이 맴돌았으니, 놈 역시 느낀 것이다.
자신이 이제껏 감춰 두었던 전력을 꺼내었듯이, 단테도 이전과는 궤가 다른 폭력을 자신에게 드리울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한들.
여왕의 눈에 한 줄기 연민이 스쳤다.
등 뒤에서 어지럽게 나풀거리던 촉수가 세상의 섭리인 중력을 무시하듯이 일제히 지상을 향해 날을 세웠고, 곧 추락하는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그를 향해 쇄도하듯이 쏘아졌다.
묵빛 아지랑이가 맴도는 주먹.
완전히 재생을 끝낸 채 적을 향해 너무나도 날카롭게 서 있는 푸른 촉수.
쿠구구구궁!
파아아아아앙!
제각기 다른 그것들은 눈을 한번 감았다 뜬 순간 격돌했고 곧 주먹은 여왕의 육신을, 날카로운 촉수는 단테의 콕피트를 관통했다.
-쿨럭!
〔커헉!〕
제각기 다른, 그러나 고통이라는 동일한 감정이 뒤섞인 신음이 울려 퍼졌다.
단테의 주먹은 여왕에게 닿지 못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닿았으나 목숨을 거두진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반면 여왕의 촉수는 달랐다.
여왕은 시선을 내리고는, 여전한 무표정을 띤 채로 촉수에 꿰뚫렸을 단테를 응시하며 확신했다.
이번 공격으로 그의 삶을 취했으리라고.
하지만 그 순간.
〔……인정하지.〕
단테는 콕피트를 뚫고 자신의 어깨를 관통한 촉수의 끝자락을 응시하며 미간을 좁혔다.
고통이 밀려왔다.
말이 어깨가 꿰뚫린 것이지, 촉수의 크기는 어지간한 창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조금만 상처가 더 깊었다면 아예 한쪽 팔이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단테는 고통에 신음하며 절망하는 대신 반대쪽 팔을 들어 왼쪽 어깨를 꿰뚫은 촉수를 틀어쥐었다.
콰득!
여왕의 것과는 달리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육신으로 촉수를 잡았다.
동시에 그의 의지가 담긴 벤데타의 거대한 손 역시 송곳과도 같은 여왕의 촉수를 쥐니.
그는 옅은 미소를 흘린 채 속삭이듯 덧붙였다.
〔꽤 따끔하구나.〕
잡은 촉수를 비틀었다.
그리자 꿀렁거리는 묵빛 액체는 마치 단테를 돕듯이 흐르며 촉수에 일어나는 균열 사이로 파고들었다.
-무슨……?
스스로 지배의 여왕이라 읊조린 괴물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촉수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별개다.
단지 그녀의 직감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지금 당장 몸을 뒤로 빼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여왕이란 존재의 직감은 곧 필연(必然).
그녀는 스스로가 느낄 새도 없이 단테의 콕피트를 꿰뚫은 촉수를 스스로 잘라 내며 동시에 뒤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직후.
콰직!
벤데타는 손에 쥐고 있던 촉수를 그저 흔한 고깃덩어리처럼 찢어 버리곤 뒤로 멀어지는 여왕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무공을 담기엔 너무나 찰나의 순간.
그렇기에 단테는 어깨의 핏물 사이로 묵빛 액체가 들어참을 느끼면서도 내력의 1할에 가까운 양을 그대로 주먹에 담아 내질렀다.
단순한 주먹질이라기엔 고매했고, 무공이라기엔 무식하다.
-큭!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여왕은 이제까지와 달리 표정을 굳히며 모든 촉수를 긁어모아 전면을 향해 내밀었다.
시간이 정지한다.
그리고 모두가 삼켰던 숨을 내뱉은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제까지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폭음과 충격을 동반한 채로 일대를 뒤덮었다.
그들은 고통에 신음하지 않았다.
단지 서로를 갉아먹는 고통 속에서도 다음을 준비할 따름이었으니.
백월신공(白月神功).
묵월참(墨月斬).
단테가 읊조리듯 내뱉은 속삭임에 그의 절기 중 하나가 펼쳐진다.
그는 주인을 잃은 채 모래 속에 반쯤 파묻혀 있던 푸른 미스릴 소드를 휘두르자, 균열이 가 있던 검이 긴 궤적을 그리며 반월을 흩뿌렸다.
나아가 긴 선이 그어진다.
서거걱!
촉수의 살점은 길게 뻗어진 섬광 속에서 일순간 움찔거리다가 핏물을 터트리며 대지로 추락했지만, 여왕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우웅-!
혼란 속에서 마나가 어지럽게 휘몰아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제껏 등 뒤에 달린 촉수만을 고집하던 여왕은 괴물의 것이라기엔 희고 가련한 손을 그를 향해 뻗은 채 무심한 시선으로 읊조렸다.
-안식과 절망을.
바람이 휘몰아쳤다.
처음에는 단순한 산들바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이고 서로 뒤엉키며 게걸스럽게도 크기를 불려 나가니.
휘이이이잉!
그 자체로 폭풍이 된 투명한 흐름은 단번에 단테가 탄 벤데타를 찢어 버릴 듯이 쇄도했다.
콰드드- 따위의 섬뜩한 소리를 내며 벤데타의 육신에 덧대어진 장갑이 그간 누적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뿐인가.
어깨의 우그러진 철갑.
끊어져 휘날리던 케이블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히 그 모든 것들은 자신에게 지독한 고통으로 다가오리라는 걸 모르는 단테가 아니었다.
〔……큭!〕
그 증거로 이번엔 단테 역시 미약한 신음을 흘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뿐.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묵환강(天魔黙丸鋼).
단테의 손끝에서 일렁거리는 구는 머지않아 하나의 거대한 폭력이 되어 여왕의 육신을 갈가리 찢어발길 듯 쇄도했다.
연이은 공격에 여왕 역시 무사할 순 없었다.
-커헉!
여왕의 얼굴이 고통으로 물들며 벌어진 입술 사이로 투명한 핏물이 튀었다.
동시에 장갑이 뜯기고 콕피트가 꿰뚫리는 등 엉망이 된 벤데타의 상태는 그 안에 몸담은 단테의 상태와도 사뭇 닮아 있었다.
“후우…….”
콕피트가 꿰뚫리며 통신기가 고장이 난 듯 그의 읊조림은 지직거리는 통신기를 통해서가 아닌, 반쯤 묵빛 액체가 흘러내린 공간 안에서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하아, 하아…….
여왕 역시 이어진 공격에 꽤 충격을 받았는지, 섣불리 공격하는 대신 헐떡거리는 숨을 들이마시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단테는 그 틈에 시선을 관통된 왼쪽 어깨로 향했고, 곧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잘릴 뻔했나.’
콕피트는 물론, 육신에도 호신강기를 둘렀음에도 완전히 막아 내지 못했다.
뼈가 드러났고, 힘줄이나 신경 등 꽤나 많은 부분이 상한 듯했다.
회복하려면 하지 못할 건 없다.
그러나 이대로 시간을 더 끌게 된다면 자칫 팔을 잘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테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한다.
그리고 곧 그는 적안을 번뜩이며 절반쯤 되는 촉수를 잃은 여왕을 바라보곤 생각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스스로 ‘자비의 여왕’이라 칭한 저놈은 그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강했다.
그러나 그뿐.
강하다고 한들, 상처를 입었다고 한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다.
꽈악.
그는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는 이젠 한 몸과도 같은 벤데타에게 속삭이듯 의지를 전달했다.
앞으로 가자고.
가서, 놈을 찢어발기자고.
그러나 그때였다.
두근-!
이제까지 묵묵히 그의 의지를 대변했던 벤데타의 검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곧 입가를 가리고 있던 철갑이 뚜둑거리며 대지로 추락한다.
동시에 단테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죽이고 싶다.
찢어발기고 싶으며.
마수를 절멸시키고 싶다.
구축한다.
사냥한다.
참살한다.
짙은 살심(殺心)이 고개를 치켜든다.
하지만 그건 그의 감정이 아니었다.
단테는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반쯤 흘러내렸던 묵빛 액체는 너무나도 빠르게 다시금 차올라 그를 잠식하니.
-쿠아아아아아아아!
묵빛 액체 때문인지, 아니면 꽤 오랜만에 입은 짙은 상처 때문인지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울부짖는 벤데타의 괴성을 들으며 단테는 생각했다.
‘이런 제기랄.’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프란 공화국이 무너지던 그 날, 벤데타가 날뛰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쿠어어어어어!
다시금 괴성을 내뱉은 벤데타는 곧바로 모래와 시체로 뒤덮인 대지를 박찼고, 머지않아 여왕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으니.
“저, 저건?”
“무슨……!”
그 모습은 흡사 짐승과도 같았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12)
“저, 저건……?”
세로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마찬가지로 적잖은 고통을 인내하던 세실의 눈이 경악을 머금고 찢어질 듯이 커졌다.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벤데타의 모습은 과거 프란틴에서 보았던 광기가 넘치는 그 모습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제기랄.〕
투욱.
입에 문 담배가 속절없이 추락했다.
그 과정에서 가죽으로 된 군복 일부가 살짝 그을렸으나, 눈앞의 상황 속에서 그딴 건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비단 그만이 아니다.
리베라와 클리에는 물론, 보리스조차도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끼곤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크르르르르!
벤데타의 입을 재갈처럼 막고 있던 철판이 부질없이 대지로 추락하고, 동시에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이빨이 다시금 세상에 드러났다.
붉게 물든 안광이 번뜩거렸다.
그 자태는 흡사 짐승이나 마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그 모습을 본 군인들은 전율함과 동시에 무심결 손에 쥔 총기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아군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무심결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을 정도로 벤데타가 보여 준 모습은 기괴함 그 자체인 것이다.
-크아아아아아!
그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벤데타는 도저히 나이트 프레임이라고는 믿기 힘든 입을 쩍 벌리며 앞으로 내달렸다.
부서진 장갑이 뒤틀렸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비틀거리며 내달리던 벤데타는 이윽고 대지를 박차고는 여왕을 향해 몸을 던지듯 도약했다.
……아니, 도약이 아니다.
그 모습은 마치 짐승이 이성을 잃고 달려가는 것에서 하등 다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날카로운 발톱이 손끝에서 도드라지고, 꿰뚫린 콕피트는 뭔지 모를 묵빛 액체로 막혀 단테를 감췄다.
벤데타에게선 더는 단테의 읊조림이 들려오지 않았고, 단지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그저 괴성에 가까운 울부짖음일 따름이었다.
-크어어어어어!
고막을 찢을 듯이 날카롭게 울리는 괴성 속에서 여왕은 이전과 다른 존재로 변모한 듯한 벤데타를 응시했다.
육중한 검은 기체는 온데간데없다.
단지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이성조차 온전하지 않은 무언가일 따름이었다.
-기이하구나.
그렇다고 한들 여왕은 방심하지 않았다.
이성의 유무와는 달리 미친 짐승처럼 모래를 튀며 달려오는 벤데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위기감이 느껴질 정도로 위협적이었으니까 말이다.
파아아앙!
어느새 수복된 푸른 촉수가 빠르게 쇄도하며 벤데타의 앞을 막았다.
그러나 그 순간 벤데타는 붉은 안광을 터트리며 괴성을 내지르니.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날카로운 갈퀴와 같은 외양을 한 벤데타의 손톱이 여왕의 촉수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잘린 살덩이는 하릴없이 추락했다.
그리고 뒤이어 발을 디딘 벤데타는 그 살덩이를 다진 고깃덩어리로 만들며 그녀를 향해 쇄도하는 것이다.
-큭!
당연히 여왕은 일순간 당황했으나, 곧 그의 공격이 이전까지와는 달리 한없이 우둔하고 정직한 직선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허.
여왕의 눈에 찰나지만 한심함이 스쳤다.
그것은 자신과 대적하던 적수의 추락에 아쉬워하면서도, 이어질 추태를 끝내 주고자 하는 기묘한 감정이었다.
파아앙!
허공에서 긴 궤적을 그리던 촉수가 일순간 변칙적인 움직임을 그리며 벤데타의 사각을 노렸다.
-크르르르!
당연히 벤데타는 그것에 반응하여 팔을 뻗었으나, 여왕은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침 재생이 끝난 반대쪽 촉수를 뻗어 그의 반대쪽을 향해 뻗었으니.
콰드드득!
-끄르르륵!
벤데타의 오른쪽 어깨 부근이 꿰뚫리고, 나아가 여왕은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은 단지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일 뿐인 짐승이나 다름이 없어졌다고 말이다.
-가련한지고.
무표정한 푸른 눈이 일순간 번뜩였다.
이윽고 그녀는 잠깐 방심한 사이 촉수를 끊어 버리고 자신의 얼굴을 으깰 듯이 뻗어지는 벤데타의 거대한 손을 응시하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길들이지 못한 군마만큼 해가 되는 것은 없거늘.
그리고 그 직후.
콰드드득!
섬뜩하리만큼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녀의 촉수가 단번에 벤데타의 손바닥을 꿰뚫더니 어깨를 관통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고통이 뒤섞인 벤데타의 외침이 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는 자신들도 모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미 승패는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역설적이게도 벤데타를 끝내기 위해 남은 촉수를 뻗으려던 여왕은 왜인지 느껴지는 위화감에 몸을 떨었고, 곧 눈이 찢어지라 크게 뜨고는 읊조렸으니.
-……이, 무슨?
또 다른 이변의 전조였다.